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카 아잔켈의 잃어버린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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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카 아잔켈의 잃어버린 명예

혹은 신앙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1578년 10월 16일. 공판 시작 320일째.

페사로의 칙사가 다녀간 지 이틀 만에 차림은 다시 빈한해졌다. 나무 접시 위에 말린 포도와 둥근 빵, 양념 되지 않은 카초카발로 한 조각이 놓이는 것을 보면서 수사들이 투덜거렸다. 칙사가 머무는 동안에는 잣과 소금을 섞은 소세지 반 토막과 약간의 용담주, 그리고 바닐라와 레몬 껍질로 향을 낸 성 키아라 빵이 추가로 제공되었기에 아무래도 그 대비가 여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잔켈로부터 받아낸 금화가 적지 않았을 텐데 책임 주교께서는 검약가시군.’ 등 뒤에서 말에 뼈가 있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왔다. 기록관은 중립적인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선 제 몫의 식사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식전 기도는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수사들의 투덜거림은 대개 일리가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청빈과 절제, 소식과 근검함을 미덕으로 삼으라는 가르침은 결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광야 수도사들의 전례를 따르자면 이조차도 사치였다. 그들에게 허락되었던 음식이라고는 소금을 넣은 빵과 물, 종려나무 열매와 피사리온 정도가 전부였기에.

그러나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되고 아잔켈로부터 빼앗은 막대한 부가 봉헌함에 잠시 담겼다가 곧 체레보스의 혈관으로, 심장으로 흘러들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놀랄 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했다. 음식 냄새가 허기를 가르치듯 주화로부터 풍기는 냄새는 그들에게 욕망을 가르쳤다. 부귀를 맛본 사람들은 부드럽고 편안한 것들을 곁에 두고자 했고 거칠고 모자란 것들을 쉽게 내팽개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넉넉함과 풍요에 대한 오래된 감각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기록관은 그 차이를 알았다. 갓 영근 곡식의 낱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았던 사람들은 가진 것의 초라함을 배운 바 있었고 목양의 고됨을 몸소 겪어본 이들은 자루의 무게에 무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유의 겸양과 몫의 미덕을 알던 시대는 저물었고, 해에 걸쳐 열리고 있는 기형적인 공판은 이미 아잔켈의 은화와 쇳물을 사람들의 살갗 아래에 스미게 했다. 선악과의 선례가 예증하듯이 앎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재가 재로 돌아가고 흙이 흙으로 되돌아가듯이 철은 철을, 죄는 죄를 잉태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무너진 아잔켈이 체레보스에 전한 마지막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한때 활자를 주조해 신이 임하신 역사를 찍어내던 철성의 가문이 불길에 무너져 도시에 흐르는 쇳물이 되는 일련의 과정은 전통적인 교훈을 담은 우화로 각색되기에 손색이 없었으므로.

기록관은 남은 빵을 반으로 가르면서 모두가 이 우화의 주역으로 점찍을 것이 분명한, 안카 아잔켈이라고 불리는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사냥당하는 사슴의 눈을 하고 있는 주제에 맹수의 손톱을 소매 아래 감추고 있는 여자를. 시선을 내리깔 때면 어김없이 뺨에 섬세한 그늘이 지지만 결코 성인처럼 보이지는 않는 여자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갈망하고 있는 여자를. 사소한 민간의 실랑이로부터 시작된 재판이 아잔켈을 살라 먹고 신앙의 번제물로 삼아 그 자신의 피붙이들이 하나씩 광장의 형대로 끌려가 목숨을 잃을 때에도 울거나 미치지 않았던 여자를.

그리고 그 모든 요건으로 인해 마녀로 틀 지어진 여자를.

‘나는 결백해요.’ 그 스스로는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겠으나 여자가 ‘결백'을 발음할 때에 짓는 특유의 표정이 오히려 사람들을 충동했다. 영웅의 것도, 순교자의 것도 아니요, 여염의 아낙과도 다르며 청빈한 수녀의 것과도 다른 그 눈빛에 사람들은 열광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평생 보지 못한 종류의 껍질이자 비늘이었다. 미지는 대개 공포를 낳으나 새장 안에 가둔 기형성은 볼거리로 전락하는 법이므로, 사람들은 여자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구경하고 싶어 했다. 어쩌면 건조한 금전적 사유 외에도 그처럼 은밀한 욕망들이 공판을 지지부진하게 연장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따라서 기록관은 자신이 적어 내린 여자와의 면담록이 어떤 식으로 변주되어 전래될지에 대해 언제나 궁금해했다. 노래와 전설, 기담과 괴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청자를 매료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이야기가 전해지려면 전하는 자가 있어야 했다.

