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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une by 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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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으로 던지는 시선에는 감정따위 들어있지 않다. 정아준은 고급 세단 뒷좌석에 홀로 앉아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본다. 자동차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멎는다. 도착했다는 운전 기사의 말에 아준은 눈만 끔뻑였다. 저 멀리 ‘청현고등학교’라 적힌 팻말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정아준은 문득 홀로 선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정아준은 일곱번째 생일 선물로 해외 여행을 받았다. 그러나 그 추억 속에 부모님은 없었다. 정아준의 부모님은 그 나이의 아이가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몰랐다.

열 살. 정아준은 웬만해선 엄두도 못 낼 정도의 학비를 자랑하는 사립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무렵, 아준의 아버지는 지역구 4선 의원이 되었다. 아준은 이제 어딜 가든 주인공 대접을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아준은 단상 위에서 상을 받고 있었다. 가득 메워진 객석의 중앙 부근엔 두 자리가 주인 없이 비어 있다. 아준의 부모님은 졸업식이 끝날 때가 다 되어서야 그 자리에 앉았다.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열다섯 살의 첫 연애. 사랑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랑이라 부르기도 애매했지만. 정아준은 차였다. 너 같은 사람 곁엔 아무도 없을 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슨 기분이 들었더라.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 걸 보니 크게 상처가 되진 않았나 보다.

열일곱 살. 정아준은 청현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전히 화려함을 꼬리표처럼 단 채로. 비서가 정아준의 짐을 든 채 뒤를 따랐다. 교문 앞을 지키던 선생이 정아준을 멈춰 세웠다. 이후로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다며. 정아준은 코웃음을 쳤다. 선생이 비서를 바라보더니 교칙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정아준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교칙을 바꾸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과 함께.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정아준이 마주한 첫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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