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호크]아포칼립스 어쩌구의 가장 끝 페이지
갑자기 두 사람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글자수 : 약 2000자
그 모든 일이 끝나고, 호크스와 다비는 살아남았다. 인간이 걱정했던 것이 우습게도 지구는 종말하지 않았다. 인간만이 사라진 세상 속에서 겨우 두 사람만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인류의 끝에는 인간이 쏘아올린 미사일도, 신이 내리꽂는 불바다도, 우주에서 쏟아진 운석의 거대한 굉음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호크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인간의 영역이었다. 고작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 전부다. 호크스와 다비는 이곳에 덩그러니 남겨졌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지 못한다. 뜻 모를 곳이었다. 호크스는 자신이 ‘선택’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뒤늦게 발견한 셔츠의 얼룩처럼 애매한 끝을 맞이할 테다. 호크스의 낙관도 기능을 잃었다. 그들은 그냥 어쩌다 보니 영원을 살아가는 신에게 깜박 잊혀진 존재였을 뿐이다. 신은 호크스와 다비에게 관심없다. 인간을 모조리 땅 아래에 산채로 묻어버리셨으니 어쩌면 그 누구에게도.
햇볕은 작열하고 발 아래로 짧은 그림자가 졌다. 호크스의 귀에 들리는 다비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쉭쉭 내뱉는 숨에서 들리는 소리가 생경했다. 폐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지만 다비는 일단 호크스를 따라 걸었다. 시체도 없이 텅 빈 거리에서 호크스는 아득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기에 불안했고 안전했다. 이곳에서 다비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 그런데 우리가 굳이 살아남아야 할까. 이마에서 땀이 흐르다 못해 건조해졌다. 호크스는 타들어가는 온도를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동시에 치밀었다. 걸음이 늦어진 다비의 왼손이 호크스의 오른손을 잡아왔다. 걸음을 늦춰달라는 의미였다. 손이 잡힌 호크스는 그제야 가만히 서서 모든 것이 사라진 땅을 보았다. 이 땅은 불과 몇 시간 전에는 건물이 들어선 도시의 중간이었고 이제는 저 멀리까지 펼쳐진 마른 흙바닥이다. 다비가 옆에 나란히 섰다. 여전히 숨소리가 나쁘다. 호크스는 개의치 않았다. 다비의 손을 잡고 계속 걸었다. 호크스는 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비와 계속 살아가야 한다. 두 사람은 함께 잠들고 함께 걷다가 지쳐서 울음을 터트리고 배를 곯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찾아 협력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여름에 신경이 예민해져 서로를 헐뜯고 싸우고 거품 물고 악을 써도, 그럼에도 서로가 아쉬워서 헤어지지 못할 것이다. 정말 최악이야. 호크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호크스보다 다비가 먼저 죽을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다비에게 필요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체력이 떨어졌다. 기어이 호크스가 움직일 수 없는 다비를 업고 다니거나, 그의 죽음을 지켜보거나, 걷지 못하는 다비를 내버리고 혼자 쉴 곳을 찾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아주 먼 미래가 아니었으므로 호크스는 그 모든 것을 염두해두어야 했다. 그렇게 다비가 죽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호크스는 다비의 손을 마주 잡고 물을 찾아 천천히 걸었다. 빠르게 판단하고 날쌔게 움직였던 기억이 몸에 남아 느린 걸음이 더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일부러 다비의 표정을 살피지 않았다. 아픔에 무딘 피부는 손으로 잡기에도 뜨거웠다. 호크스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모든 인간이 죽고 겨우 살아남았음에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뒤엎은 세상을 새로이 시작하기 위해 신께서 두 인간 남성을 살려냈다고 보기 어려웠다. 여자들이면 모를까. 이런 건 운이 좋다고 말하기 껄끄럽다. 다비도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호크스와 다비는 죽은 인간의 무덤-땅을 밟으며 계속 걸었다. 다비는 지쳐서 쉬고 싶어했지만 호크스는 당장이라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발작하듯 고함을 지를 것만 같았다. 대상 없는 분노가 다비에게 향한다.
호크스는 다비를 잃고 나면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다. 비가 오지 않거나 끝내 물을 찾지 못해서, 다쳐서, 세균에 감염돼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다비가 죽는 날 엉엉 울고 단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만큼 기운을 모두 빼버려 탈수 따위로. 죽은 빌런의 시체에서 멀리 떠나지 못해 걸음을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짓을 반복해서 결국에 히어로는 비통하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간의 말로는 해방과 자유가 아니라 목 메인 흐느낌이었다. 이 땅 위에 놓인 두 구의 시체 위에 바람이 불고 햇볕이 쏟아지고 비가 내릴 것이다. 그 모든 예상이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어째서인지 그것만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썩고 문드러져 호크스는 다비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질 테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잿가루처럼 공기 중으로 흩어질 것이다.
신이 정해주신 가장 인간다운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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