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 커미션 샘플

유머러스 2

공포 5751자

“M. 너는 진짜 이상해요.”

M은 누군가의 명함을 반으로 가지런히 접었다. 이 명함의 주인에게 악의는 없었지만, M은 신경을 분산시킬 사소한 행동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런 종이접기 놀이나 하는 것이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좀 더 얇은 종이나 비닐이었으면 쪽지로 접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P는 M 앞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흰 코트와 베일이 붕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날 봐요. 솔직히 말해서 내 외모는 좀 괜찮거든요.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빼어나다고 말해야지. 또 좀 유능하고, 돈도 많아요.”

“아, 예.”

“너,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기는 한가요?”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답니까?”

“아니요.”

P는 M 앞에 사뿐히 앉았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지금 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뜻일 테다. M은 명함을 다시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다. 저 자식의 자랑질은 언제 끝날까?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고, 친해지려고 들었지요. 그런데 너만 이런 반응이더라고요? 정말 이상하지요. 물론 그런 점 때문에 네게 더 흥미가 생기기는 하지만.”

M은 명함을 다시 반으로 접었다. 슬슬 두께가 두꺼워져서 접기가 어려워졌다. 손톱 끝으로 접은 선을 긁어서 꾹 눌렀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 서로 터놓고 대화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하며 상대를 이해해보기? 그들이 관계 개선 클리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늘 있던 P의 한탄(을 빙자한 자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M이 중요하게 들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친절하고, 인성도 좋고, 사회성도 좋고.”

그 시간 M은 명함을 한 번 더 접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번에는 난이도가 꽤 높았고 M은 그 행위에 신경을 집중하느라 대강 답했다. ‘아, 그러십니까.’라고.

“놀고 자빠졌네.”

그런데 실제로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위와 같았다. 그 말을 들은 P는 우뚝 멈췄다가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천천히 기울이며 입가를 당기며 M의 말을 반복했다.

“하, 놀고 자빠졌다?”

M은 명함에 집중하던 시선을 P에게 돌렸다.

“갑자기 그러십니까?”

“네가 방금 내게 이렇게 말했거든요. 기억 안 나요?”

“그랬습니까? 저도 모르게 진심이 새어 나갔나 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럴 때 보통 잘못 말한 거라고 하지 않나요?”

“굳이 거짓말까지 하면서 당신 비위를 맞춰줘야 합니까?”

게다가 정말 진심이 맞다. M은 다시 종이접기에 매진했다. 그냥 힘으로 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명함을 펴서 십육 등분으로 미리 접어두어야 네 번 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는 그런 M에게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M은 얼굴을 찡그렸다.

“뭡니까?”

“그럼 M, 너는 정말 내가 친절하지도, 인성도 좋지도, 사회성도 좋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M은 방금 호칭을 지적할 마음도 안 들었다. 너무 당연한 것을 묻고 있었다.

“세상 사람이 전부 죽었습니까? 어딜 그런 말을 당신에게 가져다 붙입니까? 지금 보니 더불어 양심도 없어 보입니다.”

“하, 그렇다고 쳐요. 다른 건 넘어가 보자고요. 그런데 ‘사회성’이 없다? 이게 네가 나한테 할 수 있는 말이에요?”

P는 중대한 문제라는 듯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힘을 주어 발음했다. M은 생각했다. 왜 이러지? 꼴에 자존심이 남아서 이러는가? P는 계속 말했다.

“네가 사회성을 운운하다니! 푸핫, 진심이에요? 세상에 너만큼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네가 사회성으로 나를 비방하는 건 참 우스운 일이라고요.”

어느새 P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떠올라있었다. M은 문득 기분이 나빠졌다.

“당신은 지금 제가 사회성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럼요! 당신 좀 봐요. 매사 무미건조하고, 사람들과 말도 잘 안 나누고, 미소 지을 줄도 모르고. 마치 기계 같아요. 그게 사회성 좋은 사람의 태도인가요?”

M이 자신의 태도로 면박을 듣는 상황은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말이 P에게서 나오자, M은 이상하게도 반박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졌다.

“당신, 백수였지 않습니까? 저는 적어도 직업을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했다는 뜻이지요. 이는 당신보다는 제가 사회성이 낫다는 증명이 되지 않겠습니까?”

“잠깐, 이건 짚고 넘어가자고요. 나는 돈이 많아서 일을 안 한 거고, 너는 돈이 없어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일을 해야만 사람을 만나나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어울렸는데.”

“아, 그 잘난 돈으로 사람들을 꼬드겼습니까? 그자들이 당신 비위를 맞춰주었던 것을 당신은 당신의 사회성으로 그간 착각하셨군요. 사람들이 당신 성격 맞춰주느라 참 힘드셨겠습니다.”

“……하!”

P는 헛웃음을 지으며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M의 말이 심장 깊은 곳을 갉아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무척 거슬려서 도무지 넘어갈 수가 없었다. P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M을 내려다보았다.

“말 다 했나요?”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찔리셨나 봅니다?”

M은 특유의 감정 없는 얼굴로 P를 올려다보았다. P는 이를 악물었으나 곧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좋습니다. 그럼 서로 사회성을 증명하기로 해보죠.”

“또 무슨 이상한 일을 벌이려…….”

P는 M의 말을 깔끔하게 자르고 제 말을 밀어붙였다.

“내기를 해봐요. 각기 친구를 데려오도록 하죠. 기한은 오늘 저녁까지. 더 많이 모아오는 사람이 승리하는 겁니다. 그거면 사회성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지 않겠어요?”

“친구의 수가 사회성과 정비례한다는 근거가 있습니까? 애초에 남들과 어울리는 행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이…….”

