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cetera

[랖밐] 장례식 금기 사항

제 1항 부활하지 않을 것

Macross Galaxy by 쉐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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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갱스터라는 족속들이 어디 세간의 규칙이 정해져 있다고 듣는 놈들이던가? 자신들이 직접 피로 쓴 것이라면 모를까, 범인들이 정한 것을 지키면 그건 갱스터라고 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아나스타시아의 자식들은 통상적인 장례식의 금기 사항조차도 너무 우습게 어겨버렸다.

간단히 말해 본인들의 장례식에서 부활했단 뜻이다.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먼저 움직인 것은 라파엘의 관짝이었다는 점이다. 분명 지진이나 폭격이 아니고서야 조용해야 할 관짝이 별안간 들썩이는 바람에 장례식에 참여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대체로 평소에도 검은 양복을 입는 자들이었다-은 표면상으로나마 유지하려 애쓰던 애도의 얼굴도 잊은 채로 웅성거렸다. 그런 그들을 단박에 닥치게 만든 것은 명백히 관짝 안에서 들려온 관 주인의 목소리였다.

“아오, 더럽게 무겁구만.”

이어서 콰앙- 소리와 함께 관짝은 허공으로 솟구치고,

“으아악!”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났다. 경악에 찬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관뚜껑이 날아간 관짝 안에서 관을 짚고 너무나도 좀비 영화 클리셰처럼 상체를 일으키는 이가 있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수의를 입은, 거무죽죽한 낯빛의 라파엘 아나스타시아였다. 무시무시한 등장과 어울리지 않게 표정은 상당히 머쓱해하고 있었지만 방금 장례식에서 시체가 일어났는데 표정을 살피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심지어 그녀의 미간에는 잘 닦아두었지만 너무나도 선명한 총알구멍이 나 있어 무해한 표정을 지어봤자 끔찍하게 무서울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파엘은 여전히 (자세히보면) 머쓱한 얼굴로 까슬한 뒷목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되네…….”

삐걱거리는 관절을 억지로 움직여 몸을 일으킨 라파엘은 관을 묻기 위해 파둔 구덩이에 빠질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뒤 엉금엉금 기어나와 몸 상태를 살펴보고, 냄새도 맡아 보며 점검했다.

“옷은 이게 뭐냐, 원피스…일 리는 없고, 수의인가? 킁킁… 아, 냄새가 좀 이상한데…….”

자신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시취에 구멍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와중, 바로 근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일어나셨으면 가엾은 동생도 좀 깨워주시지 그러십니까.”

“오, 미카엘, 너도 일어났나? 몰랐어. 말을 해야지.”

여전한 태도로 라파엘은 미카엘의 관뚜껑을 발로 걷어 차서 날려버렸다. 왠지 무릎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았지만 별로 아프지도 않았기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수의를 입은 미카엘이 뚜껑이 날아간 관의 가장자리를 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생전처럼 창백하고 웃는 얼굴은 여전했다. 충격으로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입을 벌린 채 멍청히 서 있던 조문객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시, 시, 시체가 부활했다아아!!!!!!”

그 외침이 신호탄이 되어, 너도나도 소리를 지르며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시에 패밀리에 저주가 들렸다!”

“신께서 벌을 내리신거야!”

미카엘의 관에 걸터앉아 그 꼴을 보고 있던 라파엘이 얼씨구, 하며 코웃음을 치더니 위협했다.

“모른 척하고 명복 빌든지, 다시 죽여서 관짝에 처넣고 싶으면 와보든지, 아니면… 그냥 입 닥치고 꺼져.”

가뜩이나 건장하고 험악한데다 힘 깨나 쓰는 갱스터로, 보스의 오른팔이기까지 한 라파엘이다. 그런 그녀가 한층 더 험악해보이는 미간의 총구멍과 시체빛 얼굴색, 죽었다 부활하기까지 각종 스릴러적 면모를 골고루 보여준 덕분에 감히 덤빌 용기있는 자는 없었다. 모두들 패닉에 빠져 헐레벌떡 장례식장을 빠져나가는 와중,

“오, 페니- 페니가 돌아왔어-!”

조금 멀리서 또다른 비명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하나님 맙소사! 재스퍼가 관뚜껑을 열었잖아!”

