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사키

애도

붉은 군락 by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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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ㅡ

눈 돌리면 늘 바다, 그래, 늘 바다였다. 하지만 적어도 여긴 아니었는데. 키요카는 운동장 바닥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어둑어둑한 시야, 늘 들려오는 물 밀려오는 소리, 키요카는 가만히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바람으로 마모된 지 오래인 그림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흐릿한 태양 아래 해파리.. 키요카는 젖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발코로 이전에 둘이서 그렸던 기억을 마구 흐트러트렸다. 일그러진 얼굴 위로 계속해서 빗물이 돌았다. 겨우 지워진 그림 위로 진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장마는 지난지 오래인 날이었다.

夏咲, 여름에 태어나 여름에 진 사람. 순환하는 계절에 머무르지도 못 하고 이제 꼼짝 없이 여름에 계셔야 하네요, 만족하셨으려나요. ..가라앉은 목소리가 공기중에 흔들린다.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으면서 이제는 이름으로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다. 당신은 여름에 태어나 여름에 죽었기 때문이다. 아ㅡ.. 이 지긋지긋한 기분, 물에서 태어나 물 안을 부유하는 기분 따위를 느꼈을까, 당신도 비슷하게, 여름을 피해 여름에 죽어 돌아가, 미완인 소설을 보여준다며 큰소리를 치는.. 그래, 결국 당신의 말대로 되었다. 이 소설에 연작은 없다. 주인공이 죽었으니 이야기는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미래를 기약했던 것 같은데, 분명 그랬던 것 같은데. 당신의 떠밀림에 파도가 된 나는 어찌해야 할까.

키요카는 지워진 운동장 위에 다시 쪼그려 앉았다. 그때 제가 쓰던 것이었을까, 나뭇가지를 들어, 해파리와 태양이 있던 곳 위에 새로운 그림을 덧그렸다. 사정없이 떨리는 손이 여러번 덧그리기를 반복한다. 몇 번이고 손에서 나뭇가지를 놓친 손은 기어이 운동장 위에 꽃 한송이를 그려냈다. 둥그런 솜 형태의.. ..죄송해요, 겨울에 피는 꽃이라곤 아는게 이거 하나뿐이에요. 속삭이며 말하곤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바닥에 내팽겨쳤다.

아마 곧 기회가 오게 될 수도 있어요, …키요카의 목소리가 말없이 멀어진다. 뿌리가 비슷하기에 아는 허무 따위를 알고 있다. 아주 아주 사무치도록. ..물먹은 공기에 키요카는 뒤를 돌아가다 말고 몇 번이나 흐느꼈다. 밤바람에 파란 머리가 마구 나부꼈다, 파도 위에 표류하는 해파리처럼.

이젠 그저 편안하세요, 당신이 누구든.

다시 밀물이 목소리를 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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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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