곧 면담 시간이었다. 기록관은 곁에 앉은 사람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앉은 자리를 갈무리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식사 시간의 마침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것은 마치 배반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처럼.

 

 


 

 

나무 의자가 마른 석면에 끌리는 소리가 나자 안카 아잔켈은 그제서야 소리 없이 눈을 한번 깜빡였다. 기록관이 자리에 앉아 그녀를 마주 보는 동안 보인 움직임은 그게 전부였는데, 그는 그것이 기력을 비축하려는 생존 지향적 움직임인지 혹은 패색을 내비치는 방식 중 하나인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평소보다 기록지를 느리게 펼쳤다.

그녀가 빈 기록지를 향해 시선을 물끄러미 떨어트렸다. 그 궤적을 더듬으며 기록관은 천천히 말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대화의 포문을 여는 것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제대로 못 잔 듯한 얼굴이네요, 아잔켈 양.”

“그런지 좀 됐어요.”

“저런.”

“이런 상황에서 편히 잘 수 있는 사람도 정상은 아닐 텐데요.”

 

안카가 되물었으나 결코 호전적인 어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맥없는 자조에 가까웠다. 그 말에 기록관이 웃었다.

 

“일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잔켈 양?”

 

그대는 혈육들의 죽음에도 눈물 흘리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듯한 질문에 안카는 건조한 낯으로 시선을 들었다. 기록관 역시 기다렸다는 것처럼 눈을 마주쳐왔다. 시선과 시선이 맞닿는 것과 동시에 안카가 숨을 들이켜는 것처럼 어깨를 뒤로 젖혔다. 기록관은 그 역시 놓치지 않고 보았다. 작은 경련과 떨림, 수축과 이완 따위가 모두 그의 시야에 담겼다.

안카는 본능적으로 그 시선에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한 매료는 어쩌면 철새가 환절의 시기에 떠나야 함을 가르침 받지 않아도 아는 이치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물푸레나무와 수레국화 사이에서 속삭였던 밀어가 목마른 사슴의 갈급함을 채우는 샘물처럼 달고 맑았던 것 역시 그러한 이유라고 한다면 설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자 되려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이 파도처럼 일었다. 학습된 양식과 판단력이 적절한 때에 그녀를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안카는 부러 방어적인 태도로 몸을 뒤로 물리며 어조에 빗장을 채웠다.

“굳이 그렇게 돌려 말하지 않아도 저를 비난하시려거든 더욱 쉬운 방도가 있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기록관의 기색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다만 비스듬하게 쥔 기록지 위에 짧은 문장을 적어 내리고선 소리 없이 웃었을 뿐이다.

 

“오해하시는군요. 저는 당신을 비난하고자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묻고 싶어서지요.”

“무엇을?”

 

기록관이 잠시 틈을 두었다. 답답하다고 느껴질 만큼이나 단조롭고 차분한 태도로. 아주 잠깐이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마치 시간을 잡아 벌린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되려 안카 쪽에서 조바심이 날 즈음이 되어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

“…….”

 

어느 순간 손끝에 닿아오는 열이 선명했다.

 

“무엇을 바라십니까, 안카 아잔켈? 소중한 것도, 지키고 싶은 것도 전연 없으십니까? 무릇 인간이라면 바라는 바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청빈한 수도사라고 할지라도 굶주리면 허기를 느끼고 고행 중에는 쾌적한 잠자리를 상상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주께서 과연 그들의 충동을 책망하실까요?”

 

열은 불길처럼 옮아왔다.

