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단 발렌타인 기념 하이틴 AU글

늦었습니다. 불초소인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너무 오랫동안, 너무 가까이 있어서, 너무 늦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슈라의 경우엔 테오카를 향한 애정이 그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순수한 우정이라고만 생각했고 - 우정도 애정의 일환이니까 - 그 이상은 없다고 생각했다. 슈라에게 있어 테오카가 어떤 존재냐 묻는다면 ‘절친한 친구’, 그리고 ‘테오카는 그저 테오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연에도 불구하고 슈라는 이 관계를 그 정도로 간단히 환원하고 등치시킬 수 있었다. 테오카를 향한 정이 얕거나 가벼워서가 아니었다. 너무도 뚜렷하고 너무도 분명했기에, 오히려 정의하기 가장 쉬웠기 때문이었다.

테오카는 슈라의 친구–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였다.

올해 이 날 전까지는.

“벌써 일주일 뒤면 발렌타인 데이네. 슈라, 넌 누구한테 줄 거야?”

이름 정도만 알고 그다지 친하진 않지만 가끔 대화를 나누던 동급생이 물었을 때, 슈라는 눈을 깜빡였다. 18년 동안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러고보니 이맘때쯤이면 전염병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학교 곳곳에서 빨간 색종이 하트가 우수수 솟아났다. 학생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 실제로 어떤 의미에선 경쟁인지도 모른다 - 마음에 드는 선후배 또는 동급생에게 초콜릿이나 카드, 아니면 다른 자질구레한 기념품들을 선물했다.

가끔은 치정 싸움이나 복도 한복판에서 드잡이질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이 하는 것만 보면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던 격언이 맞긴 맞구나 싶을 정도였다.

의무 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래 슈라에게 있어 발렌타인 데이란 그 정도 의미에서 그쳤다. 빨간색 하트들이 많이 자동 생성되는 날, 그리고 당일날 사물함이나 락커를 열어보면 - 락커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 포장된 초콜릿 상자들이며 카드들이 꽉꽉 들어차 있던 날.

(또한 그렇기에, 발렌타인 데이는 슈라에게 있어 매년 한 번씩 자물쇠를 바꿔야 하는 성가신 날이기도 했다. 그는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시하는 소년이었다.)

아무튼, 그 질문. 누구에게 줄 거냐니. 슈라는 다시금 청회색 눈을 끔뻑였다. 발렌타인 데이 선물은 대체로 - 원치도 않았지만 - 받기만 했을 뿐, 준 적은 없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줘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는 신중히 되물었다.

“그거,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는 거 맞지?”

“그렇지. 정확히는 애인이나 짝사랑 대상에게 주는 거지만.”

재언급하자면, 의무 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래 학업에만 매진한 슈라에게 애인이 있을 턱이 없었다. 애정 관계는 고사하고 그의 교우 관계조차도 몹시 협소한 편이었다. ‘교우’ 내지는 ‘친구’의 정의가 ‘학교 내에 국한되지 않고 공부와 관련 없는 이유로 얼굴을 보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를 뜻한다면, 슈라에게 있어 친구는 테오카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다.

두 사람은 걸음마를 떼기도 전부터 서로를 알았다. 바쁜 양육자를 둔 아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둘은 같은 동네, 같은 어린이집에서 만났다. 아마 말문이 열리거나 걸음마를 뗀 시기조차 비슷했을 것이다 (실제론 테오카가 조금 더 앞서긴 했지만). 그러나 슈라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그의 모든 추억 속에는 테오카가 등장했다. 때로는 단편적으로, 때로는 핵심으로.

테오카가 슈라의 ‘애인’이던가?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슈라의 유일한 친구이긴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정의 성의 표시로 테오카에게도 선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규율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던 슈라는 재차 확인했다.

“발렌타인 초콜릿을 친구한테 줄 순 없는 거야?”

“그래도 되긴 한데, 에이, 그래도 기왕 주는 거 애인한테 주는 게 낫지 않아? 왜? 줄 사람 있어?”

