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와 메데이아

카우

붉은 군락 by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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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마녀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여러 번 숯으로 덧칠한 미간 사이의 자국을 문질렀습니다. 오래 걸어온 탓에 녹이 슨 갑주가 무겁고 갑갑했습니다. 땀으로 푹푹 젖는 신체를 겨우 이끌며 고행군을 자처하는 용사의 발걸음 사이에서 그 어떤 신음소리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예언이 내리고 수 일 후, 용사는 제 집으로 찾아 머리의 기름 부어진 형제의 얼굴을 기억했습니다. 집에서 먼 발치 떨어진 봉우리 위에 형제는 고개를 숙이고 거진 피로 끈적히 묻은 고개를 들어올려 예언자를 보았습니다. 늙은 예언자의 주름진 손이 형제의 머리를 매만지며 가만가만 읆는 말 ㅡ아마도 축복이었겠지요ㅡ을 들으면서도 선득해진 뒷목을 괜히 문질러나 보았습니다. 갓 잡은 새끼 양의 피가 유난히 붉었기 때문일까요, 태초의 죄를 지은 사람의 눈은 붉었다는 것을 마침 기억해냈기 때문일까요. 기름과 피로 푹 젖은 얼굴을 돌아보고 웃는 얼굴의 형제를 용사는 그 때 마침 비친 역광 탓에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축복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형제는 갑주를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마을 숨겨진 곳에 있던 선택된 자만이 들 수 있는 명검 같은 것을 들고는. 용사는 축복을 받기 전 제게 다정히 대했던 형제의 모습을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배웅하는 얼굴 위로 겹쳐보이는 것은 축복을 받을 적 보였던 피로 젖은 얼굴이었으며, 용사는 머리를 흔들어 주마등처럼 스친 불안한 얼굴을 지우고 집을 나서는 형제의 등 뒤로 가만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용사는 어떤 예감이 확신이 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엔 너무 어린 소년이었고, 가문을 등진 채 막 광 낸 갑주를 입고 등을 나서는 형제의 등에서 일종의 선망과 동경을 느꼈으므로, 이 다음 돌아온 형제의 얼굴을 알아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용사의 형제는 용을 마주하기 직전 홀로 맞딱트린 마수의 발톱에 얼굴에 큰 자상이 났고 심장은 어찌 저찌 뛰었지만 다리 여기저기가 으스러진 채 들 것에 실려 왔습니다. 미간 정 가운데를 가로로 길게 죽 그어진 얼굴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렀습니다. 마치 그 예언자가 피를 부운 얼굴마냥.. 난생 처음 맡는 지독한 혈향에 용사는 미간을 더럭 찌푸렸고, 형제가 누워있는 방으로 여러 사람이 오갔지만 하나같이 곧 불구가 될 것이라는 말 뿐이었기에 용사는 마지막으로 멀쩡히 보았던 형제의 얼굴을 기억해내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줄곧 피를 잇고 유년을 보낸 시간 가운데서 기억나는 얼굴이라곤 피를 뒤집어 쓴 채 첫 죄를 지었던 눈빛을 하곤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 뿐이며, 기억하건데 예언을 내린 예언자의 손짓마저 하나하나 불온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다는 것만 상기시킬 뿐이었으므로 용사는 생각하기를 관두었습니다. 이미 마을 전체는 용사를 배출해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는 것을 용사도 알고 있었습니다. 형제가 마을 밖으로 발을 내딛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형제의 초상화가 나돌기 시작했다는 것을 용사도 보았으니까요. 곳곳의 형제의 얼굴이ㅡ형제는 지나치게 본인과 닮았기에ㅡ 나도는 것을 용사는 머득잖게 여겨 용사는 형제가 하루속히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랬습니다. 마을에 형제가 들 것에 실려왔다는 소식은 좁은 마을에 일파만파로 퍼지기 시작했고, 용사의 아버지는 경미한 부상이나 용을 잡기 위해서는 만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며, 아들은 들것에 실려 오기 전까지도 용만의 이름을 부르짖었다고, 용사의 기개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감언이설로 집 앞에 모여든 사람들을 몰아내었습니다. 형제가 들것에 실려오는 날부터 마을에는 돌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해, 마을 곳곳에 걸려있던 형제의 얼굴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던 것을 용사와 형제의 아버지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용사는 아버지에게 어깨를 붙들렸습니다. 그래, 네가 네 형제와 닮았으니 네가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니겠니! 