 

“바라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광야를 헤매는 그리스도를 현혹하는 악마의 속삭임이 마치 이러했을까. 미진하게 맞닿았던 손끝은 이제 명백하다면 명백한 의도를 담은 채 마디로 얽히고 있었다. 안카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오랜 세월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원망(願望)이 늪 갈대 사이를 헤집는 바람처럼 소란스럽게 일어났다. 물푸레나무와 수레국화, 나부끼는 면사 자락, 생채기 난 맨발의 차가운 감각, 호수의 물비린내. 마치 지척의 일처럼 생생한 그날의 기억. 동시에 눈동자에 서리는 불길. 안카는 그 불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거센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쇠줄 같은 관성이 안카 아잔켈을 자리에 매어 놓았고, 평생에 걸쳐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 발치에 묶인 풀매듭이 되어 마음속에 거리낌을 만들어 내었다. 곧 안카는 손을 놓았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하던 끈이 끊어진 것같이 힘없이 늘어졌다. 기록관이 물끄러미 여자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달싹거리던 불씨가 시나브로 사그라들고 있었다.

 

“사제께서 순진한 처자를 놀리시는군요.”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안카가 고개를 돌렸다. 심기가 상한 듯한 옆얼굴의 곡선과 모서리가 초승처럼 이울었다. 어쩌면 상처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록관이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탁자 위에 놓인 간소한 잡기들을 갈무리하는 동안에도 안카 아잔켈의 시선이 기록관에게로 향하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때로 외면이 응시보다 더욱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고 믿었으므로, 그는 상심하는 대신 기대감을 품었다.

 

“다시 오겠습니다.”

 

제법 다정한 어조였으나 안카 아잔켈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대로 문이 닫혔다.

심문 종료.

 

 


 

 

기록관이 떠난 지 세 시간 정도가 지나자 서서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안카에게 배정된 독실은 지상과 지하의 사이에 위치한 간이 석실로, 일몰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므로 실족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양초나 등잔이 필요했다. 그러나 검약을 미덕으로 삼는 사제와 수사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초와 기름을 쓰는 데에 상당히 인색한 편이었고, 어두운 통로를 걷는 일 따위에 그것들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했으므로 아주 깊은 밤이 되기 전까지 석실 주위는 더할 나위 없이 적막했다.

안카는 이 시간을 좋아했다.

좁고 높은 석실의 반창 사이로 비스듬히 스며들어오는 달빛이 벗은 발 위로 비스듬히 그이면 곧 멀리서 수리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도시의 율법과 경전의 규범, 활판의 빼곡함과 법도의 삼엄함, 판결과 처벌이 모두 저 세상의 것처럼 느껴졌다. 아잔켈의 성문율(成文律)은 옷의 매듭과 다듬어진 손톱 밑의 틈, 눈썹과 이마 사이의 잔주름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었으므로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언어를 폐해야만 했다. 안카 아잔켈의 자유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고요 속에서 비로소 찾아왔다. 그것은 어쩌면 죽음과도 닮아있는 모면, 혹은 낯선 나라로의 망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좀처럼 상시와 같은 정온함이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록관이 헤집고 간 마음속이 궃고 산란하여 충동적으로 굴고 싶은 마음이 한켠에 도사렸기 때문이다. 표정 없이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던 안카는 무심코 입고 있던 옷의 소매에서 은으로 된 단추를 거칠게 떼어냈다. 아잔켈의 이름으로 남겨진 몇 안 되는 사치품이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은 단추를 힘껏 내던졌다. 포물선의 반짝임.

곧 어두운 통로 한 가운데서 맑은 금속음이 울려 퍼졌고 모퉁이를 지키던 간수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석실 앞으로 걸어와 허리를 숙이고 은 단추를 주워들었다. 그 낯 위에 의아함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창살 사이로 흘러나왔다.

 

“형제님.”

 

의아함 다음에 오는 것은 경계심이었다. 뱀의 속삭임, 부정한 유혹, 마녀의 꼬임. 들어왔던 온갖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평범하고 독실한 체레보스의 시민이었다. 탈선을 멀리하고 일탈을 죄악시하는.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죄악의 은밀함과 현혹의 감미로움에 대한 저항이 두텁지 않았다. 간수는 반사적으로 반걸음 물러나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대로 몸을 돌려 가버리지는 않은 채로 머물러 있었다. 안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차 말을 붙였다.

 

“작은 부탁이 있어요.”

“내 권한 바깥입니다.”

“들어보지도 않으셨잖아요.”

“듣지 않아도 압니다.”

“부탁을 들어주시면 아잔켈이 나머지 은을 어디 숨겨두었는지를 알려드릴게요.”

“…….”

