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L

[망기무선] 춘곤증

고소 수학 시절에 남망기한테 뽀뽀할 뻔한 위무선


망기무선 키스신 합작 '분노의 백봉산'에 소설 파트로 참여했습니다.

합작 바로가기 ▶ https://mangmus21333.wixsite.com/kiss-mm/

 

 

운심부지처에 백목련 봉오리가 돋아나는 계절이었다.

남계인이 위무선에게 내린 고소 남씨 가규 필사 벌칙이 끝나려면 아직도 반 개월은 더 남았지만, 푸른 하늘 아래 돋아나는 초봄의 풍경은 그 벌칙 수행을 더욱 더디게만 만들 뿐이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가규 베끼기라니, 차라리 비나 왔으면!”

감시자의 존재도 조금 지루한 놀이 상대 정도일 뿐, 그의 눈치를 보거나 할 위무선이 아니었다. 커다란 탄식과 함께 위무선은 가규를 몇 줄 채 베끼지도 않은 붓을 내려놓고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감시자는 여전히 단정한 자세로 서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쉬어도 된다고 한 적 없어.”

“할 거야, 할 거라고. 그치만 남잠, 솔직히 이런 날씨에 가규나 베껴 쓰고 있어야 한다는 건 네가 보기에도 너무하지 않아?”

“넌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운몽에서야 그의 궤변이 어느 정도 논리 구색만 갖추면 먹혔다지만, 고소에서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특히 남계인과 남망기 두 사람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대꾸 없이 사람을 무시해버리고 더 이상 입을 놀리지 말라는 듯 금언술을 걸어버리니 어떻게 해 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 간의 고소 생활을 통해 위무선은 남망기가 금언술을 언제쯤 걸지 대충 파악을 한 상태였기에, 여기서 더 입을 놀리면 분명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말을 안 하는 건 안 하는 거고, 날씨가 좋으니 가규 따위보단 운치 있는 풍경을 유유자적 즐기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다. 위무선은 드러누운 채로 깍지 낀 양손을 머리 뒤에 받쳤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이제 익숙해진 장서각의 천장. 그 결을 따라 눈동자를 내리면 활짝 열린 창 너머 보이는 푸른 하늘. 짙은 색 가지에 돋아난 희고 동그란 꽃봉오리들. 쏟아져 들어오는 봄 햇살, 그 빛과 푸른 하늘을 등진 채 앉아 있는 하얀 얼굴.

‘정말이지, 잘생기긴 잘생겼군…’

환한 낮 풍경을 등지고 있고, 아래쪽 반은 두꺼운 경전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남망기의 얼굴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봄 풍경의 일부였던 것처럼 아름다워 위무선은 지루했던 기분도 금세 날아가는 듯 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위영.”

그럼에도 들려오는 한껏 쌀쌀맞은 음성은 봄 풍경보다는 한겨울 바람을 연상케 했다. 금언술에 걸릴까 무서워 위무선은 재빨리 비위를 맞추는 척 네에, 네에, 하며 대답하며 게으름을 피웠다.

“알았어, 알았어 남잠. 날씨 좋고 경치가 좋은데 못 나가는 게 아쉬울 뿐이니까!”

“……”

“아이,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시시한 소리 이제 그만 할게. 대신 휘파람 한 번만! 한 곡만 불고 진짜 일어나서 가규 쓸 거야.”

싸늘한 시선이 꽂히자 다급하게 말하며 황급히 세 손가락을 이마에 붙이는 위무선을 잠시 노려보는가 싶더니, 남망기는 못 봐주겠다는 듯 시선을 다시 손에 들고 있던 경전에 고정시켰다. 위무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신이 나서 장서각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한쪽 무릎 위에 올린 반대쪽 발을 까딱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엄청나게 느리고 긴 곡을 불어서 최대한 오래 누워 이 운치 있는 풍경을 즐기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위무선은 자신이 아는 온갖 곡을 머릿속으로 재생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 앉은 사람이 눈치를 주듯 인기척을 냈다.

“내 휘파람을 듣고 싶은 건 알겠지만 아직 선곡 중이야.”

“……너,”

“아! 방금 선곡 끝났어! 이제 시작할게!”

매섭게 꽂히는 눈빛을 피하며 위무선은 태연하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과연 아주 느리고 나른한 곡조였다. 한낮의 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봄 치고는 다소 발랄함이 부족한 곡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위무선이 아는 곡 중 가장 느리고 긴 곡은 자장가가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누구나 그럴 테고. 게다가 안 그래도 느린 곡을 곱절은 더 느리게 빼서 연주하고, 곡이 끝나지 않도록 이런 저런 음을 제멋대로 끼워 넣은 덕에 이따금씩 숨이 모자라지 않도록 호흡을 조절하는 것도 필요했다.