재미난 가십거리를 발견해서 신이 난 동급생에게 손을 한 번 내저어준 후 슈라는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라고 발렌타인 초콜릿을 주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단 거지. 그렇다면 이제 고민은 하나뿐이었다. 테오카는 어떤 초콜릿을 좋아할까……



테오카에게 줄 선물은 막상 고르자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엇보다 선물 종류가 ‘초콜릿’으로 한정된다는 게 큰 요인이었다 (기실 무조건 그런 건 아니지만 당시의 슈라는 그걸 알지도 못했고, ‘발렌타인에는 초콜릿’이라는 막연한 상술과 클리셰를 철썩같이 믿은 탓이었다).

테오카가 뭘 제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슈라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이었다.

어떻게 아느냐면, 슈라도 그랬으니까. 이 공통 분모가 있었기에 둘은 같은 어린이집, 같은 유치원, 같은 학교에서 매일 얼굴만 보는 사이 이상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슈라는 내성적이었고 테오카는 내향적이었으나 두 아이는 좋아하는 도서가 종종 겹치는 일이 잦았다. 내면의 수줍음조차 극복하게 만드는 ‘같은 취향의 동지애’는 금방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졌다.

발렌타인 데이의 선물이 초콜릿에만 국한되지 않았더라면 - 국한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누차 강조하자면, 슈라는 그 사실을 몰랐다 - 아마도 테오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사서 선물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콜릿. 초콜릿이라니.

슈라는 초콜릿을 싫어하지 않았다. 테오카도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가끔 사먹곤 하던 아무 초콜릿이나 선물하자니 무성의하게 보일까봐 걱정이 들었다. 마침 곧 다가올 발렌타인 데이를 대비해 동네 사탕가게나 슈퍼마켓 등에선 화려한 빨간색 리본이 달린 기성품 선물세트들을 선보였으나, 슈라는 그보다 좀 더 특별한 걸 테오카에게 주고 싶었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 말고.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긴 했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건지 슈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치.

‘하지만 테오카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인걸.’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복잡하게 헝클어지던 속도 잔잔히 가라앉았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 이 정도 성의쯤은 보여야 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서로 알아왔고 스스럼없지만 네 존재를 가벼이 여기지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는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자고로 모든 관계의 핵심은 ‘존중’이 아니던가. 이론중시자이기도 한 슈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성에 차는 선물을 고르는 것이 더욱 어렵기도 했다.

“슈라? 거기서 뭐해?”

선물의 수신 대상과 우연히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마는, 슈라는 동네 초콜릿 전문점에서 저에게 아는 체를 하는 테오카에 흠칫 놀랐다. 둘이 사는 마을이 작은 곳은 아니었지만, 이 근방에서 유일한 쇼콜라티에였기에 가게는 매우 북적였음에도 둘은 군중 속에서 서로에게 제일 먼저 시선이 향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마치 서로 그렇게 묻는 듯 했다. 마치 장난을 준비하다 들킨 것처럼, 저도 모르게 화끈거리기 시작하는 귀와 목덜미를 무시하며 슈라는 대답했다.

“찾는 게 있어서. 너야말로 여기는 웬일이야?”

“나도……찾는 게 좀 있어서.”

둘 사이에 드물게 어색한 기류가 잠시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테오카였다.

“같이 찾아볼래?”

“그래.”

서로가 뭘 찾는지도 아직 모르면서 그렇게 두 사람은 가게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게 중앙의 전시대에는 올해의 인기 상품이라는 명목 하에 여러 종류의 제품들이 순위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기성품인 건 여기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일반 마트보단 좀 더 비싸고 정성이 들어간 수제 초콜릿들에 눈이 갔다.

슈라는 옆에 서서, 그 순위별 상품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테오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같은 흑발이었지만 차분하고 얌전한 슈라의 머리칼과는 달리 테오카의 머리카락은 아주 풍성하고 곱슬거렸다. 뭣모르는 유아 때는 그 모질이 신기해 허락도 없이 종종 만져보곤 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러면 테오카는 항상 얌전히 슈라의 손에 머리를 내어주곤 했다.

