譫妄 (終)
민화인X비소
*
“민화인? 그 독쟁이를 왜 제게 묻습니까? 같이 있을 거 아니에요.”
“걘 지금 상태가 안 좋다고. 너 정보상이면 알 수 있을 거 아냐!”
비소는 리여윈을 찾았다.
평소라면 밖에서 소식이 묘연했을 터지만.
이번은 운이 좋게도 궁에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걸 왜…. 그나저나 난 어떻게 알고 있는 거람? 그 독쟁이가 나불거렸나?”
리여윈이 가는 눈으로 비소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붉은 입술로 호선을 그려 올린다.
“뭐. 좋아요. 그 녀석에게 필요한 게 있었으니. 값은 그 놈에게 치는 걸로 하죠. 뭐가 궁금한데요?”
“최근 민화인이 겪은 일 모두 다.”
“음. 범위가 애매한데.”
리여윈이 얄밉게도 웃어 보인다.
“알았어요. 보나 마나 저 놈이 왜 저꼬라지가 되었는지 궁금하신 거겠지.”
비소는 다음 이어질 말을 각오했다.
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 허리춤의 그 옥패.”
“옥패?”
“그때랑 같은 짓 했다고 보시면 돼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비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장난해?”
“뭐야. 몰라요? 그놈이 말 안 해줬나? 그럴 리가 없는데. 셈 하나는 지독하게도 철저한 그 인간이…”
비소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뭔데. 자세히 똑바로 말해.”
“흠… 본인이 숨긴 걸 내가 말해줘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일을 하는 게 정보상의 일이잖아.”
비소는 얄궂게 말을 끄는 리여윈의 모습이 징그럽게도 짜증이 났다.
저 얄미운 얼굴에 세침 하나 날려주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 즈음, 리여윈이 입을 열었다.
“옥패는 모르겠고. 처음 셈한 부분만 말해드리죠. 그 녀석은 또 궁주께 덤벼들었습니다. 안된다는 걸 알면서요.”
“또? 덤벼들었다?”
“예. 뭐. 더 정확히 하면 반역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반역이라니?”
“궁을 떠나려 했으니까요. 궁주가 제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서. 그렇게 고개를 당당히도 들고 들어갔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단단히 미쳐버린 게죠.”
“떠나려 했다고…”
비소는 턱을 짚어 곰곰이 생각했다.
떠나려했다? 그에게 언질도 없이?
그러다 문득 스쳐 간 그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비소. 우리 도망갈 계획 짤래요?’
그는 정말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걸까?
항상 연구실에 앉아 실험하는 걸 즐겼으면서.
그 본인 또한 그 과정과 성취를 즐기기에.
궁의 수뇌부를 차지할 만큼의 힘이 있었기에, 이 곳을 맘에 들어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다만 왜 자신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을까?
그에게도 물어봐 주었으면서. 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알려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봤자 해결되는 거 없습니다? 요즘 오락가락 하지 않던가?”
“...그것도 원인이 있는 거야?”
“원인?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전부 이유가 있어요. 그 놈이 발걸음 하나 조심하라고 일러주지 않았습니까?”
리여윈이 비소를 보며 한숨을 푹.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의 상해는 궁주께서 한 게 맞습니다. 아, 본인에게 확인하려 들지는 마세요. 그는 절대 기억 못 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가세요. 빨리 돌아가는 게 좋을 겁니다. 정신 차리는 그는 기억 못하고 다시 궁주에게 보고 하러 가겠죠. 그럼 이번에 진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비소의 외침에 리여윈이 귀를 만지며 눈을 찡그린다.
“...아편이요.”
“아편?”
“궁주가 그에게 사용한 독 말입니다. 그에게 돌아가서 해독제를 만들라 하세요. 기간은 길지 않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었어요.”
비소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 녀석 헛소리 하지 않던가요? 의식도 왔다 갔다…”
비소는 급히 뒤돌아 뛰었다.
“앗. 이제 더 필요 없어요? 얘기 덜 했는데…”
*
나는 눈을 떴다.
처음보는 듯 익숙한 천장.
누군가 나의 손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아.”
“...!”
시야에 들어온 사내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당신을 기억합니다. …비소.”
“너…”
“광장에서의 춤이 아름다워서. 기억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어요. 신기하죠.”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붙잡고 있던 나의 손에 그의 얼굴을 파묻는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습니까?”
“안 좋은 일? 아주 많았지.”
“비소.”
“왜 말 안 했어? 나에게 계획을 세우자 함은. 나와 함께 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던 거야?”
“......”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를 괴롭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닌데.
나는 그를 괴롭게 해버리고 말았구나.
“당신은 다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를 감당해야 할 당신을 생각하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지금 순간이 괴로워지는 것만 같아서, 나만 오롯이 감당해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아서도.
강대한 무력 앞에 놓일 당신을 걱정해서도 아닙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내 손을 붙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너… 바보야?”
“제가 왜 바봅니까?”
“아니! 넌 바보야! 내가 그런다고 좋아할 거 같아?!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어서 돌아오면! 내가…! …... 내가…”
나의 멱을 붙잡고 성을 내던 그의 몸에 힘이 빠지고는 다시 주저앉아 버린다.
“내 마음은 어떻겠냐고…”
“미안합니다. 당신에게 들킬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거든요.”
“너…!!”
그가 또 성낼 기색이 보이자 슬쩍 고개를 뒤로 뺐다.
“화내지 마세요. 딱 한 번 다녀왔습니다.”
“웃기지 마. 한 번 아니거든?”
“예? 한 번… 맞는데…”
“너 진짜…”
그가 고개를 숙인다.
방 안이 적막으로 들어찼다.
“울지 마세요.”
“너 진짜 미워.”
“당신은 사랑스럽고요.”
숙인 고개로 떨어지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언제나 문제가 참 많은 사람이었지요.
그러니 가문에서도 쫓겨난 게 아니겠습니까?
미움 받는 일이야 언제나 익숙한 일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나와 함께 해줄 거 아닙니까?
그걸로 된 겁니다.
“사랑해요, 비소.”
“...중독돼서 헛소리만 하면서…”
“저 중독 됐습니까? 그래도 이건 헛소리 아닌데요.”
“헛소리야. 자기 아픈 것도 모르잖아.”
그는 계속 나의 눈을 마주쳐주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저 아파요?”
“바보. 나쁜 놈. 쓰레기.”
“익숙한 말들이네요.”
끝까지 고개를 들어주지 않는 그이를 안아주었다.
“! 야…! 너 움직이면! …뼈 부러졌다 그랬단 말이야!”
“몰라요. 전 안 아픈데요.”
혹여라도 내가 잘못될까 안긴 품에서 그는 저항하나 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계속 성내기는 했지만.
“사랑해요. 헛소리 아니에요.”
“...너 진짜 미워.”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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