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에게 처음인 크리스마스
사향정한
https://youtu.be/qIeLb14a_OA?si=sTeyy2WH6dsj4F_C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는 어느 날이었다. 정한은 이런 날이면 평범히 자신의 가족들과 날을 보내곤 했다.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가 크리스마스에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은 그밖에 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사향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뭐해?'
간결한 두 글자에 적힌 의도를 읽어내지 못한 정한은 문자로 본인다운 간결한 답을 보냈다.
'그냥 있어. 왜?'
'크리스마스에 볼까?'
'왜?'
'왜냐니. 사귀는 사이잖아.'
'크리스마스는 보통 가족이랑 보내는 거잖아.'
'그래, 알았어.'
마지막 말을 끝으로 사향은 더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신경이 쓰인 정한은 문자로 화났냐고 물어보려다가, 너무 자기답지 않은 것 같아서 관뒀다. 그리고 다시 캐롤송을 들으며 정한은 침대에 몸을 기댔다.
"내가 너무 연애에 대해 모르는 건가."
하지만 새삼 검색창에 '크리스마스 연인' 키워드를 치기에는 어쩐지 남사스럽단 기분이 들었다. 정한은 노트북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가 말았다. 그래도 이대로 크리스마스를 아쉬운 연인과 따로 보내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서, 정한은 말 없이 일어섰다. 옷을 갈아 입고, 패딩을 둘러입은 후에 핸드폰만 겨우 쥐고서 달려나가자 정한의 어머니가 "어디 가?" 라고 물어왔으나 듣지 못한 것처럼 문을 닫아버렸다. 정한의 어머니는 "쟤 만나는 사람 생겼나봐, 진짜." 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자신의 할 일에 집중했다.
-
"허억, 헉."
"뭐야?"
"뭐냐니. 니가 불렀잖아."
사향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불러낸 적이 없었고, 그저 크리스마스에 뭐 하냐고 물어본 것이 다였다. 글 쓰는 것 외엔 눈치도 안 좋은 그가 어쩐 일로 질문에 함축된 의미를 찾아 여기까지 온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사향은 픽 웃었다.
"크리스마스 나랑 보내려고?"
"…그럼 안 되냐?"
그런 말이 정한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한 사향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정한이라면 평소에는 그런 거 아니라며 극구 부인할텐데, 숨을 헐떡이며 뛰어온 그는 부정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보이는 대로였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급하게 뛰어왔으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자신과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있을 거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일단은 그가 더 추워지기 전에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았다. 사향은 문 안으로 정한을 들이고 주방으로 향했다.
"차 뭘로 줘?'
"믹스커피."
"없으니까 그냥 녹차 가져갈게."
"그럼 왜 물어봐."
"일단 손님이니까 물어봐준 거야."
"내가 너네 집에 들른 게 몇 번째인데 아직도 믹스커피가 없어? 좀 사다놔."
"뭐, 알았어. 자주 오려고?"
"…니가 원하면."
"그럼 사다놔야 겠네."
가벼운 대화가 오가고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며 둘은 마주 앉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급하게 왔어?"
"너 보려고."
"…그 말 진심이야?"
"…내가 뭐, 거짓말이라도 해?"
"평소에 맨날 거짓말 하잖아."
"내가 언제."
"부끄러울때."
"아, 아냐!"
"거 봐. 지금도 거짓말 하네."
불만에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정한을 사향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니까, 특별한 사람과 같이 지내는 게 일반적이잖아. 그래서 왔어."
사향은 그 말에는 진심으로 놀란 얼굴로 웃었다. 정한이 이렇게 평소에도 솔직하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을 좋아해주는 만큼만 애정을 표현해준다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솔직하지 못한 반응을 하는 것이 한 눈에 보여서 귀엽고 재밌었던 사향은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한은 눈에 보이는 리모컨을 무심하게 틀었다. 사향은 속으로 '자기집처럼 쓰네.' 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말로 뱉지 않고 그를 지켜봤다. 크리스마스 특집 영화가 줄줄이 편성되어 있었고, 정한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게, 맨날 같은 영화를 방영하지."
"그러게. 그런데 왔는데 영화만 볼 거야?"
"그럼 뭘 하는데."
"나랑 좀 놀아주면 어때."
"알아서 놀아. 네가 애도 아니잖아."
"그럼 왜 여기 온 건데?"
"와, 왔으면 됐잖아!"
정한은 크리스마스에 연인들이 어떻게 보내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향은 그런 부분도 정한답다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나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정한에게 크리스마스에 연인들이 얼마나 달콤하게 보내는지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사향은 소파 밑에 앉아 기댄 그의 옆으로 이동해서 앉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뭐, 뭐야. 왜."
"크리스마스에 뭘 해야 하는지 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너 설마 섹스하려고 이러냐?"
"아니, 그건 이따가."
"그럼 뭔데."
"키스."
그리고 정한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진득하게 입을 맞췄다.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정한의 키스는 서툴고 허점투성이이기 그지 없었다. 혀는 무방비하게 휘둘렸으며, 숨 쉬는 것조차 조금 버거워 보였다. 둘은 키스를 그리 많이 하지 않았으나, 사향은 키스 경험이 여럿이었고 연상인 그의 서툰 키스는 사랑스러웠다. 사향에게는 그랬다.
"허억, 하아…예, 예고 좀 하고 해."
"예고 했잖아."
"넌 그게 예고냐? 통보하는 거지."
"그럼 뭐, 기다려줘?"
"…아니, 몰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키스가 싫지는 않았던 정한은 고개를 조금 돌리며 부끄러워 했다. 사향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부끄러우면 귀가 금방 붉어지는 모양이었으니까. 사향은 웃었다.
"왜 웃어."
"웃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 해?"
"그럼 혼자 웃던가."
"알았어."
_
말과는 다르게 그 날은 별다른 성적인 터치 없이, 그저 한 침대에서 둘은 잠들었다. 정한은 내심 긴장했던 탓인지 예민한 편인데도 평소보다 사향의 침대에서 곧잘 잠에 들었다. 그걸 지켜보는 사향 역시 그를 지켜보다가 잠들었다. 사향은 가족과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이 없었던 탓에, 그와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았다. 어쩐지 포근한 느낌을 받으며 두 사람은 한 침대에서 노곤히 잠들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