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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요수] 가치증명

열화요수 엽서북 《선령세상유람기》 참여 원고│w. 팝



가치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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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으로 토끼가 지나갔습니다!”

 

한 병사의 외침에 눈빛이 오간다. 대열을 맞춘 것처럼 일부 이들은 오른쪽으로, 일부는 토끼를 쫓아 달렸다. 어디까지나 여흥에 지나지 않는 사냥이었으나, 그것이 왕과 함께하는 것이 된다면 말은 달라졌다.

 

“령연, 저쪽! 저쪽에 토끼가 있어!”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이가 있다. 자신만 들을 수 있으나, 그 이야기가 선명하니 존재를 부정할 수도 없다. 성소는 외침을 들었고, 대꾸하지 않았음에도 답을 안다는 것처럼 그곳으로 움직였다. 토끼가 달리는 것을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선명했다. 눈앞에서 토끼가 뛰었고, 그곳이 어디인지 눈에 그려낼 수 있다.

샤오지는, 성소의 또 다른 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잡았습니다!”

“수고했다. 토끼 가죽은 벗겨서 스승님께 보내는 것으로 하고, 고기는 배를 곯은 이들이 나누어 먹도록 해라.”

“예!”

 

미련이 없다는 것처럼 돌아섰다. 왕이라고 한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가죽은 잘 손질하여 그의 스승께 갈 것이고, 고기는 얼마 되지 않겠지만 병사들끼리 구워 먹을 것이다. 그곳에 끼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입장이 애매해졌다. 다른 이들이 쉬는 와중에 끼는 왕이라니, 그런 존재를 본 적이나 있던가?

성소는 그리 생각했으나, 그와 함께하는 검령은 아닌 듯했다. 스승님께 가죽을 보내라는 말까지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가 고기 이야기가 나올 적에는 불퉁한 소리를 내더니, 말을 끝내자마자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나도 너를 도와줬잖아!”

“······샤오지.”

 

지나가는 이들이 말을 건네는 것에 대충이나마 고개를 끄덕이고 나오면 결국 상대할 이는 제게 투정 부리는 이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귓가에서 웅웅 울려대는 그 한마디가 선명했다.

 

“그렇다고 지금 네게 치하할 수는 없잖아. 좀 더 인내심을 기를 수는 없는 거야?”

“많이 참았어! 네가 지금까지 계속 모르는 척했잖아!”

“···조용.”

 

너 또······! 말을 내뱉으려던 검령도 무언가 느낀 것인지 입을 닫았다. 매복이다, 그것도 뛰어난 실력에.

누구지? 누가 이런 거야. 그에게 이런 이들을 보낼 법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붙잡으러 온 것인가? 허리춤에 걸린 검을 꽉 붙잡았다. 전쟁 이후로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만큼 령연의 손에 익은 검도 없었다. 계속하여 함께 해 온 것과 안 맞기도 어려웠다.

 

“···령연, 잠시만.”

 

샤오지가 막아섰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곤두세운 감에서 느낄 수 있었다. 검령이 주인을 막고 있다고.

 

“···저거, 아니 저들······ 네가 구해준 이들이야.”

“뭐?”

 

목소리에 대꾸하듯 삐죽거리며 나왔다. 령연의 눈에도 익은 이들이다. 알고 있다. 자신이 목숨을 살려 보내준 이들. 그런 이들이 이곳에 왜 나타난단 말인가. 멀리 도망쳐서 살라고, 더 이상 이곳에 잡히지 말라고 멀리 보냈는데 궁궐 근처에-.

 

“저, 저희는 해를 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이곳에 오신다는 말씀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정말입니다!”

 

적어도 거짓은 없는 눈이었다. 그것이 거짓을 고한 것이라 하더라면 실망스러울 정도로 선명했다. 성소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어준 것이다.

그의 인생이란 그랬다. 아무리 눈에 익은 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배신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지 않더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샤오지는 그것을 보고 늘 화를 냈으나, 그는 괜찮았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의 가치란 그런 것이다. 성장해서 이곳까지 왔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령연은 주변을 살펴야만 했고, 타인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들이 혹여나 자신-그리고 그의 검령-을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했고, 악의적인 말을 듣고도 참아야 했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이가 단 하나, 그 어떠한 이야기에도 굴하지 않고 인정해 주는 이가 세상에 존재하는데 괜찮지 않을 이유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가, 가보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령연은 자비로운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본인을 기억해주고, 감사를 표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은··· 제 생각과는 달랐다. 어쩐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래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받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모르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다시금 샤오지와 말을 이어갔다. 이대로면 토라져 또 한동안 말을 안 할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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