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트 레코드(1)
알케미의 만남 이야기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
그 거리에서 쟁쟁한 일렉 기타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활기찬 사운드로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한 연주자는 관객이 늘어날 수록 부담보단 쾌감을 느꼈다. 사람들에게서 연신 감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음악이 끝났을 때엔 즐거움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피크를 잡은 팔로 이마의 땀을 훔친 알케미가 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눈부신 햇살에 반사되며 더없이 쾌청했다. 알케미는 제 앞의 스탠드 마이크를 잡고선 말했다.
“제 버스킹을 즐겨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이번 곡을 마지막으로 이번 제 무대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아쉬워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알케미는 두 눈을 휘어 웃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잠시 내려놓았던 일렉기타를 다시 집어들었다.
무대가 끝나고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케미는 자신의 짐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리사운드 코드라~.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인걸?”
여유로움을 한껏 담아내며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듯한 목소리가 알케미 귀에 들어왔다. 미국식 억양을 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모델 못지 않은 미인이 자신이 나눠준 음반 홍보 전단지를 보며 제 앞에 서 있었다.
알케미는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했다.
‘음원 관계자…? 라기엔 너무 미인인데… 연예인?’
또 연예인이라기엔 얼굴을 숨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를 가능성에 일말의 두근거림으로 똑바로 선 알케미와 전단지를 모두 봤는지 시선을 자신에게로 옳긴 상대의 눈동자가 맞닿았다.
“일렉기타 멋진데~? 아까 연주 잘 들었어! 아주 감명깊었다구? 막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도 밴드하고싶게 만드는 그런 에너지!!! 크으~ 이런 밴드를 내가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더 늦기 전에 알게 돼서 다행이네!”
폭풍적인 칭찬에 부끄러울 법도 하지만 알케미는 당연한 소리를 듣는다는 듯 어깨를 쫙 펴며 턱을 들었다.
“엣헴! 그럼요! 사람들의 마음을 긍정 에너지로 공명시키는 음악을 하는게 제 목표니까요! 이런 말도 있잖아요~ 말보다 음악으로 전한다!!”
“헤에~ 주먹 아냐?”
“그거나 그거나죠~! 전하는 바는 비슷하잖아요?”
알케미의 말에 키득거린 상대가 깊은 흑안의 눈을 휘며 말했다.
“한가지 미리 말해두자면~. 난 네가 기대하는 음악계 관계자는 아니야.”
그의 말에 입을 떡 벌린 알케미가 실망한 티를 한껏 내며 볼을 부풀렸다.
“뭐야… 좋다 말았네…. 그럼 제 음악이 좋았다고 말하려고 온 거였어요? 그 점은 감사하네요!”
알케미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멋진 공연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와서 칭찬을 해주는 이는 드물었다. 대부분 길거리에서 우연히 좋은 연주를 들었다. 라며 제 갈 길을 도로 갈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리 다가와서 직접적인 감상을 해준 것이 고맙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 고마움이 전해졌을까? 알케미로서는 잘 몰랐다. 상대는 씨익 웃을 뿐이었으니까.
“미안미안~. 하지만 이렇게 명무대를 보게된 나로선 그냥 지나칠 순 없었거든~! 계속 보고싶은데 이것도 인연이라 치고 SNS 연락처 교환 어때?”
그러며 상대는 알케미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폰 화면에는 앱이 깔려진 폴더가 보였다. 아웃별그램, 투이터 두 개의 앱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알케미는 눈을 꿈뻑이다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전단지에 너튜브랑 아웃별그램 계정 써있는데 그거 하면 되지 않아요? 혹시 이거 헌팅?”
마지막 말에 빵 터진 상대가 배를 잡고 크게 웃어댔다.
“푸하하하학!!! 헌팅이라니! 푸흐하하!!! 네 밴드 계정은 당연히 구독할거야. 뭐, 헌팅이라고 볼 수 있겠네! 내가 원하는 건~ 네 개인 연락처니까?”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상대가 보이는 미소는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몸을 살짝 부르르 떤 알케미가 고민하는 듯 하자 상대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먼저 내 계정 보여줄게.”
