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의 꿈으로 안녕히

나카이 키요카

붉은 군락 by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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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자살, 자해, 익사 등 우울한 묘사가 있습니다.

BGM


4위 사자자리. 기쁜 초대가 늘어날 것 같아!

키요카는 가만히 포켓북을 내려다보고 오늘 운세를 확인한 페이지를 북 찢어 방바닥에 구겨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4위, 4위, 마지막으로 봤던 순위가 아른거렸다.

사방이 물이었다. 화장실 세면대 안의 고장난 수도꼭지 탓에 물이 넘쳐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넓따란 창문에서 후광이 끼쳐 들어와, 달빛에 반사된 파란에 키요카는 잠시 눈가를 찌푸렸다. 수도꼭지를 끌까. 그러나 수도꼭지를 틀어막는다고 해도 바다와 가까운 사방. 키요카는 물을 잠구는 걸 그냥 관두었다. …들어쉬는 공기마저도 짰다. 점점 창가로 가는 호흡이 벅찼다. 겨우 창가에 다다라 손을 짚곤 주저앉아 몇 번인가 호흡했다. 머리를 가득 메우는 바다소리에 키요카는 창문을 힘겹게 열곤 머리를 내다밀었다. 철썩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너른 바다가 보인다. 물결치는 모든 소리. 인생을 따라오는 지긋지긋한 환청..

인어들은 영혼이 없는 삶을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상처 받지 않는 삶을 산다고 해요. 그렇다면 왜 인어는, 제가 물에서 끌어올린 왕자의 팔을 붙잡고 곧장 바다로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누군가에게 했던 질문. 아닌가, 미쳐 물어보지 못 했던가. 그렇지만 줄곧 궁금하기야 했다. 물이 땅인 인어는 왜 왕자를 제 땅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을까. 수면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영원히 허영심에 젖어 있었더라면 스스로 상처받는 삶을 살지 않았으리라. 키요카는 잠깐 내밀었던 머리를 도로 집어넣었다. 창문을 도로 열어둔 채로 뒤를 돌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 어딘가 던져 놓았다. 창문을 꽉 붙잡는 두 손이 벌벌 떨렸지만 물빛 눈 하나만큼은 전혀 요동치지 않았다. 발 끝으로 벽을 딛어 간신히 창틀에 엉덩이를 걸쳐앉고는 곰곰히 하지 못했던 위의 질문을 다시 생각했다. 세찬 바닷바람이 제 몸을 뚫고 지나간다. 아주 가벼운 기분으로, 키요카는 장난질하듯 창틀에 걸터앉아 다리를 달랑였다. 땅 위의 것을 동경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땅 위의 인간을 붙잡고 제가 올라갈 생각 같은 걸 했을까. ..그렇지만 키요카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물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육지를 동경하게 된다. 떠오르는 태양은 위에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남들이 제게 가장 많이 물었던 것.

나카이는 왜 물을 무서워 해?

뒤에서 바람이 불었다. 파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흰 달빛을 받아 머리 끝은 하예선.. 쏴아, 다시 파도가 부서졌다. 창틀 옆면을 두 손으로 짚은 채 곁눈질로 물의 깊이를 가늠하는 손 끝이 벌벌 떨렸다. 화장실 안에서는 어떤 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들릴 듯 말듯, 질린 듯한 가쁜 호흡만 반복되어 울릴 뿐. 빠지지 않아도 알수 있는게 있잖아요, 얼마나 깊은지 따위는. 누군가에게 했던 대답. 물의 깊이는 빠져 본 사람만이 안다. 제게는 현장을 느낄 사명감 따위도 없는데. 깊은 물에 빠져 본 적은 없지만 알 수 있는게 있다. 끝없는 무저갱, 희게 질려오는 시야, 강한 수류. 느끼지 않아도 두려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본인은 뿌리부터 그래 왔다. 만성적인 불안 따위는 언제든 제게 딸려오는 것이다, 땅 위에서 제 두 다리 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그러니 막연히 굳세고 오래된 것에 동경을 품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키요카의 몸이 두 번쯤 들썩였다. 물은 왜 무서워 해? 절 닮아서요. 너무 깊이 빠지면 수면에 비친 저 자신조차 보이지 않아서요… 제가 누군지 보이지도 않아서요… 지긋지긋한 결핍, 채워질 수 없는 갈증, 욕망,물의 환영을 보고 넋이 나가있을 때, 제게 붙들던 사람들에게 제발 가라앉게 해 달라고 빌었던가. 그게 뻔히 같이 죽어달라는 말임을 알면서도. 절 끌어안은 팔이 떨리는 것을 망연히 느끼면서도, 제 손을 가슴에 대고 땅 위의 체온을 느끼게 해 주었는데도. 물은 오래 쳐다보면 가라앉고 싶어진대요, 제가 물이라 말한 주제에. 어릴 때부터 근처에 있던, 자살자들의 연옥이자 요람. 망연히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육지를 동경하던 어리석고 오만한 인어. 육지의 인간과 같은 몸을 가진 줄 알고 뻐끔거리던 물거품. 그러니, 그래. 당연히 인어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

저, 겨울 바다를 본 적이 없어요, 아니, 어떤 바다도 본 적이 없어요. 언젠가의 누구에게, 계절의 순환을 이야기하며 자랑 아닌 자랑처럼 속삭였던 말. 그래, 자신은 성난 바다를 모른다. 오뉴월의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 따위를 모른다. 두 팔로 창틀을 꽉 붙은 채 고개를 숙여 낼름거리는 밤바다를 내려다봤다. 계절 상관 없이 바다는 늘 성이 나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겨울 바다 따위도 별 것 아니겠네. 키요카의 몸이 다시금 들썩였다. 흐느낌을 닮은 폭소가 화장실 안을 가득 메웠다가, 파도소리에 조용히 흩어져 사라졌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제 운명이다. 날 때 부터 물거품이 되어야 했을. 보충수업이 끝났어도 달라지지 않을 제 운명이다. 한 때는 제 결핍의 원인이라고 착각했던 아비라는 작자를 죽이고 저도 가라앉을 생각이었으나, 모든 것이 허무였다.

자신은 이상한 데에서 겁이 없었으나, 울보였다. 고개가 젖혀지는 순간,

기우뚱, 몸이, 창 밖으로 기울었다.

세상이 반전한다. 몸은 아주 간단히 바다로 떨어졌다.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끌어당기는 물, 너울, 귓가를 가득 메우는 바람 소리보다 키요카는 물에 잠기는 감각을 먼저 익혔다. 어떠한 주마등도 없었으나 눈은 여전히 핏발 선 뜬 눈이다. 추락하며 흩날리는 머릿결이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난다. …아, 제가 물 위에 죽더라도 하나의 구경거리는 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유쾌한 가십거리는 아니겠으나. 눈에서 나온 눈물이 방울져 진주처럼 떨어진다. 이 푸른 머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정말 표류하는 해파리 같겠지, 물에 잠겨도 아름다운 고전 희곡의 여자는 될 수 없으리라. 키요카는 자조했다.

물에 닿기 직전, 키요카는 홀린 듯 입을 열었다. 아마도 물거품이 될 운명이었을 인어가 했던 마지막 유언.

..육지에 가고 싶어요.

풍덩, 요란한 축포처럼 물보라가 인다. 수면 위로 잠깐 흰 손이 드러났다. 손목에 긴 너절한 상처 따위가 있는. 그러나 그것마저 물거품에 서서히 사라졌다. 사방은 고요했다. 포말은 바다에 삼켜졌다. 철썩, 쏴아아ㅡ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수면은 가만히 일렁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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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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