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 3
공포 9210자
게임 명일방주의 에이어스카르페x골든글로우x레온하르트로 작업한 커미션입니다.
2:35 P.M. 날씨/맑음
로도스 아일랜드, 제2 발전소
로도스 함선의 제2 발전소를 관리하고 있던 두 오퍼레이터는 숯 더미가 된 어느 사람의 형상을 오늘도 발견했다. 그들은 처음 이런 사태를 마주했던 때처럼 놀라서 허겁지겁 야단법석을 떠는 대신,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쩐다? 고민된다.”
“뭐가?”
“엔지니어를 먼저 불러야 할까, 메딕 오퍼레이터를 먼저 불러야 할까?”
“그거 나도 고민되는데? 일단 나는 메딕 오퍼레이터 쪽에 한 표.”
“왜?”
“기술자를 부르면 왜 기기를 망가뜨리게 내버려 두었냐고 우리를 더 혼낼 것 같아.”
“겉보기로는 당장 망가진 건 없어 보이는데?”
“그 기술자 녀석들은 기계라는 게 얼마나 민감한지 아냐고 맨날 강조하잖아. 그냥 건드리기만 해도 망가지는 줄 알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메딕 오퍼레이터는 기계에는 별로 신경 안 쓰고 환자의 상태를 최우선으로 살피잖아. 게다가 환자의 상태에 집중하느라 가끔 우리를 혼내는 걸 깜박하거나 나중에 미루지 않겠어?”
“오, 너 진짜 머리 좋다.”
두 오퍼레이터는 그런 잡담을 나누었다. 잡담은 누가 메딕 오퍼레이터를 불러올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중대한 가위바위보로 발전했는데, 그쯤에서 발전소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문간에는 골든글로우가 서 있었다. 골든글로우는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며 발전소의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두 분, 오퍼레이터 에이어스카르페씨를 보셨나요? 아까부터 이상하게 안 보여요. 저번에 혼자 돌아다니시다가 감전된 채 쓰러진 적이 있어서, 걱정되는데요…….”
불안하게 흔들리는 골든글로우의 눈망울에 두 오퍼레이터는 토론을 멈추고 즉각 숯덩이를 가리켰다. 골든글로우가 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서 숯덩이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꺅! 에이어스씨! 괜찮으세요?”
“……응.”
숯덩이, 아니, 에이어스카르페는 꿈틀거리면서 대답했다. 골든글로우는 얼른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옷과 머리카락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목숨은 붙어있었다.
“세상에, 또 이러신 건가요? 이런 행위는 위험하다고 메딕 오퍼레이터가 경고했잖아요.”
“…….”
에이어스카르페는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그때 발전소에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레온하르트였다.
“어이쿠, 에이어스. 역시 여기 있었구나? 이럴 줄 알았지. 골든글로우도 여기 있었네?”
레온하르트는 당황하지 않고 에이어스카르페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골든글로우도 그것을 거들었다. 레온하르트는 발전소의 인원에게 손을 흔들며 경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친구 때문에 놀랐지? 미안해. 대신 사과할게. 이 친구는 우리가 데려갈 테니까 하던 일을 마저 해. 자, 그럼 수고해!”
그렇게 그 셋은 제2 발전소를 휩쓸고 사라졌다. 잠시 멍하니 보던 발전소의 두 오퍼레이터는 한참 있다가 내뱉었다.
“갔네?”
“그러게. 이제 메딕 오퍼레이터 안 불러도 되네?”
“그렇겠지?”
“맙소사 이게 뭐야! 야! 거기 너희 둘! 우리 함선의 소중한 발전기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아 맞다, 엔지니어.”
“아차.”
지나가던 엔지니어가 발전소의 상태를 보고 기겁을 하며 둘에게 소리쳤다. 두 사람은 원흉인 에이어스카르페를 재빨리 찾았으나 보일 턱이 없었다.
