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희곡

붉은 군락 by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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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나기 위해 개방해둔 열린 사방에서 쏴아아, 하는 바다 소리가 난다. 스즈레 시의 어디에 서 있든지 들을 수 있는 흔한 소리, 좁은 교실 안, 벽에 기대 있는 두 사람. 당신이 붙잡은 키요카ㅡ그러니까 당신의 줄리엣ㅡ 은, 당신의 감언이설에 가만히 눈을 깜빡인다. 여전히 일렁이는 시야, 별 기대감 없는 몸짓… 이 혐오스런 이름이 당신에게서 나를 갈라 놓는다면 나는 더 이상 그이고 싶지 않네, 사랑한다는 그 말 한 마디면, 독약이든 뭐든 얼마든지 마셔줄 터이니…

쏴아ㅡ 포말이 부서지는 소리는 일순 바람이 되어, 두 사람을 정원으로 데려간다. 나무가 바람을 맞아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밀회를 감추듯 여전히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속삭이며, 당신의 그림자 아래 드리운 줄리엣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진다. 떨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몇 번의 토해내는 듯 한 흐느낌과 더불어, 몸이 불규칙하게 떨린다. 순간의 흐느낌의 끝으로, 신이 원망스러워요, 라는 말을 뱉고는.

아아, 밤의 장막이여, 왜 달빛으로 그의 얼굴을 제게 보이셨나요? 왜 달빛으로 그에게 저의 얼굴을 보이셨나요? 당신의 손이 저희에게 닿지 않아, 지금 이 밤, 당신을 원망함을 용서하세요. 아아, 사랑하는 로미오, 나는 당신이 눈 먼자가 되길 원하지 않아요, 당신 앞에서 탐욕스런 여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일순간 당신을 올려다보는 회색 눈에 당신의 눈동자가 비쳤으므로, 금방 울어낸 눈에 일렁이는 붉은 빛은ㅡ마치 탐욕스런 여인이라도 되겠다는 양 벌개졌다. 사랑을 속삭이는 눈과, 탐욕을 속삭이는 눈은 얼핏 보기에 분명 온도가 같다. 줄리엣은 당신이 아닌 달을 욕하고 있었으나, 끝내 숨을 틀어막은 듯 꺼질듯 한 원망은 당신을 향한 것이었다.

줄리엣은 고개를 들었다. 울음을 참아낸 얼굴로 두 뺨을 물들이며, 당신의 눈가를 쓰는 손길이 떨린다. 쌕쌕거리는 불규칙한 숨, 눈가를 쓸어낸 손이 뺨을 타고 내려가 턱 끝에 닿았다. 올려다본 당신의 눈은 아마도 사랑일 터다. 줄리엣은 그래서 그가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을 알았다. 제 말 하나에 기꺼이 독배를 삼킬 것을 알고, 저를 지탱해 온 모든, 제게 처음 났을 때 부터 있던 이름이자 이 땅에 있을 증명마저 내버릴 것을 알았다.

ㅡ물 밑으로 가라앉는 소리를 키요카는 듣는다.

이 미련한 남자 같으니, 줄리엣은 못내 안타깝다는 듯 소리를 냈다. 울분에 찬 듯 노려보는 눈가가 붉다ㅡ여전히, 양 뺨 또한 붉다. 줄리엣은 당신에게 양 손을 뻗었다. 점차, 수면 같은 눈으로 당신의 눈이 떨어지며 조금씩 붉어지는 경계를 넓힌다. 아마도 당신은 보았으리라ㅡ 윤슬 아래 갇힌 당신의 눈을. 줄리엣이 웃었다. 그제야 웃었다. 제 눈 안에 당신을 가두고서,

그렇다면 나를 위해 당신을 버리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할 테니.

제가 버린 것은 단 하나도 없게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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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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