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리턴
빵준
e t e r n a l r e t u r n
영 원 회 귀
전영중 성준수
※ 2023. 12. 02. 빵준 온리전 발매 作
※ 짧은 후기와 짤막한 에필로그(1,000자)는 판매한 실물 책에만 실려있습니다. 구매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준수에겐 한창 고전 사이언스픽션에 심취해 읽어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손에 잡히면 닥치는 대로 읽었었는데, 선명하게 기억나는 글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글도 꽤 됐다. 그런데 어쩐지 지금, 이 순간, 선명하게 떠오르는 도입부가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정확히 바꿔 말하자면, 아무래도 ‘우리’가 좆됐다. 그것이 성준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 제 옆에 있는 녀석의 판단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혹은, 여기서 더 하면 더 했던가.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우주멀미는 졸업한 지 오래됐는데도, 조금은 아찔한 기분이다. 의지에 반하여 사고가 정지한다. 관자놀이가 뜨끈해, 엄지로 꾹꾹 누르며 얕은 호흡을 반복했다. 혼란스러운 감각을 무시하며 여태 생긴 일을 복기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우주에 버려지기까지, 딱 100일 남았다.
∞
심심치 않게 옛 지구를 그리워하는 시절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살기 좋았다는 그때를 좀처럼 느끼기 어려워졌다. 해수면 상승으로 몇 개인지 셀 수도 없는 섬이 잠기고, 계절은 극단을 보였다. 터전을 버려야 하거나, 모두 대피하고 방문을 자제해야 하는 지역도 생겼다. 기후 위기 시계의 초침이 어느새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지구가 점점 죽어갔다. 이전부터 조성되고 있던 기후변화가 가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인류는 절감했다. 그렇다면 이곳이 모두의 끝이 될 수 있겠구나. 더는 살아가기 어렵겠구나……. 그러한 현실 인지에서 시작된 것이 제2지구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듯 명칭은 거창했지만, 내용의 실상은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내는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관측 가능한 우주가 넓어졌고, 전 세계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릴 정도의 항공우주 기술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에 한몫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마자 수많은 사람이 그룹을 이뤄 우주 곳곳을 항행하기 시작했다. 여생,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자원했다. 그렇게 탐사자들의 불꽃이 우주에서 힘껏 타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여태껏 이어진 전 인류적 프로젝트는,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신통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초창기엔 제2지구일지도 모르는 후보군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이 오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수신한 메시지에서 제2지구가 아니었다는 소식을 받기까지, 희망 고문의 연속이 이어지자 그러한 보도마저도 점차 사그라졌다.
그 사이 지구에선 일부 전쟁과 폭력, 혼란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다소 잠잠해졌다. 어쩌면 당연했다. 애써 서로의 피를 흘리게 하지 않아도 변덕스러운 자연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마는 시대가 왔다. 가뭄과 홍수, 지진과 태풍, 무더위, 그리고 강추위로 죽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러한 현실의 끝에서, 이윽고 겸허하게 끝을 받아들이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우리는 모두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점차 종교에 귀의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인류는 절망 끝에서 질서와 해답을 찾았다. 그건 옛 지구의 혼돈보다 훨씬 나은 일처럼 보였다.
그런 엄숙하고 절제된 분위기의 지구에서, 성준수는 자라났다.
성준수는 어려서부터 우주를 좋아했다. 달과 별이 보이는 까만 밤을 사랑했다. 그래서 이끌리는 대로 나아갔다. 인류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다짐은 언제나 하고 있었으나, 어떠한 대의를 가지고 살아간 것은 아니란 뜻이다. 까놓고 말해서 성준수는 물리학도의 한 명으로서 남 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쌓았다. 출중한 외모도 가졌다. 일평생 지구에 머무른다면 평범하고 그럭저럭 유복한 여생을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성준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학 교육을 마무리할 무렵, 성준수는 우주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냥, 그런 생각이었다. 언제나 막연하기만 했던 생각이 어느새 구체화 되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처음으로 제2지구를 찾아내는 이가 있다면 그게 자신이었으면 좋겠다고. 그게 멋진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곧…… 구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게 스스로가 더 후회하기 전에, 결단을 내렸다.
대부분의 탐사자는 대학에 진학하며 프로젝트에 자원해 다년간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고 최종 성적에 따라 선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성준수는 늦게 자원한 탓에 우주에 보내질 확률이 낮았다. 성준수가 나고 자란 미국 지역은 애초에 매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원하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은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게 옛 조모의 고향인 한국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 이유였다.
