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호크]닭꼬치와 진통제

나의히어로아카데미아 | 다비X호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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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다비는 제 주변에 모인 인간들이 썩 마음에 차지 않았다. 스테인의 팬이라면서 코스프레 따위를 하거나, 언제 스테인에게 마음이 홀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지. 다비는 겸손한 성격이 못 되어서 대놓고 말하고는 했다. 이런 꼬라지들로 대체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소꿉장난은 지겨우니까 나는 혼자서라도 새로운 동료를 만들고 올 거야. 스테인의 뜻을 이어갈 쓸만한 녀석을 찾을 거야. 방해나 하지 말라고, 머저리들.

*

어느 날에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 순간부터 몸이 아프다. 갈비뼈 사이사이, 명치 아래를 짓누르는 통증은 목을 타고 올라온다. 언제부터 시작된 아픔인지 이젠 떠오르지도 않는다. 다비는 매일 같이 몸에 화상을 달고 살았으므로... 두피를 감싸는 모든 혈관이 쿵쿵 울리고 지끈지끈 아렸다. 머리카락을 전부 뽑아머리고 싶은 고통에 호흡도 느려진다. 통각이 몸을 감싸서 맥박처럼 존재를 일으키고 옅어진다. 다비는 호흡만을. 호흡이 전부라는 듯. 몸을 웅크리고 숨을 쉰다. 하아악. 흐으으윽. 허어어억. 흐으읍. 이번에 얻은 돈으로 토가 히미코의 더플코트를 샀다. 다비의 통증은 자연재해처럼 몸을 덥쳤고 그저 그 모든 것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몸이 몸이 아플 때에는 살아있다는 게 절실하다.

이때에만 살아있다고 느껴진다. 죽음과 삶은 이토록 맞닿는다.

너무너무 아플 땐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는 어리광 섞인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도 하고.

*

새로운 동료. 넘버투 히어로. 윙 히어로 호크스. 그는 다비에게 접근했고 대놓고 히어로의 배신을 약속한다.

말이 묘하게 앞뒤가 안 맞는다. 듣다 보면 어린아이처럼 우기는 수준이다. 이렇게까지 설득을 못한다고? 어떨 때엔 거의 막무가내다. 믿어주길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신뢰가 생길만치의 일을 안 했다. 불성실해 보인다. 제 손에 쥔 패를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호크스는 철저하게 다비를 등 처먹으려고 셈을 한다. 적어도 히어로 좀 모아 보라고 했을 때 넘버원 히어로 엔데버를 데려와서는 안 되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실수가 아닌가? 나와의 약속인 걸 잊은 게 아닌 이상 말도 안 되지. 예상했던 순서가 뒤바뀌니 다비는 의아했다.

아 그런가. 저 자식은 '히어로'가 '빌런'에게 지는 게 죽어도 싫은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제멋대로 굴 리가 없다. 넘버원에게 타격을 입혀서 너도 만족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건 이미 벌어진 상황을 애써 수습하기 위해 덧붙인 거짓이다. 다비는 거짓말을 뻔히 알아 본다. 너무 많은 이들이 다비에게 거짓을 말하고 번번이 들켜왔다. 호크스는 거짓말을 잘한다기 보다는 그 자신이 가진 히어로의 권력과 위신으로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편이었다. 다비는 그것이 호크스의 묘한 습관처럼 느껴졌다.

호오. 머리가 좋아서 제가 한 거짓말을 다 기억하는 것뿐이고 별 달리 치밀한 게 아니구나. 다비는 호크스에게 <멍청이>라고 이름 붙인다.

*

- 날 동료로 삼아줘서 기뻐. 진심이야.

동료?

호크스는 다비를 향해 어줍잖은 미소를 짓는다. 다비는 미소 띤 호크스의 말에 속으로 어리둥절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다비는 사실 히어로 업계의 현 상황이나 실태나 그런 게 궁금한 게 아니어서 대체 왜 호크스가 계속 히어로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빌런의 등장은 매일 같이 쏟아지고 뉴스에속보로 보도 된다. 잔챙이 빌런은 이미 차고 넘친다. 정신 나간 히어로들이 매일 밥을 먹고 시민을 돕는 것처럼. 그러나 시민들에게 충격을 심어주는 게 빌런의 일이 아닌가? 우리가 이 사회를 짓이기고 부술 거라고, 너희가 믿던 선善은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히어로 넘버투가 빌런이 된다는 걸 사회에 보여주면 얼마나 사람들이 뒤집어질까. 자신을 서포트하던 동료, 믿음직한 후배 히어로의 배신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는 엔데버의 표정은 또 얼마나 볼 만 할지. 그런 상상만으로 다비는 즐거운데.

