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커미션] 베엘풀문_창백한 푸른 점

신청 감사드립니다 ・∀・)ゝ”

 징그럽고 잔인한 묘사가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려요.

 

창백한 푸른 점

바’ 알자토스 X 하트풀 문나잇 유닉스

커미션 신청자: 베르 님

해양생물 씀

 

 

 

 

 

 

웬일로 정원의 밤하늘이 조용했다. 해가 지면 하늘을 떠도는 베헤모스와 혼돈들, 그리고 그사이를 채우는 숱한 별들이 없어서였다. 그들은 오늘 아침 정원의 하늘에서 또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떠났다. 달만이 남아 온통 검고 어두웠다.

베엘이 누워서 그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늘 샛노랗던 달이 푸르스름하니 창백해져 베엘의 눈으로 들어갔다. 보랏빛 눈에 드는 창백한 빛이라. 썩 매력적이고 마력으로 가득찬 눈이나, 유닉스는 어서 감기길 바랐다.

“안 자고 뭐해.”

“이상하게 잠이 안 와.”

이에 문나잇이 짧게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 푸른 유리병을 가지고 돌아왔다. 병에는 정원에서만 나는 푸른 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들었다. 야광 해파리가 떼지어 다니는 밤바다처럼 깊고 푸른 빛에 점점이 하늘색 알갱이가 떠돌았다. 베엘도 일어나 와인잔을 가져왔다. 유닉스의 손에서 낚아채 흥얼거리며 잔에 따랐다.

“우리 자기를 위해 건배.”

“건배.”

환한 웃음과 축사에도 유닉스는 건조하게 응했다. 베엘에겐 친숙한 일이고, 익숙한 아내의 모습이었다. 해서 만족스럽게 웃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오늘 밤 같아.”

베엘이 밤하늘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하늘을. 유닉스가 손가락을 따라 텅 빈 하늘을 쳐다봤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확실히 밤이네. 중얼거리듯 말했다.

 

 

* * *

 

 

 

온통 검어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어디에 있는지 모를 우주. 빛이라곤 유닉스의 우주선뿐이었다. 하얀 우주선이 창백한 빛을 두르고 떠돌았다. 주변에는 소행성이나 운석조차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도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었다. 유닉스는 인지란 것이 잡아먹힌 듯했다. 오래 전에 본 성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금속으로 매끄럽게 잘라낸 것 같았다. 아니면 유닉스가 좋아하는 레이저로.

‘그런데 레이저가 뭐였지.’

이 대목에서 유닉스는 털이 곤두섰다. 지식, 앎을 잃는 건 그에게 섬찟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당장눈앞에 펼쳐진 붉은 점의 행렬보다 두려웠다. 수많은 안광과 뾰족한 이빨 들이 번뜩이는데도, 레이저가 무엇인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맞아, 저런 거였어. 이마에 땀이 서너 줄기 미끄러지고서야 겨우 떠올렸다. 이에 한 번 더 식은땀이 퍼졌다.

그러는 사이 붉은 점이 선으로 면으로 불빛으로 변했다. 그렇게 모여 살덩이 같은 형상을 붉게 비췄다. 동물의 살갗을 뭉쳐 또다시 찢고 짓이긴 것처럼 징그러웠다. 이전의 어둠, 혹은 우주처럼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박동을 뛰며 꾸물거릴 때는 우기부기의 넝마 속을 닮기도 했다. 유닉스가 뒤늦게 침을 삼켰다. 이미 신물이 넘어와 맛이 시큼했다.

그럼에도 아직 이 괴물의 끝을 보지 못했다. 유닉스는 봐야만 했다. 괴물이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간 해온 앎과 관찰이 제 근간인 탓이었다. 신물을 삼키며 목을 젖혔다. 꺾이기 직전에서야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런들 유닉스는 자신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고깃덩이에 붙은 곤충의 다리도 그렇지만, 파리가 인간을 찢고 나온 듯한 형상은 처음 보았다. 보았다고 해도 될까? 유닉스는 이제 스스로를 의심했다. 어쩌면 제 머릿속을 뒤져 가장 흉악하게 여기는 모습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심심풀이로 보던 비디오에서 익히 나오던 트릭이었다.

간파했다고 착각한 순간 달리한 공포가 습격했다. 계속해 넘어오는 신물을 포함해 몸이, 존재가, 무無로 변할 것만 같았다. 실현된다면 저 괴물의 이에 짓이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지할 틈 없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 마냥 없어질 조짐을 느꼈다.

합금은 익히 먹어봤다. 그러면 속에 든 너는 무슨 맛이지

소리까지 없는 우주에서 어째서인지 교신이 넘어왔다. 자동으로 번역되어 우주선 내부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유닉스는 어떤 언어가 넘어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귀에 들리기보다는 머릿속으로 직접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삼켜질 두려움 위로 무지無知의 공포가 겹쳤다. 실은 아까부터 공존했다.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저 고기인가. 먹어보면 알겠지.

무無와 앎知이 교차할 것에 유닉스가 입을 바들바들 떨었다. 필사적으로 혀와 입술을 움직여 말하려는 발버둥이었다. 빗금 같은 틈에서 비로소 유닉스의 지려가 움직였다. 이 공포는 힘으로 쓸 수 있었다. 고작 지구에 사는 얼간이들은 알아서 죽음을 자처할 테다.