“과한 것을 말씀드리지 않겠어요. 그저 데운 브랜디 한 잔이면 괜찮아요. 물론 죄인 신분인 내겐 그조차 분에 넘치는 일인 걸 알지만, 형제님께서는 착한 분이시잖아요?”

 

가련한 죄인에게 그 정도 자비는 베풀어주실 수 있겠죠.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안카가 웃었다. 간수의 얼굴 위로 망설임과 주저가 스쳤다. 그의 눈에는 안카가 입매를 끌어당긴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치 이미 결과가 눈에 보인다는 듯한 태도로.

그것은 정말로 마녀의 유혹이었을까. 혹은.

 

 


 

 

공판 시작 321일째.

안카 아잔켈의 재판은 오래 지속되는 재판치고는 기묘할 정도로 늘 방청객이 많았다. 물론 법정 바깥까지 몰려든 구경꾼들로 인해 자못 곤란을 겪었던 공판 첫날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언제나 공석 없이 인산을 이루었으니 전례 없는 일이라 하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어수선한 웅성거림이 법정 안을 메우는 것을 보면서 기록관은 여분의 펜촉과 양피지 따위를 갈무리했다. 곧 가대복에 영대를 늘어트린 주교들이 들어와 앉았다. 재판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 삼 타와 함께 수런대던 소리가 잦아들고, 추락처럼 무거운 정적. 이윽고 측문이 열리고 안카 아잔켈이 걸어들어와 피고인석에 앉았다. 집전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호를 그었다.

 

“길 잃은 어린양에게 주님의 자비 있으라. 피고인 안카 아잔켈은 거짓 없이 증언할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건조한 목소리가 장내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이미 수백 번도 더 넘게 되풀이된 맹세의 말이 다시 한번 반복되었고 기록관은 그것을 기록했다. 삼백스물한 번째 기록지에도 첫날과 같은 문두가 고스란히 적혔다. 이어서 의례적인 절차의 확인 따위가 있고 난 뒤에야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안카 아잔켈, 고해하시오.”

 

요한복음 이십장 이십삼절. 재판은 언제나 이 구절의 인용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안카 아잔켈이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지시에 응한 적 없었으므로 법정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일관된 침묵 이후에 이어질 추궁으로의 이행을 마음속으로 예비했다.

그러나 그 날은,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안카 아잔켈이 입을 열었다.

 

“고해하겠습니다.”

 

그녀가 고해하라는 명령에 대하여 침묵을 지킨 지 약 300일 만의 일이었다. 법정 내가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 가운데서 안카는 천천히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어진 발언에 사람들의 기대감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결백합니다.”

 

안카가 입을 떼자마자 노골적인 웅성거림이 일었고, 집전 사제가 정숙을 외치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채 가라앉지 않은 수선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안카는 말을 이었다.

 

“물론 사람으로 났으니 나 또한 태초의 위반으로부터 비롯한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요. 매일 아침 올리던 새벽 기도, 식전마다 드리던 감사 기도, 잠들기 전마다 바치던 묵상 기도는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겠어요.”

 

짧은 휴지. 어느새 장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해져 있었다.

 

“다만 내가 고해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고해할 만한 죄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말을 타다 잘못하는 바람에 치맛자락과 소매를 더럽힌 일, 부주의로 인해 사촌이 빌려준 모자를 바람에 날려 보낸 일, 아파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성무일도에 아주 조금 늦은 일……. 모두 그 정도의 실수 정도는 저지르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이 죽어 마땅한 죄란 말인가요? 고해하지 않으면 사해질 수 없을 정도로?”

 

안카의 태도와 어조는 간곡하게도, 냉담하게도, 처연하게도, 잔악하게도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무고하고 정순한 여인의 곡진한 호소로,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사악한 마녀의 뻔뻔스러운 변명으로 들렸을 것이다. 이 순간 그녀는 ‘안카 아잔켈'보다는 좌중의 심중을 비추는 거울에 더 가까웠다. 투명한 유리창의 표면에 수은을 덧칠해 바르면 더 이상 창의 너머를 들여다볼 수 없는 대신 그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되는 법이다. 사람들은 안카 아잔켈을 통해 그 자신의 욕망을, 죄를, 치부를, 결점을 보았다. 그것은 옷장문 사이의 틈에서, 침대 아래의 어둠에서, 경전의 행간에서, 금지의 뒷면에서 사람들의 공포와 기피를 먹고 자라 온 것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만큼은 온당한 예외로 놓였다.