두 오퍼레이터가 잔뜩 잔소리를 듣는 시각, 에이어스카르페, 골든글로우, 레온하르트 이 삼인방은 공용 숙소에 다다랐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EDM이 울려 퍼지고 네온사인이 번뜩이던 공간은 안온한 쉐라그 스타일로 인테리어가 싹 바뀌었다. 박사의 변덕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휴식을 취하기에는 한결 나았다. 골든글로우와 레온하르트가 에이어스카르페를 한쪽 침대에 뉘었다. 레온하르트는 느긋하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이 녀석의 괴벽은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저번에는 더 강한 전류에 노출된 적도 있어. 그때도 무사했는걸?”
“그렇지만.”
골든글로우는 에이어스카르페를 내려다보았다. 에이어스카르페는 주황색 눈을 데굴 굴리며 골든글로우의 시선을 피했다. 골든글로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감전은 분명히 신체에 무리가 가요. 저는 메딕 오퍼레이터가 아니지만 ‘감전’에 대해서는 잘 알아요.”
“정말 괜찮다니까. 내가 에이어스를 몇 년을 봐왔는데. 오늘은 정도가 조금 세기는 했어. 하지만 이것도 안정 범위 내야. 그렇지, 에이어스?”
“……맞아.”
에이어스가 마지못해 입 밖으로 대답을 내었다. 골든글로우는 조금 답답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에이어스씨. 이런 일이 요즘 한둘이 아니잖아요. 발전소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전부 에이어스씨 이야기를 해요, 이런 일이 이번 주에만 세 번째라고 들었어요.”
골든글로우는 주저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요즘 저를 피하시는 것 같고요.”
에이어스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못 들었나 싶은 정도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골든글로우가 기다리다 못해 무슨 말을 터뜨리려는 순간 레온하르트가 벌떡 일어나서 중재했다.
“진정해, 골든글로우. 얘는 주기적으로 혼자 있고 싶어 할 때가 있더라. 녀석은 나한테도 그래. 그러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마. 정 걱정되면 의료 부에서 화상 연고만 조금 얻어다가 줄 수 있을까? 내가 가기에는, 음, 약간 곤란해. 지난번에 의료 부에 들렸을 때 거기 애들을 놀리다가 그만 울려버렸거든.”
골든글로우는 에이어스와 레온하르트를 한 번씩 빤히 쳐다보았다. 레온하르트는 웃음을 유지했다. 곧 골든글로우는 시무룩해졌고 레온하르트는 그 표정에 아차 싶어졌다. 레온하르트가 변명처럼 무슨 말을 덧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는 동안 골든글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알겠어요. 대신 그동안 에이어스씨는 무리해서 움직이시면 안 돼요. 레온하르트씨는 에이어스씨를 잘 지켜봐 주세요.”
작은 발소리가 멀어졌다. 레온하르트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문이 닫히자 허탈하게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속상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하네. 정말 좋은 애인데 말이야. 친절하고, 착하고, 귀엽지. 필라인은 모두 귀엽기는 하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말을 아끼던 에이어스카르페가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너 그거 종 차별이다, 레온하르트. 너도 ‘카우스트는 겁쟁이이다’, 같은 이야기를 싫어하잖아.”
“아, 이런. 그렇겠네. 미안. 나는 그냥 그 애가 귀여워서 그만.”
“나에게 사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골든글로우에게 해.”
“알겠어.”
레온하르트는 겸연쩍어하며 뺨을 긁적였다. 그러나 이내 입에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띄우며 빙글 웃었다.
“그런데 에이어스. 너는 골든글로우한테 왜 그래?”
에이어스가 움찔거렸다. 몸에 전류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뭘?”
“너 그 애 앞에서 묘하게 어색했거든? 말수도 적어졌고. 그래서 내가 잠시 그 애를 보낸 거라고. 이제 우리만 있으니까 솔직하게 털어놔 봐.”
“그건 네 착각이다, 레온하르트.”
에이어스는 차갑게 답했고, 레온하르트의 웃음은 음흉해졌다.
“착각이라고? 이 뛰어난 재앙정보전달자의 눈썰미를 무시하는 거야?”
“대체 이 상황이 재앙정보전달자의 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흠, 재앙에 관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길러지는 대인관계 능력과 눈치?”
“이것과는 상황이 다르잖아!”
“비슷하거든?”