눈도 마찬가지였다. 슈라는 어렸을 때부터 테오카의 눈이 항상 신비롭고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뭘 하든 항상 열중하며 또렷한 시선이, 대화를 나눌 때는 저에게 향하는 것이 좋았다. 오롯하게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같아서 저 또한 괜히 테오카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그 순수한 눈빛이.

그리고 또……

“누구한테 줄 선물이야?”

테오카가 그렇게 묻자마자 슈라는 자신이 어느새 테오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음을 깨닫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테오카는 초콜릿들만 쳐다보느라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숨기며 슈라는 시선을 피했다. 굳이 깜짝 선물로 할 것도 아니었는데 왠지 부끄러워서 사실대로 말하기가 저어되었다.

“으응, 그냥 아는 사람.”

“……그렇구나. 네가 발렌타인 데이 선물 챙기는 건 처음 봐서.”

“그건 너도 마찬가진데. 넌 누구 주려고?”

“나도 그냥 아는 사람.”

그렇구나. 테오카도 ‘아는 사람’ 선물을 사러 온 거구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여상스러운 대답이었음에도 슈라는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생경한 경험을 해야 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감정에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테오카가 반격(?)을 이었다.

“그래도 네가 이런 기념일 선물까지 챙겨줄 정도면 ‘그냥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걸.”

“좀 많이……고마운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성의 표시같은 거야.”

기분 탓일까? 테오카의 어깨가 조금 더 경직된 것 같았다. 슈라는 자신이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내심 당황했으나, 테오카는 곧 다시 평이하게 말했다.

“그럼 선물 살 타이밍을 잘 맞췄네. 마침 다음주가 발렌타인 데이라서 요즘 선물 찾기도 쉽잖아. 감사 선물에는 초콜릿이 제격이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 읽는 데에 둔한 슈라라지만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테오카의 목소리 가장자리에선 미묘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이제라도 ‘사실은 너 줄 선물 고르려고 여기 왔어’ 라고 진실을 털어놓고 차라리 뭐가 좋을지 직접 물어볼까? 하지만 여전히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부끄러움이 걸림돌이되어 결국 슈라는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하지만 진열된 상품들 중에 ‘발렌타인 1위 인기 상품 - 트러플 봉봉 오 쇼콜라 24종 모듬 선물 세트’까지 살펴보고 나자 이 침묵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테오카와의 적막이 이렇게 불편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결국 견디지 못한 슈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뭘 골라야 좋을지 잘 모르겠네……너라면 여기 있는 것들 중에 어느 걸 받고 싶을 것 같아, 테오카?”

그래, 이렇게 돌려서 물어보면 들키지 않고 테오카의 취향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슈라가 모처럼 (얄팍하지만) 기민한 방법을 생각해낸 스스로를 조금은 뿌듯하게 여기는 사이, (늘 색이 예쁘다고 생각해온) 테오카의 눈이 깜빡였다. 그 낯이 좀 더 어두워진 것도 같았다.

기분 탓인가? 아니, 기분 탓이 아니었다. 애써 감추고는 있지만 테오카의 어깨가 조금 더 축 늘어진 것에 슈라는 재차 당황했다.

“나라면……초콜릿은 별로일 것 같아.”

뜻밖이었다. 슈라가 아는 한 테오카는 단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그저 이런 기념일에 휩쓸려 어영부영 받는 선물이 싫은 걸까? 내가 너무 안일했나? 역시 좀 더 신중하게 골랐어야 했나? 갑작스러운 자기 반성에 빠져든 슈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럼 뭐가 좋을까? 난 잘 모르겠어서…….”

테오카는 어느새 초콜릿 세트 하나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고민에 바빠 멍하니 그 뒤를 졸졸 따라가던 슈라는 삑삑거리는 계산대 소리에 불현듯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테오카는 영수증과 함께 포장된 하트 모양의 빨간 상자를 똑같이 빨간 쇼핑백 안에 건네받는 중이었다. 슈라는 정말 오랜만에 쩔쩔맨다는 게 어떤 것인지 다시 배워야 했다.

