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인

독성 연구 - 실험

민화인X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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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당신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나의 연구실에 남아있던 그대의 온기에 나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날보다 나 홀로 지낸 날이 더 많거늘. 참 이상한 일이지요.

해가 저물었습니다.

여전히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난 여전히 당신의 온기가 남아있다고 믿었습니다.

해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왜 잠들지 못 하였을까요?

왜 이리도 당신과 함께했던 이 장소가 싸늘하게도 느껴집니까?

당신의 온기가 아직 이곳에 있는데.

나는 당신을 찾아 움직였습니다.

나는 이제 와서 당신이 도망쳤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언제건 방을 나서서 나에게 다시 돌아와 주었으니.

이번에도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겠거니 하였습니다.

내가 차마 알려주지 못한 길을 당신은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리여윈을 만났습니다.

아, 이자가 누구냐고요?

당신은 처음 들어보았겠군요. 우리 궁의 정보상입니다.

그가 모르는 정보는 어느 것도 없지요.

나는 그에게서 당신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당신은 정말 내가 알려주지 못한 길로 들어선 모양입니다.

나는 궁주를 불렀습니다.

차갑기 그지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나 텅 비어있는 듯 거만한 저 눈동자가,

나는 지독히도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침이라도 던져봤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던진 암기는 그에게 닿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그랬잖습니까.

궁주의 경지는 아주 아득한 곳에 있다고.

궁주는 여전히 오만한 눈으로 날 내려봅니다.

저 짜증 나는 눈을 도려내야 나의 화가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겠군요.

그대는 걱정 마십시오.

진작에 늙어 죽어 말랐어야 할 쓰레기를.

내가 죽여버리겠습니다.

**

참.

내가 궁주의 경지가 아득하다고 알려드렸었던가요?

나는 당연히 궁주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나의 왼팔을 보세요.

혈도를 봉하여 더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잘난 암기술도 이 팔로는 해낼 수 없습니다.

당신이 참 보고 싶네요.

당신을 오래 보고 싶어서,

함께 하고 싶어서 나의 왼팔을 내어주었거늘.

당신의 온기는 어디로 갔습니까?

참 매정히도 사라지셨습니다.

눈 감으면 여전히 그대가 나를 따스히 안아주고 있는데.

나의 오른손엔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는데.

남아있었는데….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 빌어먹을 궁주가 나의 오른팔을 찢어버렸다고요.

이제 당신의 온기도 추억하지 못하겠군요.

어디선가 익숙한 독의 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대가 나를 마중 왔습니까?

길을 잃은 건 당신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리와 나의 손을 잡아주세요.

나를 데려가.

당신이 있는 곳으로 날 안내해주세요.

어찌하여.

손을 뻗어도 그대에게 닿지 아니합니까?

나의 손을 잡아주세요.

비소, 더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요.

당신에게 바치겠다 내어준 나의 마음이.

여기 줄줄이도 새어 나갑니다.

이대로 당신을 잊으면 어찌합니까?

나의 손을 잡아주세요.

당신도 이리 괴로웠습니까?

그래서 나에게 온기 하나 남기지 않고 매정히 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까?

제발.

나의 손을 잡아주세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

왕조백은 눈앞에 주저앉은 민화인을 내려다보았다.

한 사람의 희망을 짓밟는 일 따위.

어려운 것도 없다.

아무것도 담지 못한 눈으로 힘 없이 처진 그를 보아라.

마치 내가 처음 데려왔었던 때 같군.

그때도 말을 잘 듣던 녀석은 아니었지만.

왕조백은 오래 전의 추억을 회상하였다.

"음."

왕조백은 민화인의 뒷깃을 잡아 그를 끌어 밖으로 나섰다.

"데려가 가두어라. 일어나거든 서둘러 제 일을 끝마치게 하도록."

왕조백은 바닥에 그를 내팽개치고는 뒤 돌았다.

안의 한 구석을 바라보던 그는.

"저 팔도 치우거라. 더럽다."

**

민화인은 작은 독방에 갇히게 되었다.

혈도를 잡혀 더는 말 할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민화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 어찌 이리도 괴로울까.

창 하나 없던 방에 흘러가는 날도 더 이상 셀 수 없었다.

궁주의 사용인이 들어와 실험체를 넣어주면 하루가 지났겠거니 하였다.

답답하게 닫힌 문으로 빛과 함께 실험의 희생양이 들어온다.

나의 그이와의 만남도 이랬었는데.

모든 게 무감각해진 나날 사이에서도 그때가 아직도 너무 선명했기에.

민화인은 그와의 재회를 기대했다.

하나, 금세 닫혀버린 문으로는 들어온 이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민화인은 괜찮았다.

나의 그이라면.

비소라면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뜨고는 자신의 멱을 잡아채 끌어줄 것이기 때문에.

'그새 내 얼굴도 까먹었냐?! 그딴 독에 죽지도 않는다고!'

뭐. 이런 소리라도 해주면서 말이다.

툭.

힘없이 실험체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방 안엔 생명의 고동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


오늘 실험도 실패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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