“혹시 너 MBTI 같은 거 맹신해요? 인터넷에서 광고와 돌아다니는 검증되지 않은 가짜 심리테스트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항목에 ‘매우 그렇다.’를 누르고, ‘당신은 내향성입니다.’라는 결과가 나오면 족집게 같다고 깜짝 놀라면서 내심 자신이 I로 나온 것에 뿌듯해하고 막 그러시나요?”

“……그 내기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장 하죠.”

어느 순간 M도 벌떡 일어나서 P를 노려보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동시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해가 느긋하게 기울고 있었고 저녁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P는 길거리를 빠르게 걸으며 떠오르는 사람들을 머릿속에서 명단으로 만들었다. 명단은 꽤 길었다. P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M의 협소한 인간관계와 비교하면 최소로 잡아도 서너 배는 될 것이다. 저 아싸를 이기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을 하나씩 상세하게 떠올려 보니 데려갈 인물이 생각보다 마땅치 않았다.

U? 근데 그건 솔직히 애완동물, 아니 애완 짐승이지. T? 타우는 친구라기보다는 가족이다. 그런데 친구 데려오는 자리에 가족을 데려오면 못 구해서 마치 친구 없어서 가족을 데려온 꼴 같이 보이지 않겠는가? 일단은 넘어가자. D? 그 애는 거의 남매 아니던가? 또 누가 있지?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J? 어릴 때는 친구가 맞았는데, 지금은 좀 애매하다. 패스. 어릴 때 진짜 친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래, A. 근데 그 자식은 친구인 척하다가 부모한테 꼰질러서 내 뒤통수를……!

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P는 머릿속의 목록을 다시 뒤져보았다. 아직 많은 이들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시간을 다시 떠올려 보자,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욕망이 선명히 읽혔다. 돈과 지위, 어쩌면 외모에 대한 얇은 호감. 과연 이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P는 자신이 원한다면, 저녁까지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데려갈 수도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새로운 이들이 과거의 관계와 뭐가 다른가?

이런 순간마다 P는 M에게 지독한 패배감을 느꼈다.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영영 가지지 못할 것을 M은 이미 쥐고 있다. 그런 주제에 건조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 표정을 견딜 수 없어서 마구잡이로 뒤틀고 싶었고, 그래서…….

“어라? 잠시만.”

문득 P는 본질을 깨달았다. 내기에서 이기는 것은 M을 엿 먹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엿 먹이기 위해 꼭 내기에서 이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승부에 눈이 멀어 중요한 것을 잊을 뻔했다. P는 걸음 방향을 돌렸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M은 담벼락 아래 한참이나 서 있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데도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친구’라니. P 그 자식. 자신을 뒤흔들려고 일부러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테다.

M은 자세를 숙이며 서서히 주저앉았다. 노란 종이가 제 눈앞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M은 항상 속이 울렁인다. 담벼락의 그림자는 길어져서 M을 뒤덮었다. 마치 후회가 자신을 지독하게도 뒤덮는 것 같았다. M은 굳이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물속에 잠기듯 그림자에도 잠길 수 있다면, 완전히 잠길 때까지 아주 오래 그렇게 있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른다. 그 누구도 현재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 M은 우정을 소중히 여기던 시간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고, 지구의 사람들은 종말이 아직 오지 않은 시절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M은 천천히 일어났다. 슬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로?

“아. 여기에 있었군요. 한참을 찾았어요, M.”

그때 P가 나타났다. 그 싱글거리는 낯짝을 보자니 M은 자동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적어도 이렇게 감상에 젖은 상태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M은 잔뜩 꼬인 어투로 말을 던졌다.

“뭡니까.”

“뭐긴요. 우리 내기했잖아요. 잊었어요?

M은 그제야 내기를 떠올려냈다. 조금 전의 일이었지만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울을 건너야 했다. 대체 그게 뭐라고 그렇게 열과 성을 내고 흥분했었더라?

”됐습니다. 당신이 이긴 거로 하십시오.“

M이 그렇게 말하자 P는 눈썹을 휙 세웠다가 다시 누그러뜨렸다.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마시고요.“

P는 손가락을 어디론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제각기 편안하지만 깔끔한 옷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M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친구 단체 대여 서비스를 신청 감사합니다. M님 맞으시지요?“

”……예?“

M은 정말 흔치 않게 공포에 빠졌다. 그는 그 사람들로부터 몇 발짝 물러났다. 그러나 한 명이 물러난 만큼 다가와서 빠르고 경쾌하게 말했다.

”계약 전에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저희 친구 서비스는 일정 동안 말 그대로 친구가 되어드리는 서비스인데요. 하고 싶었지만, 친구가 없어서 못 하셨던 것들을 즐길 수 있게 직원들이 협조해드립니다! 참고로 환불은 불가하고 친구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출하게 되는 비용은 따로 청구하게 되므로 참고 바랍니다! 그럼 호칭은 뭐가 좋으실까요? 그냥 M? 아니면 M씨? 혹시 친근하게 M아, 라고 불러드리는 걸 원하실까요?“

M은 소름이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질린 눈으로 그들을 보다가 시선을 P에게로 돌렸다. P는 M을 지켜보며 느긋하게 손뼉을 쳤다. 짝짝짝.

“내기에서 이긴 것 축하드려요, 명.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이런 미친, 이게 뭐야? 야 이 또라이야!”

M은 입에서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아까 전의 그 사람이 추가로 읊었다.

“아, 저희 직원을 향한 폭언, 폭행은 회사 측에서 강경하게 대응하며 법적인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점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P는 뿌듯하게 웃으며 멀어졌다. 너그럽게 패배를 인정하는 자의 모습이었다. 대신 그 자리를 친구 서비스한다는 이들이 채웠다. M은 떠올랐다. 아까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P 그 새끼를 상대하다 보면 언제나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언제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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