그는 쓰던 문장을 갈무리하는 대신 채 마르지 않은 펜촉을 그대로 내려놓고 재판정의 가운데 선 여자를 바라보았다. 성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모든 계약에서 자유로웠으므로 예외로 셈해질 수 있는 자였다. 계율로부터 분방하며 욕망에 구속되지 아니하고 죄업에 눈멀지 않은. 그에게는 범부들에게 보이지 않는 거울의 뒷면이 보였다.

거울의 뒷면에서 안카는 면직으로 짠 홑옷 차림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맨발로 추는 이름 없는 춤. 사라방드도 폴로네즈도 파반느도 아닌 이상한 춤이었다. 거친 들풀과 나뭇가지가 살결에 상처를 내도 안카는 멈추지 않았다. 발목과 뺨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그였다. 상처는 일종의 기록이었고, 춤은 일종의 고해였다. 사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공한지 들판 위를 마구 내달려 치맛자락을 찢고 말았죠. 사실은 일부러 바람에 모자를 날려 보냈고. 사실은 몸이 아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기록관은 그 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러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물푸레나무와 수레국화를 사이에 두고 그러했듯이, 안카 아잔켈과 눈 마주친 이후로 그는 한반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도시의 율법과 성곽의 두터움을 잊을 수는 있어도 호수의 늪 갈대와 나부끼는 면사 자락. 티끌 없는 맨발 등의 부드러운 감촉 따위를 잊을 수는 없었기에.

시선이 얽혔다. 또다시 먼 계절의 바람이 불어왔다.

 

 


 

 

공판 시작 86일 전.

체레보스의 여름은 언제나 가파르게 찾아왔다. 버드나무의 새순 같은 봄이 지나면 곧 시작되는 것은 짙푸른 녹음과 숨 막히는 생장의 계절. 장엄한 기슭으로부터 범람하는 색채로 물드는 나날들. 그 시기가 찾아오면 안카는 밤마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웃자란 쐐기풀이 끊임없이 물결치는 들판 너머로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른 채 뒤척여야만 했다.

언제나 가슴이 답답했다. 가문의 주치의는 빈맥을 진단했지만 안카 스스로는 그것이 심화증임을 알았다.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보이지 말아야 할 것과 내보여야 할 것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법칙과 제도 사이에서 능란하게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것을 즐겼고 누군가는 틀과 울타리를 짓고 쌓는 것으로부터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들을 그다지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평탄한 삶을 위해서 기꺼이 고개를 수그리고 허리를 굽힐 줄 알았으나 안카는 좀처럼 그들과 같아질 수 없었다. 아잔켈이 배열한 활자와 활판 사이에 갇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느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가 공목(空目) 같았다. 활자를 조판할 때 인쇄할 필요가 없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쓰는,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빈 나무 조각. 보통의 활자들보다 높이가 낮아 금세 자리에서 빠져나가곤 하지만 그때마다 붙들려 본디의 위치로 돌아갈 것을 요구받는.

그럴 때면 마음속에 불이 일어 몸을 가만히 두는 것 만으로도 경기가 일었으므로 무언가를 뿌리치고 떨쳐내는 듯한 모양새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만 했다. 잔머리가 귀밑으로 빠져나오거나 치맛자락을 제대로 펼치지 않고 의자에 걸터앉았거나 신발코에 흙먼지가 묻었다는 이유만으로 질책을 듣고 벌을 받아야만 했던 소녀는 한밤중 저택의 측문을 빠져나와 면직 홑옷 차림으로 들판을 내달리는 처녀로 자랐다. 도랑천에서 진흙을 죄 씻어내고 해가 뜨기 전에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돌아와 창문을 닫으면 아무도 그녀의 일탈을 몰랐다.

그리고 어느 여름, 안카는 그렇게 달려 나간 곳에서 그를 만났다. 물푸레나무와 수레국화, 나부끼는 면사 자락, 생채기 난 맨발의 차가운 감각, 호수의 물비린내와 부드럽게 뭉개지는 진흙 따위를 사이에 두고.

철성이 무너지고 안카 아잔켈이 피고인 자격으로 재판정에 세워지기 약 세 달 전의 일이었다.