둘은 그리 잠시 투닥거렸다. 어쨌거나 먼저 백기를 든 쪽은 에이어스이다. 에이어스는 단호했지만, 레온하르트는 끈질기다. 에이어스는 제 손등을 이마에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결국 숨과 함께 말을 탁 뱉었다.
“그 애가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턱을 괴고 듣던 레온하르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이거 의외네.”
“왜?”
“누군가가 너를 불편하게 여긴다고 네가 크게 껄끄러워할 것 같지는 않았거든.”
“의외라는 게 그 부분이었던 거냐……. 나도 사람들을 신경 쓴다고.”
“하지만 너는 확실히 남들 눈을 신경 쓰느라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거나 할 말을 안 하는 녀석은 아니잖아. 옛날부터 늘 그랬어. 그랬으면 감전당하는 일은 자제하고, 소금에 절인 풋콩을 껍질째 먹는 일은 숨겼겠지. 뭐, 내 그랬다면 호위 일도 때려치웠을지도 모르겠다. 네 실력이면 더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다고 말하던 이들이 어디 한둘이야?”
“스카우트 제의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게다가, 나도 사람들을 신경 쓴다니까?”
“그래, 그래. 하지만 그건 넘어가고, 너는 누가 너를 싫어하는지는 알지만 네가 그들을 껄끄러워하지는 않지. 그저 성가셔할 뿐이잖아. 아니면 귀찮아하거나.”
레온하르트는 잘 안다는 투로 말했다. 에이어스카르페는 부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오랫동안 함께해 온 동료는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에이어스는 얼굴을 찡그리고만 있었다. 육체적인 부분이라면 모를까,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점검해 보는 것에 그는 익숙지 않았다. 자신이 왜 그러했는가? 에이어스는 한참을 고민해 보더니 털어놓았다.
“확실히,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든글로우를 쫓아다녔어. 전기가 필요하니까.”
“그 미용실 선생님은 확실히 정전기가 대단하지. 전기 자극을 쫓는 네가 좋아할 만도 해. 하지만 요즘은 그 대신 발전기를 찾아서 괜히 설비를 고장 내지. 왜 그러는 거야?”
에이어스카르페는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 애도 좋아할지는 모르겠기에 말이야.”
“어라? 골든글로우가 너 보고 이러는 거 싫다고 했어?”
“그런 말은 안 했어. 다만 내가 어쩌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들었거든. 나는 귀가 좋잖아.”
에이어스카르페는 제 귀를 건드렸다.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
“골든글로우 말이야. 로도스로 오기 전에 빅토리아에서 그 정전기로 사람을 죽일뻔한 적이 있다더라.”
에이어스카르페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고 레온하르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그는 늘 경쾌함을 가장하며 넘겼다. 레온하르트는 농담조로 말했다.
“오, 그래서 에이어스 네가 드디어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하지만 그리 노골적으로 피하면 애는 상처받을 텐데?”
에이어스카르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레온하르트. 골든글로우에게는 이미 상처가 있을 거야. 그 정전기로 일어난 일 때문에 말이지. 그런 애한테 감전시켜달라고 계속 다가가는 건 미안하잖아.”
에이어스카르페는 담담하게 말했다. 레온하르트는 눈을 깜박였다. 그의 친구는 언제 이렇게 세심해졌던가?
“네가…… 그런 생각까지 하는 줄은 몰랐는데.”
“너는 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거야?”
레온하르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그 말을 에이어스카르페는 짜증을 냈다. 레온하르트는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미안, 이번에는 진짜 미안. 난 그저, 네가 그렇게까지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 놀랐어.”
“부정은 못 하겠네. 그동안 내 일은 남을 헤아리는 게 아니라 남과 싸우는 거였지.”
호위란 일이 그렇다. 호위 대상을 지켜주는 대신 나머지 이들을 배척하게 된다. 그들은 호위 대상에게 잠재적인 위험요인이므로. 그렇게 에이어스카르페의 세상은 레온하르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며 상당히 좁을 것이다. 그런 에이어스카르페가 이상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당연하다. 에이어스카르페는 레온하르트 외의 세상에 섞일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레온하르트는 사정이 좀 더 나았다. 재앙정보전달자의 최종적인 임무는 전달이므로, 이는 즉 교류였으므로. 그러나 레온하르트가 다른 이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에이어스카르페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할 뿐이었다…….
