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톡

갈라하이_여상如常한 애상愛想으로

못 보던 직원이나 환자가 들어오거든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인수인계와 입원 수속은 물론이고, 매번 그 질문을 거쳤다. 여기서 얼마나 일하셨어요? 오십 년이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한 일만 하셨어요? 직원이라면 앞의 질문을 생략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하다보니 그리 되었더라 대답했다. 간혹 이 말도 반세기 동안 하셨겠다 덧붙였다. 뭉뚱그렸지만 그들의 질문은 물음보다는 감탄사에 가까웠으니 이걸로 되었다. 적응을 어려워하는 신입이 묻는다면 경험을 섞은 조언을 하면서도 정말로 내가 어떻게 이 일을, 오십 년간, 계속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전장에서의 일은 그런 식으로 묻거나 대답하지 않는 법이었다.

반복이란 첫인상이 지겹다만 규칙과 안정이란 분야에도 있었다. 아침이면 셔츠며 타이에 갑갑해 하고, 운전대를 잡고 하이드의 상투적인 말들에 역시나 보편적인 말을 하고, 사무실 앞을 지켰다. 본격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건 밤이었다. 만취한 하이드가 다른 테이블에 시비 거는 걸 막아섰다. 고용주로부터 남을 지키는 형국이었다. 경호원 직을 제안했더니 술집을 지키더란 비아냥이 틀리지 않았다. 맞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자주 가던 바가 부도나는 일은 내 소관이 아니었다. 게다가 병원으로 이직하고도 수십 년이 흐른 다음이었다. 도시 구석에 자리 잡은 것치고는 오래 갔다만.

목이 좋지 않아서일까. 가게 주인이 바뀌는 빈도만큼 업종도 다양하게 갈라졌다. 그렇게 돌고 돌다가 카페에 정착한 모양이었다. 기억하는 바로는 육 년 전에 개점했다. 못 보던 가게와 사람은 운영 방식도 못 보던 식이었다. 일몰 후에나 문을 여는데 별도의 메뉴판이 없었다. 무엇이든 주문하면 재료가 되는 선에서 내어주었다. 주문이라니 요청 내지는 요구란 인상이었다. 요구 한 잔의 가격이 모두 같았다. 카페라떼부터, 카페인에 생강이 어우러진 늑대인간 진정제까지 같은 값을 받았다. 가게의 여러 사정이야 궁금하다만 내게도 꺼내지 않은 사정事情이 있는바 묻지 않았다. 가능한 가정을 몇 가지 해보다 일어섰다.

아침에 출근하거든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야간조 주간엔 일찍이 나와 카페에 들렀다. ‘하다보니’ 근래 카페를 잊고 지냈지만 말이다. 다시 생각난 건 하이드의 연락과 함께였다. 그는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자네는 같은 번호를 몇십 년을 쓰는군.

내가 전화번호를 바꿨으면 어쩌려고 그랬나.

이메일을 보내고, 그마저도 받지 않으면 병원에 찾아갈 생각이었지.

직장도 옮겼으면?

헤. 자네가 그럴 리 없어서 생각 안 해봤어.

그런 면으론 자네도 여전해.

시애틀도 여전한가? 이번에 머물 일이 생겼거든.

그 대답은 만나서 하지.

하이드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간의 회포를 늘어놓았다. 거리를 몰라보겠단 말이 팔할이었는데, 말하는 본인은 그대로였다.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굴려 치켜보았다. 입꼬리도 어디 한 쪽만 올리고 기분 나쁘게 웃는 게 여전했다. 달라진 구석을 찾다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보폭을 벌리는 태가 여유로웠다. 그것도 자본가 시절과 비교해야 유의미한 차이였다. 의류 모델로 자리잡고서는 줄곧 우아하셨다. 경호원이었던 나는 의아했고. 이럴 때면 내 머릿속에, 그 시절에 박제된 하이드가 든 것 같았다. 카페에 앉자 하이드는 내 대답이랄 것을 알아차렸다. 바에서 카페가 되어버린 이곳이 나쁘지 않다는 말에 왜인지 변호하게 되었다. 하이드는 금방 제지했다.

갈라…. 나쁘지 않대도.

이후 하이드와 나는 같은 차를 마셨다. 생강을 넣은 커피라니 바리스타와 내게야 익숙하다만, 생소할 하이드까지 같은 걸 주문할 줄이야. 그는 잠시 눈을 내리깔아 제 잔을 보았다. 검디검은 수면睡眠에 본인이 더러 맺히는 때가 있으니 커피 위로 얼굴이 비칠지 몰랐다. 흠집 없는 얼굴이 일렁일지 모를 일이었다. 곁눈질이 따라붙기에 얼른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이드는 좋은 선택이라며 마저 홀짝였다. 병원에서 긴급호출이 왔을 때는 두 잔이 비었다. 택시는 하이드의 호텔로 향하기 전 병원을 경유했다. 초입에서 하이드가 다시 말했다.

자네는 여전해. 역시 여전하단 점까지.

그래서 나쁘지 않다, 그 말인가?

따라오는 말이 없기에 동의즈음으로 생각하고 차문을 열었다. 우산을 펼치고, 문을 밀어 닫을 때까지 끄는 줄이야.

자네의 그런 부분은. 좋아하지.

계산에서 나온 타이밍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문 닫히는 소리가 마침표처럼 날 수 없었다. 돌아본 자리는 허공이어서 빗줄기가 떨어졌다. 응급실 간판등이 비쳐 붉은 빛으로 내렸다. 전화를 걸 생각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택시를 탄 덕에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전화에 대고 할 말을 짜냈으나, 들릴 만한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물웅덩이를 밟고 섰다. 넘치는 시간이었다. 구두 안으로 빗물이 들어차고 바지 밑단이 흠뻑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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