가게 바깥을 함께 어색히 나설 때까지도 조용하던 테오카가 문득 말하기 전까지는.

“네가 고마워 할 정도의 사람이면, 네가 뭘 주든 좋아하지 않을까?”

슈라의 얼굴까지 마저 달아오르게 한 건 테오카의 그 말만이 아니었다.

바로 그렇게 말을 하는 테오카의 붉어진 뺨이었다.

부끄러움조차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조차도 극복하고 저절로 속마음이 자존심이나 이성 따위도 이겨내고 튀어나오는 때가. 슈라에겐 지금이 바로 18년 세월 동안 처음 발생한 기념비적 순간이었다.

“초콜릿 빼고, 받고 싶은 건 없어?”

발렌타인 데이를 일주일 앞두고, 발렌타인 데이 기념 선물들을 진열해둔 가게 앞에서, 누구를 위한 것일지 모를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산 ‘가장 친한 친구’에게 슈라는 그렇게 물었다.

두서도 없고 뜬금도 없었다. 저를 쳐다보는 테오카의 시선을 보건대 그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망했다. 한켠 한켠 눈처럼 쌓여가던 원인 불명의 부끄러움이 둑을 무너뜨리고 결국 슈라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망했네. 테오카의 눈을 딴짓하듯 피하며 슈라는 중얼거렸다.

“그러니까……내가 왜 이런 걸 물어보냐면……”

“나한테 선물 주려고?”

그 목소리가 조금 들뜨게 느껴지는 것도 같아 슈라는 저도 모르게 다시 테오카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차분하지만 반짝거림이 담긴 눈을 보고 숨을 삼켰다.

테오카가 원래……이렇게 ‘빛’이 났던가? 그리고 그 빛에 무슨 마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슈라로 하여금 진실을 토로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결국 슈라는 기존의 결심도 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테오카가 재차 물었다.

“‘발렌타인 데이’ 선물?”

“……응.”

불쾌할까? 혹시 오해를 사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과 고뇌가 스쳐지나가느라 테오카의 대답을 한 박자 놓쳐버렸다.

“……이 좋아.”

“어, 어?”

“책이 좋겠다고.”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에는 초콜릿을 주는 거라고 들었는데. 이론적으로는 그렇다고 하지만 사실은 약간의 변주가 허용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슈라는 ‘모르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테오카의 희미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아무려면 어떻겠나 싶었다.

잠깐. 테오카가 웃는다고?

그럼 불쾌하거나 기분이 상한 게 아니란 걸까?

여전히 사고가 정지된 슈라가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눈만 금붕어처럼 껌뻑거리자 테오카가 먼저 행동했다. 그가 빨간색 초콜릿 상자가 든 빨간색 봉투를 스윽 내밀었다.

“이거, 사실 너 주려고 산 거야.”

일주일 이르긴 하지만……그렇게 중얼거리는 테오카를, 슈라는 하마터면 그냥 품에 덥썩 끌어당겨 안을 뻔 한 걸 참아야 했다. 대신 그는 조금 뻣뻣한 동작으로 그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고……고마워, 테오카.”

“아냐, 뭘.”

또다시,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들었다. 하지만 손에 쥐어진 묵직한 무게 덕분인지 - 초콜릿은 생각보다 무게가 꽤 나가는 제품이었다 - 이 다음엔 좀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책 고르러 같이 갈래?”

테오카가 설풋 웃었다. 웃는 얼굴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린 것은 처음이기에 슈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불현듯 뜨거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 건 생각만큼 유별나지 않구나.

고마운 마음.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

늘 같이 있고 싶은 마음.

언제나 곁에 있어도 당연시 여기고 싶지 않은 마음.

바로 이런 거였어.

“그래, 가자.”

테오카가 먼저 슈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익히 하던 몸짓이었고 둘만의 신호였다.

하지만 이번에 그 동작을 뒤집어 순순히 끌려가기만 하는 대신, 테오카의 손을 먼저 잡은 것도 슈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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