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2)
日影華劍_이환연
*
이환연은 숨을 골랐다. 아무리 숨을 골라도 그의 손의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출혈과 피로. 이 두 가지가 몰려오니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자신이 어떻게 정신을 갖고 서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이환연은 눈앞의 마교도를 하나라도 잡아내어 이환야의 행방에 대한 실마리를 알아내겠다는 집념 하나로 흑의인들 앞에 일어섰다.
이환연은 지금이라도 당장 자리에 주저 앉고 싶었다.
그의 시선은 흑의인들에게 닿기도 전에 제 몸을 가누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그의 상처가 벌어진 팔뚝은 검붉은 피를 끊임없이 떨어뜨리면서도 흔들리는 검날을 놓지 않고 있었으며, 피로에 지친 그의 두 다리는 복부에 상처를 입어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그의 상체를 지탱하였다.
대항은 커녕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이환연을 본 흑의인은 냉소를 지었다.
피에 젖고 검날에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저 비단 장포를 보아라. 어디서 굴러먹다 온 부잣집 도련님이었는진 모르나, 곱게 자라고 곱게 배워 눈앞의 악인 마교도를 놓치지 않겠다고 제 명이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버티고 서 있다.
아직 젊다 못해 어린 그에게. 헛 된 선을 쫓아 버티는 그에게, 그 누구도 가르침을 주지 않았나 보다. 선이고 악이고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흑의인은 어느 가문의 공자일지 모르는 저 안쓰러운 청년의 모습이 가엽고 우스워 그에게 웃음소리를 흘려 주었다.
그 웃음소리를 이환연은 어떻게 들었을까. 이환연은 소리에 움찔하더니 한 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양손으로 고쳐 들었다.
그리고 이어 흑의인과 이환연의 검이 다시 맞붙으려하는 때였다.
"내가 물건만 가지고 돌아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환연과 눈앞의 흑의인들 외의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환연에게 어딘가 익숙하게 들려왔다.
나무와 수풀 사이로 둘려오는 사내의 목소리는 방금까지만 해도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고 있던 흑의인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고..공자님 그게 아니오라…!"
"변명 말고 물건이나 옮겨라. 장로님이 급하다 하지 않았더냐, 응?"
"예...예! 당장 신속히 옮기겠습니다!'
사내가 흑의인들에게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보이자 흑의인들은 안 될 것을 건드려 겁에 질린 것 마냥 사내의 명령대로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깐…!"
이환연이 마차에 실린 물건들을 챙겨 장소를 벗어나려는 흑의인들의 뒤를 쫓으려 하자, 위에서 비도가 날아와 그의 앞에 꽂혀 길을 막았다.
"거기서 기다려. 연비...대협 이랬던가?"
"...!"
비도를 던진 건 사내였다. 이환연은 비도가 날아온 방향을 따라 나무 위를 보았으나 사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럴 체력도 없었거니와, 보이지 않는 사내의 공격을 피할 자신도, 흑의인들의 무위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이환연은 사내의 요구대로 눈앞에서 흑의인들을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무능한 자신에게 분했던 이환연은 자신의 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찌나 강하게 물었던지 입술에 상처가 나 피가 흘렀다.
"그렇게 입술을 물지 말거라. 상한다."
흑의인들이 떠나가고 곧 그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나무 위에 몸을 가리고 있던 사내가 이전과는 다르게 퍽 다정한 억양으로 이환연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너무나도 그립게 느껴졌던 이환연은 퍼뜩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무 위에서 이환연의 반응을 본 사내는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많이 컸구나, 둘째야."
이윽고 사내가 나무 위에서 가볍게 내려왔다.
내려온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이환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한마디를 뱉어내었다.
"형…?"
이환연이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사내에게 다가갔다. 비록 기억하는 그때보다 머리도 짧아진 데다 세월도 꽤 흘렀으나. 이환연은 살갑게 웃어주던 그의 미소, 다정하게 자신을 불러주던 그 목소리는 잊지 않고 확실히 기억한다.
"정말… 정말 형이야…?"
"그래."
사내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곤 두 팔을 벌려 이환연을 반겨주었다.
이환연은 멍하니 사내를 바라보았다. 웃으며 두 팔 벌려 자신을 반겨주는 저 행동은 그와 그의 형, 둘만의 버릇 같은 것과도 같았다. 언제나 정겹게 이환야가 이환연을 반기면, 이환연은 기꺼이 그의 품에 뛰어들어 안겼다.
팔을 벌린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이환연의 모습에 사내가 조금 무안해졌는지 입을 열었다.
"다 커서 이제 형에게는 안기지 않는게야? 좀 서운하다, 둘째야."
그 말에 이환연은 그제서야 이 꿈같은 상황이 현실임을 깨달은 듯 그에게로 걸어갔다.
"형…!"
계속해서 사내, 그의 형. 이환야를 부르며 무거워진 몸을 이끌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걸음에 이환야가 미소 지으며 같이 걸어오자, 이환연은 마치 그대로 돌아간 듯 몸에 긴장이 풀려 힘이 빠졌다.
"형…"
이환연은 다리에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어 두 팔에도 힘이 빠지고, 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 그대로 이환야의 품으로 쓰러졌다.
**
"...환연아 ...이환연!"
이환연은 아득한 의식 너머로 이환야의 목소리를 들었다.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금방이라도 대답하고 싶었으나 온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환연은 겨우 눈꺼풀을 움직여 자신이 의식이 있음을 알렸다.
이환연의 희미하게 열린 시야 사이로 나뭇잎 스쳐 내려오는 햇빛, 날아가는 새. 그리고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환야의 얼굴이 들어왔다.
"형…"
"환연아, 괜찮으냐?"
이환연은 머리가 멍했다. 몸은 식은땀에 젖어 살랑이는 바람이 차게 느껴지고, 옅은 호흡은 계속해서 그의 눈을 감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슴은 왜 이리 아픈지,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환연이 녀석 이제 괜찮은 거야?"
"형님! 의원 불렀습니다. 금방 오실 거에요!"
"고집부리지 말고 수련 그만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맨날 이게 뭡니까."
"또 가주님께 한 소리 듣겠군."
"형, 가주님이 문제가 아니야. 늦어졌으니 스승님이…"
"이놈들, 시끄럽다."
흐린 시야를 뒤로하고, 주위에서 이복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꼬리를 물고 늘어지자, 이환야가 말을 끊었다.
"환연아, 일어날 수 있겠느냐?"
"형… 여기가 아파…"
이환연의 작은 손이 그의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이환야는 그런 이환연을 품에 안고 달래주었다.
"금방 나아질 게다. 형이랑 의당으로 가자."
이환연은 그 한마디에 안심이 되었는지, 얼굴이 이전보다 편해졌다. 이환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긴…"
이환연이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멍한 정신 탓이었을까 주변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곳은 나무가 높게 솟아 한 낮임에도 선선하게 그늘이 내려와 있었고, 잘 다듬어진 길은 달리거나 걷기에 편안했다. 길의 중간중간에는 오다가다 쉬라는 듯 의자와 다탁이 마련되어 있었고 주변은 깔끔하게 꾸며진 외경들이 고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어, 보는 이들이 오랫동안 머물고 싶게 만드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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