여기저기서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라파엘과 미카엘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오늘 단체로 관짝 오픈 페스티벌을 벌이기로 이야기라도 되어 있던 모양이군요.”

“궁금하면 구경 가 볼까?”

“흠, 글쎄요. 다리에 근손실이 왔는지 도통 못 걷겠어서.”

“업어줘?”

“그 정도까진 아니고.”

읏차. 라파엘은 손을 뻗어 미카엘을 일으켜주었다. 관을 벗어나 걷기 시작한 두 사람 모두 맨발에 수의 차림인 것이 상당히 우스꽝스러웠다. 미카엘은 라파엘의 시원한 미간을 보며 자신의 가슴팍과 관자놀이의 휑한 곳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누님은 제법 흉하네요.”

“멋있지. 부러우면 너도 해 줄까?”

“됐습니다. 썩은 내 나는 구멍을 늘리는 건 사양이라.”

미카엘 역시 좀 전의 라파엘처럼 자신의 몸에서 나는 체취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냄새가 상당히 불쾌하네요. 방부제와 시취, 백합 꽃 향기가 합쳐진 것 같은 게.”

그 말에 라파엘은 미카엘을 흘끗 내려다보더니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너랑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향수도 향이 3단계라며.”

탑노트와 미들노트, 베이스노트를 말하는 건가 생각했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미카엘은 삐걱대며 걷는 채로 화제를 돌렸다.

“여전히 남아있는 총상을 보니 멀쩡하게 살아난 건 아닌거 같고, 죽었을때 몸 컨디션 그대로인 것 같죠. 그렇다면 몸은 생물학적으로 사망한, 그러니까 시체 상태인 게 맞는 것 같은데… (이 대목에서 라파엘은 자신도 근손실이 온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쳤다) 어떻게 의식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정말이지 비과학적이네요.”

“나 이거 알아.”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하는 표정으로 미카엘은 가만히 라파엘을 올려다보았다. 라파엘이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 좀비 된 거 아니냐?”

“오…….”

하지만 이게 아니고서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미카엘은 그 입을 다물고 라파엘과 보폭을 맞춰 걷기로 했다.

그렇게 그들은 아수라장이 된 묘지를 평화롭게 걸었다. 조금 걷다보니 그들이 묻히려고 했던 무덤 근처에서 ‘페니 리버모어’라는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눈에 띄었다. 비석은 깎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무척이나 깨끗했다. 비석의 곁에는 그 주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얘가 아까 그 ‘페니’인가.”

“정황상 그래 보이죠.”

과연 그랬다. 거무죽죽한 얼굴을 한 아이의 눈동자는 허옇게 돌아가 있었고 걷는 것도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경직된 탓인지 확연히 부자연스러웠다.

“이쪽이 좀 더 캐릭터성이나 정체성 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해보이는군요.”

“왜, 나도 눈 저렇게 떠 줄까? 넌 실눈이라 어려울거 같으니 근손실 걸음걸이만 따라해.”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페니를 지나친 두 사람은 걷다가 재스퍼라는 녀석도 만나고, 그 외 이름 모를 좀비를 여럿 봤다. 두 사람처럼 오늘 장례식이었거나 죽은지 며칠 안 된 녀석들은 그래도 좀 말끔한 축에 속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묘지였던 만큼 종종 백골도 있었고, 반만 썩어서 살점이 뼈에 일부만 붙어있는 상태로 부패가 진행중인 끔찍한 몰골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이성이고 의식이고 없이 다 으… 어어… 하며 경직된 관절로 어기적대며 걷는 자들이었으며, 두 남매처럼 의식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적인 흥미로 그들을 지켜본 결과, 움직이는 시체, 좀비들은 대체로 영화에서 본 것과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였다. 꼭 배고픈 탄탈로스마냥 소화기관의 작동 유무와 상관없이 이빨을 딱딱대며 살아있는 인간을 쫓아다닌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표적은 주로 그들을 가장 애도한 자들이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자면, 페니는 자신의 어머니를 껴안는가 싶더니 목덜미를 콱, 해버려서 곧 어머니와 함께 2인조 모녀 좀비단을 꾸려 움직이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음. 아무래도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긴 하지.”