그러고선 그의 손가락이 아웃별그램을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며 알케미 눈엔 그의 프로필이 보였다. 그리고 눈을 크게 띄웠다
“뭐야. 왤케 팔로워가 많아!? 인기인이었어요? 아니 뭐 미인이시니까 그럴 수 있긴 한데….”
팔로워가 천을 넘은 숫자를 보며 동공이 흔들렸다. 그에 반해 팔로잉은 백 이하의 수를 갖고있는 것이 대비되었다. 알케미는 어쩌면 이 사람과 연을 맺으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밴드 곡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케미의 생각 사이로 목소리가 들렸다.
“어때? 할래?”
그 유혹적인 목소리에 알케미는 저도 모르게 계정을 나누었다.
자신을 딜리아라고 소개한 이와 아웃별그램 친구를 맺은 알케미는 집에 돌아와 그의 게시물을 살폈다.
“되게 어디 자주 놀러가나 보네….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 위주고… 사이사이에 책 홍보도 하네? 책 읽을 것 같은 인상은 아니었는데. 흠. 홍보하는 작가가 한정되어있는거 같은데…. 지인인건가?”
알케미의 아웃별그램은 주로 자신이 연습하는 모습을 올리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알케미의 게시물들은 대부분 일렉기타 사진과 영상이 대부분이었다.
딜리아가 올린 게시물들을 보며 감탄하던 중 알케미의 눈에 사진 하나가 걸렸다.
“어?”
순간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사진 속의 인물은 알케미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왕자님이 왜 여기서 나와?”
사진 속에는 딜리아와 함께 등산을 한 듯한 플레쳐가 보였다. 익숙한 얼굴에 반갑기도 하면서도, 하나도 안 변한 듯한 모습에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낯선 곳에서 마주한 아는 얼굴은 꽤 당혹스러웠다.
‘근데 둘이 붙어있으니 꽤….’
플레쳐도 한 미남이라고 생각하던 알케미는 이 사진을 통해 확실히 그도 평범한 외모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의 외모가 저 무심하고 차가운 표정때문에 사람에게 호감 사기 쉬운 외모는 되지 못했다는걸 새삼스럽게 되새겼다.
“아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플레쳐가 누구인가? 그 차갑고 딱딱함 때문에 강렬한 포스를 보이는 이지만 가끔 보여주는 미소로 사람을 홀리는 요사스런 존재가 아니던가! 때문에 친구인 케일리 역시 그 얼굴에 넘어가 학창시절 내내 끙끙 앓으며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졸업하고 그 마음을 어느정도 정리한 눈치긴 했지만 여전히 완벽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케일리였다.
“나름 똑 부러지는 켈리가 내 음악으로도 그 마음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게 한 녀석…….”
알케미로서 플레쳐는 나름 친구이자 숙적(?)이었다. 그런 그를 이곳에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던 알케미는 딜리아에 관한 생각으로 넘어갔다.
“근데 왜 같이 등산을 했지? 그냥 친구인가? 아니면 이 사람도…?”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을 가진채 핸드폰을 바라보고있자 난데없이 핸드폰이 진동했다.
“으아악!!! 깜짝야!!!”
순간적으로 핸드폰 저글링을 한 알케미는 전화 진동으로 부르르대는 화면을 보았다. 딜리아의 전화였다.
“허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큼큼. …여보세요?”
놀란 목소리를 진정시키고 받자 스피커 너머로 경쾌한 딜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밤~! 아직 안 자고 있었나보네? 통화 괜찮아?”
10시를 향해가는 시간이지만 아직 잘 시간은 아니었던 알케미가 긍정했다.
“네 뭐. 통화 돼요. 무슨 일이에요?”
알케미의 물음에 딜리아가 짧은 웃음을 내고선 말했다.
“너 알고보니 플레쳐랑 아는 사이라면서?”
“쿨럭!!!”
갑작스러운 확인사살에 사레가 들린 알케미는 당황했다.
“아니 뭔 이야기가 그렇게 빨라요? 아는 사이인거 언제 안거야???”
