譫妄 (1)
민화인X비소
*
꿈은 다른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관문이다.
살다보면 어쩌다 한 번은 들어보았을 법한 유언비어.
다만 이번은.
*
“효월.”
“예.”
당문의 가주의 눈빛이 나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나 또한 그에 답하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씀하시지요.”
가주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내 두 손이 올려진 탁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잔뜩 엉켜있는 약재와 독재.
그리고 내 손에서 어지러이 섞인 정체불명의 연구물은 기분 나쁜 향을 흘리고 있었다.
가주도 그 향이 제법 불쾌했을까.
미간을 찌푸리고는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또 밖에서 실험이랍시고 기행을 벌여두었더구나.”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 아주 많지. 당문의 자제라면 더욱 제 신분에 맞는 처신을 갖추어야 하지 않겠나?”
“이미 충분하다 생각합니다만.”
내 대답에 엄격한 가주의 얼굴이 혐오로 물들어간다.
“충분하다? 인륜적으로 저지르지 말아야 할 그 짓거리들이?”
“인륜? 사회의 쓰레기들에게도 인륜을 따져주어야 합니까?”
가주의 반응은 항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가 주 된 이유다. 인간의 도리를 그렇게 중시해서 이를 무시하고 살아가는 쓰레기들에게도 그리 자비로우신 건가.
그럼 저것들을 저대로 방치해두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나의 연구는 사회의 악을 제거하고 당문의 위상을 올린다.
나의 발전은 본가의 발전이 될 것이며, 앞으로 더 거대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언데.
나의 가주께선 이가 맘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다.
어느정도 경지에 들어선 무인에게 듣지도 않는 독을 그대로 두어 무어에 쓴다고.
연구를 지속하지 않으면. 개선과 발전을 내려두면, 결국에는 도태 될 뿐이다.
아무리 말한다 한들.
가주는 내 가치에 관심도 없는 모양이지만.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는 독에 눈길도 두지 말거라.”
“그리하지요.”
*
약재가 끓는 향이 가득하다.
독하군.
누가 약을 이리도 오래 끓이는 거지?
이런 약은 쓰지도 못하고 버리기만 할 텐데.
눈을 떴다.
약을 끓인 건 나였다.
언제 잠든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비소.”
“응.”
“제가 언제부터 잠들었죠?”
“좀 됐지? 한... 반 시진?”
잠든 내 옆에 앉아 같이 엎드려 시선을 맞추고 있던 비소가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깨우지 그랬습니까. 약도 올려놨는데.”
“깨워도 안 일어나길래… 많이 피곤한 줄 알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로의 불을 꺼트렸다.
이 약은…. 음. 전혀 못 쓰겠군.
이 망해버린 약은 밖에 내놓았다.
버릴 것들은 내놓으면 지나가던 사용인들이 알아서 처리해준다.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비소, 우리 밖에 놀러 갈래요?”
“밖에? 연구는?”
“가주가 독에는 눈길도 두지 말라네요.”
“가주?”
“예.”
옷가지를 정리하고 걸쳐두었던 장포를 입었다.
비소의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비소?”
비소가 고개를 갸웃. 기울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뭐 잘못 먹었어? 라는 표정으로.
내가 뭐 잘못 말했…
내가 왜 가주 얘기를 했지?
“......”
“너… 혹시 나 없을 때 실험한다고 독 먹은 건…”
“아니에요.”
비소가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본다.
본의 아니게 쓸데없이 신경 쓰게 만들었다.
잠이라도 덜 깼나 보지.
“가요, 비소.”
난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뻗었다.
나의 반응에 탐탁잖은 듯해 보였지만 이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길을 나서선 먼저 약방에 들렀다.
내가 연구실 밖을 나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궁주에게 올릴 변명거리를 위해서였다.
모자란 재료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대충 아무거나 집어 주문하고는 나왔다.
비소가 날 기다리는 동안 간식거리를 사 왔다.
낮은 품질의 음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비소가 챙겨주는 건 신기하게도 특별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독을 닮은 그의 이름처럼.
그의 미소가 나를 홀려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 무슨 상관인가?
이토록 행복한데.
"비소. 내가 좋은 곳을 알아두었습니다."
"정말? 어딘데?"
비소의 기대하는 눈빛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와 꼭 붙어서서는 추가로 가게 몇 곳을 더 돌아 두꺼운 피풍의와 불. 그리고 따듯한 음식을 샀다.
어딜가냐며 보채듯 물어보는 그에게 그저 미소로 답하며 함께 걸어간 곳은 큰 호수였다.
추운 날씨에 얼어붙어 작은 동물들과 싱그러움은 없었지만.
얼어버린 호수에 비친 하늘과 마른 풀과 나무에 맺힌 눈꽃과 얼음들은. 빛을 받아 아름다이 빛이 나, 절경을 자아냈다.
나 또한 거의 와 본 적 없는 장소였지만.
이 아름다운 순간은 그와 함께한다면 더 완벽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곳도 있었구나."
"저도 자주 오는 곳은 아닙니다만. …멋지죠?"
"그러네."
자리를 깔고는 피풍의를 덮어 함께 앉았다.
찬바람이 이따금 얼굴을 스치긴 했으나, 피풍의 아래도 통하는 서로의 온기는 무척이나 따듯했다.
*
나는 눈을 떴다.
나의 처소였다.
왜. 이곳에 있지?
"공자님. 호위가 도착했습니다."
아. 가주께서 연구를 금하셨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처소 밖으로 향했다.
호위가 조용히 내 뒤를 따라 걸었다. 윗사람들에게는 굳이 보고하지 않았다.
독으로 실험하는 것 아니면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으니.
가주의 명이 내려졌으니 내가 '사고'라도 칠까 불안히 주시하는 눈들이 줄었다는 거다.
지저분하게 따라다니는 눈들이 없으니 묘한 해방감도 느껴진다.
무척이나 상쾌하다.
밖을 나와도 딱히 할 일은 없다.
나의 일과는 모두 독 연구로 시작해 연구로 끝난다. 헌데 이가 금해졌으니.
갈 곳 없는 나는 의미 없이 저잣거리를 돌아다녔다.
장식, 음식, 잡동사니 등. 길거리에 작은 점포들의 주인들이 나와 물건들을 홍보한다.
전부 쓸모없는지라 눈으로만 대충 흘겨 지나갔다.
얼마 걷지 않아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 작은 광장에 닿았다.
평소엔 이 작은 광장이 넓다 느껴질 만큼 모여있는 일이 없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인파를 밀고 중심으로 조금 나아갔을 때.
관중을 모은 주인공이 사람들 사이로 보였다.
춤을 추는 사내였다.
기예단에서 왔는지 여럿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오로지 한 사내만 눈에 들어왔다.
마치 운명처럼.
붉은 눈에 붉은 옷자락을 흩날리며 춤을 추었다.
그의 동선에 맞추어 그의 긴 머리가 따라 춤을 추었다.
"...비소?"
춤을 추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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