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인

譫妄 (2)

민화인X비소

*

"......나…"

"....어나…!"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민화인! 야!"

비소였다.

"비소?"

등으로 차가운 눈이 젖어 들어간다.

냉기에 정신이 점점 선명해졌다.

"내가 잠든 지 오래되었습니까?"

"태평한 소리하고 있네! 얘기하다가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기다려도 일어나지도 않고! 너 뭐야. 진짜 독이라도 먹었어?!"

"아니에요. 나 멀쩡합니다."

"멀쩡한데…!!"

잔뜩 성나있는 비소를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등에 젖어가는 눈은 신경 쓰이지도 않을 만큼 따듯했다.

"비소. 춤 춰주면 안됩니까?"

"사람 놀라게 해놓고 이상한 소리하고 있네?!"

"꿈에서 비소가 춤을 췄습니다. 나는 그게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싫어. 너 멀쩡해질 때까지 춤 안 출 거야."

"멀쩡한데…."

그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가 걱정한 마음이 덜어질 만큼 아주 따뜻하고 소중하게.

당신만큼은 잊지 못하도록.

비소가 내 품에서 꼼질 거리더니 나를 안아주었다.

그 사랑스러운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 해주었다.

“내가 분위기를 다 망쳐버렸네요. 해도 떨어지는데 좋은 음식 먹고 돌아가죠.”

*

“민화인.”

“...예.”

“상태가 이상하군.”

“제가요?”

궁주의 집무실에 서 있었다.

그간의 동향을 보고하기 위해서.

쓸데없이 넓은 궁주의 집무실은 불도 때우지 않는지 무척이나 서늘했다.

저 늙은이는 춥지도 않나.

그래서.

어디까지 했었더라?

“민화인. 지금이 몇번째 보고지?”

“? 새해 들어 두 번째죠.”

“......가보아라.”

내 대답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 궁주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작은 한마디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기분나빠.

언제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다.

알 수 없는 시커먼 속내와 알아차리기 어려운 수작질들.

항상 뭐든 알고 있고, 뭐든 자기 손안이라는 듯 오만하게 구는 꼴이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불쾌감을 만든다.

나는 서둘러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사랑하는 그이를 내 품에 담지 않으면 불쾌감이 나를 잠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

피곤하다.

비틀.

“...?”

내 몸이 한 번 휘청였다.

피곤하긴했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발이라도 헛디뎠나보다.

“비소. 나 왔습니다.”

“오늘은 오래 걸렸네? 궁주가 괴롭… 헉.”

비소가 고개를 돌리더니 내 얼굴을 보며 경악한다.

“왜… 뭐 문제 있습니까?”

“문제? 야,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비소가 자리에서 바로 달려와 내 머리를 붙잡으며 살핀다.

…뭐야?

“뭐야. 이거 궁주가 그랬어?”

“뭐가요.”

내 대답에 비소가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의 손이 붉은 혈로 흥건했다.

방금까지 깨끗했던 그 손이.

“나… 내겁니까?”

손을 올려 이마 언저리를 쓸었다.

말라가는 끈적한 피가 묻어나온다.

비소의 얼굴이 창백했다.

“너 진짜 괜찮은 거야? 아니. 괜찮을 리가 없지. 누구야? 궁주가 그런 거지?”

“아닙니다.”

아닌가?

궁주에게 보고 하러 가서.

보고 하러 가서.

뭐했더라?

궁주는 왜 나를 보고 웃었을까?

“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가 멍해져 있는 사이, 비소가 급하게 붕대로 내 머리를 감쌌다.

피도 이제 별로 흐르지 않는 거 같은 게 별로 필요 없어 보이긴 했지만.

비소가 의원을 데려오겠다며 급하게 뛰쳐나갔다.

*

짙은 독향이 느껴졌다.

눈을 뜨니 주변에 시체가 낭자했다.

아.

가주께서 독에 관한 모든 걸 금하셨는데.

하지만 이건 정당방위다.

저들이 나를 먼저 습격하지 않았는가?

가주가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온 몸이 아팠다.

수가 너무 많았다.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도.

안 오나?

그런 생각을 하자. 귀신같이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까 광장에서 춤을 추던 사내.

“비소.”

그는 나를 경계하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지.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일 테니.

헌데. 나는 그의 이름을 어찌 알고 있는 것일까?

의식이 멀어진다.

*

“...비..소.”

“...!”

비소는 작은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몸을 기울여 그를 확인했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잠꼬대…라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계속 비소를 찾았다.

“......나 여기 있어. 의원 데려왔으니까 괜찮을 거야.”

의식이 없는 자에게 말을 한들 닿을 리 없겠지마는 그래도 비소는 민화인에게 답해주었다.

의원이 진맥한 결과.

민화인의 상태는 보이는 것보다 더 좋지 못했다.

머리의 상처는 물론이고 온몸에 짙은 피멍들.

격한 전쟁이라도 치르고 온 사람마냥 상처가 심했다.

비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몸으로 어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다녔지?

고통을 참는다 한들 부러진 뼈를 억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는 것까지는 불가하다.

하지만 민화인은 그랬다.

마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흐르는 피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더욱이 감각이 예민한 무인이라면 말이다.

감각을 잃지 않고서야….

“......”

비소는 잠든 민화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를 제외하면 계속해서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있었다.

“......”

비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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