미간에 새겨진 긴 흉 따위야 그려내면 되는 것이다! 지금 곳곳에 나붙인 초상화의 얼굴 사이에 획 하나만 그으면 용사는 네가 된다. 장남이 부재한 지금, 네 녀석은 이제 차남이 아니야. 네가 장남이다. 기름 부어진 자야 어찌됐든 목숨만 부지하면 되는 일이지. 유독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아버지의 손길이 오래 얽힌 뿌리처럼 무겁고 깊어 용사는 어깨 위에 얹어진 손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용사의 얼굴 위로 검은 피가 흩뿌려졌습니다. 제 형제가 입었던 자상 자국 그대로, 용사의 얼굴 위로 검은 흉이 내려앉았습니다. 형제가 입었던 갑주를 몸에 두르자마자 느껴지는 철갑향 ㅡ피의 냄새ㅡ에 무게를 못 이겨 용사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막 광택을 낸 팔의 갑주 위로 비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붉은 눈 뿐이었습니다. 며칠 후 날이 밝자 다시 용사가 모험을 시작한다는 말에 마을 전원이 몰려들었습니다. 제대로 든 검의 무게는 생각보다도 더 무거워 벌벌 떨리는 두 손으로 칼을 들어올렸습니다. 칼을 들어올리자마자 귓가를 때리는 성난 환호성에 용사는 칼을 바닥에 던지듯 팔을 내렸습니다. 여기저기 문간에 걸려진 초상화의 미간 사이로 검은 먹칠이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획 하나로 용사가 뒤바뀌다니. 아버지는 용사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여러분! 저의 아들은 한 번의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용사의 길을 걷고, 우리를 위해 마땅히 용을 물리치리라 믿습니다. 미간에 새겨졌던 굴욕은 먹칠로 지워내고, 다시금 선을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마을은 온통 축제판이 되었고 용사가 있던 집에서 마을 밖으로 나가는 곳 까지 붉은 천이 깔렸습니다. 여기저기 얼굴 한 가운데 획을 칠한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붉은 천을 밟고 나아가기 전 자신을 끌어안은 아버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용을 만나서 이기지 못하려거든 그 자리에서 죽거라. 이것은 죽어도 제 형제가 되어 죽으라는 아버지의 선고와도 같았습니다. 용사는 마침내 붉은 길을 밟고 용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나무에 매여두었던 말이 끈을 풀고 도망가 어쩔 수 없이 행군을 자처하는 동안 용사는 마지막 묵었던 여관에서 건너 들은 정보를 떠올렸습니다. 용에 관해 알고 싶다고? 그런 거라면 숲속에 있는 마녀를 찾아가 봐. 살아 돌아올지는 모르겠으나. 큰 잔에 담긴 곡밀주를 여러 잔 들이켜 불콰해진 얼굴로 풀린 혀를 중얼거린 메부리코 남자가 말을 이었습니다. 원래 그 성의 장녀였다가 돌연 형제 셋을 죽이고 마녀가 되었다더군. 온갖 괴기한 박제며 마수들의 정보를 모은다니 용에 관해서 무어 알고 있는 것이 있을 테지. 그가 비운 곡밀주의 절반을 제가 내민 은화로 계산하고 나서야 선심쓰듯 말한 정보라도 급했습니다. 수풀이 무성하고 점차 어두워지는 하늘에 불현듯 수많은 까마귀 떼가 날아올랐습니다. 어릴 적 잠시 키웠던 새의 생사를 떠올리기도 잠시 까마귀가 지나가자마자 어두워진 하늘을 보고 검을 고쳐쥐었습니다. 가시덩쿨을 넘고 돌부리를 발로 걷어차자 거대한 고성의 외곽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분명 그 거대한 철옹성 같은 첨예한 지붕 아래에 느껴지는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며 며칠동안 이어진 고된 행군에 침음 하나 흘리지 않았던 용사의 몸이 짐짓 떨렸습니다. 이 거대한 고성 밖에 경비병이라고는 하나 없었으며 문을 죄 둘러싸고 있는 가시덩쿨을 붙잡자마자 기괴한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습니다. 성 밖에서 로비 홀로 보이는 곳에 들어섰을 때 까지 그 텅 빈 홀을 인식이나마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달빛 뿐이었기에, 용사는 칼을 다시 쥐고 소리내어 외쳤습니다.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용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왔습니다. 웅웅거리며 홀 전체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온통 정적이어서, 용사는 별 수 없이 눈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오르려 발을 딛었습니다. 그 순간 머리 위에 매달려진 샹들리에의 불이 갑작스레 켜지고, 어둠 속에 있다 빛으로 끌어내어진 것처럼 급변하는 시야에 용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멈추었습니다. 무심코 올려다본 계단 끝에, 제 또래로 보이는 새초롬한 여자아이 ㅡ아마도 마녀ㅡ가 자신을 거만하게 내려다 보았습니다. 밝은 백금발을 두 갈래로 높게 나누어 묶어, 분홍빛 도는 리넨 드레스를 입은 채 팔짱을 낀 채로 내려다보는 눈빛이 자신과 같은 색이었으나 죄로 물든 색은 아니었습니다.