스피커 너머 딜리아의 목소리는 알케미와 대비되어 여유롭기만 했다.
“그야~ 사실 난 영국에 놀러온 거였어서~ 플레쳐네 집에서 신세 좀 지고 있지! 자 플레쳐! 오랜만의 친구한테 인사해봐~!”
“음. 안녕. 오랜만이야.”
알케미는 딜리아 목소리 뒤에 들려온 익숙함에 입을 떠억 벌렸다. 아무리 세상 좁다지만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가? 자신의 버스킹을 보고 감명 깊어한 이가 냅다 연락처를 나누고 싶다해서 줬더니 마침 그 사람이 학창시절 자신의 친구가 짝사랑하던 친구와 아는 사이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기적과도 같은 확률이 눈 앞에서 벌어지자 알케미는 할말을 잃고 어버버거렸다. 그러자 스피커에선 어리둥절한 딜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엥. 왜 얘 고장났냐?”
“글쎄.”
순간 멀뚱거리는 플레쳐의 표정이 지나간 알케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외모도 변하지 않았는데 성격마저도 그대로인듯 했다. 그간 케일리에게 플레쳐의 근황을 아주아주 가끔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만나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잠시 물씬들었던 향수의 감각을 느낀 알케미는 정신을 다잡고 대답했다.
“어 그래 오랜만이다 플래쳐야. 그간 잘 지냈고?”
“응. 잘 지냈지. 딜리아가 네 음악 들려줬는데 여전히 잘하더라. 좋은 음악이야.”
“푸핫-! 학습된 플러팅은 아니고?”
잠깐의 담소를 나눈 알케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니 그래서. 둘이 어쩌다 알게 된 사이야?? 플레쳐 또 무의식적으로 사람 꼬셨어?”
알케미의 물음에 대답한 건 딜리아였다.
“그냥 우연한 계기로 알게됐는데 은근 잘 맞아서 친구된거야~! 물론 내가 좀 더 치대긴 했지만?”
“허어.”
어이없는 감정을 담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치댔다는 걸 당당하게 말하는 점이 이 사람도 한 특이함을 가졌다는 생각을 들게했다.
알케미가 무어라 말하기 전, 딜리아가 선수를 쳤다.
“이왕 아는 사이인거 다같이 우리 좀 관광시켜주라! 시간 어때?”
“「우리」?”
알케미가 딜리아의 말에 되묻자 딜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설명했다.
“나 혼자 영국 여행 온 건 아니거든~! 우리 작가님하고 같이 왔는데, 가볼 데는 이미 다 둘러봐서~ 현지인의 도움을 받고자 하거든!”
‘작가님이라면….’
알케미는 딜리아의 SNS에 있던 책 홍보 게시물들을 떠올렸다. 거기서 친근하게 부를 정도로 자주 홍보한 작가를 추려보니 하나의 답이 도출됐다.
“아덴 글로우라는 사람이요? 당신 피드 좀 봤는데 그 사람 책 홍보 많이 하던데.”
추리를 해보인 알케미의 목소리를 들은 딜리아가 박수를 쳤다.
“이열~! 벌써 내 피드 다 봤어? 빠른데~? 맞아! 작품 영감을 위한 여행 겸 온 거기도 해서 말야~. 아무튼 같이 다녀줄거지?”
“영감이라…….”
알케미는 시야를 바닥으로 내렸다. 요즘 알케미는 곡에 관한 영감이 전혀 떠오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밴드 활동을 위해선 기존 곡을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독자적인 새 곡을 발표하는 것도 중요했다. 밴드의 특색을 살린 음악과 무대는 기존 곡들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어레인지한 것보다 더욱 사람들에게 「리사운드 코드」라는 밴드를 알릴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알케미만 작곡하는 것은 아니긴 했으나, 예전에 비해 음악에 관련된 영감이 현저히 줄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제 마음의 방향을 묻던 알케미가 다시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같이 시간 보내죠!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약속을 잡은 알케미는 그들과 함께 갈만한 장소를 추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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