라파엘은 짧게 덧붙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장례식에 왔던 조직의 노친네들도 이런 대재앙 사태를 피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낯익은 얼굴의 상당수가 좀비가 되어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대세는 스몰 웨딩에서 셀프 장례식으로 넘어갔나보지?”

수의가 싫다며 투덜대던 라파엘이 신나서 가장 덩치가 큰 조직원의 정장을 벗기곤 그 자리에서 빼앗아 입었다. 그 옆에 선 빼빼 마르고 키 작은 노친네의 옷과 미카엘의 수의도 홀랑 벗겨버렸다. 미카엘은 잠시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적당히 넘어가주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아저씨 향수 냄새가 풀풀 나는 정장으로 시취를 적당히 감춘 그들은 사후 경직으로 몸이 좀 뻣뻣한 것을 제외하면 생전과 상당히 흡사한 모습이 되었다. 라파엘의 짧은 머리를 안간힘을 써서 내려 미간에 난 총구멍을 가리는 것까지 포함이다. 좀비들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용 왁스를 찾아내 머리카락을 고정시킨 라파엘이 물었다.

“근데 말야, 보통 죽었다 살아나면 뭘 하지?”

“글쎄요. 저도 부활은 처음이라.”

“죽다 살아났는데 책이라도 쓸까.”

“누님이 무슨 책입니까?”

“이 자식이? 그럼 넌 뭐 하고 싶었던 거 없냐. 어차피 너랑 다닐 거니까, 누님이 어떻게든 맞춰본다.”

“데이트라도 하잔 건가요? 그런 것도 다 돈이 있어야 하는 거죠. 이 옷에 든 지갑엔 돈이 별로 없더군요.”

“돈이란 것도 다 법과 질서가 유지될 때나 필요한 거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눈 앞의 작은 병원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다수의 인원이 한번에 좁은 입구로 몰렸고, 덕분에 앞선 사람 하나가 넘어지자 그대로 모두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 위를 환자복이나 수술복 입은 좀비들이 덮친 건 덤.

“오.”

“이제 돈 없어도 데이트 가능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법과 질서 뿐 아니라 인간 사회와 문명, 그 자체가 인류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어떠한 직감이 들어 미카엘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네요…… 뭐부터 할까요.”

“일단 시체 많은 곳은 좀 벗어나보자고. 보아하니 죄다 살아나서 고기 먹겠다고 날뛰는 것 같은데. 사람 많은 곳은 시끄럽다고 안 좋아하잖아, 내 동생은.”

“…하긴 지금의 상황을 보면 도시가 오히려 더 조용할지도……”

착실히 뉴욕의 빌딩숲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잠시 이 사태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영화 같은데서 다뤄지는 좀비물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이뤄져서 장소를 막론하고 바이러스에 노출되기만 하면 멀쩡하던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 찾아온 좀비 아포칼립스는 말그대로 시체가 관짝을 열고 나오며 시작됐다. 모두 시체를 볼 수 있는 곳에서만 좀비가 발생한 것이다. 상식 선에서는 라파엘과 미카엘처럼 묘지가 위치한 교외. 그 다음은 수술실이 있는 종합병원. 그 다음은 부검을 위한 시체가 위치한 과학수사대 정도가 있을 테고…….

그 외에는 이제 비공식적인 장소들이 남아있었다. 두 사람 같은 갱스터들이나 드나들 만한 슬럼, 혹은 조직 지하실의 시멘트로 메워진 드럼통, 도심 뒷골목의 쓰레기통, 허드슨 강의 밑바닥……어라, 생각보다 많다.

“……음. 꼭 도시라고 시체가 없으리란 법도 없군요.”

“생각보다 시체는 우리들의 일상과 제법 가까이 있었구나.”

"제법 웃기네요, 그거.“

“그래도 역시 익숙한 곳이 좋지?”

“아무래도요.”

얼마를 걸었을까.