 

 

 

 


 

 

폐정을 알리는 의사봉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오늘도 별 진전은 없었군. 아까의 그건 뭐였지? 단순한 변덕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어느 순간부터 입을 딱 다물어 버렸잖아. 좌중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기록관은 필기구들을 갈무리했다. 상석에 앉았던 주교와 사제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는 말소리, 낮은 속삭임, 조소에 가까운 웃음소리. 그 모든 것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에야 법정은 고요해졌다.

적막한 법정. 이미 비어있는 피고석을 보면서, 기록관은 안카 아잔켈의 발목에 대해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복사뼈 근처에 남아 있는 작은 흉에 대해서. 그는 그 상처의 내력을 알았다. 기록관이라는 직명을 달기 전의 일이었다.

 

‘발목에서 피가 나요.’

‘뭐?’

‘억새풀에 베인 건가. 이리 와봐요.’

 

그날, 억새풀과 버들잎 사이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던 여름밤, 처음 보는 여자의 발목에 제 손수건을 매어두고 그는 자신을 요한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이름은 조금 다르게 발음되어야 맞지만 이 지역에서는 그렇게 불리는 편이 보다 적절할 것 같다는 덧말을 붙이면서. 그러나 안카에게는 그가 에둘러 소개한 이름이 더욱 어색하게 들린 모양이다. 그 이름을 두어 번 반복해 읊어보고서 그녀는 웃었다. ‘안 어울려.’ 산기슭으로부터 내려온 바람이 검은 머리칼을 사정없이 헝클어트렸고, 멀리에서 삼나무 향이 알싸하게 번져 흘렀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기록관은, 아니, 요한은, 아니, ‘훤효'는 알았다. 그의 영혼이 눈 앞의 여인에게 돌이킬 수 없이 매여있음을. 그것은 태생으로부터 비롯한 부름이요 본질로부터 예비된 저주였다. 설산과 봉우리, 얼음사막과 침엽수림 사이에서 처음 이름 불리웠을 적부터, 불에 타고 물에 잠기며 몇 번이고 되살아나며 떠돌아온 오늘날까지 줄곧,

그는 그녀가 행복하길 바랐다. 혹은 ‘행복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마치 별이 뜨고 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 바람에 풀이 눕고 서는 것과 다르지 않은 끌림으로, 밀물과 썰물의 교차와 닮은 방식으로.

언제고 앎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여름의 끝과 함께 철성이 무너졌고, 곧 안카 아잔켈이 고해하지 않는 자로서 재판에 회부되자 그는 수단을 꺼내어 입었다. 당신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전례복을 입을 적에 바치는 시편 16편 5절의 기도가 입안에서 사금파리처럼 맴돌았다. 로만 칼라가 족쇄처럼 목을 죄었다. 펜과 기록지를 들고 독실로 걸어가는 걸음 뒤로 기이하게 늘어지는 그림자가 불길처럼 일렁였다.

그리하여 신앙은 어떻게 발생하고, 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공판 시작 330일째.

지지부진한 며칠간의 교착이 있은 후 주교와 사제들 사이에서 일말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수도회에서 아잔켈의 마지막 은 창고를 들추어 찾은 지 만 이틀 만의 일이었다. 더 이상 재판을 길게 끌 이유가 없어지자 교회에서는 서둘러 재판을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최후 변론일이 정해졌다. 일 년을 꼬박 채우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며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냉정한 눈빛을 하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석실 위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오자 기록관이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고 가늠하면서 그는 안카의 표정을 살폈다.

안카는 초연해 보였다. 혹은 두려움에 지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본디 지나치게 오랜 공포에 노출된 인간은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신경을 무디게 갈아버리는 법이므로 의연함과 비굴함은 쉽게 판별되지 않는 것이었다. 시나브로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빛과 어둠이 차례대로 그들의 낯을 덮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뒤섞였다. 신과 신자, 죄인과 성자, 회답자와 질문자.

 

“기억이 나요.”

