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호크]테세우스의 배

나의히어로아카데미아 / 다비X호크스

※ 공백포함 약 3,300자

※ 30분 만에 쓴 글이라서 퇴고 안했습니다 찬찬히 하께염

죽지 않는다는 것은 뭘까. 호크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 인간은 어차피 다 죽는다. 하지만 어쩐지 다비는 죽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비는 과거이기 때문에. 다비는 과거이자 슬픔이고 슬픔이자 원망이며 원망이자 사람이었다. 사람이었으나 과거... 빙글빙글 돌고도는 재미없는 언어 속에서 호크스는 숨을 죽이고 신발 끝을 내려다본다. 다비는 흘러가버린, 혹은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시간의 개념 중 하나이며 그러나 딱히 죽음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비는 죽지 않는다. 죽을 것 같으면서도 죽지 않았다. 아마 평소에도 그런 식이었지. 호크스는 다비의 징그러운 집념에 대해 익히 아는 사람처럼 고개를 가로로 설레설레 저었다. 이곳은 오키나와의 격리된 병동이었다.

날이 따뜻하고 비가 왔다. 물은 땅에 고여 하수구로 흘러갔다. 다비는 그런 존재였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미끄러지는 곳은 컴컴하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맨홀 속이었다. 호크스도 빌런을 잡느라 딱 한번 맨홀 안쪽으로 들어가 본 적 있었는데 축축하고 캄캄하고 냄새나는 것도 힘겨운데 날개에 들러붙는 공기가 역겨움을 일으켰다. 내가 이렇게 비위가 약했던가. 호크스는 코를 막고 미끌거리는 하수구 아래 통로를 지나쳤다. 그 안에도 물이 흘렀다. 땅 위에서 천대 받는 쥐와 벌레가 살았고 갈 곳 없어 도망친 빌런이 살았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산다. 놀랍지는 않았다. 호크스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도 그 골판지로 만들어놓은 듯한 허술한 판자집 앞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물이 고여 냄새가 났다. 날벌레가 꼬였고 지저분하고 병균이 들끓는 산짐승이 목을 축였다. 비가 오지 않아도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이는 땅이었다. 흐물거리고 발자국이 남는 땅. 걷거나 움직일 때마다 흔적이 남는 땅. 호크스에게는 생경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다비는 죽지 않는다. 개념이나 바람이 아니라 진짜로 죽지 않을 것이다.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는 것은 그의 부모나 형제들이 원하는 것일 텐데. 다비가 무엇을 원하던 그들은 어떻게든 다비에게 시간적 보상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미안하고 속이 타고 저물어가는 삶이 아까울 테다. 그들 나름의 최선이었다. 누군가의 최선이 어떤 최악과 둥글게 닿아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우친 호크스만 그들을 두 번 정도 말렸었다. 말렸지만 끝내 말리지는 못했다. 그것은 호크스의 몫이 아니다. 토도로키 가족과 다비 모두가 편안하길 바랐다. 너무나도 빠른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는 퍽 느긋해져서 결론에 대한 책임에 등을 돌릴 수 있었다. 호크스에게 다비의 생은 흐르는 물 같은 것이었다. 물은 깊은 땅에서 상류를 거쳐 하류로 흘러 바다에 이르거나 햇볕에 말라 공기로, 하늘로 이동한다. 다비는 그렇게 살아낼 것이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도 흔하고 흔했으나 목숨을 좌지우지 했다. 다비는 앞으로도 삶을 집념처럼 살아갈 것이다. 다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흘러가게 되겠지.

