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시간선 정리 및 연령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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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545830370.lofter.com/post/1e186bf9_12c3af66e

(天空永不离弃 님께서 작성한 글을 번역했습니다)

이 글에서 인용된 문단은 진강문학성 최종 수정판에서 인용한 것이며, 수정 전 내용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습니다.

[ 이 글을 번역한 저는 인용하는 부분에서 한국 정발본 문장을 가져왔습니다. 진강문학성의 해당 장 표기는 생략합니다. 전체적인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완독하신 분만 읽어주세요. 분석에 따르면 나이 설정에는 일부 버그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


· 위무선은 아홉 살 때 강풍면에게 발견됐다.

· 그때 강징도 여덟아홉 살 정도 였는데 그는 연화오에서 개 몇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정리▶ 강풍면이 위무선을 아홉 살에 강씨 가문에 데려왔고, 위무선은 강징보다 반 살 더 많았을 것이다.

· 그때 강염리는 위무선보다 세 살 많아 겨우 열두세 살밖에 안 됐다.

정리▶ 열두세 살의 사저가 위무선을 업고 집으로 데려갔다. 12, 13살에서 9살을 빼면 3, 4살 차이가 난다. 여기에는 버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남망기와 사이가 나빠진 시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열다섯 살 되는 해 강징과 함께 고소 남씨 집안에서 수학했던 그 3개월부터인 것 같았다.

정리▶ 위무선은 열다섯 살에 남망기와 알게 되었고, 고소에서 3개월간 수학을 했다.

· 그때는 위무선이 운심부지처에서 수학하다가 운몽으로 돌아간 지 1년도 더 지났을 때였다.

정리▶ 위무선이 남가에서 돌아간 후, 1년여 만에 온가에서 개최한 백가청담회에서 남망기와 재회한다. 위무선은 16살 정도일 때 남망기의 말액을 벗겼다.

· 열일곱 살에 4백 년 묵은 대형 요수를 죽인 일은 ‘잘했다’ 정도가 아니었다.

정리▶ 도륙현무 시기의 위무선은 열일곱 살.

· 재작년 기산 온씨의 백가 청담대회에서 활쏘기가 열린 날, 온조는 위무선 등과 함께 입장했다.

정리▶ 여기서는 또 도륙현무 때 재작년에 기산 청담대회가 열렸다고 말하고 있다. 출현 버그.

· 놀이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하루 이틀이지 날마다 하다 보면 재미가 없기 마련이라 보름 뒤 소년들은 흥미를 잃었다. 위무선도 흥이 나지 않아 대충 쏴서 강징이 여러 번 1등을 했다.

정리▶ 강씨 가문 소년들이 연을 쏘는 그 날 온가가 찾아온다. 도륙 현무 보름 만에 강씨 가문에 변고가 생긴다. (온정이 3일 위무선과 강징을 받아주고+강징이 산에 들어가서 7일+앞뒤 도망 약 며칠) 위무선은 난장강에 버려진다. 이때 열일곱 살.

· “난장강에 버린 지 벌써 3개월도 더 지났어. 그런데 아직도 꿈에서 그를 봐? 벌써 몇 번째야!”

· 나흘째 되는 날, 깊은 밤이 돼서야 두 사람은 외진 산간 마을 역참 근처에서 온축류의 흔적을 찾았다.

정리▶ 난장강에 떨어진 지 석 달여 만에 이릉노조가 세상에 나온다. 남망기와 강징 두사람은 온축류를 추격한 지 4일 만에 위무선과 재회한다. 위무선은 17(18?)살에 사마외도를 수련하기 시작한다.

· 입술에 남아 있는 열감과 부어오른 듯한 느낌이 위무선에게 계속해서 일깨워 주었다. 그는 방금 20년 동안 지켜 온 첫 입맞춤을 잃어버렸고, 그것도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해 버렸으며, 자기는 상대의 정체와 생김새조차 몰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정리▶ 사일지정 이후, 백봉산에서 첫 입맞춤. 이때 위무선은 20세.

· 2개월 뒤, 운몽.

기산 온씨가 무너지자 과거 가장 번화했던 불야천성은 깨끗이 사라지고 폐허의 도시가 됐다.

정리▶ 백봉산 위렵으로부터 두 달이 지난 후 누각에서 꽃을 던진다. 위무선은 연화오로 돌아와 소년 시절을 회상하며 산책하러 나갔다가 부두에서 온정을 만났다. 이때 위무선은 20세.

