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끝에서 자줏빛 꽃의 겉잠을

눈물의 끝에서 자줏빛 꽃의 겉잠을 10화

그 모습을, 더 레이븐은 시선으로 쫒았다.

그리운 경치도, 추억도,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던 새까만 눈동자에 깜박깜박 감정이 녹아내렸다.

더 레이븐

아아아아! 아아아, 그, 우우우!

아, 아…… 까아아아……

루틸

‘수배했던 라벤터 꽃다발이 이제서야 도착했지만, 그녀가 이 꽃을 끌어안을 날은 더 이상 오지 않아.’

루틸이 수기에서 얼굴을 들었다. 껴안고 있던 라벤터 꽃다발을, 조심히 내밀었다.

콜 타르와 같이, 새까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까마귀 마녀에게, 기도하듯이 살짝 미소지으면서.

루틸

‘……하루라도 좋아. 이 꽃이 빨리 닿기를.’

‘언제나 고마워, 의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건네줬다면……’

‘이 모든 게, 바뀌지 않았을까’

까마귀 마녀가, 흔들리는 손톱을 살짝 벌렸다.

몸을 뒤덮고 있던 마법의 빛이 사라지자, 날개인지 팔인지 모를 무언가로 꽃다발을 받아들고, 껴안았다.

찾던 것을, 드디어 발견한 것처럼.

기적의 만남을 얻은 것처럼, 그런 포옹이었다.

더 레이븐

……

자줏빛 꽃에 얼굴을 묻은 더 레이븐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루틸을 공격한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인간다운 움직임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눈물의 공주 곁으로.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무르클리드>

축복처럼 파우스트가 주문을 읊었다. 뒤를 이어 다른 마법사가 이어갔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클로에

<스이스피시보 보이팅고크>!

히스클리프

<렙세바이블프 스노스>

피가로

<폿시데오>

미스라

<아르시무>

오웬

…… <쿠아레 모리트>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더 레이븐의 검은 날개가 하얗게 바뀌어 간다.

빠져나가는 하얀 깃털이, 둥실거리며 축복의 꽃보라처럼 방 안에서 춤췄다.

더 레이븐의 일그러진 모습이, 점차 사람다운 모습으로 바뀐다. 얼굴도, 성실해보이는 소녀로 돌아온다.

더 레이븐

아, 아…… 고, 주, 님……

……아델레인 님……

루틸

……<오르토닉 세토마오제>

루틸이 주문을 외운 순간, 부드러운 하얀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키라

왓……!

눈부심에 무심코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그 전에, 새하얀 빛 속에서 나는 보았다.

라벤더 꽃다발을 안은 검은 로브의 여성을, 미소지으면서, 울면서, 파란 드레스의 여성이 껴안은 것을.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서.


밖에서 들려오는 까마귀들의 합창에, 눈을 떴다. 눈물 흔적처럼 하얀 깃털이 하늘하늘 내려왔다.

히스클리프

아…… 까마귀 마녀도, 공주도 없어……

클로에

라벤더 꽃다발도 없어졌어!

피가로

까마귀 마녀가 가져간 걸지도 모르지. 일그러진 의식의 흔적도, 재앙의 영향도, 완벽하게 사라졌으니까.

파우스트

…그래. 무사히 더 레이븐을 정화했다.

아서

…다행이다…!

젊은 마법사들이 몸을 맞대고 기쁜 듯이 마주 웃었다.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파우스트가, 조금이지만, 눈부신 듯이, 그리운 듯이, 나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그것보다도, 조금 더 노골적으로 얄미운 듯한 표정으로, 오웬은 트렁크를 넣었다.

하지만 그런 표정과는 정반대로, 어딘가로 훌쩍 사라지거나 화풀이를 시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무언가를 깨끗이 씻어내듯이 손을 문지르면서.

미스라

……

미스라는 루틸을 바라보고 있다.

왜인지 목소리를 걸려고 했던 것 같지만, 고개를 휘젓고 그만둬버렸다.

루틸이 안심한 듯이, 울어버릴 것 같은 본 적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며칠 후ㅡ.

루틸

…후우!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조금만 더 힘내면 돼요.