도시라고 시체가 없으리란 법도 없다는 미카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뉴욕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아비규환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사람들은 점점 더 눈에 띄었다. 그 아수라장이 시체 때문에 벌어진 건지, 아니면 탈출하려는 자들 때문에 벌어진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 속에서 역주행하는 하얗고 까만 두 남매의 느긋한 태도는 몹시도 이질적이었다. 운이 좋게도 뉴욕을 빠져나가는 워싱턴 브리지는 ‘라라랜드’의 도입부마냥 완전히 차들로 막혀버려서, 차를 버리고 뛰어간 사람들도 제법 됐다. 아무렴 교통체증으로 차 안에 갇혀 좀비의 밥이 되는 최후라니 얼마나 초라하겠는가. 어쨌든 그 덕에 비교적 한산한 반대편 차선에 있던 둘은 친절하게 차키가 꽂혀 시동까지 걸린 채로 버려진 차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미카엘을 태우고 운전석에 앉은 라파엘이 글로브박스를 마음대로 뒤지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손한 말투로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보스?”

“집으로요.”

“아아.”

재미없다며 투덜대곤 라파엘이 엑셀을 밟았다.

“뉴욕 시내에 이렇게 차가 없는 날이 다 오다니, 좀 놀랍군요.”

“‘킹스맨’에서 발렌타인이 환경 보호한다고 사람 죽인 이유를 알겠어.”

인간이 죽는 게 친환경인거지. 둘은 다소 다른 포인트에서 감탄하며 부드럽게 노을빛을 환하게 반사하는 마천루 숲으로 들어갔다.

화려함의 극치.

세계의 자본이 한데 모이는 곳.

그들은 그 황금빛 마천루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 속에서 피가 묻은 검은 돈을 만지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차를 타고 보이는 광경에선 그림자와 빛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모양새였다. 그림자에서 기어나온 이름없는 시체들이 산 사람을 물어뜯어 시체로 만들고 있었다. 그 지옥도와 같은 풍경 속에서 둘은 유유히 차를 타고 역방향으로 달렸다. 라디오 전파국은 아직 무사한지 무작위로 튼 자동차의 라디오에서는 라파엘이 들어만 보고 제목은 모를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보스.”

놀리듯 힘주어 말하며 라파엘은 차 문을 열어 극적인 태도로 미카엘을 에스코트했다. 이미 해는 거의 다 져서 하늘은 보랏빛과 남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미카엘의 가면 같은 얼굴에 묘하게 라파엘만 알아볼 수 있는 균열이 갔다.

보스의 집, 그러니까 조직 소유의 빌딩 근처에 벌레처럼 생긴 것들이 잔뜩 기어다니고 있었다. 미관상 징그럽기도 하고, 불결해 보이기도 했다.

“뭐야, 이것들은.”

라파엘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발끝으로 그것들을 툭툭 걷어찼다. 그러나 라파엘의 발이 닿았음에도 겁에 질려 도망가거나 하는 기세는 없이 그것들은 그저 무작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들은 벌레도 짐승도 아닌 잘린 인간의 신체 말단 부위였다. 아 맞다. 그제야 라파엘은 뭔가를 기억해냈다.

“공간이 모자라서 잘라서 묻었더니 이러고들 있구만.”

기어다니는 반쯤 썩은 손을 걷어차는 라파엘을 보며 미카엘이 흐음, 하고 집게손가락을 턱에 가져다댔다.

“아예 분쇄기에 갈아버렸어야 했던 걸까요.”

“그랬으면 다진고기가 돌아다녔을텐데 그게 더 별로 아냐?”

“빨리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았겠습니까.”

자신들의 몸에서 풍기는 희미한 방부 약품 냄새를 맡으며 두 사람은 자조적인 농담을 주고받았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미카엘이 정돈해두고 유지하던 상태 그대로인 것이 익숙하기도 하고, 질리기도 했다.

“익숙하구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낼 거면 긍정적인 감상 쪽이 좋겠지. 라파엘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어딘가의 관절인지 뼈인지가 끔찍한 소리를 냈지만 아프지도 않아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씻지도 않고 눕는 건가요. 야외에서 그렇게나 오래 걸었는데.”

손을 씻고 있는지 물소리와 함께 미카엘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라파엘은 소리내어 하하 웃었다.

“시첸데 무슨 손을 씻어. 이미 썩는 중이라 균 드글드글할걸?”

“무슨 균요? 누님이 아는 균이 있긴 합니까?”

“…이게? 이름은 모르지만, 그 막 있잖아, 식중독 균.”

“하긴, 그렇군요. 객관적으로 우린 상한 고기니까.”

