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책임.
사흘쯤 앓은 감기가 드디어 떨어져서 조금 신이 났는지 평소 잘 시간을 한참 넘기고 말았다. 기분이란 것은 양가적이어서 들떠버리면 반드시 가라앉는 시간이 찾아오는데, 그게 오기 전에 빠르게 자버려야 하는데. 바보같이.
새벽을 넘어가면 빠르게 우울이 밀려온다. 무슨 호르몬의 영향이랬는데 그것까진 잘 모르고. 아무튼 넘겨서 좋을 게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는데도 실수를 해 버리는 건 잘못이다. 그러니 이 기분을 어떻게든 추슬러야 했다. 가장 쉽고 빠른 해결책은… 당연히 담배다.
분위기와 등쌀에 못 이겨 시작했던 담배는 스스로 느끼기에도 이제 중독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니코틴이 가져다 주는 순간의 차분함마저 끊어 버리면 정말로 머리가 터질 지도 모르는 지경이어서. 이런저런 핑계로 마지막까지 끊지 못하고 오늘까지 왔다. 시도우 군도 미코토도 발길이 뜸해진 흡연실은 거의 나 혼자 쓰고 있었어서, 방향제 냄새 섞인 눅눅한 공기는 언제나 전부 달라질 것 없이 그대로였다. 그 사실이 갑자기 슬퍼져서, 조금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새벽의 센티멘탈이었다. 훌쩍이며 남은 연초를 태우다 보면 사람이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과가 별로인 걸 뻔히 알면서도 탈취제를 뿌릴 수 있는 기분이 아니라 그대로 밖으로 나갔더니, 역시 후우타가 질색을 했다. 말대로 냄새를 빼러 복도 저편까지 걸어가고서야, 나는 스스로의 뺨을 가볍게 쳤다.
정신 차려, 무쿠하라 카즈이…
구태여 입으로 끄집어내 중얼거리고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래, 바랐던 적 없어도 주어지는 것이 이름이고, 내던져졌기에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발붙이고 살아가는 한은 할일을 해야 한다. 포기해서는 안 돼. 무너져서도 안 돼. 떳떳하지 못하기에 발버둥쳐야 해.
그게… 살아남겨져버린 나의 책임(報い)이다. 한참 옷자락을 털어내고, 나는 뒤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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