한국 지역 출신의 탐사후보자들은 최종 합격하여 우주로 나가는 확률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성준수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각오를 다지며 이주했다. 지금껏 이루어 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는 것은 제법 큰 결심이 필요했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우주로 나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성준수는 한국에 와서야 그 이유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 말도 안 되는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선발되지 않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거친 말투에 날카로운 욕설이 붙었다. 일정을 다 마치고 나면 미처 씻지도 못하고 기절하듯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회의를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날이 시작됐다. 강의, 연구, 훈련, 다시 연구, 틈틈이 공부, 그리고 다시 훈련. 특히나 뒤늦게 합류한 성준수는 더 격렬하게 굴러야 했다. 아주 가끔은 두고 온 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잠시뿐이었다. 후회하거나 고뇌할 시간조차 사치인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프로젝트에 새로이 얼굴을 비추었다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성준수는 끝까지 버텼다. 탐사후보자가 될 때까지.
마침내 성준수는 다시 미국 지역으로 돌아간다. 만 8년 만의 일이었다.
∞
미국 지역, 샌프란시스코 기지.
성준수도 만만치 않게 고전 사이언스픽션을 좋아했지만, 바로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기지를 세운 과거의 미국 지역 녀석들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샌프란시스코에 스타플릿─스타 트렉 시리즈에 등장하는 행성 연방의 지구 연합 조직─ 본부가 있다고 해서 냅다 기지를 세운 광인들이었다.
이 기지에 모인 전 세계의 탐사후보자들은 미국 지역에서 반년, 그리고 러시아 지역에서 반년을 훈련받은 뒤 최종 선발되어 우주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먼 옛날처럼 특정 지역이 우주기술에 우위가 있다거나, 냉전과 같은 정치적인 요소로 인해 결정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과 부지, 시설 및 기후를 고려하여 결정된 사안이었다.
훈련을 받는 동안은 단체로 기숙사 생활을 한다. 탐사는 기본 2인 1팀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기숙사도 같은 팀의 팀원과 함께 배정된다.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는 동성의 파트너를 주로 붙여주었는데, 이유인즉슨 오랜 시간 함께 하는 만큼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고 들었다. 어떤 면에선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으나, 사실 불미스러울 사람들은 어떻게 붙여놔도 불미스러울 것 같은데……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 생각이 독이 되었을까. 성준수는 카드키를 찍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얼굴을 만나게 된다.
동성이 불미스러울 일이 없긴 무슨. 만나자마자 불미스러운 놈이 있는데.
“네가 왜 여기 있어?”
“요, 준수. 오랜만에 보는데 말을 그렇게밖에 못 해? 반갑지는 않고?”
전영중. 미국 지역에서 대학 생활을 같이했던 녀석, 성준수가 두고 떠났던 사람 중 하나.
성준수의…… 전 애인.
“네가 왜 여기 있냐니까?”
“왜.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돼?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영중은 금세 준수를 본체만체하며 짐을 정리했다. 준수는 그 분주한 모습을 잠시 지켜본다. 캐리어 하나만 달랑 끌고 온 준수의 단출한 짐과 달리, 캐리어 2개, 배낭 하나……. 어차피 훈련 시작되면 정신없을 텐데 무슨 짐이 저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자신을 보고도 딱히 놀란 기색이 없는 걸 보니 이미 명단에서 제 이름을 확인하고 온 것 같았다. 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이 녀석과 파트너가 될 거라면……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부분이 있었다.
“넌 지구에 남고 싶어 했잖아.”
짐을 풀던 손이 그대로 멈춘다.
“그랬지.”
“그런데 왜. 너 최연소 임용도 됐던데.”
영중이 준수를 돌아본다. 의외라는 표정이다. 가끔 생각이 날 때면 소식을 찾아봤었다. 그래서 영중이 뛰어난 연구 실적으로 최연소 교수 임용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녀석이 지구를 등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의문을 풀지 못하면 계속 찜찜할 것 같았다.
잠시 간의 대치 끝에, 영중이 자신이 가져온 두 개의 캐리어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저게 뭔지 알아?”
“안 그래도 묻고 싶었다. 무슨 짐이 그렇게 많아?”
“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네 짐이 아니라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영중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최연소 임용이란 건 내가 교수진 중 막내라는 뜻이고, 내가 마침 또 유일한 솔로에, 아주 건강한 성인 남성이더라고?”
“그러면…….”
“이래도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것 같아? 저 캐리어에 프로젝트가 최소 400개는 들어 있을걸.”
자기네들 일 아니라고 아주 맘대로야, 안 할 거면 그냥 제명한다고 하지, 나 진짜 서러워서…… 괜히 최연소로 교수 달았어, 내가 여기 오자고 지금……. 영중은 구시렁대며 다시 짐을 풀기 시작했다. 편견이라면 편견이지만, 까라면 까야 하는 건 한국 지역 특색만은 아닌가 보네……. 어쩌면 전영중과 팀을 이루는 건 그렇게까지 불미스럽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준수는 속으로 생각하며 영중의 반대편으로 가 짐을 내려놓았다. 막 정리를 시작하려는데 등 뒤로 영중의 말이 들린다.
“근데 준수야. 혹시 내가 너 때문에 여기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다?”
…… 아니다. 역시 불미스러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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