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자흐로미

여기에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구나.

2022.09.08

아라비아의 모든 향수를 가지고도 이 조그만 손 하나를 향기롭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오! 오! 오!

―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지주를 잃으면 허무하게 무너져버릴 때가 있어.

― 마츠우라 다루마, 카사네

하지만 그 노인이 그렇게도 피가 많으리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 날은 사시사철 안개와 구름에 둘러싸인 잉글랜드의 기준으로도 어둡고 흐린 날이었다. 달이 온전히 가려진 하늘에서는 결코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은 비가 쏟아져내렸고, 바람은 휘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마치 유령처럼 거리를 떠돌았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빡거리는 가로등과,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낡은 우체통. 지나가는 행인 한 명조차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쓸쓸한, 거리. 

그는 그곳에 있었다.

“알로호모라.”

열쇠가 제대로 들어가 맞물렸을 때 나는 가벼운 소리가 일자, 거리와 집을 가르는 첫 번째 관문은 허무할 정도로 쉬이 무너져내렸다. 이내 검은색의 인영은 환히 열린 문을 통해 집 안의 어둠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낡아빠진 경첩이 내는 불쾌한 소음과 함께.

그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것은 오랜 그의 버릇이었다. 뱀이 바닥을 스쳐지나가는 소리보다도 조용히 그는 복도를 가로지르고, 계단을 올랐다. 집 구조는 이미 몇 차례의 관찰로 파악한 상태였다. 이 시각에 그들이 어느 방에 있을지, 깨어있을지 자고 있을지조차, 그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는 차분하게 계획을 되짚어보았다. 계획의 1단계는 그가 집에 들어옴으로써 완수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언니?”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계단 윗쪽, 그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린아이 하나가 눈을 비비고 있었다. 아직 상황파악을 못한 듯한 천진한 목소리. 그러나 그것이 곧 비명과 울음소리가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으리라. 

그 역시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다 하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비명은, 공포가 가장 고조되었을 때 나와야 한다. 때 이른 비명은 주변 이웃들을 깨우고, 상황을 골치아프게 만들 뿐이다. 그는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러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가 지팡이를 치켜들었을 때쯤 들리는 것은.

“에밀리, 나 여기있… 누구세요?”

또다른 목소리는 순식간에 비명으로 이어졌다. 이어서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차례로 열리고, 잠옷 차림의 구성원들이 복도에 나와 얼빠진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단단히 일이 안 풀리기로 예정되어있던 날이 틀림없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수초조차 되지 않았을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목소리가 사라지고, 움직임은 멈추고, 거기에 더해 쉿쉿거리는 뱀에게 묶인 채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오, 그래. 너를 찾고 있었단다.”

여자아이는 지팡이를 든 채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오늘 그가 죽여야할 목표, 머글 태생 마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증오가 외치고 있었다. 죽여, 죽여, 죽여! 마왕의 명령이 차갑게 귓가에 울렸다. 네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겠지. 그는 대답했었다.

“공포를 심어주는 것.”

두 마녀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작은 쪽이었다.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칭찬이라도 해주길 바라나?”

“나를 죽이러 온건가요?”

“내가 그럼 여기에 놀러 왔을까.”

그는 아이를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차피 자신이 이길 것을 알기에 보일 수 있는 미소. 소총 하나 없는 집안에, 구성원들은 모두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지팡이를 든 것은 열세 살짜리 어린 마녀였다. 비겁한 짓이었고, 다른 말로 하자면 너무나 손쉬운 짓이었다. 이 무기조차 없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공포를 심는 것은.

“그렇다면, 동생들은 살려주세요.”

분명, 그래야 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잡종은 저 뿐이잖아요. 제 가족들은 순수한 머글이에요. 마법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요.”

아이는 너무나 태연하게 ‘잡종’이라는 말을 주워섬겼다. 그에게는 그런 취급이 너무나도 익숙해 보였다. 너무나도 어릴 적에 전쟁을 마주한 아이. 너무나도, 어릴 적에 자신이 언제든지 죽어 나자빠질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

거슬렸다. 무엇이 거슬리는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거슬렸다. 거슬려서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아이를 향해 으르렁댔다. 추하게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우리 모두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제 가족들은 잘못이 없어요.”

“오, 그래? 과연 그럴까?”

그는 지팡이를 흔들어 몇 가지 마법을 풀었다. 아마도 짜증의 발로였을 것이다. 어쩐지 저 아이와의 대화는 그의 신경을 계속해서 거슬렀기에. 차라리 비명이라도 듣는다면, 나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을 비난하는 말이라거나. 그들이 할 말이야 뻔했다. 제 주제도 모르고 날뛰려 들겠지. 그렇다면 그것을 저 아이에게 보여주고 차례차례 죽여주리라.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들린 것은 비명도, 고함도, 욕지거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언니….”

어린아이의, 절박한 속삭임.

“쉿. 괜찮아 에밀리, 제인.”

“언니, 나 무서워….” 

“언니가 지켜줄게. 언니 믿지? 언니는 마법사잖아. 언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언니 죽는거야?”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제인. 언니 안 죽어. 걱정하지 마. 그냥, 전부 악몽일 뿐이야. 알았지?”