· 그날 밤, 큰 풍파가 지나갔다.

· 이틀 뒤, 강징은 문하생 30명을 이끌고 이릉으로 갔다.

정리▶ 이어 위무선은 연회석에 뛰어들고, 궁기도로 온씨 사람들을 구하러 갔다. 이날 밤 강징은 세가 사람들의 힐책을 받고 이틀 뒤 난장강으로 가서 위무선과 허위로 결별하여 대외적으로 위무선이 운몽 강씨를 배반했다고 밝힌다. 이때 위무선은 20세.

· 연화오, 지난 1년간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금린대? 3일이나 지났으니 지금 가면 온정의 시체와 온녕의 유골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리▶ 온녕이 실수로 금자헌을 죽인다. 이때 위무선은 강씨 가문을 배반한지 1년이 지나있었다. 3일 후 위무선은 난장강을 내려가 금씨 가문에서 사저와 마주치고, 도망간 후 불야천성에 이르렀다. 위무선이 혈세불야천 때 21, 혹은 22세.

· 4대 가문은 약 3개월 동안 기를 축적하고 계획을 잘 세운 뒤에야 마굴 난장강을 에워싸고 온씨 잔당과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이릉노조에게 ‘학살’이라는 두 자를 되돌려 주었다.

정리▶ 혈세불야천 후 3개월이 지나 온 가문이 난장강을 토벌한다. 위무선이 죽고 이때 21, 혹은 22세. 제1장에서 13년 만에 회생한 위무선은 실질 연령이 34세, 혹은 35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위무선이 혈세불야천에서 3년 후에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작가가 문장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초판에서 난장강 토벌이 발생한 것은 혈세불야천 3년 후지만, 최종 수정판에서 3개월로 변경되었다.

· “또 누가 있겠어요. 바로 그 남잠이지. 우리 또래인데 소년의 활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엄격한 게 그의 숙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예요.”

정리▶ 13년 후, 그들은 모두 35세이다. 그러니 섭회상이 위무선과 그의 친구들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말하지 마라. 그는 그저 조기 입학했을 뿐이고 시험에 유급하는 바람에 그들과 동기가 된 것이다.

· 그는 그들과 비슷한 나이의 소년으로, 키가 크고 말랐으며 또렷한 오관에 눈동자가 검고 얼굴은 창백했다. 염양열염포를 입었지만 강경한 느낌 대신 우아하고 고상한 느낌이 강했다.

정리▶ 위무선과 강징은 연화오로 돌아와 연무장의 온녕을 본다. 온녕이 그들과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무선이 강씨 가문을 배반하기 이틀 전에 흉시가 되었고, 이때 20세 전후였다. 흉시는 노화하지 않으므로 연령은 줄곧 20세를 유지하고 있다.

· 반면 불야천성에 수년 동안 잠입했던 맹요는 일약 유명해졌다.

· 고소 남씨는 불에 탔고 운몽 강씨는 멸망했으며 다른 크고 작은 가문은 진압됐다. 반항의 목소리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기산 온씨가 재빠르게 진압해왔다. 그래서 3개월 전 금씨, 섭씨, 남씨, 강씨 네 가문이 동맹을 맺고 ‘사일지정’ 따위의 명분을 내걸면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정리▶ 강씨 가문의 변고 이후 사일지정이 시작되었다. 금광요가 온약한을 죽이고 섭명결을 구출한 후 사일지정이 종결된다. 여기서 잠복 기간이 수년 동안이라고 되어있으므로, 사일지정을 지속한 기간은 20에서 17을 뺀 것보다 적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대략 2~3년일 것이다.

· 금광요는 수미단 옆에 서 있었다. 섭명결, 남희신과 의형제를 맺고 금광선의 자식으로 인정받은 그는 미간에 단사를 찍고 하얀색 바탕에 금테를 두른 금성설랑포를 입고 오사모를 써 사람이 확 달라 보였다.

· 설양은 열다섯 살 때부터 기주 일대에서 악당으로 이름을 날렸다.

· “안 들어 본 게 맞아. 효성진이 산에서 나와 유명해진 게 정확히 12년 전이니까. 지금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지만.”