네가 언제 세상에 스며들게 되었을까? 레온하르트는 그런 에이어스카르페의 모습이 꽤 생경했다. 해서, 그를 오래 보고 있었는데, 에이어스카르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툭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 너 때문인 것 같아.”
“어라? 뭐가?”
“내가 골든글로우의 상처를 신경 쓰는 거. 너 때문인 것 같다고.”
레온하르트는 모호하게 웃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자신이 골든글로우를 좋아해서, 에이어스카르페도 골든글로우를 잘 대해준다는 뜻인 건가? 레온하르트가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아차린 에이어스카르페가 설명을 덧붙였다.
“너를 대할 때도 그랬던 적이 있었거든. 네가 상처받아서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했던 적이 있었어.”
순간, 레온하르트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내가 그랬다고? 언제?”
“옛날에. 재앙정보전달자가 불길하게 여겨지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을 때. 너는 어느 도시에 재앙을 알렸고 전혀 보답받지 못했어. 그리고 너는 그 순간을 마음속에 오래 남겨두었지.”
아득한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레온하르트는 잠시 숨이 막힐 뻔했으나, 그다음에는 웃음이 터졌다.
“에이어스! 그건 진짜 옛날 일이잖아! 그땐 아직 어리고 뭘 몰랐으니까 그랬지. 지금은 다 잊었어.”
“그렇지. 그다음부터는 보답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어쨌든 네게 그런 순간이 있었어. 나는 그때를 기억해.”
에이어스카르페는 진지하게 말했다. 레온하르트는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골든글로우에게 그런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너의 그 시절이 생각났어. 그래서 깨달았어. 내가 감전시켜달라고 말하는 건 골든글로우의 상처를 건드리겠구나, 그러면 그 애는 괴로워하겠구나, 라는 걸.”
에이어스카르페가 하는 말은 유려하지는 못했고 가끔은 막혔지만 결국 제 생각을 정리해 냈다. 둘뿐인 좁은 세계였지만 에이어스카르페는 그곳에서 관계를 배웠고 이는 더 넓은 세계를 보게 해준다. 레온하르트는 싱긋 웃었다.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래.”
“그래서 골든글로우를 피하겠다고?”
“응.”
레온하르트는 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에이어스. 그러지 않아도 될지도 몰라.”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건 네 생각에 불과하잖아. 실제로 골든글로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어?”
“물어보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너는 할 줄 모르는 거야?”
레온하르트는 평소처럼 미소를 걸고, 하지만 진지하게 말했다.
“있지, 에이어스. 네가 말한 그 일을 나는 잊었어. 아니, 기억하고는 있기는 해. 하지만 이제는 그 일에 상처받지 않아. 어쩌면 골든글로우도 그럴지도 몰라. 그러니 그 애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 네 멋대로 속단하지 말고.”
“글쎄.”
에이어스는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레온하르트가 말했다.
“골든글로우는 생각보다 강해.”
“오리지늄 재능이 엄청나기는 하지.”
“아니, 골든글로우의 마음을 말하는 거야.”
레온하르트는 눈을 내리며 회상에 잠겼다. 제 머리를 손질하던 골든글로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손길은 정갈하고 솜씨는 뛰어나다. 완성된 결과물을 담는 눈동자에는 뿌듯함이 차오른다. 아츠 활용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는 모습도 보았다. 열성적으로 임했으며 의지가 가득했다. 골든글로우가 직접 제조하여 건넨 칵테일을 받은 적도 있었다. 골든글로우는 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같이 행복해했다. 입에 기울였던 칵테일은 달고 시원했다. 레온하르트 또한 골든글로우에 대한 이야기를 안다. 에이어스카르페와는 다른 방향으로 얻은 이야기였다. 에이어스카르페는 뛰어난 청각으로 다른 이들의 대화를 들었겠지만 레온하르트는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들었다.