‘나만큼 버틸 수가 없을 걸.’

그리고 봐줄 만할 거야. 유닉스가 찍소리도 못 내고 바닥에 옹송그린 머저리들을 상상했다. 무엇보다 저 힘을 부리는 상상만으로 짜릿했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당신에게, 제안을… 하나. 하러 왔다.”

흠? 보잘 것 없었다간 이 바’ 알자토스가 너를 털끝 하나하나 천천히 씹어주지.

괴물은 짐짓 겁을 주었으나 유닉스는 더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임계점을 넘어가면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법이었다. 그래도 듣고자 하는 흥미는 있어 유닉스에게 자그마한 칼집을 내주었다. 유닉스는 다급하게 숨부터 골랐다. 그 와중에도 바’ 알자토스의 신화가 무엇인지 머리를 굴렸다.

“당신은 삼키는 걸 좋아하지. 하지만 채울 수는 없어. 당신의 실체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잖아. 당신이 우주 다음으로 클 걸.”

제안을 듣겠다 했지 사탕발림을 듣겠다 한 적은 없다. 네 말대로 찰나에 달콤할 뿐이다.

“당신이 쓸 육체를 만들게. 그럼 당신 몸에 달하는 공허감을 견디지 않아도 돼. 인간은 당신만큼 먹지 못해. 차마 감당할 수 없지.”

공허감마저 삼키면 그만이다. 고작 인간이 되라고? 털끝이 아니라 네가 아는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 먹어치우겠다.

“인간은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유닉스는 제 목이 다시 죄어드는 걸 감지했다. 성대가 아주 찌그러지기 전에 필사적으로 외쳤다.

“정 마음에 안들면!”

바’ 알자토스는 비명을 지르는 음식에겐 너그러웠다. 해서 미물의 헛소리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만든 육체를 찢어 발기고 현신하면 되잖아? 그 다음 내 몸까지 찢어 삼켜도 그만이야.”

역설적으로 폭식의 마왕에게 배를 채울 것이 없듯이, 유닉스는 더 잃을 것이 없었다. 유닉스는 당장은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지금은, 이미 빼앗겼다고 생각해 위축되어선 안 됐다. 자신의 연구실과 연구비는 물론이고 행복했던 가정까지 짓밟혔다. 아아. 사진첩만은 남았다. 유닉스의 텅빈 머리에 지켜야 할 것이 떠오른 셈이었다. 아주 천운이었다.

네 눈알과 혀를 피에 적셔 머으면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하군. 좋다.

순식간에 유닉스의 숨통이 열렸다. 머리에도 어떤 구멍이 생긴 것처럼 지식과 정보, 견문, 이념을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다. 행복해 마땅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유닉스는 현재 필요한 것만을 좇았다. 인간의 육체를 만드는 법 말이다. 우선 작업실부터 시작해야겠다.

 

 

* * *

 

 

알딸딸하게 취한 베엘은 문득 달콤하던 포도주가 밍밍해졌다. 취기가 올라오긴 했다만 다른 이유에서였다. 당돌한 계약 이후 종종 유닉스가 보여주던 시연품이 떠오른 덕이었다. 긴 머리가 치렁치렁해 따지곤 했다.

“당신의 그 촉수를 보고 만든 거야.”

이랬던 핑계가,

“그게 마음에 들거든.”

으로 바뀌던 순간을 기억한다. 시연품에서 완제품으로 넘어간 날이었다.

“그때부터였을 거야.”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유닉스가 눈썹을 찡그렸다. 무언갈 처음 보면 그런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자신의 머릿속에 없는지, 혹여 잊은 게 아닌지 회고하는 버릇이었다. 베엘이 좋아하는 얼굴 중 하나였다.

“자기를 사랑하게 된 순간을 떠올렸어. 우리 문나잇이 이미 사랑에 빠진 걸 나만 알았던 순간이었지.”

“베엘, 제발 너만 아는 말만 하지 말랬지.”

“그치만 우리 보름달한테도 신선한 수수께끼를 만들어주고 싶은 걸!”

베엘이 말하며 유닉스의 뺨을 쓰다듬었다. 만지는 것은 본인이면서 베엘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매끈한 볼이 태양에 익은 듯했다. 달빛에 익을 수는 없는데, 그걸 해내는 게 베엘이었다. 그 앞에는 또 그의 육신을 만든 문나잇 하트풀 유닉스가 있었다.

“여보, 나는 당신만큼 작아진 나를 좋아해. 사랑해. 창백한 푸른 점도. 그 안의 당신이 문나잇인 것도. 당신은 분명 달콤한 맛이었을 거야.”

“또 무슨… 허, 대단한 문제를 내고 주무시는군.”

베엘의 귀에 유닉스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는 상관없었다. 그에겐 무엇이든 밀어였다. 이만큼 달콤한 꿈을 꾸고 싶다 생각하며 잠에 빠졌다. 소원대로 꿈에 창백하고 푸른 우주선이 나타났다. 간만에 푸른 달빛이 닿은 베엘의 은발과 비슷한 빛이었다.

“우리뿐이네.”

유닉스가 잠든 베엘의 머리칼을 쓸었다. 베헤모스가 떠나 텅 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잠든 반려를 바라보았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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