여자는 여전히 용사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움직이지 말거라. 내가 가는 것이지 네가 오는 것이 아니니라. 용사란 그런 존재니까. 마녀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아무것도 없던 대리석 바닥에 붉은 융단이 깔려 내려왔습니다. 자신이 마을을 나올 적 밟았던 색과 엇비슷해 용사는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습니다. 용사는 마녀가 마침내 지상을 밟자 다시 마녀에게 물었습니다. 마녀여, 용에 대해 알고 있나? 나는 용사다. 용을 물리쳐야 해. 정보를 다오, 사례는 얼마든지 하겠다. 용사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습니다. 마녀는 손가락으로 제 머리 끝이나 빙빙 꼬고 있었으나 용사는 인내했습니다. 기다리는 것에는 꽤 이골이 났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이어진 다음 말에 획 그어진 용사의 미간이 짐짓 찌푸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창 별 일이 아니라는 듯 머리 끝이나 매만지고 있던 마녀의 입에서, 네 녀석은 용사가 아니잖느냐? 같잖은 연기는 그만두어라. 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용사는 다시 검집을 매만지며 항변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한 번의 좌절로 용사의 자격이 박탈된다는 이야기는 없어. 나는 예언자께 기름 부어진 자다. 용사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다시금 홀에 울렸습니다. 마녀는 그 말에 잠시 코웃음 치더니 용사의 겉을 살펴보듯 주변을 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갑옷을 손으로 만져 보거나 검집을 멋대로 살피더니 마지막에는 얼굴에 나 있는 먹칠을 보고는 몇 번 크게 웃었습니다. 세간에서 도는 마녀의 무례함은 역시 뜬소문이 아니었다고 용사가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수 초간 천진했던 얼굴은 금세 얼음장 같은 표정이 되었습니다. 칼도 어찌 쥐는지 모르는 애송이 주제, 네 앞으로 놓인 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아가는 칠푼이를 내가 왜 도와야 하느냐? 먹칠 하나로도 용사가 될 수 있는 세상이더냐, 응? 용사는 그제야 목께가 선득해졌습니다. 마을 안에서만 일어났던 일을 알고 있다니, 용사는 이를 갈면서도 마녀로 이름을 알린 눈 앞의 여자의 통찰력에 분해하면서도 변호하듯 항변했습니다. 예언자가 피를 뒤집어 쓴건 내 형제이나 나는 이미 내 형제와 피를 나누었다. 설령 예언자가 선택한 자가 내가 아니었대도, 용사가 불구가 된 이상 그 다음은 자연히 내가 해야하는 일이야. …형제들을 네 손으로 죽인 너는 이런 유대감 따위 모르겠지만. 아, 마지막 말은 명백히 실수였습니다.