아슬아슬하게 스파이 노릇을 하는 듯이 보여도 결국엔 호크스는 히어로로 남고 싶은 모양인 걸까. 애매하게 구는 게, 영 속을 모르겠다. 호크스는 자꾸만 곁을 맴돌 뿐 다비가 서 있는 곳으로 오지 않는다. 미묘한 거리감. 잘난 체하는 탁상공론. "이래 봬도 넘버투 히어로라는 입지로 얻는 정보가 꽤 고급이라고." 누가 그런 게 궁금하댔나.

완벽하게 이쪽에 선 게 아니라면서 어떻게 믿어야 하지. 어수룩하고 다른 속이 있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정말 모르나. 머리 좋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걷는 길이 맞다며. 피상적인 말이라도 내뱉어야 할 순간이 있겠지만 넌 아니지. 넘버쓰리 하나 죽인 걸로?

어라, 이상하다. 다비는 멍한 얼굴이다. 호크스의 여유작작한 저 태도가, 히어로인 척하는 빌런인척 하는 히어로인척...... 한 바퀴 두 바퀴 더 꼬아서 내놓는 태도인 것인지. 글쎄. 저 자식이 나를 그렇게 '괜찮게' 판단했을 리가 없다. 호크스를 보며 다비는 재미있다고, 아니 더럽게 재미없다고 느낀다. 동시에 히어로라는 존재 자체에 지독히도 염증을 느낀다. 몸안에 고인 이 답답함은 불꽃을 이루는 연료가 된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다 아는 척하더니 쟤도 나를 모르는구나.

다비는 호크스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화가 난 게 아니다. 기대했던 건 조금 있었지만.

불편하고 지긋지긋하다. 히어로라는 존재들은 늘 그랬다. 다비는 호크스에게 실망한다. 실망은 한두 겹 쌓여 저 멀리서 빨간 불이 깜박거린다. 바깥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큐슈에 구해둔 제 집이라던 호크스의 개인 공간은 살림이 부실하여 사람 사는 티가 안 난다. 가구와 가전이 놓여 있긴 하지만 집안에 묵은 공기만 둥실둥실 떠다닌다. 집이라며. 집 같지도 않은데. 넘버투 히어로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

호크스가 변기를 붙잡고 토한다. 다비는 호크스를 비웃는다. 속옷만 주워입은 다비는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물과 캔맥주, 밀봉된 냉장 닭고기, 먹다 남겼는지 윤기 없이 바싹 마른 닭꼬치, 달걀, 냉장보관이 용이한 가공식품 몇 가지 더. 다비가 먹다 남긴 마른 닭꼬치를 꺼내서 냄새를 맡아본다. 코 점막이 무뎌진 탓에 졸인 간장 냄새가 조금 풍길 뿐 시큼하게 부패된 냄새를 나지 않는다. 닭꼬치를 접시에 옮겨 닮고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퉁, 소리 내어 닫아도 전자레인지 화면에 시간 표기가 없어서 두리번 거리니 역시나 코드가 뽑혀 있었다. 코드를 꼽자 삑, 전자음을 내며 전자레인지가 빛을 낸다. 다비는 닭꼬치를 데운다.

변기물을 내리는 소리와 함께 세면실로 나온 호크스가 얼굴을 거칠게 씻어낸다. 요란하기도 하지. 눈과 코와 목덜미가 새빨개진 히어로는 코를 크게 한 번 훌쩍이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전자기계가 웅웅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숱 짙은 눈썹을 치켜뜬다.

- 뭐라도 먹게?

- 냉장고에 닭꼬치가 있던데. 그거 데우는 중.

- 야, 그거 먹지 마. 그거 냉장고에 방치한 지 일주일 지났어.

- 생닭 시체도 먹어봤으니까 걱정 마.

- ...농담이지?