“그 애는 강해.”
레온하르트는 확신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재앙이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 한 개체는 한없이 단순해지고 투박해진다. 누군가가 울고, 누군가가 절망하고, 누군가가 슬퍼하는 일은 크게 의미 없다. 누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개성을 가졌든 도망치지 못하면 재앙은 공평하게 잡아먹는다. 에이어스카르페와 레온하르트는 재앙정보전달자와 그의 호위 일을 하면서 쉽게 허무해지곤 하는 삶을 그럭저럭 잘 견뎌냈다. 무미건조한 마음과 태도를 일부 분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레온하르트는 유쾌하게 굴었고, 에이어스카르페는 무뚝뚝해졌다. 어찌 되었든 살아야 했고, 살아가려면 취할 태도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레온하르트는, 그 둘이 끝내 모든 마음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둘은 각기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즐길 거리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세상과 삶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쪽으로 마음을 일부 버렸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레온하르트는 골든글로우를 보면 늘 어느 한구석, 옛날에 잃어버린 것 같은 어느 마음이 울렁였다.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웃고, 열망하고, 최선을 다하기로 한 이는, 마음을 유지하며 세상을 살아가기로 한 이는 대체 얼마나 강한가?
레온하르트의 그토록 확신어린 목소리에 에이어스카르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다시 생각해 볼게.”
“좋아.”
그때 때마침 휴게실의 문이 열리고 골든글로우가 돌아왔다. 에이어스카르페는 멋쩍게 골든글로우를 보았고,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그, 골든글로우. 사실…….”
그런데 골든글로우가 말을 꺼내는 것이 먼저였다.
“에이어스씨. 의료부에서 연고 안 내주겠대요. 직접 오라는데요?”
“……뭐?”
“에이어스씨의 이름을 꺼내니까, 제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분명히 또 발전기 만졌을 거라고 확신하시면서 혼자 처치할 생각 말고 의료부로 곧장 튀어오래요.”
“…….”
에이어스카르페는 할말을 잃었고 레온하르트는 낄낄 웃었다.
“하하, 에이어스! 그러게 ,평소에 행실을 잘했어야지.”
“끄응.”
에이어스카르페가 이마를 찡그렸고, 골든글로우가 이번에는 레온하르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옆에 레온하르트가 있으시면 같이 오라던데요? 저번에 메딕 오퍼레이터를 울리는 바람에 검진을 마무리 못 했는데도 가버리셨다면서요? 그거 마무리해야 한대요. 이번에는 슬쩍 넘어갈 생각 말래요.”
“어, 어라.”
이번에 할 말을 잃은 건 레온하르트였다. 두 사람이 굳어있는데 골든글로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두 분 다 의료실로 바로 직행하세요. 안 그래도 그냥 넘어가시려는 것 같아서 걱정되었는데 의료부에서 챙겨주시겠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그, 골든글로우, 그게 말이야…….”
“그래. 지금 당장은 말고, 조금 있다가…….”
변명을 늘어놓는 둘을 보다가 골든글로우가 불쑥 물었다.
“이번에도 저를 피하고 싶으신가요.”
에이어스는 당황하며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젠 안 그래.”
골든글로우가 안심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레온하르트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그럼 두 분 다 치료받으러 가요. 제가 의료실까지 동행할 거예요. 다른 길로 샐 생각 마세요.”
“…….”
“…….”
그리고 두 사람은 의료 부로 끌려갔다. 레온하르트의 말대로, 아니 에이어스카르페의 말대로 골든글로우는 강했다. 수많은 위험을 빠져나갔던 재앙정보전달자와 그의 호위가 골든글로우의 손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붙잡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을 의료부에 넘겨준 골든글로우는 세상 환하게 웃으며 의료실의 문을 닫았고, 두 사람은 혼낼 준비를 잔뜩 하고있는 메딕 오퍼레이터에게 바쳐졌다. 어느 오퍼레이터가 말하기를 그날 발전소의 두 사람이 엔지니어에게 더 크게 혼났는지, 아니면 의료실의 두 사람이 메딕 오퍼레이어게 더 크게 혼났는지는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