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겐죠 토키사다

붉은 군락 by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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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카는 손을 뻗어 당신을 끌어안았다. 울음이 채 멎지 않은 더운 숨이 몇 번인가 당신의 귓가에서 오갔다.

문을 열면 사방에서 들어차는 파도소리가 두 사람을 밀회의 정원으로 데려간다. 그때와 조금도 바뀐 것이 없었으니까. 당신 앞의 줄리엣은 여전히 아무것도 버린 것이 없는 채이다. 키요카 는 애초의 수면 밑에 있던 존재였으니.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었으니 ….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속삭이는 표독스러운 줄리엣의 목소리는 꼭, 물결 치는 세이렌의 목소리 같았다. 바라보다 영영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당신의 혐오스러운 이름이 당신을 살아 숨쉬게 한다면, 눈 앞에 당신을 끌어안고 있는 여자는 기어이 그 이름을 버리게 하고 당신을 익사시킬 작정이겠지. 눈 앞의 여자는 전혀 인어가 아니었다, 인어일 수 없었다. 육지를 동경하고 땅 위에서 살고 싶어하나, 물결치는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을 기어이 잡아 빠트리는 세이렌이다. 이전에는 잘도 육지로 가고 싶다 당신 앞에서 애원했음에도.. 물에 빠지게 하는 것도 모르고선, 바다를 닮은 얼굴로 땅을 동경한다 속삭이는 가증스러운 자였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보는 세이렌의 물 안에 다시 붉은 빛이 돈다. 여전히 수면 아래 당신이 있다.

물결치는 모든 목소리가 될 수 있는 자와 억겹의 얼굴을 하곤 이름을 잊은 자.

키요카는 자조했다. 이 남자가 뿌리내린 줄 알다니. 제가 아는 가장 굳센 것인 줄 알다니. 물 안에서만 존재를 잃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육지 위에서도 표류할 수 있구나.. 키요카는 손을 뻗어 가만히 당신의 눈가를 쓸었다. 태양 한가운데 희게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았다. 물먹은 호흡이 잠깐 떨렸다. 귓가에 다시 바람 소리가 인다. 이제 당신을 동경하지 않아, 당신도 나와 별 다를 바 없으니까.. 키요카는 가만히 속삭였다.

인어의 입맞춤은 기억을 망각하게 한다고 했나, 자신은 인어조차 아닌데ㅡ .. 그러나 당신은 이미 이름을 잃겠다 했었다, 자신의 로미오로. 그리한다면 줄리엣인 제 말로 모든 것을 잊으리라. 키요카는 손을 뻗어 당신의 두 뺨을 감쌌다. 희게 웃는 얼굴 그대로, 당신의 이마에 낙인찍듯 입 맞췄다. 토키사다, 낮게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된다면 당신은 ‘겐죠’를 잊게 될까? 그 이름으로 이루어진 숨을 놓고 파도의 포말이 될까.

물 가라앉는 소리가 들린다. 키요카는 떨지 않았다. 발이 땅에 닿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제가 품은 것 중 가장 무거웠으니까.

바람이 키요카의 머리를 잘게 흔든다. 포말을 닮은 머리가 다시 흔들린다. 품 안에서 당신을 올려다본 채로, 당신의 눈을 담은 채로, 아주 환희했다. 그렇네요, 저, 오늘 운이 좋네요.. 여자가 속삭였다.

야차님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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