 

기록관이 머리 위로 들려오는 발소리와 웅성거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만 있자 안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렸을 적에 나는 누군가 불타 죽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이례적인 징후에 기록관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뺨이 달아오를 정도로 뜨거웠던 열기와 내 눈을 가리던 누군가의 찬 손의 감촉을 어렴풋하게 떠올릴 수 있어요. 아마도 동행했던 사용인이었겠죠. 하지만 그 자신 또한 불길에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손 틈이 벌어졌고, 나는 그녀의 손 틈 사이로 그가 불타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불길이란 참으로 무섭고도 아름다운 것이더군요. 혹은 생명이 스러져 재와 먼지로 화하는 그 과정이 신비롭고도 두렵게 느껴졌을까요. 자신의 왕국에 불을 지르고 자신 역시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살라 먹혔다는 옛 왕국의 황제를 떠올려요. 어쩌면 그는 악마에 홀린 채 스스로가 만들어 낸 황홀경 속에서 죽었을지도 모르죠. 그야말로 행복한 종말이라 하겠어요. 그 어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요. 두려움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복된 일이겠지요. ……하지만 아마도 나는 고통과 비명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갈 거예요. 악마에 홀리지도 마녀로 태어나지도 않은 나는 한낱 인간, 평범한 여자일 뿐이니까요. 그렇지 않겠어요?”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눈빛.

이윽고 화답하듯이 안카 아잔켈의 앞에 앉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뜻이죠?”

“촛불을 쥐어서 끄는 것은 뜨겁지 않죠.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세상을 저버리고 율법을 등지는 탈선을 바란다면 그 간절함에 악이 응하는 일도 있지 않겠습니까.”

“…….”

“물론 단순한 가설일 뿐이지만요.”

 

남자가 단조롭게 웃으며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여자의 발목에 매어주었다. 그 단순한 행위에, 지금까지 나눈 모든 말들보다도 많은 함의가 실려있었다. 자, 갈까요.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고 안카가 맞잡았다. 간소하게 갈무리한 두 사람의 옷자락이 미지근한 곡선을 그리며 늘어졌다. 그것은 마치 미사를 집전하러 가는 주교, 혹은 의식을 주관하러 가는 고대 사제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다. 곧 층계를 올라 측문을 지나 두 사람은 재판정 가운데로 들어섰다. 므깃도의 언덕으로.

그들이 각각 자리에 앉자 곧 의사봉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판은 마치 미리 짜인 극본의 이행과도 같이 손쉽고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요식적인 최후 변론과 판결을 위한 약간의 휴식. 그리고 최종 판결. 그 누구도 놀라게 하지 못할 뻔하디 뻔한 결과. 안카 아잔켈에게는 수장형과 화형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제시되었다. 비교적 죄질이 나쁘지 않은 죄인들에게 선심을 쓰는 듯이 주어지는 약간의 자비. 사람들은 그녀가 수장형을 선택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산 채로 불태워지는 것의 고통보다는 질식해 죽는 것이 비교적 덜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따라서 좌중은 별 긴장 없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안카 아잔켈은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반쯤 기울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

 

그녀는 웃고 있었다.

 

 

 

 


 

 

공판 시작 331일째.

횃대에 불이 옮겨붙었다. 그 열기에 놀란 시민들 사이에서 잠시의 소란이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곧 타오르는 불의 아지랑이에 매료된 듯이 사람들의 눈빛이 야릇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람의 천성이란 참으로 기이한 것이어서, 약한 것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핍박하고 고통을 주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잔악함 역시 있었다.

이것은 저것의 그림자요, 저것은 이것의 그림자다. 그러므로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곧 처형 집행인이 여자를 끌고 와 형대에 묶었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 횃불에 비친 안카의 얼굴이 음영이 져 기이한 형상으로 이지러졌다. 섬뜩하게까지 보이는 초연함, 혹은 공포에 질린 암사슴. 어느 쪽이든. 누군가 던진 자갈이 형대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 그것을 효시로 삼아 사람들의 모욕과 비난이 쏟아졌다. 형대 앞을 지키는 군인들은 사람들의 패악을 막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안카는 시종일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그녀의 의연함이 곧 마녀의 증표라며 공박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광인이거나 악마일 것이라면서. 문득 그 말이 우스워 안카가 웃자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하는 목소리가 일었다. 간이 석실에서 보낸 일몰 이후 모든 것이 뒤섞였듯, 횃불 그림자 속에서도 동일한 혼입이 일어나고 있었다. 기이하게 늘어지는 그림자가 불길처럼 일렁였다. 안카의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하나가 되어 체레보스의 혈관으로 스며들었다. 마른 장작 사이에 짐승 기름이 스미듯.