아키라

그러네요! 태피스트리가 무사히 원상복귀 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담화실에서, 나와 루틸은 마주 웃었다. 테이블 위에는 대부분 조합한 태피스트리를 펼쳐두었다.

저번에, 조각조각 찢겨진 태피스트리는 새로운, 루틸의 마법으로 고쳐두었다.

하지만 고도한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의 수리는 클로에의 재봉이나 피가로의 의술처럼, 마법이라도 한 순간에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세세한 부분은 직접 손으로 하는 편이 빨라’라고, 히스클리프나 클로에에게 충고를 받아, 둘이서 고치고 있었다.

루틸

파우스트 씨에게 빌린 ‘어느 정도, 흠을 안 보이게 하는 재봉 바늘’, 엄청 편리하네요.

아키라

스스로 옷을 만들 때 썼던 마법의 재봉 바늘이라고 하셨었죠.

덕분에 미틸과 리케가 돌아오기 전에 어떻게든 늦지 않을 것 같네요. 두 사람은 전에 말했던 다화회를 위한 장을 보러 갔나요?

루틸

네! 마법사의 집에서 하는 다화회에 어울리는 과자를 사러.

마법사의 집이 생긴 이후부터, 이만큼 커다란 다화회는 처음이니까, 두 사람 다 엄청 의욕을 내고 있어요.

태피스트리를 주신 아저씨도 오신다고 하나봐요. 그밖에도 많은 분들이 놀러 와주세요.

손을 움직이면서 루틸은 기쁜듯이 웃었다.

미틸과 리케가 의욕을 내는 모습도 상상이 가서, 나는 볼을 느슨하게 풀었다.

하지만 다시 꿰맨 태피스트리에 시선을 옮기자, 문득 불안감이 생겨났다.

아키라

……

루틸

현자님?

아키라

아… 아뇨.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당일은, 아마, 평소보다 마법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오는 거잖아요?

물론, 마법사에게 흥미가 있으니까 놀러 와주신 걸 테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악의 없는 엇갈림이라던가, 아무 생각 없던 한 마디로 모두가 상처입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루틸

……그러네요.

하지만ㅡ.

루틸, 아키라

……!?

미스라

저한테 손을 대려고 하다니, 배짱이 크네요. 오웬.

오웬

흥. 한심하게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해봐.

아키라

(또 미스라와 오웬의 싸움이……!)

루틸이 당황해하며 태피스트리를 끌어안았다.

루틸

두 사람 다, 죄송해요. 여기서 싸움은……

미스라, 오웬

……

마도구를 꺼내 든 두 사람은, 곁눈질로 루틸을 본다.

루틸이 껴안은 것이, 자신들이 찢은 태피스트리란 것을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미스라

…… <아르시무>

하지만, 갑자기 미스라가 공간의 문을 열었다.

시원하고 차가운 바람이 확하고 불어온다. 문 건너편에는 맑게 갠 설원이 있었다.

미스라

이런 좁은 장소에서는, 할 마음이 안 생겨요. 밖에 나가서 결착을 내죠.

오웬

나도 그러려고 했어. 네 숨통을 끊는다면, 최악으로 춥고 최악으로 참혹한 장소가 좋아.

미스라

<아르시무>

오웬

<쿠이레 메미니>

아키라

……

신경써주신 걸까요……

루틸

후후. 그런 거라면 기쁘겠네요.

오후의 햇빛이 비춰들어온 담화실에서, 우리들은 다시금 바늘을 움직여 태피스트리를 고치기 시작했다.

루틸

…아까 전, 다화회 말인데요.

아키라

아, 네.

루틸

분명,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태어난 곳이나 살아온 시간이 달라도.

말이나 기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단어를 잘못 선택하거나, 엄청,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루틸은 눈물의 공주와 더 레이븐의 그림을 쓰다듬었다.

태어난 장소도, 겹쳐진 시간도, 살아온 방식도 다른 우리들.

그 넓고도 깊은 벽을 뛰어 넘어서, 마음을 전하는 것은 분명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겠지.

아키라

(그럼에도……)

아무리 긴 길이라고 해도, 이렇게 계속 도전하면서, 언젠가, 그 날을 맞이할 수 있다면.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이렇게 한 바늘씩 아름다운 그림을 꿰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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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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