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회랑

시간을 거슬러 2. 수수께끼의 선물

시간: 현재

학원을 떠나려는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족과의 재회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약간의 쓸쓸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의 험난한 경험들로 나는 알고있다. 평범한 삶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오늘 내가 스쳐 지나간 이름도 모를 이들은, 위험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며, 어떻게 지금의 평화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걸로 충분해. 이정도 외로움은 견딜 수 있으니까.

문득, 방금 스마트폰에 도착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발신자는 이사장님.

‘오늘 방과 후에 이사장실로 올 것.’

단순하지만, 심장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말.

험난한 여정보다, 그곳에서 겪어온 무수한 위협보다도 지금 이 ‘끝나고 남아’ 하는 메시지가 더 무서웠다.


엘리샤: 어서 와.

소화가: 이사장님,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이사장실에 들어간 나는, 엘리샤 이사장님이 용건을 말하기 전에 자세를 바로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재빠르게 변명했다.

소화가: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다음에는 반드시 괜찮을 거예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약속!

그렇게 말하는 순간, 무언가가 내 어깨로 뛰어올라 얼굴을 핥고는 반갑게 짖었다.

배터리: 왕왕!

내게 응답한 것은 오랜만에 마주한 배터리였다.

소화가: 깜짝이야. 배터리, 오랜만이네.

엘리샤: 아무래도 배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네. ‘나랑 같이 집에 가자!’

엘리샤: 방학동안 혼자 여기 남아있을 거지? 나도 배터리도, 네가 걱정 돼.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사장님은 내가 이 섬에 남으려한다는 것을 알고 외로울까 걱정한 것이었다는 걸.

엘리샤: 알고 있어, 이게 간섭이라는 건.

그가 천천히 눈을 깜박인 후 말을 이어갔다.

엘리샤: 하지만 이건 꼭 알아두었으면 해. 네가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는 걸.

소화가: 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이사장님.

내 감사 인사에 그는 작게 웃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무언가 깨달은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샤: 그러고보니 시험 결과가 뭐 어떻다고? 자세히 말해줄래? 내가 아직 결과를 보지 못했거든.

소화가: 앗…… 아하하…… 그, 그 이야기는 내년에 다시 할까요? 그럼 이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배터리 너도!

어색하게 웃으며 후다닥 문가로 다가서는 나를, 이사장님이 붙잡았다. 도망치려던 것이 걸렸나……!?

엘리샤: 소화가. 내 새해 소원은 네가 평범한 소녀같은 일상을 보내는 거야.

엘리샤: 아주 작은 소망이지만, 너의 내년이 매일매일 그런 하루가 되길.

평소와 다른 온화한 표정의 이사장님에, 어쩐지 코끝이 약간 찡해지는 것 같았다.

소화가: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

엘리샤: 좋은 연말 되고. 내년에 또 보자.


이사장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니,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시간의 흐름은 불합리해서, 눈치채고 보면 어느새 겨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뜻했는데.

하지만 이 겨울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금세 다시 봄이 찾아오겠지. 그리고 여름, 가을이 반복되면서 한해가 지나갈 것이다.

집에 도착했을 즈음,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문득 현관 앞에 종이봉투가 두 개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둘 중 더 큰 종이 봉투 쪽을 살펴보니…… 각종 간식거리와 미술 용품, 방범용 스프레이, 현관 방범 카메라……

그리고 루카스 선배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자유여행을 떠날 예정이야. 한동안을 볼 수 없을 것 같네.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봤지.’

‘아아, 그래. 혹시 나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환영할게.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휴가를 보내게 해줄테니 부담 없이 연락해.’

‘자유여행’이라는 글자를 보며, 나는 이전에 선배에게 들은 그의 여행 규칙을 떠올렸다.

돌림판에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다트를 던져 나온 곳이 다음 목적지가 되는 것이었다. 몇 번 반복하고나서 그 목적지들을 차례로 이어붙이면 대부분 ‘엉뚱한’ 길이 되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재미를 유발한다고.

질리지도 않고 그런 짓을 매년 반복하는 것이다. 루카스 선배 말고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선배의 삶의 즐거움은 분명 그런 불확실한 요소들 속에 있는 것일테니.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다른 종이 봉투 쪽을 살펴보았다.

종이 봉투 안에는 깔끔하게 포장된 작은 상자가 하나 들어 있었다. 선물…인가? 하지만 루카스 선배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쪽은 편지 같은 것도 들어있지 않은데…… 누구에게서 온 걸까.

두 개의 종이봉투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비가 달려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고 생각했으나, 나비는 내가 아니라 종이봉투 쪽으로 뛰어들었다. 그쪽이 더 궁금한가보군.

하지만 나도 저 작은 상자 속 내용물이 궁금했으므로 바로 포장을 풀어보았다. 안에는 작은 오르골이 들어있었다.

예신의 선물인가? 하지만 이건 예신 취향이 아닌데.

아마도 ‘시간’을 테마로 디자인한 오르골 같아 보였다.

원형 받침대 위에 서있는 소녀. 그 뒤의 벽면에는 시계가 있었다. 음악에 맞춰 소녀가 춤을 추고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구조였다.

…이 디자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어디에서 봤더라?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냈다. ‘올해의 마지막 게시글’은, 이 오르골의 사진으로 해야지.

3. 달은 돌고돈다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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