덕분에 위무선은 계획대로 기분 좋은 봄바람과 꽃향기, 푸른 하늘을 아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연주자인 위무선 본인까지 졸려왔다는 점이다. 휘파람 자장가의 곡조도 깜빡이는 그의 의식에 맞춰 박자와 세기가 불규칙적으로 바뀌어댔다. 이대로 잠들었다간 남망기가 분명 삼천 가규 중 하나를 들먹이며 그를 그닥 유쾌하지 못한 방식으로 깨울 것이 분명했으므로, 위무선은 이성을 붙잡고 잠들기 전에 가까스로 곡을 끝냈다. 아, 곡을 끝내고서야 깨달았다. 이 운치 있는 풍경의 핵심은 남가 둘째 공자의 그림 같은 얼굴이었는데, 그를 골탕 먹일 생각으로 길게 휘파람을 불어대다가 그만 남잠의 얼굴을 감상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아쉬워하며 몸을 천천히 일으키던 위무선은 눈 앞의 풍경에 잠시 말을 잊었다.

남망기가 잠들어있었다.

“남…,”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부르려던 위무선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무방비하게 경전을 읽던 자세 그대로 눈만 감은 채 잠든 남잠이라니, 이렇게 진귀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또 있을까! 방금 전까지 제 자장가에 제가 잠들어버릴 뻔한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위무선은 장난기로 눈을 반짝이며 남망기가 깰 세라 아주 천천히 서안으로 몸을 기울였다.

“남잠,”

아주아주 작게 속삭이며 얼굴 바로 앞에서 손바닥을 흔들었지만, 그는 책을 읽던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 자는 모습까지 이렇게 딱딱하다니 인간미라곤 조금도 없어 보여 조금은 김이 샐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팔꿈치에 무언가 닿았다. 아까 전까지 가규를 베껴 쓰던 붓이다. 웃음으로 자유분방하게 치솟아 오르는 광대뼈를 감추지 못한 채 위무선은 붓 끝에 먹을 찍어 남망기의 얼굴 지척에 가져다대고는 조금 고민했다. 무엇을 그려야 가장 재미있을까. 남망기는 예민해서 금방 깨어날 테니 많은 것을 그리긴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면 몇 획만으로도 완성되는 작품을 그려야했다. 예를 들면……남계인의 수염 같은 것을. 차갑고 수려한 인상이 똑 닮은 숙부와 조카였으니, 분명 소년 남계인 같을 것이다. 상상을 마친 위무선은 키득 웃으며 수염을 그리기 위해 붓을 남망기의 입술 위쪽으로 향했다. 어쩐지 시선이 자꾸 고집스럽게 닫힌 잘생긴 입술로 향하는데 기분 탓일까? 묘한 기분에 위무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다시 애써 붓 끝에 정신을 집중했다.

‘남잠은 입술도 잘생겼네…….’

무심코 뻗은 손이 남망기의 아랫입술을 스치듯 건드린 것을 깨달은 시점에 위무선은 결국 붓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남망기의 눈은 감겨 긴 속눈썹이 뺨 위쪽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입술 역시 쌀쌀맞게 다물려있었다. 그의 뒤쪽에 열린 창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갑작스레 기민해진 감각이 온 신경을 눈앞의 소년에게 기울였다. 그의 상체 또한 어느새 기울어, 정신을 차려보니 숨이 닿을 듯 했고……

‘입을 맞추면…… 입술이, 열릴까?’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남망기의 한쪽 뺨과 턱을 감싸고 있었으니, 등 뒤에서 좋은 핑계가 되어줄 세찬 바람만 불어온다면 입술이 닿을 수도 있었을 거리다. 하지만 아직 누군가와 입맞춤을 나눠본 적 없던 열다섯 위무선은 하필 그 순간 제정신이 돌아온 턱에 소스라치게 놀라 순식간에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자리를 뜰 핑계는 많았다. 측간에 다녀왔다든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그 외의 핑계는 생각해 낼 수 없었지만.

 

하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잠깐의 봄바람에 졸음이 들었다가 일찌감치 깼음에도, 제 입술을 만지고 뺨을 감싸오던 손을 피하지도 못한 채 어찌할 바 모르고 눈을 꼭 감고 있던 소년의 마음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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