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무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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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by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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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 병동으로 향할 때는 언제나 마음가짐을 새로 한다. 디귿자로 된 중앙 가이딩 센터 건물은 왼쪽에는 폐쇄 병동, 오른쪽에는 일반 병동이 있었다. 일반 병동은 주로 군이나 일반인 수준으로 급이 낮은 에스퍼들이 치료를 목적으로 이용했다. 폐쇄 병동은 지난 구출했던 에스퍼처럼 외곽 지역에서 온 에스퍼들을 치료하고 중앙 구역에서 지낼 수 있도록 적응을 돕거나 외곽 지역에서 반란군으로 지내던 자를 교화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하진은 엘리베이터에 올라 숨을 골랐다. 앞으로는 바빠질 것이다. 긴급 호출이 없으면 시간이 되는 대로 폐쇄 병동에 들릴 것이다. 보통은 업무를 끝내면 환자 생각은 잘 안 하는데, 한재이가 무력으로 제압했던 일 때문인지 그 남자 생각이 자꾸 났다. 제가 없던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목숨줄처럼 꼭 껴안고 있던 쓰레기도 빼앗겼다고 들었는데….

하진은 아메리카노가 잔뜩 들어있는 캐리어를 고쳐 쥐었다. 곧장 띵, 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섰다. 이따금 지나다니는 보안국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벅 까닥이며 인사하고 곧장 병실을 찾았다. 

“좀 어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인사 대신 쏟아낸 말이었다. 병실 안을 지키고 선 사야와 사우가 허둥대며 다가와선 캐리어를 대신 들었다.

“아싸, 잘 마실게요.”

“오냐.”

“어제부터 계속 저 상태예요. 그, 쓰레기봉투 빼앗긴 뒤로는 잠이 안 오는 건지 잠을 안 자려는 건지 저 자세로 계속.”

하진의 눈이 유리 벽 너머로 향했다. 큰 체격으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지 몸을 잔뜩 웅크린 그 자세로 침대 헤드 쪽에 바짝 달라붙은 남자는 무릎 사이로 고개를 푹 파묻고 있었다. 어제 봤던 때보다 상태가 더 나빠졌다.

더 나빠질 구석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체온은? 진정제 놓고 열났어?”

“그게, 재봐야 하는데 경계가 너무 심해서요. 억지로 재보려고도 했는데 과호흡 증세가 오길래 포기했어요. 사우가 밤에 잘 때 해보려고 기다려봤는데 잠을 안 자더래요. 그래서 그것도 실패했고.”

“그래…, 안 되겠다. 내가 재볼게. 아, 그리고 저 환자 파일 있지? 그것도 줘 봐.”

사우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철과 체온계를 들고 왔다. 하진은 아침부터 재이에게 시달려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긴급 수혈하듯 아메리카노를 한 번 쭉 빨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사람 좋은 미소는 경계를 허무는 데 필수다. 재이는 뺀질거리는 데 특화된 얼굴이라곤 하지만 하진은 스스로를 평가해봤을 때 사람 대하는 일을 할 때 유리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 나쁘지 않은 얼굴이다. 특히 이 눈이. 하진은 부동자세로 제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남자를 뒤로하고 유리 벽 너머로 슬쩍 시선을 던졌다. 깊게 진 쌍꺼풀과 순한 인상을 주는 눈꼬리 같은 것이.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섰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남자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들었다. 덥수룩하게 내린 앞머리 사이로 저를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젠 저희가 미안했어요. 아무리 긴급 상황이어도 그랬으면 안 됐는데, 하필 보안국에서 호출이 오는 바람에. 그래도 제가 실수했어요. 미안해요.”

“….”

“첫인상이 제일 중요한데. 제가 다 망쳐버렸네요.”

하진은 가운 주머니 안을 뒤적였다. 딸기 맛 사탕이 한 움큼 쥐어졌다. 개중에는 딸기 우유 맛 사탕도 있었는데, 그건 정말 말썽 없이 치료를 잘 받은 에스퍼에게만 주는 것이었다. 하진은 미안한 마음에 딸기 우유 맛 사탕을 골라 두 개 쥐었다.

한 다섯개는 줄 만큼 미안했는데 주머니 속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하진은 아쉬운 대로 사탕을 내밀었다. 투명한 봉투 안에 든 분홍색 하트 모양 사탕. 남자는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예상한 일이었다. 하진은 쩝, 입맛을 다시고 그의 옆에 사탕을 내려두었다.

“나중에 먹어요.” 

“….”

“어제 약 맞았잖아요. 그 이후로 열났어요? 몸이 뜨겁다거나. 아니면 춥다거나. 열 재볼 건데 절대 아픈 거 아니에요. 이거 봐요. 이걸로….”

하진이 체온계를 들어 제 이마 앞에 가져다 댔다. 버튼을 꾹 누르자 머지않아 삐빅, 하고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체온계에 뜬 숫자를 남자의 앞에 보여줬다.

“환자분 몸이 괜찮은지 확인만 하려는 용도예요. 자, 피부에 안 닿잖아요. 절대 몸에 손대는 일 없게 할게요.”

남자의 집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윤에게 들었다. 남자는 아마, 제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무것도 모를 가능성이 컸다. 그저 대꾸하는 게 싫은 거였으면 삐빅하는 소리에 고개를 바짝 쳐들고 이쪽을 유심히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

이마를 보여주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이른 일이다. 하진은 경계심을 푸는 용도로 체온계를 사용했다. 적어도 저희가 하는 일이 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만 알려주면 오늘 일은 되었다.

삐빅 소리가 들리고 체온계를 빼냈다. 정상이네요, 그렇게도 말했다. 남자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방에 들어온 이후 제게 무턱대고 접근하지 않는 하진에 조금 안심한 듯, 바짝 세웠던 경계를 조금 느슨히 했다. 힘이 들어갔던 어깨가 살짝 내려간 것을 하진도 보았다.

“오늘 온 건 환자 분의 기본 정보가 필요해서예요. 원래는 이 목뒤에 인식 칩이 삽입되어 있어서 기계로 인식만 되면 기본 정보를 알 수 있는데, 환자분한테서는 인식이 안 되더라고요. 칩이 없는 것 같아요. 괜찮아요, 칩은 나중에라도 삽입하면 되니까. 아마 저희 쪽 가이드들이 직접 물어보러 오기도 했을 거예요.”

하진은 서류철 사이에 끼어있던 남자의 신상이 적혀있어야 할 종이를 꺼냈다. 침상에 딸린 간이 테이블을 빼내 그 위에 올렸다. 주머니를 뒤적여 끝이 뭉툭한 검은색 크레용도 꺼냈다.

폐쇄 병동이고,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게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다. 게다가 환자한테 자살 성향이라도 있으면 더욱 큰일 나는 일이고. 서류야 다시 고치면 된다.

“아는 걸 적어줄래요? 기억나는 게 없거나 모르면 안 적어도 되고요.”

남자는 고개만 든 채로 하진이 건넨 종이를 바라봤다. 등급 측정 불가라는 글자만 적힌 종이를, 남자는 생경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10분이 흘렀다. 남자는 아무리 종이를 쳐다봐도 하진이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했다. 뭘 어쩌라는 건지 몰랐다.

종이를 봐도 알 수 없는 글씨들이 나열되어 있다. 남자는 글을 배운 적이 없다. 방 바깥의 여자와 남자는 태어난 순간부터 저를 그곳에 가두어놨으므로, 글 따위를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하진은 미동 없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기다려줄까 했는데,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진전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진은 종이를 짚어 글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글을 모르는 것 같지. 안쓰러운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한 삶은 하진으로선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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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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