그 말이 있고 나서 수 초간 정적이 일었습니다. 눈 앞의 여자의 눈빛이 기이해졌습니다. 일순간 귀를 째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박힘과 동시에 샹들리에의 불빛이 수초간 점멸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고함 같은 마녀의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덜걱이는 문틈 사이로 분홍색 고양이가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보였습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 마녀로써의 아명을 아느냐. 용사가 이 곳을 찾아오는 것은 필연이기에, 실은 이 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단다. 하지만 네 피곤한 낯빛이며 온통 흙이 묻은 갑주를 보아하니 이 곳을 찾아오기까지 여정이 퍽 고됐겠지. 그것은 지금 네가 칼을 들고 있는 것이 네 운명이 아닌 것이다. 너는 지금 네 길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야. 일순간 펑! 소리가 나고 묘한 연기에 손을 휘적이는데, 눈 앞에 금빛 털을 한 고양이가 붉은 눈을 빛내며 사뿐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엉겁결에 아무것도 못 하고 눈 앞의 고양이를 망연히 바라만 보고 있자 고양이의 꼬리가 살랑였습니다. 따라오라는 듯 한 행동에 용사는 말없이 계단을 올라 모닥불이 있는 고즈넉한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초록색 벽지로 마감이 되어 있는 방의 벽 한구석에는 과연 기이한 박제품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구경하고 있자 다시금 연기와 함께 고양이는 사라지고, 가죽으로 된 일인용 소파 위에 마녀가 털석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습니다. 턱짓으로 옆의 빈 자리를 앉으라는 듯 가리키자 용사는 못미더워하면서도 얌전히 자리에 착석했습니다. 거만하게 양 소파 팔걸이에 양 팔을 올린 채 마녀는 아까의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내 마녀로서의 아명은 복수다. 마녀가 되기 위해 이행한 것은 아니다만, 일생 전부를 복수로 바쳤기 때문에 그런 아명을 갖게 된 것이지. 마녀의 무감한 목소리가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이어졌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죽였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만, 나는 형제를 죽인 것에 목적이 있고, 네 녀석은 형제를 흉내내는 것에 목적 없는 책임감만 가지고 있다는 게지. 그러니 비교할 것도 못 된다.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기에 알려주려 하였거늘. 가볍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용사의 목울대가 수차례 떨렸습니다. 형제의 발자취도 모르는 주제 용사가 형제라는 사명감만으로 이곳까지 오고 나서야 이 길 자체가 막다른 길이었다는 사실에 본인의 존재감마저 지워질 처지에 놓였으니까요. 용사는 아직 형제가 축복받던 그 불온한 얼굴을 기억하고, 용을 상대하지 못하느니 죽어버리라는 아버지의 목소리 또한 기억했습니다. 그러니 용사는 다시 물었습니다. 네 아명과 용사가 무슨 상관이지? 용을 무찌르는 것과 복수는 상관관계가 없지 않은가. 마녀는 혀를 찼습니다. 네 녀석, 네 형제가 축복받는 것을 보았을 테지. 갓 잡은 어린 양의 피를 얼굴에 들이붓는 의식. 그것은 축복이 아니야, 죄를 뒤집어 쓰라는 의미다. 용사가 용을 해치우는 것은 선의 행동이 아니라 복수의 대리자가 하는 행동일 뿐이니까. ..그러니 네 녀석은 지금 네 죄가 아닌 것을 덮어쓰고 있는 것이다. 용의 적대자였던 인간을 대신하여서. 복수는 길을 찾는 자에게 열리나 너는 온 사방을 헤맸고 지금 너 자신이 용사인지 아닌지 확신하고 있지조차 못하지 않느냐? 무른 칼로는 그 무엇도 썰지 못해, 녹슨 마음가짐으로 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느냐. 길 도중에 차라리 도망쳐야 했었을 것을. 마녀는 꾸짖듯 용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차를 막 삼킨 목울대가 홧홧했습니다. 갈증인지 통증인지 목께가 마구 저리고 따가웠습니다. 이 마녀가 독을 탔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목이 아플 리가. 당신은 실수를 번복했습니다. 네 녀석이 나라면 도망칠 수 있었던 것 같은가. 네 녀석이 나라면, 불구가 되어온 형제를 외면하고 도망칠 수 있었을 것 같아? 용사가 들고 있던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으나 두 사람은 바닥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 형제를 죽여 마녀가 된 여자. 그렇게 마음가는 대로 복수할 수 있었다면 자신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래, 단지 지금 눈 앞의 사람은 운이 좋았을 뿐이고, 마녀가 될 몸이었기 때문에 사람의 감정 따위를 전혀 모르니 이따위로 지껄일 수 있는 것이라고. 자기 방어에 가까운 변명들을 기워 붙여 생각하던 것이 마녀의 비웃음 섞인 한 질문에 전부 무용해졌습니다. 마녀는 다가와 아주 지척에서 고개를 들곤 용사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네 녀석, 지금 이름이 무어냐.

용사는, 에이센은, 에이지로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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