다비는 대답하지 않는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의 작동이 끝난다. 다비는 맨 손으로 접시를 잡고 꺼내들었다.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는다. 잘 펴진 식탁보엔 얼룩 하나 없다. 다비는 식탁에 앉아 꼬치를 잡고 고기를 물어뜯었다. 꼬치에 꽂힌 닭고기는 질기다 못해 버석버석하다. 고무를 씹 듯 오래 씹어야 한다. 질겅질겅 닭고기를 씹는 다비의 맞은 편에 호크스가 앉는다. 그 역시 드로즈 한장 걸친 채다.

호크스는 캔맥주를 꺼내 마신다.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꿀꺽 삼킨 후 치아에 뭐가 걸리는지 손가락을 안으로 집어넣는다. 퉤, 소리 내며 무언가를 빼낸다. 다비는 닭꼬치의 큼지막한 대파를 씹다가 티슈에 뱉어냈다. 닭고기는 먹을 만 했는데 대파는 맛이 이상했다. 다비는 덜그럭대는 아래턱이 얼얼할 때까지 말라비틀어진 질긴 고기를 씹었다.

*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잠이 달아났다. 다비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떠 천장을 노려보았다. 씨근덕거리며 숨을 내쉰다. 머릿 속에 폭탄이라도 들어찬 듯 통증이 쿵쿵 울려 비명이 절로 나왔다. 머리가 아프면 가슴과 배가 아프고 저릿저릿하다. 다비는 타인의 피부를 손톱으로 쥐어 짜낼 생각으로 좁은 침대 옆을 더듬었다. 같이 잠들었던 호크스가 곁에 없었다. 다비는 머리를 감싸 쥐고 일어난다. 생리적으로 고여야 하는 눈물이 안구로 향하지 못해 코와 구강으로 모여든다. 머리맡 탁상에 쪽지와 함께 남겨놓은 하얀 알약과 물 한 컵을 발견한다. 빠르게 휘갈긴 글씨체였지만 알아보는 건 가능하다.

[갑자기 일이 생긴 탓에 안 깨우고 먼저 챙겨서 나왔어. 현관은 도어락이니까 나가면서 문만 꽉 닫으면 되고, 혹시 외출했다가 다시 들어올 거면 비밀번호 0808. 옷은 대충 물 뿌려서 다림질 해뒀고 그 아래에 속옷은 편의점에서 새 걸로 사뒀는데 사이즈는 맞을 거야. 알약은 내가 비상약으로 갖고 있는 해열 진통제. 너 어젯밤에 머리 아프다고 엄청 끙끙대더라.]

끙끙댔다고? 기억나지 않는다. 다비는 미간을 찡그리며 종이를 구겨 불태워 버린다. 비밀번호가 저게 뭐야? 하여간 정신 나간 히어로 같으니. 거짓말만 줄줄이 늘여서 하고. 양심도 없고. 뭐 대단히 빌런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두 알 남은 알약의 포장을 손으로 꼬물꼬물 벗겨낸다. 손바닥에 두 알의 약을 얹고 입에 하나씩 집어넣는다. 머리를 뒤로 젖히지 못하겠다. 혀 밑의 침을 끌어모아 삼키려는데 잘 되지 않는다. 입에 물을 머금고 고개를 숙인 채 꿀꺽 삼킨다. 알약이 커다래서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이 불쾌하다. 다비는 코가 먹먹해지는 걸 느낀다. 삼켜낸 물이 식도를 타고 역류했다. 다비는 물을 토한다. 이불을 붙잡고 기침했다. 기침 할 때마다 몸에 금이 가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다. 어제 변기 붙잡고 토하던 호크스를 비웃을 일이 아니다. 다비는 손을 뻗어 녹은 알약을 다시 혀 위에 얹었다. 쓰고 비릿하다. 꿀꺽. 눈을 질끈 감고 약을 삼킨다. 알약을 먼저 삼키고 그 다음 천천히 잔에 든 물을 마신다.

필요할 때는 곁에 없는 게 무슨 동료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어울려 다니던 다른 녀석들도 동료라고 부를 순 없다. 어차피 동료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만. 아마 그들 중 누가 죽어도 울지 않겠지. 그래, 여럿 죽었지만 울지 않았어. 다비는 젖은 이불 위로 엎어져 눈을 감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울린다. 몸 바깥에 존재하던 다비는 지금 이 순간 너무나 몸의 내부에 갇혔다. 아무런 생각도 인지 능력도 없고 그저 고통만을 느끼는 신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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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난 래서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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