· 효성진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열일곱이었다. 남망기는 그를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을 통해 그의 풍모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정리▶ 사일지정이 끝난 후 금씨 가문은 화연을 열고 삼존이 의형제를 맺으며, 설양이 등장한다. 설양은 기주에서 악행을 저질렀을 때 최소한 15살이었다. 위무선이 죽은 1년 후 효성진이 세상에 나와 17살이었으니 설양의 나이가 효성진보다 어리다. 설양이 난릉 금씨의 화연에 참석했을 당시 어린 효성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2년여 시간의 격차가 있는데 이때 15살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효성진이 세상에 나왔을 때, 두 사람은 동년배의 17살이 되는가? 여기에 소소한 버그가 있을 것이다. 설양을 일단 17살이라고 가정했을 때, 12년 후 설양은 29세가 되어 위무선과 만난다.

그밖에 30장에는 많은 시간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상가 멸문 사건은 효성진이 하산한 (17살) 때와 같은 해에 일어났고, 적봉존이 죽은 것 또한 같은 해이다. 적봉존이 죽은 뒤 설양이 풀려나 백설관을 멸문시키고 효성진이 송람에게 눈을 돌려준다. 1년 뒤 송람이 하산하여 설양에게 복수하고자 하는데 이때 금광선은 이미 죽어 금광요가 난릉 금씨를 맡게 되자 즉시 설양을 처분했다. 그러나 뜻밖에 효성진에게 구해져 같은 해 효성진(18세)과 아천, 설양이 의성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11~12년 전이라는 시기에 일어났다. 이 밖에, 금광요의 결혼은 금광선의 죽음 전에 일어난 일이다.

· “최근에는 우리 밤에 주시를 처치하러 나가지 않았지? 하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하루가 멀다고 나갔잖아?” 설양이 다정하게 말했다.

정리▶ 여기서 설양과 효성진, 아천이 2년 넘게 생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효성진이 죽었을 때 20세이다. 난장강 토벌로부터 4년이 지나있는데, 이때 남망기는 26세.

· 위무선은 온원을 나무에 매달거나 땅에 얼굴만 빼고 폭 파묻고는, 햇볕을 많이 쬐고 물을 조금 뿌려주면 더 빨리 자란다고 장난을 치다가 온정에게 호되게 야단을 들었다.

[ 여기서 정발본은 온원 앞에 한두 살, 이 생략되었는데 원문에는 一两岁的孩子温苑 한두 살 난 아이 온원이라고 되어있습니다, ]

정리▶ 위무선이 강씨 가문을 배반했을 때 사추는 한두 살이었다. 77장에 가서는 1년 후에 위무선이 금릉의 만월례에 참가하겠다고 언급한다. 이에 따르면 사추는 금릉보다 한두 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의 전통적 나이 계산법에 따르면 출생 시에 한 살이 된다) 13년 후에 금릉은 14살이고, 사추는 15~16세인 것이다.

· 원래 강징은 금릉을 응원하러 온 것이었다. 올해 열다섯 살인 금릉은 다른 가문의 후배들과 경험을 쌓을 나이가 되었고, 강징이 고르고 고른 곳이 대범산이었다.

정리▶ 13년 후, 대범산에서 만나게 된다. 여기서 금릉은 곧 15살, 즉 14살쯤일 것이라 언급되는데 앞의 추측과 일치한다.

· “이 소녀는 열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였고 갸름한 얼굴에 청순하면서도 활력이 있어요.”

정리▶ 아천이 죽었을 때는 약 15~16살이었다.

· 그리고 모현우가 열네 살 되던 해 가주가 사람들을 보내 모현우를 정중하게 모시고 돌아갔다.

· “금자헌이 죽어서 제 위치가 높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금광선은 다른 사생자를 데리고 오는 한이 있어도 저에게 가주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 없습니다!”

· “의형제가 아니라 친형제였다면 더 재난을 피하지 못했을 겁니다. 금광선이 죽기 전 몇 년 동안 금광요가 금광선의 사생자들을 처리하느라 바빴지 않습니까. 갑자기 누가 튀어나와 자기와 자리 다툼을 할까 봐 말입니다. 모현우는 다행인 셈이지요. 미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갖가지 이유로 사라졌을 겁니다.”

정리▶ 49장에서 모현우는 금자헌이 죽은 뒤 금씨 가문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86장에서 알 수 있듯 모현우는 금광선이 죽기 전에 내몰렸으므로 금광선은 위무선이 죽은 1~2년 만에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현우와 남망기의 나이 차는 (21~22에서 14을 빼서) 7~8살. 13년 후 모현우는 26~27세 사이. 남망기는 3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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