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톡

갈라하이_Savory

타이 발데스의 노래 How deep? 을 모티프로 썼습니다.

https://youtu.be/Dpuv0DVbYFA?si=ofL5hof_oKNXdkIH

하이드는 커피나 차 외에 와인도 좋아했다. 뱀파이어라면 새빨간 포도주를 좋아할 것 같지? 예의 이죽거리는 웃음과 함께 물었다. 하이드가 좋아하는 건 알코올 맛이 확 올라오는 화이트 와인이었다. 그럴 바에야 위스키를 마시는 게 낫지 않나.

 

방금 위스키를 마시란 생각했지? 자네 얼굴엔 다 써 있어.

뱀파이어들은 정말 생각을 읽을 줄 아는 겐가?

헤. 그럴 줄 알았으면…. 아닐세.

 

말하다 만 건 하이드건만 찜찜한 표정을 짓는 것도 그였다. 나는 묻지 않기로 했다. 하이드가 싫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 보디가드 시절의 원칙이었는데 정작 그때보다는 지금 더 자 잘 지켰다. 그때는 늦은 밤에 외출하려는 하이드를 막아서기 바빴다.

 

그건 그렇고, 오늘 한 잔 하지.

지금도 마시고 있다네.

 

아직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하이드가 코웃음을 쳤다. 핸드폰을 조금 보다가 일어섰다.

 

내가 자네 집으로 가지.

그러게.

 

오늘 밤은 욕실 문을 잘 잠그고 씻어야겠다. 하이드에겐 내 아파트 카드키가 있는데, 그걸로 냅다 들이닥치곤 했다. 어디 있냐며 서슴지 않고 욕실까지 열어젖혔다. 그러니 오늘처럼 예고를 해주면 절을 할 일이었다.

하이드가 먼저 따나고 나는 남은 짜이라떼를 마셨다. 에어컨을 켰대도 여름에 마실 차는 아니었다. 내 치료제는 따듯하게 우려야 하고 계피까지 들어가 뱃속이 뜨끈뜨끈했다. 바로 나갔다간 열대야에 둘러싸이기까지 해 땀이 줄줄 났다. 습한 공기와 땀에 덮이면, 한껏 부푼 근육과 털로 옷이 불편하던 감각이 떠올랐다. 맨정신으로 그 느낌을 받아내기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달빛에 취해 비몽사몽한 정신으로는 괜찮단 뜻이 아니었다. 차악과 최악의 차이였다.

따듯한 라떼 기운이 누그러들고서야 의자에서 일어섰다. 바텐더가 와인과 잘 어울리는 치즈가 있다며 종이로 포장해주었다. 짭쪼름하니 로제와인의 단맛을 중화시켜 줄 거란다. 그런데 웬 로제와인이지? 하이드라면 열이면 아홉 화이트와인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가끔 짓궂게 뱀파이어식 장난을 칠 때였다.

 

집으로 돌아와 우선 인기척을 살폈다. 아직 하이드가 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문을 잘 잠그고 물을 맞았다. 더운 여름밤을 가르고 들어온 만큼 냉수로 틀었다. 차가운 물이 솨아 쏟아져 점점이 열기를 식히다가 몸을 아주 적셨다. 근육 굴곡을 따라 흐르는 느낌이 나른하니 좋았다.

 

갈라!

 

문이 열리는 전자음과 동시에 하이드가 외쳤다. 아직 비누칠도 못했는데 저 성질 급한 노인네 성미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눈가의 물을 훔치고 샤워타월을 문질렀다.

 

기다리게.

 

문을 쿵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때렸다. 서둘러 비누칠을 하느라 드문드문 할퀸 듯이 살갗이 달아올랐다. 하이드에게 긁힌 기분이었다. 물론 뱀파이어의 손톱이라면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다. 머리도 감는지 적시는지 모르게 감고 수건으로 털었다. 수염은 물기만 훔치고 밖으로 나왔다. 물기 어린 몸에 억지로 옷을 입자니 다 들러붙었다. 이래서야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네 성격은 언제 느긋해지는 건가.

일단 자네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니야.

 

휘둥그레 뜬 눈으로 하이드를 쳐다봤다. 과연 창백한 피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술도 급하게 마시는 그는 취하기도 빨리 취했다. 나중엔 술이 술을 마시는 형국이었다. 이 상태로 문을 고작 한 번 때린 것도 용하군. 고개를 저으면서 하이드에게서 와인병을 뺏었다.

 

히끅. 오늘은 달콤한 게 당기더군.

 

그의 말대로, 그리고 바텐더의 말대로 로제와인이었다. 둘이 입을 맞추기라도 했나. 무얼 위해서. 물음을 꺼내기도 전에 하이드가 코르크 마개를 땄다. …제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러더니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한 모금치고는 많이 마셨다. 내게도 내밀어 실랑이를 하다가 나도 조금 마셨다. 달콤하고 간지러운 탄산이 지나갔다.

 

자. 갈라. 우린 무슨 사이지?

우리는….

 

대답하기 직전 하이드가 풀썩 쓰러졌다. 새근새근 잠드는 걸 침대에 누이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달콤하고 보글보글한, 자네가 일부러 가져온 이 와인 같은 사이지. 생각하면서 하이드만큼 벌컥벌컥 마셨다. 조금만 늦었으면 입에서 입으로 넘겨줬을지 몰랐다. 구체에 가까운 달을 쳐다봤다가 병을 들어 한 잔 더 마셨다.

 

말 한 마디 안 하는 내 잘못이겠지.

 

바텐더가 준 치즈도 한 입 먹었다. 짭쪼름하니 언젠가 하이드가 몰래 입을 맞췄던 날 같았다. 오늘은 비교도 안 되는 열대야였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 땀이 맺혔다. 하이드가 입을 맞춰 입가에 배긴 염분기가 들어왔다. 키스라면 응당 밀려와야 할 혀 없이 짭쪼름한 맛으로 입만 축이고 사라졌다. 나는 뒤늦게 눈을 뜨고, 누운 채로 그믐달을 봤다. 뱀파이어는 그믐에 취하는 걸까. 오늘 하이드의 행태를 보면 아무래도 상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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