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1)
日影華劍_이환연
*
중원 강서에 위치한 이가장(李家莊).
빠르게 부상한 샛별과도 같은 가문이다. 가주의 훌륭한 지략과 노력으로 가문의 표국을 운영하며 강서에서의 입지를 키웠다.
이가장을 이끄는 가주 이혁린은 뛰어난 심계와 책략가로 그의 손에서 불이익을 취하는 경우는 없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자에겐 한없이 무자비하며, 자신의 사람엔 한없이 자비로운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무공에도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어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니, 이가장의 가주 이혁린과 그의 가문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또한 이가장엔 다섯의 자제들이 있었으니, 하나같이 모두 재능이 넘치고 인품 또한 뛰어나 사람들은 이가장이 세가로써 자리 잡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해서 오늘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네."
회의장 상석에 앉은 이가 말을 마치며, 관리들이 하나둘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나가고, 그의 시중이 들어왔다.
“가주님”
"그래, 환연이 녀석은 어떻더냐."
"예, 가주님. 대공자께선, 상처가 많았지만 그리 깊은 것은 아니라 처소에서 휴식을 갖고 계십니다."
"첫째를 보러 가야겠구나."
"준비하겠습니다."
시중이 밖을 나가고 가주는 밖을 내다보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가장의 대공자. 그의 심성은 중원 어디를 가도 누구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올곧고 착한 심성을 가졌지만, 단점이라 집어 말하자면 하는 일에 대한 모든 것에 지지리도 재능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이가 강호에서 사람들을 돕고 세상을 둘러보겠다고 한 지가 벌써 3년이다. 가문에서 나와 강호에선 대체 무얼 하는지, 그가 가문으로 돌아올 때면 심한 상처들이 대여섯씩 늘어있었다.
가주 이전에 이환연의 아비인 이혁린은 자신의 아들의 몸이 날이 갈 수록 성치 못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이가장의 대공자 이환연.
그는 어릴 적부터 따뜻한 인품과 잡은 것은 절대 놓지 않는 끈기로 가문의 기대를 받고 자랐지만 무엇하나 노력만큼 대성하는 것이 없어 일찍이 가업에 일에서 손 놓게 하고 외부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문의 내부사정 또한 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첫째가 가문에 대해 묘한 소외감을 느끼며 자라온 것을 이혁린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힘없는 첫째를 지키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기에 가주는 조금이라도 더 이환연을 신경 쓰고 보살피려 노력하였다.
이렇게 온실의 화초처럼 귀하게 아끼고 돌봐온 첫째가 제 발로 강호에 나가 명줄을 단축하려 하니 아비로써 어찌 마음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첫째는 심각한 부상이 아니면 집에 돌아오질 않았고, 돌아와서도 가족들을 걱정시키지 않으려 다친몸으로 애써 웃으며 모두를 안심시키려고만 했다.
밖을 바라보던 이혁린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뱉었다. 이번에야말로 첫째 녀석의 고집을 눌러 집에서 안전하게 머물게 할 것이라. 그는 몇 번이고 해온 다짐을 또 다시 이곳에서 결심하고 밖으로 나왔다.
*
대공자 이환연의 처소.
그의 처소 앞마당에서는 이환연이 휘두르는 검에 허공이 갈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신중하게 검을 올려 빠르고 부드럽게 검을 내려친다. 그의 품만 보기만 해도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검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내려치기였다.
얼마나 긴 시간을 검 휘두른데에 보냈는지 상의를 걸치지 않은 그의 몸엔 땀이 흥건해, 상처를 감은 붕대마저 적셔가고 있었다. 붕대 아래의 상처가 그를 아리게 만들어도 이환연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번 검을 내려치고 심호흡을 하자, 시종이 다가왔다.
"공자님, 가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환연이 얼굴에 흐르는 땀을 팔로 대충 훔치자, 다른 시종이 마른 수건을 가져와 내밀었다.
"지금 오셨습니까? 상태가 엉망인데…"
"또 검을 휘두르고 있었던 게냐.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아…!"
이환연이 수건을 받아 급하게 몸을 닦던 중, 이혁린이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되었다. 문안 온 아비에게 딱딱하게."
이환연이 예를 갖춰 인사했고 이혁린이 인사를 넘겨 받아주었다. 이혁린은 이환연을 바라보았다.
곱디고운 얼굴 아래로 여기저기 감아둔 붕대 그리고 그 사이로 삐져나와있는 짙은 흉터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환연 그의 몸은 누가 본다면 힘 좀 제법 쓸 법한, 감탄할 만큼의 육체를 갖고 있었지만. 그가 제대로 된 힘 하나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아는 이혁린의 시야에는 저 쓸모없는 근육들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의 몸과 다를게 없어 보였다.
"몸은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걱정끼쳐서 죄송해요."
이환연이 맑게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본인이 정말 괜찮으니 이리 나와 검을 휘두르고 있었겠지만, 제 자식이 눈앞에서 붕대를 저리 감고 땀을 흘리며 힘을 쓰는데 걱정이 되지 않을 부모가 어디있으랴.
자신의 자식이 원하는 길을 막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혁린은 또 다시 입을 열었다.
"환연아, 이 아비가 네게 할 말이 있느니라."
"말씀하세요."
"강호행을 관둘 생각은 없는게냐."
"......"
이혁린이 조심스레 꺼낸 말에 아주 잠시 정적이 일었다.
"아버지, 언제나 그랬듯 전 제 뜻을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나도 안다. 네가 밖을 돌아다니는 이유를, 하지만."
"아신다면 막지 말아주세요."
미소를 짓던 이환연의 얼굴에 굳은 고집이 묻어났다.
"매번 이야기 했듯이, 저와 아버지의 뜻은 달랐기에 저는 저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뜻에 힘을 보태줄 것이 아니라면 저 또한 아버지의 고집을 들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아들이 못나 아버지께 감히 심려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어찌 그게 네 잘못이냐."
이혁린은 고개를 내렸다. 차마 이환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 어찌 첫째에게 잘못이 있겠는가? 모든 것은 저 자신이 모자랐기에, 모든 것을 지킬 수 없었기에 벌어진 일인 것을.
"네 뜻은 잘 알겠다. 대신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집에서 쉬어갔으면 좋겠구나."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래, 쉬거라."
이혁린은 몸을 돌려 환연의 처소에서 돌아갔다.
이환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손에 쥔 검을 검집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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