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어느 기자의 이야기
■■ ■■■는 그의 메일함에 수신되어 있는 발신자들의 이름을 믿을 수 없어 여러 차례 눈을 비빈다. 코끝에 대충 걸쳐 두었던 안경이 미끄러지는 것을 급하게 붙잡아 똑바로 착용하고, 답장이 올 것이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이들의 참여 의사를 확인한다. 당연히 함께 의사를 조율했을 것 같긴 했지만, 각자의 언어로 동일한 문맥을 내포한 두 사람의 답변을 몇 번이나 읽어 내리며 허망한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내렸다, 다시 들었다……. 내린다.
본인의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하는 두 사람의 풀 네임이 적힌 답장, 그것이 화면 너머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지닌다.
그는 다년간의 기자 생활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취재하기 힘든 사람들도 참 드물다 싶었다. 그것도 서로 다른 이유로 어려운 사람들이다 보니, 사실상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가진 채 최대한 정성들여 적은 메일이기도 했다. 비록 이 바닥이 바닥이다 보니 제대로 된 삶을 살았느냐 묻는다면 그렇다 확답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남에게 부끄럽지는 않게 살고자 했던 경력이 그나마 좋게 보였던 걸까. 갑작스럽게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기분이 들어 편집장에게 문의를 넣는 타자가 급해진다.
선배, 방금 인터뷰 일정이 새로 생겼는데 선약 잡힌 쪽에는 선배 혼자 가시면 안 될까요?
이 일 한지도 오래 되었나보다. 네가 나한테 일을 미룰 때도 다 있네, 누구길래 그래?
그게, K.I.L.L. 소속의 헌터 두 분인데……. 구조과의 루스 씨랑, 처치과의 외젠 씨네요.
그렇구만……. …뭐? 누구라고? 나도 가면 안 되냐 그거?
선약부터 가시라니까요.
영상으로 촬영되지 않은 이야기가 담긴 녹음기를 달칵인다. 세 사람의 목소리를 저장한 녹음기에서는 각자의 질문과 대답을 건조하게 내뱉고, 그들의 목소리를 언어로 바꾸어 대중의 눈 앞에 내보여야 하는 사람이 흰 여백에 사정없이 타자를 두드린다. 짧지 않은 타자 소리의 끝, 맨 처음에 받았던 메일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 충분히 흥미가 있을 법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고 불어나 천 리를 달리는 곳이니 만큼, 제대로 된 인터뷰 일정이 잡히자마자 동행을 요청하던 많은 동료들을 향해 이러다 모든 것이 무산되면 어떡할 것이냐며 몇 번을 돌려보내야 했는지.
■■ ■■■는 며칠 사이에 늘어난 눈 밑의 검은 자국을 부러 과시하며 어둠에 잠긴 자신의 집 안에 틀어박히는 것을 선택했다. 고요한 집 안에서 편하게 자택근무를 하고 있자니, 사람이 왜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비스듬하게 착용한 안경 너머로 최소한의 촬영만을 허용했던 이의 사진을 바라본다.
맨 처음 인터뷰 제의를 작성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컨셉인가봐!’ 라는 반응으로 단순하게 넘길 수 없던 한 사람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사연 없는 사람이란 없는 만큼, 그에게도 분명 무슨 이야기가 있을 텐데. 인터넷 상에 떠도는 그의 정보는 대체로 많은 것이 가려진 것처럼 보였다. 혹은, 가리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메일을 적었고, 지금은 퇴고를 거의 마친 인터뷰가 적힌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눈 앞에 둔 채 망설이는 중이다. 녹음기를 사이에 둔 스튜디오에서 겨우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적당히 솎아내어 검은 색의 활자로 변환할 수 있게 허락해 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교육을 받은 티가 나는 정갈한 발음이 녹음기 사이에서 또렷하게 자아를 가진 채 일렁인다. 그가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진지하게 듣다 보면, 단순한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존재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만 같아서.
아마 자신이 편집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출간이 거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본래라면 이미 계약이 이루어졌으니 일정 이상의 간섭은 허용되지 않았겠지만, 주도권을 가진 쪽은 이쪽이 아니니까. 그래도 어쩐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자신의 사감을 섞어내지 않는 것은 자신 있었으니, 오히려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최대한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진솔하게 파악하여 엮어내는 것이 특기였던 만큼- 최종적으로 완성된 내용을 한번 더 훑어보기로 결정한 시선이 일순 날카로워진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화면에 놓아 둔다. 카메라 앞에 자주 나서던 사람, 그러면서도 본인의 이야기는 극히 드물게 했기에 기본적인 생일조차 알 수 없던 사람의 이야기. 그렇기에 충분하게 대중의 흥미를 이끌 법한 사람의 이야기를 글의 서두에 먼저 넣는다. 그가 이번 인터뷰에 흥미가 있다는 부분을 집어 적당히 흘려 넣으면서도, 비단 그가 지금의 인터뷰에 응한 것이 본인 혼자만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하는 쪽에는 그간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넣는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대신하여 적어내리는 손가락이 잠시 머뭇거린다. 직접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서야 그가 어째서 카메라 앞에 보여지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라면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가볍게 떠오른 사감에 밑줄을 치고는 그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적어내린다. 중간에는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두 사람의 사진을 편집해 넣어 둔다.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곳에는 던전 공략 진행 중에 찍혔던 각자의 필사적인 사진을 넣어도 괜찮겠냐는 코멘트를 따로 달아 두기로 한다.
마지막에는 읽는 이들의 관심을 붙잡아 두기 위해 인지도가 있는 이의 이야기를 사용하기로 한다. 그가 노래하듯 읊어 준 이야기는 영웅담이 아닌 후회담이다. 나는 그것을 적어 내리며 감히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깊은 상처를 모른 척 한다. 그 어떤 카메라에도 찍히지 않은 눈동자는 줄곧 자신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 짐작한 만큼 그의 올곧은 시선과 맞잡은 손을 미련없이 편집하기로 한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두 사람을 대신하여 물음을 남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송 버튼을 누른다.
줄곧 켜져 있던 창이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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