여기에는 미카엘도 조금 웃는 듯 했다. 거기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라파엘이 자신이 누워있는 소파의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내리쳤다.

“그러니까 상한 고기 주제에 빡빡하게 굴지 마, 미카엘. 책임 같은 건 죽으면 다 내려놓는 거잖냐.”

미카엘은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칫하더니 손을 씻느라 장갑을 벗은 채로 손에서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상태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덩치 큰 라파엘 탓에 소파는 비좁았다. 라파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소기의 목적대로 미카엘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단단히 등을 껴안았다.

“세상이 망하게 생긴 마당에. 하고 싶은대로 해야지.”

“하고 싶은 거라,”

딱히 없습니다만. 큰일 날 소릴 하는군.

바깥에서 이따금씩 들려오던 ‘사람’의 소리도 결국은 상한 고기들이 내는 소리로 바뀌어 갔다. 둘은 여전히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뒤엉켜 누워서 가만히 그 소리를 들었다. 꼭 뉴욕으로 돌아오며 이름 모를 클래식을 듣던 그 순간 같았다. 백합과 약품과 시취가 섞인 냄새는 여전했지만 더이상 역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카엘이 물었다.

“그러는 누님은 뭘 하고 싶으신데요.”

“나? 나야 뭐 늘 똑같지. 원초적이고, 단순하고, 심플하게…….”

여기까지 말하는 순간 라파엘은 문득 지금 가장 가장 강렬하게 든 충동이 원초적이고 단순하고 심플했지만, 절대 평소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동생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미카엘 널 먹고 싶군.”

“그거 기막힌 우연이군요, 저도 그래서.”

“하.”

냄새가 역하지 않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거짓이기도 했다. 무한한 허기를 느끼게하는 그 냄새는 몹시도 유혹적이었다. 미카엘은 몸을 뒤집어 라파엘의 얼굴을 마주보고, 어깨를 내리눌렀다. 여전히 단단했지만, 살아있지 않기에 쉽게 무너져내릴 것임을 알았다. 그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라파엘의 입술을 스쳤다가, 목덜미를 핥아내렸다.

아마도, 바깥에 남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직감했다. 있더라도 곧 순식간에 다수를 차지한 시체들에게 감지당해 똑같은 신세로 전락할 테지.

‘인간’을 분류하는 기준이 지성과 이지라면 신체가 죽어 살모넬라균이 번식한다는 사소한 오류가 있긴 하지만 미카엘과 라파엘 아나스타시아는 그 기준에 반론의 여지 없이 부합할 터였다. 그러니까, 지금 인간이 다 죽어버렸다면 결국 이 둘이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 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결국 불완전하지만 좀비라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서로에게만 식욕을 느끼고 있었다. 명백하게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라파엘이 낮게 속삭였다.

“이대로 물어뜯으면 우리도 멍청해질까?”

“안 해보면 알 수 없죠.”

“내가 먼저 물어뜯어볼게. 넌 똑똑하니까 멍청해지면 티가 더 잘 날 것 같거든.”

“그렇게 따지면 제 쪽에서 누님을 물어서 더 똑똑한 쪽을 보존하는 게 더 공리적으로 이득 아닙니까?”

“그럴수도 있긴 하지. 그런데 너 혼자 남아서 뭐 하려고 그러냐.”

“…….”

“이건 어때, 미카엘. 셋 하면 동시에 물고, 동시에 가는 거다.”

라파엘은 말이 없어진 미카엘을 안아주고 입을 맞췄다.

“지옥에 갈땐 같이 가야지. 안 외롭게 해줄게.”

“…마음대로 하세요.”

보스의 허가가 떨어졌다.

둘은 꼭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처럼 머리와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서로의 목덜미에 동시에 입술을 묻었다.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의 향이었다. 당장이라도 송곳니를 박아넣고 싶은 것을 참으며 침을 삼켰다.

“내가 셀까.”

“그러시죠.”

“좋아, 셋.“

하, 나지막한 코웃음소리와 함께 이빨이 썩은 살갗을 파고들었고,

인류는 조용히 절멸했다.

⋆⁺₊⋆✞⋆⁺₊⋆

에덴의 마지막 자손들이 별세하여 위와 같이 삼가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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