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1. 다시 일 년
시간: 현재
마지막 전공 시험이 끝나자, 세인트 세실 아카데미에도 차츰 고요함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박을 예약하는 등, 곧 시작될 40일간의 겨울 방학을 대비하고 있었다.
학생 기숙사 앞. 학생들이 모여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평소 강의나 세미나에 관한 공지가 붙는 게시판에도 지금은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문구만 남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학생A: 그럼, 내년에 만나! 조금 외로울지도 모르겠네!
여학생B: 그럴리가. 연락할테니까, 방학 중에도 같이 피아노 연습하자.
남학생C: 그럼, 나는 슬슬 가볼까. 다들 내년에 보자.
그렇게 말한 그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 때, 여기저기서 이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갑작스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재한: 다들, 주목! 본격적으로 방학에 들어가기에 앞서 학생회에서 전달할 게 있어! 이번에 학생들이 부담없이 교류할만한 채팅앱을 만들어봤거든.
정재한: 방학동안 베타 버전을 공개할 예정인데 관심있는 사람은 신청해 줘! 테스트에 인원 제한이 있으니까 서둘러야 해!
곧 학생회 선거가 다가오기 때문일까, 요즘 재한 선배는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것 같다.
계속 안절부절 못하던 여태까지의 선배를 생각하면, 방학 시작하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섬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정재한: 어, 후배님!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던 차에 선배를 봐서일까, 어쩐지 기운이 났다. 이번엔 나도 좀 도와줄까.
소화가: 알았어요, 저도 신청해볼게요.
정재한: 다행이다. 후배님이라면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지. 사실, 네 계정 넘버는 이미 만들어놨거든. 그것도 특별한 숫자, 9999!
소화가: 채팅앱인데 번호를 써요?
정재한: 맞아. 이 채팅앱은 유저 전원에게 번호가 부여돼서, 상대 번호만 알면 얼마든지 일대일 채팅이 가능하다고.
정재한: 물론, 단 둘이 하는 대화는 상호 동의 없이는 타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말씀.
건네주는 책자를 받아 열어보자, ‘888을 입력하면 우수한 채팅 어시스턴트가 가동됩니다. 매일 3개까지, 무엇이든 대답합니다.(숙제 질문 금지)’ 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문장을 읽은 나는 다시 재한 선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내 생각을 알아차린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재한: 바로 그거야! 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채팅 어시스턴트’가, 탭 한 번이면 언제든지 대답해주는거지!
아무래도 이 채팅앱은 내부 사람이 AI인 척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엉망진창인 모양이다.
정재한: 그나저나, 후배님은 방학동안 어떻게 할거야? 새해는 이 섬에서 맞이할 예정?
아직 모르겠어요. [선택]
어쩌면 그럴 거 같아요.
소화가: 음, 아직 결정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며칠은 천천히 집에서 쉬다 갈까 하고요.
정재한: 그렇구나. 하지만 혼자 있으면 외로울텐데…… 아, 혹시 시간 되면 우리집에 놀러오지 않을래?
정재한: 우리집은 연말에 엄~청 활기 넘치거든! 식사 와중에도 계속 떠들썩하고.
정재한: 뭐, 그치만 후배님한테는 너무 시끌벅적하려나. 나도 가끔은 참기 힘들 정도라…….
재한 선배 같은 사람 여럿이 한꺼번에 떠든다고 상상하자니 웃음이 절로 났다.
소화가: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괜찮아요. 내 몸 하나쯤은 내가 알아서 잘 돌볼 수 있으니까요.
정재한: 후배님이 알아서 잘 하는 건 알고 있지. 혼자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스러운 거라고.
정재한: 아무튼, 심심하면 언제든 연락 줘. 시간 나면 우리집 단체톡방에도 초대해줄게!
그건 좀…… 내게 과분한 호의같은데…….
소화가: 아니아니…… 재한 선배는 혼자서도 평범한 단체톡방보다 시끄럽거든요.
그 때,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무심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소화가: 선배, 미안하지만 나 잠깐 이사장실 좀 다녀올게요!
소화가: 채팅앱은 나중에 스마트폰으로 보내주세요!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손을 흔들며 달리는 내 뒤로 다시 재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재한: 알았어. 너도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하고! 절대로 바로 달려갈테니까!
나는 웃으며 속으로 선배의 순수한 친절에 감사했다.
문득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성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수수께끼의 선물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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