저 또래의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처음인 것은 아니었다. 저보다 더 나이가 어린 것들도, 그는 죽여본 적이 있었다. 단지, 단지 그의 가슴을 계속해서 답답하게 했던 것은….

“언니, 나 무서워….”

“쉿. 괜찮아. 괜찮아 시린. 언니가 있잖아.”

“내 손 놓으면 안돼.”

“놓지 않을게. 걱정하지 마.”

쾅. 그의 귓가에서 존재하지 않는 폭음이 울렸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해서는 안될, 총성이.

“언니, 언니!”

털썩. 작은 몸뚱아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너무나 미약해서,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시린, 어서 도망가.”

전부 환상일 뿐이다. 전부 악몽일 뿐이다.

지나간 과거의 기억들. 잊을 수조차 없이 깊게 박힌 상흔들.

왜 그것이 지금 떠올랐단 말인가? 하필, 수많은 순간중에, 지금?

그들의 부모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것인지, 체념한 것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단지 들리는 것은 아이들의 목소리. 전쟁에 지친 아이와, 전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목소리 뿐이었다. 

전쟁에 지친 아이.

“시린, 어서 도망가.”

“나는 괜찮으니, 언니 믿지?”

전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언니, 나 무서워….”

그는 손의 떨림을 느꼈다. 마치 제 것이 아닌 것마냥 파르르 떨리는 손끝을 보았다. 그는 무심결에 시선을 돌렸다. 그 광경으로부터, 아이로부터 눈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그 거울을 마주하고야 만다.

그 빌어먹을, 저주받을 거울을.


복도 한켠에 걸려있던 그 거울은 다른 집안에 걸려있는 것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물건이었다. 누군가의 소망을 비추지도,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짓지도 않는, 머글 세계의 평범한, 거울.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수년의 세월동안 거울은 제 자리를 지킨 채로 많은 것들을 비추어 왔다. 이런저런 일상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그 사이사이 존재했던 특별한 순간들을, 거울은 알고 있었다.

거울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침략자의 모습도, 주문이 사방으로 쏘아지던 광경도, 그의 주인이 바닥에 서서히 쓰러지는 장면도 전부 제 유리 안에 담았다. 침략자가 거울을 향해 다가올 때도, 그가 제 표정을 마주했을 때도, 거울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거울의 본능대로, 그것은 그를 비추었다.

그러므로 그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증오로 점철된 그의 얼굴을, 타인을 죽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 표정을, 그 일그러진 모습을. 

그것은 닮아 있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를 괴롭히는 그 얼굴들과, 닮아 있었다. 그의 집을 마구 부수었던 이들, 사방에 총성이 울려퍼지게 하고, 사람을 마치 개처럼 걷어차고, 죽이는 것을 즐거워하던 이들. 

자신들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으리라 굳게 믿던 이들.

그는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그 공포가, 그 깨달음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그를 덮쳐 와서. 그는 자신이 마주한 상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상은 마치 이렇게 외치는 것만 같았다.

너는 그들과 다르지 않아.

“아니야. 나에게는 명분이 있어.”

그들에게도 명분은 있었어.

“하지만 그들은 내 가족을 죽였어.”

그리고 너는 다른 가족을 죽이고 있지.

“나는 단지 복수를 원하는 것 뿐이야.”

어쩌면 그들 역시 그것을 바랐던 걸지도 모르지.

“아니야. 그랬을, 그랬을 리가….”

정말 확신할 수 있어?

“나는,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들은 침략자였고, 그는 피해자였으니까. 그들은 죽이는 자였고, 그는 도망치는 자였으니까. 그들은 온갖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어떻던가. 그는 침략자고, 저들은 피해자였다. 그는 죽이는 자고, 저들은 도망치는 자였다. 그는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고, 저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상은 계속해서 속삭였다.

사실 저들이 죄 없는 이들이라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아니야. 아니야….”

단지 무시했을 뿐이지.

“나는, 나는 그러지….”

그것을 무시해야만, 네 행동이 정당화되니까.

“나는 무시한 적 없어. 나는 단지….”

그래야만, 네가 피해자로 남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나를 봐. 너는 지금 피해자인가?

“닥쳐, 닥치란 말이야!”

그는 마치 조심스럽게 걷는 법을 모조리 잊은 것마냥 큰 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내렸다. 비명을 지르며 현관문을 밀어젖히다시피 열고, 그것을 거칠게 닫았다. 그는 저 집으로부터, 그 거울로부터 달아났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를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마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듯, 그가 경멸하던 머글의 방식대로 그는 달렸다. 그 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 모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러나 누가 제 양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누가 달아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거울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집에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일 뿐인데.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물 속에 빠져들던 이가 밖으로 나왔을 때 내뱉는 호흡처럼. 그는 절박하게 공기를 붙잡았고, 너무도 간절하게 그것을 들이마셨다. 호흡이 떨려왔고, 심장은 불규칙적으로 그의 가슴을 거칠게 두드렸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다 뺨을 타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렇게 그는 달렸다. 눈앞의 모든 것이 새하얗게 물들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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