그럼에도 죽지 않는다는 것은 뭘까. 기억한다는 것은 죽지 않음과 동일할까. 우리는 유사한 죽음을 여러차례 경험하고 이제야 이곳에 발딛고 서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호크스는 자신이 고통을 잘 견디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아끼던 것을 잃어도 짧게 슬퍼했다. 미련이 없는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호크스는 잘 몰랐다. 다비를 향한 마음은 슬픔과 미련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호크스를 헷갈리게 했다. 호크스에게 다비는 늘 의문스러웠으니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동료도, 친구도, 지인도, 하물며 연인도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다, 라. 호크스는 이번에도 물을 생각한다. 다비의 몸을 채우던 물. 그 피가 돌던 소리. 다비는 염열계 개성자인데도 조금만 기억을 뒤집어보면 물을 떠올리게 된다. 다비가 뿜어내는 불은 고온의 푸른색이다. 날개와 등이 녹아내리는 기억이 강렬한데도 기억 속 다비는 차갑기만 했다. 아아, 그래도 몸이 따뜻했었지. 손도. 감각기관이 무뎌져 내 손의 온도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던 목소리마저.

호크스는 다비의 피부를 엮은 금속 스테이플러를 손으로 더듬던 일을 기억했다. 별 시답잖은 기억이 도장처럼 꾹 남았다. 그래서 다비에게는 활활 타올라 잿가루가 되는 일이 아닌, 움푹 파인 호크스의 몸 어딘가에 고였다가 그 양이 많아지면 흘러내려가 버리는 액체가 어울렸다. 호크스가 깊지 않아서 다비는 금방 떠난다. 떠내려가버린다. 손으로 물을 떠내어도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흐르듯이 그렇게. 옷에 문질러 닦아내면 물을 움킨 적도 없다는 듯 멀끔해지는 손.

그런 방식마저 다비에게 잘 어울린다. 호크스는 생명유지장치를 가득 채운 액체 속 다비를 내려다보았다. 주변에 놓인 버튼을 누르면 액체가 쭉 빠지고 잠든 다비가 깨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한 번 전신 마취를 할 때마다 다비의 체력이 깎여나가는 게 눈에 보여 엔데버 씨가 전재산을 털어 선택한 방법이다. 다비에게는 물어보셨나요. 이런 방식으로 너를 살려놓고 싶다고? 호크스는 근처에 앉아서 피곤한 얼굴로 은행 측 전화를 받고 있는 엔데버에게 묻지 않는다. 그저 웃었다. 액체 속 잠든 다비는 어린애처럼 편안해 보였고 그 표정은 전에도 한 번 본 적 있었다. 뇌신경 쪽 수술을 했다더니 머리 한쪽을 밀어 꽤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얼굴이었다. 오른팔에 달린 의수도 잘 어울렸다. 물론 엔데버 씨 취향의 디자인이었지만. 잘린 팔의 신경이 거의 살아있지 않아 의수가 제 역할을 할지는 알 수가 없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다.

의사들과 준비했던 마지막 수술은 잘 끝났다고 한다. 다비의 몸에 채워진 대부분의 장기는 뇌사한 이들에게 기증받은 것이거나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장기였다. 다비는 정말로 죽지 않았다. 사실은 죽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힌 탓에 여러 사람의 목숨을 빌어 살아낸다. 여린 목숨을 부지하던 강렬한 감정은 이미 힘을 다했음에도 다비는 아직 이곳에 붙들려 있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참으로 끝이 없다. 다비가 누굴 닮았는지 너무 뻔했다. 예전 같으면 웃었을 텐데, 이번에는 호크스도 별로 웃기지 않았다.

전부 다 뜯어고친 다비에게는 눈물샘이 생겼을까. 건조하던 눈을 여러 번 깜박이는 습관을 몰래 알아챈 그 순간을 또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는 다비도 다비일까. 어색하긴 해도 다비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또 어려울까. 호크스는 대답할 수 없다. 엔데버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를 어차피 다비라고 부를 테니까.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비에 하늘마저 우중충했다. 앞으로 며칠 내내 계속 비가 올 것이다. 다비가 깨어나는 날은 언제일까. 당장 내일일지. 몇십 년은 흐른 뒤일지. 비가 올지 눈이 올지 해가 뜰지는 모르겠지만 호크스는 다비가 깨어나는 그날, 이곳을 방문하여 잠에서 깬 다비에게 인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비와 함께, 죽을 수 없는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리라.

여어, 다비. 죽지 않고 살아났네.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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