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2)
日影華劍_이환연
*
"아버지. 왜 형님을 그냥 보내주시는 겁니까."
이혁린이 이환연의 처소에서 나오자, 처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둘째 공자 이환위가 차가운 음성으로 이혁린을 멈춰 세웠다.
"매번 저렇게 돌아오시는데 부모로서 당연 막아주셔야 함이 아닙니까? 저러다 큰일이라도 입으시면..."
"환위야."
이혁린은 강하게 말해오는 이환위의 말을 멈춰 세웠다.
"어찌 그걸 모르겠느냐. 하지만 감히 내가 그 아이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다."
"......"
이환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며 이야기하는 이혁린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이환위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후우.”
어찌 부모가 되어, 자식이 불로 뛰어드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겠는가? 이혁린은 가주인 자신이 권위를 이용해서라도 이환연의 강호행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환연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도 전부 자신이 저질렀던 과거의 업보인 것을. 이는 가주 이혁린으로서, 아버지인 이혁린으로서 스스로 감당해야 할 대가였다.
오늘도 이혁린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
이환연은 단련을 마무리하고 몸을 씻었다. 외출할 때 입는 붉은 의복을 정갈히 입고 처소에서 나왔다.
이혁린은 그에게 느긋이 휴식을 가지고 길을 떠나라 당부하였지만, 이환연은 집에서 더 쉴 생각이 없었다.
이환연의 떠날 채비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짐이라고는 그의 몸과 검. 그리고 약간의 돈 몇 푼. 이환연은 떠나기 전 이혁린에게 얼굴을 비추고자 그의 집무실로 향하였다.
이환연이 집무실로 들어가려던 중, 문이 열리며 작은 소녀와 마주쳤다.
“어라? 오라버니 벌써 가시려고요?”
“아, 환애야. 그래, 그렇게 되었단다.”
“좀 더 쉬다 가시지. 뭐 그리 바쁘시대요?”
삼공녀, 이환애. 이환위를 따라 가문의 일을 공부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힘들 것도 많을 텐데, 이환애는 기특하게도 잘 따라가며 가끔씩 가문의 간단한 일도 맡아 해결할 만큼 재능도 깊었다.
집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이번에도 일을 전달받은 모양이었다.
이환연은 이환애의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강호에서 일은 언제나 많은 법이지. 너도 새 일을 받은 모양이구나.”
“네. 심부름 같은 일이지만요. 이만 가 볼게요. 또 할 일이 있어서요.”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다음에 돌아오실 땐 멀쩡하게 오세요. 그러다 진짜 골병 들어요.”
이환애는 당부하며 이환연에게 인사를 했다. 기특하게도 자기 오라비를 어찌나 생각해주는지, 이환애의 인사는 열마디 정도의 잔소리가 더 이어지고 나서야 마무리 되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이혁린이 이환연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맞아주었다.
“충분히 쉬다 가랬거늘. 벌써 가려는 게냐?”
“네. 이미 충분히 쉬었는걸요.”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가장 애지중지 길러왔거늘 아이와 의견이 틀어져 이환연이 강호행을 결심한 이후로는 날이 갈 수록 서먹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점이 이혁린이 이환연을 대하는 마음을 더 쓰리게 하였다.
“몸조심 하거라. 필요하다면 언제든 가문에 연락하고.”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부자 간의 짧은 인사는 끝이 났다.
****
시내로 들어온 이환연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가까운 주루로 들어섰다.
이환연 그가 강호로 나와 하는 일은 지극히 간단했다. 민가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동들을 중재해 주던가, 민가를 위협하는 악적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을 돕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이환연은 주루라는 곳을 이용했다.
주루는 다양한 사람이 들르고 다양한 소문이 오간다. 사람들의 소문과 정보를 듣고 움직이기엔 줄 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이환연은 자리를 잡고 음식과 술을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며 오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지만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민가에서 위험한 일이 일어나봤자 얼마나 자주 있겠는가?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대충 흘려듣고 있을 때 즈음, 점소이가 음식과 술을 내어왔고 그가 물러나자, 동시에 누군가 이환연의 맞은 편에 앉았다.
“이게 누구야. 협의 넘치시는 민가의 영웅, 연비 대협이 아니신가?”
맞은 편에 앉은 사내가 이환연을 ‘연비 대협’이라 칭하며 사람 좋게 웃어온다. 이에 이환연 또한 웃으며 그를 반겨주었다.
“세화, 오늘도 술동무를 찾고 계셨나 보군요.”
‘연비’. 이 이름은 이환연이 강호에 나와 자신의 이름 대신 사용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자신의 부족한 실력이 가문에 누가 될까, 스스로가 벌인 일은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대충 새 이름을 지어 강호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환연의 앞에 자연스럽게 앉아 이환연이 시킨 음식을 먹더니, 점소이를 불러 술까지 더 시키는 이 사내의 이름은 남세화. 뒷 선에서 높은 금액을 받고 일을 처리하는 청부업자이자, 이환연이 강호에 나와 사귄 몇 안 되는 동무였다.
남세화는 익숙하게 술을 따르고는 이환연과 잔을 나누었다.
“크. 역시 술은 사람이랑 같이 마셔야지.”
남세화는 이어 몇 잔을 더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은 술동무보다는 연비 대협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
“제가요?”
이환연은 남세화의 말에 관심이 있다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일이 들어왔는데 하필 목표가 민간인 사이에 숨어있더라고. 뭐… 자세한 설명은 못 해주지만 조용히 처리하기에는 곤란한 상대라서 말이야. 그래서…”
“거기가 어디죠?”
이환연은 남세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겠다는 기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싸움을 즐기는 건지, 정말 약자를 돕는 타고난 협의심을 가진 건지 남세화는 알 수 없었지만, 이환연은 항상 이렇게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선 달려들고 보았다. 때문에 이환연은 항상 소동의 중심에 있었고, 남세화는 이에 끌려 시간이 날 때면 항상 그를 쫓아 다녔다.
“내가 누구야. 연비 대협이 관심 있어 할 줄 알고 미리 자리를 만들어놨지.”
“그럼 지금 움직이지요.”
이환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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