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나츠사키 레이

붉은 군락 by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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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커뮤니티 진행도에 따라 패닉 때의 역극 내용 + 지금까지 진행된 스토리 내용이 섞여있을 수 있습니다. 불편하시면 편하게 스루해주세요!


키요카는 가만히, 당신이 지워내 마침내 완성된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죽죽 원을 따라 그었던 태양을 지워낸 것. 태양 아래 해파리는 수그라든 햇빛에 기뻐할까, 또는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영영 표류하는 삶을 살까. 이미 죽죽 베여진 몸이니 그 작은 햇살에도 아파할까.. 키요카는 멍한이 말을 이었다, 해파리는 죽이기도 힘들다나요, 따위의 정보를 다시 말하면서. …수그러든 태양 빛 잠시 보고는, 수면 일렁이는 눈으로 힐끗, 당신을 보았다. 순간 시선이 교차해, 수면 위로 노오란 햇빛이 드는 것 같은 착각 같은 것이 들었다. 그래, 잘방이는 수면에 발을 담굴 때, 그 위로 햇빛을 받아 빛나는 잔 물결 같은 것.

-나는 말이야, 해파리가 태양의 빛을 받으면 더 아름다워질 거라고 생각해.

있어도 되나, 의구심이 드는 햇살 아래라니. 누구든 빛을 받으면 그런 생각을 할까, 긴 터널 끝에 보이는 빛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게 되는 것 처럼, 우리가 오늘 손을 붙잡고 바다를 피해 도망친 것 처럼.. 사방이 물인 이 곳에서 물을 피해 도망왔는데, 또 다시 모순이다. 키요카는 다시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만 또, 바다를 닮은 제가 햇살인 당신을 마주보고 있으니까ㅡ 우리, 떨어지기 참 힘드네요. 키요카의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들었다.

가만히 제 손 위에 겹쳐진 현실성 없는 하얀 손을 보았다. 그러나 겹쳐진 온기는 사람의 것이어서, 키요카는 가만, 고개를 기울였다. 바라본 당신의 머리에 , 순간 햇빛이 끼쳐들어왔다. 아, 다시 햇빛으로 일렁이는 시야. 부서지는 햇빛을 망연히 바라보며 당신의 말을 듣는다.

-나카이 쨩, 나는 말이야. 설령 우리 둘 중 누군가 보충수업 도중에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온도를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해,

물 밑의 파도와 햇볕을 닮은 겨울. 정 반대의 모순과 온도. 그러나 모순이기 때문에 기억될 수 있는 온도. ..아, 그래. 해파리는 따뜻한 물을 좋아하니까. 당신을 좋아하겠구나ㅡ.. 하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인은 해파리일까, 아닌데, 여전히 가라앉은 감각을 기억하는데.. 그렇지만 손을 뻗었다. 눈 앞의 당신을 위해서 약속을 하고 싶었으니까. 두 손가락이 여름 하늘 위에서 겹쳐진다.

계절은 결국 순환한다. 지금 우리가 여름에 있어도 당신을 닮은 겨울이 오는 것 처럼. 그러나 키요카 또한 계절을 모른다. 한여름에 태어나 바다를 닮게 되었음에도, 사방이 물인 곳에서 살았지만 키요카는 그 계절의 바다를 모른다. 겨울의 성난 파도 같은 것 따위는. 그러니 당신의 대답을 알 것도 같았다. 그래, 결국엔 이것도ㅡ..

-저도 없어요. 좋아하는 계절 같은 건.

사방이 물이고, 물이 있는 곳은 늘 지긋지긋했으니까. 마찬가지로 무감한 얼굴이 당신을 마주보았다. 그러나 당신의 얼굴을 알았다. 뻗어간 곳은 다르지만 뿌리가 비슷한 고독에 키요카는 작게 탄식했다. 같은 마음이니 위로는 할 수 없다. 윤슬로 반짝이는 회색빛 눈이, 당신의 얼굴이 가라앉음에 따라 순식간에 심해로 바뀌었다. ..그러니 아마, 당신도 알 수 있겠지.

언젠간 알 게 되겠지, 모든 걸.

그래, 언젠가는 알게 될 수도 있다. 서로의 뿌리며 불안은 이해하기 한참 멀었지만, 적어도 이 모순이 서로를 감싸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 그럼에도. ..키요카는 다시 쏴아아, 하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저를 심해에 밀어넣는, 존재를 잃게 하는.. 그 근본조차 없는 불안감. 그러나 이것을 당신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다. 닮았기에 더더욱.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면 결국 모든 것을 잊으리라.. 나카이는 오늘 마지막으로 봤던 제 운세를 생각했다. 오늘의 운세는 3등. ..가라앉는 생각을 하면서도 운을 붙잡고 있는 꼴이라니.

그렇지만 당신의 미래를 들었다. 그렇다면 희망을 품게 두도록 두고 싶었다. 저와 닮았으니까, 제게 정을 주니까. 그것이 당신이 믿고 싶은 ‘나카이 키요카’ 와의 미래라면, 당신의 기억 속에서 그런 존재로 남을 수 있더라면.

-이제 최악을 가정하지 않으시네요.

키요카는 당신을ㅡ마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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