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3)
日影華劍_이환연
*
“엥? 아냐 아냐. 진정해 연비 대협. 아직 술도 다 마시지 않았다고.”
사람들에게 사례도 받지 않는다면서 뭐 그리 좋다고 나서는지 남세화는 이환연을 통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보면 그저 진정하라 했을 뿐인데 저렇게 불안한 얼굴로 떨떠름하게 자리에 앉고 있지 않던가.
“누가 보면 못 가게 한 줄 알겠네.”
어느새 술 한 병을 다 비운 남세화가 새로 술을 주문한다.
“걱정 마. 일이 시작되기 전까진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우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합류하면 된다고.”
“그렇... 군요.”
남세화의 말에 이환연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잔에 든 술을 마셨다.
“아무튼, 일단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해 줄게. 물자를 호송 중인 상단인데. 저녁 즈음이 되면 여기로 들어올 거야. 급히 움직이는지 밤에도 쉬지 않을 거라 하더군. 연비 대협은 물자 호송 중인 상단원들의 호위만 맡아주면 돼.”
“알겠습니다. 그 외는요?”
“그 외는 의뢰 관련이라 유출 금지.”
이환연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한 번 더 비웠다. 남세화는 그런 이환연를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연비 대협. 저번의 부상 다 나은 거 맞아?"
"네?"
이환연의 의문 섞인 대답에 남세화가 이환연의 오른팔을 가리켰다. 그의 소매 아래로 꼼꼼히 감아 두었던 붕대가 얼핏 삐져나와 있었다.
그제야 남세화의 시선이 자신의 팔로 향한 것을 알아차린 이환연이 소매를 정리해 팔을 완전히 가렸다. 그리곤 미소를 지었다.
"부상이야 진작에 다 나았죠."
"그래? 그럼 그건 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남세화는 가는 눈으로 이환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 날의 부상이 얼마나 컸는지는 남세화 또한 곁에서 직접 확인했기에 알고 있었다. 다친 그를 받아 이가장까지 데려다준 게 바로 그다.
그 큰 상처들이 벌써 회복 되었을 리가 있겠는가? 이환연 그의 성격이라면 분명 조금 움직일 만 해졌으니 남은 상처는 무시하고 몸을 일으킨 것이 뻔했다.
“연비대협. 힘들면 무리하지 마.”
“그럼요. 생각해줘서 감사합니다.”
이환연은 거짓을 고할 때마다 시선을 아래로 돌린다. 지금도 그러했다.
아래로 처박은 시선이 다시 위로 올라와 남세화와 눈을 마주치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낸다. 매번 무엇을 위해서 성하지도 않은 몸으로 저리도 아득바득 애를 쓰는 것인지, 매일 무엇 때문에 누군가에게 작은 것이라도 도움을 주지 못하면 안절부절 해 하는지, 남세화가 그를 이해 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저 자신을 증명하려는 듯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는 이환연의 모습이 안쓰러웠을 뿐이었다.
***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즈음.
남세화는 이환연을 약속한 장소로 데려갔다.
"나는 임무 때문에 같이 움직이진 않을 거야. 걱정 마 금방 만날 테니까. 내가 설명한 마차가 들어오면 이 증표를 보여주고 합류하면 돼."
"네, 감사해요."
"감사할 거까지야. 별일 없겠지만 몸 조심해 연비대협."
남세화의 모습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들어왔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이환연이 이동상단과 합류하는 데엔 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환연, 연비를 알아본 이가 그를 반겨주며 분위기는 자연스레 좋아졌다.
"그나저나 낮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신다고 들었는데, 밤에 오르는 산길이라 괜찮으실지…"
"괜찮고 말고요. 산행은 익숙합니다. 걱정마세요. 안전하게 모셔다드릴 테니까요."
이후로도 계속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는 산에 오르기 시작하고 나서야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건도 많았고, 산세도 꽤 험했으니 다들 묵묵히 이동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이환연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힘이 되고자 그들이 멘 짐을 들어주기도 했다.
산에 올라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상단원들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였다. 땀이 식어 체온이 내려가지 않게 불을 피웠고, 마른 음식을 꺼내 나누어 먹었다.
이환연은 주변에서 산적이나 산짐승이 나타나 위협하지 않을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대협, 대협도 힘드실 텐데 여기 와서 조금 쉬세요."
연비를 알아보고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던 상단원 하나가 육포를 들고 이환연에게 건넸다.
"제 일인 걸요. 감사합니다."
이환연은 괜찮다며 인사하며 건네준 육포를 받아 입에 넣었다.
요즈음 휴식이 모자란다고 본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 덕에 안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단원들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뿌듯하고 피로는 아무래도 좋았다.
잠시의 휴식시간이 지나고, 다시 이동을 위해 자리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늦어? 볼일 보다 잠이라도 들었나.”
“무슨 문제 있습니까?”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이환연은 가마를 움직일 준비를 끝내고 상단원들에게 다가갔다.
“아, 대협. 상도 형씨가 볼일 보러 간지가 한참인데 여태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걱정마세요. 보나 마나 또 방향을 잃고 헛걸음 중일 테니까요. 찾으러 갔으니 금방 올 겁니다.”
“밤 산길에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
“으아아아악!”
그때였다. 이환연의 말을 뚫고 비명이 들려왔다.
찢어질 듯한 비명의 주인을 찾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명의 주인은 볼일을 보러 간 상도를 찾으러 간 다른 상단원이었는데, 가까운 곳의 큰 나무 옆에 서서 공포에 질린 얼굴로 떠는 신음을 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느낀 이환연은 그에게 다가갔다.
다가간 그곳의 광경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볼일을 보러 갔다는 상도라는 인물은 이환연도 알아차리지 못할 사이에 변을 당한 것 같았다.
하의도 제대로 여미지 못한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른다는 얼굴로 쓰러진 채, 번져가는 자신의 피에 서서히 젖어가고 있었다.
“발견할 때부터 이 상태였습니까? 다른 점은?”
“으..으으..”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한 상단원은 겨우 고개를 저어 대답을 했다. 다른 동료들이 그의 주위에 다가와 주어서야 그는 힘이 풀린 다리 탓에 자리에 주저 앉으며 놀란 숨을 골랐다.
이환연은 충격에 빠진 상단원들을 뒤로하고 쓰러진 자의 주검을 살폈다.
주변의 땅은 그의 피로 흥건했고, 목에는 긴 창상의 흔적이 보였다.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그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나 신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기척을 숨기는데 능한 사람이 그를 해하였을 것이 분명했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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