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포말

나츠사키 레이

붉은 군락 by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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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ㅡ 스즈레 시를 늘 감싸는 바닷소리가 난다. 지금 둘이 있는 곳은 바다의 모습따위 보이지 않는 평야였으나, 눈 앞의 푸른 머리가 일순간 휘날려 파도를 만들어낸다. 나카이는 당신의 말을 듣고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나츠사키, 夏咲 …. 어떻게 이름마저도 지독한 여름일 수 있나. 여름에 태어나고 바다를 닮은 자신, 겨울에 태어나 여름의 이름을 받고, 생긴건 또 칠팔월의 오전 햇빛 같다. 정말 기막힌 우연이라고, 나카이는 생각했다.

운세를 물었던 입술이 가만히 말을 고른다. 운세를 외우고 다녔던 것은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아침마다 매번 챙겨보는 별자리 운세에서 그날 당신의 순위는 맨 밑이었다. 이상하게 느꼈던 동질감 때문일까, 여자는 자신이 조금 멍청해 보이는 걸 택했다. 바닥에 끄적이며 그려내던 해파리 옆으로 동그란 원을 그리곤 주변에 죽죽 선을 그어댄다. 태양 아래 해파리.. 또 가만히 제가 그리는 그림을 살펴보고는 말을 이었다.

-있죠, 이 해파리는 말라 죽을까요?

얘는 칼로 잘라도 안 죽는다는데, 나츠사키 씨는 어떨 것 같아요. 꼭 제 머리칼과 당신의 머리칼을 의식하고 하는 말 같다. 키요카는 괜히 자신이 그렸던 해파리의 중심에 긴 선을 죽, 그었다. 별 의미 없는 질문이겠지, 본인도 알 수 없다. 마저 제가 알고 있는 해파리의 정보 따위를 읆어 주었다. 얘는 거의 물이래요, 그래서 거진 파도에 휩쓸리며 산다고.. 죽지도 않고. 정보를 말하는 얼굴이 담담하다. 자신이 그린 해파리를 보고 있는 회색 눈 아래가, 잠깐 일렁인다.

-늘 표류하는 신세인 것 같아서 가여워요.

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면서 다리 부분에 가로로 죽 선을 긋는다. 다리가 잘린 모양새가 됐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살아가겠죠, 나카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한참 나뭇가지로 제가 그려낸 해파리를 죽죽 잘라내더니, 나카이는 당신의 눈을 보고 다시 물었다.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당신과 제가 같는 이 기이한 동질감을 조금 더 확신받고 싶어서이리라. 영락없는 바다가 파도를 싫어하는 것 처럼, 태양 밑에 말라죽어가는 해파리를 그려대는 것 처럼. 창문에 스며드는 햇살 같은 얼굴을 하고 겨울에 태어난 걸 자랑하는 게, 왜 나카이의 눈에는 자조처럼 보였을까. 제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카이의 머리가 다시 한 번 흔들렸다.

-있죠, 혹시 나츠사키 씨는…

겨울을 싫어하시나요.

목소리가 바람에 흔들려 공기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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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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