곧 사제의 기도문과 함께 집행의 불씨가 쌓인 장작들 위로 옮겨붙었다. 바싹 마른 나뭇결들 사이로 불길이 무섭게 번져나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 맹렬함에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곧 들려올 여자의 고통 어린 비명 소리를 고대하면서.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안카 아잔켈은 불에 타지 않았다. 대신 비명은 오히려 그것을 기대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저것 좀 봐! 누가 손을 들어 형대를 가리켰다. 좌중에 불길이 번진 듯한 소란이 퍼져 나갔다. 굽이치는 뿔과 뱀처럼 너울거리는 머리칼, 죄인을 가호하듯이 뻗은 손 따위가 영락없는 악마의 모양새였다. 부제들은 낯색이 새파래졌고 수사와 사제들은 황급히 성호를 그었다.

그 가운데서 안카는 눈을 감았다. 보지 않아도 그가 거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뺨을 스쳤다. 뭇사람들에게는 살모사와 불독사처럼 보였을 것이나 안카에게는 물푸레나무의 잔가지처럼 느껴졌다. ‘촛불을 쥐어서 끄는 것은 뜨겁지 않다.’ 그 말뜻을 이제야 온전히 알 것 같았다. 비명과 소란, 울부짖음과 웃음 사이에서 안카는 손을 뻗었다. 거울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들은 부재(不在)에 녹아들었다.

 

 

 


 

 

 

공판 종료 58일째.

 

“새로 오신 분이로군요. 요한 사제님의 후임이시라고요.”

“예, 맞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머무실 곳을 안내해 드리죠. 발밑을 조심하세요. 층계의 높이가 불규칙합니다.”

“생각보다 회당이 크군요. 자칫하면 길을 잃겠습니다.”

“초행으로 오시는 형제님들께서 종종 그렇게 말씀하시죠. 체레보스에는 처음이신가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보았지만요.”

“가장 최근에 들은 이야기가 무엇일지는 여쭙지 않아도 알겠군요.”

 

수사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기록관은 애매모호하게 웃으며 그의 뒤를 쫓아갔다.

긴 회랑을 걸어가면서 기록관은 체레보스의 기사건에 대해 생각했다.

두 달 전에 있었던 화형식 이후 도시는 기이한 광기에 휩싸여 몸부림쳤다. 마치 불의 열기가 도시 전체에 퍼져나간 것만 같았다. 깨진 거울 조각에 사람들은 자신을 비추고, 타인을 비추고, 나아가 세상을 비추어 삼켰다. 광란의 한때였다.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죄와 욕망이 밝은 횃대 아래에서 명명백백히 드러났고 차마 기록지에도 적히지 못할 일들이 며칠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열 가지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애굽의 모습이 마치 이러했을까.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숨죽인 흐느낌과 사죄경 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두 돌이킬 수 없이 죄인 되었음을 깨달았다. 체레보스 사람들은 모두 고해소 앞으로 걸어 나와 서로의 눈을 피하고 얼굴을 가리우며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이 날 것의 부끄러움과 비참함을 견뎠다. 언제나 그랬듯이 수치는 아는 자의 몫이었다.

이 모든 희극을 뒤로 하고 사라진 남녀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 파견된 성기사들이 기슭과 호숫가, 인근의 민가와 산야 등을 철저히 수색했으나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악마와 마녀'는, 그 어디로도 떠나지 않았고 그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은 것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간이 석실의 위를 지나면서 기록관은 생각했다. 도시에 죄를 흩뿌리고 떠나간 남녀는 기어코 자유로워졌을까. 그 자신들을 얽매던 의무와 굴레 따위로부터 영원히 벗어나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산기슭으로, 골짜기와 늪지대로, 설원과 사막으로 떠나갔을까. 그들이 오래전부터 가야 했던 곳으로, 끊임없는 변모와 회전을 반복하면서.

혹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우리의 친절한 이웃으로, 성실한 시민으로, 평범한 여행자로, 친숙한 근린으로 나와 당신의 사이를 맴돌고 있을까.

 

‘마치 주께서 우리 곁에 임하시는 것과 같이.’

 

그는 멈추어 서서 회당의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형대에 매인 독생자의 편안한 미소가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 진정으로. 신앙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서 차용.

** 잭 런던,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I would rather be ashes than 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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