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설

230309 Y님 커미션

NCP

죽음은 { B }의 곁을 걷지 않는다.

 

부모님과 동생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니 슬프다. 형이 그렇게 되었다니 상상도 못 했다. 안타깝다. 스쳐 지나간 모든 죽음을 { B }은 덤덤하게 인식했다. 죽음은 그의 곁을 걷지 않으니까. 자기 일인데도 자기 일처럼 여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 B }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은 아니었다. 타이밍을 놓쳤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까?

 

{단체명 1} 소속으로 {단체명 2}와 교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테러 추모 공원. 한때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가 벌어졌다지만 지금은 꽃과 나무가 흐드러진 아름다운 공원일 뿐이다. 약간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담아 향하는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악으로 물들었다. 처음에는 웬 꼬마가 가족묘 앞을 기웃거리나 했다. 길이라도 잘못 찾은 건가, 싶어 말을 걸어보니 글쎄, 제 얼굴을 꼭 닮은 아이가 거기 있던 것이다.

 

제 이름을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아득했다. 형제의 재회(?)는 이렇게나 어처구니없었다. 그 꼬마가 어떤 이유로 돌아온 – 이른바 환생이라는 것 – 형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하고 진정한 뒤, { 단체명 2 }에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반신반의하는 것 같지만 형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겠지. { B }이 미쳤다고 확신하는 { C }의 퉁명스러운 태도를 떠올리며,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지구보다 위에 있는 우주의 전함, { 단체명 2 }의 현 본거지 { 장소 1 }로 향하던 중이었다. 궤도 엘리베이터 안은 속이 터지도록 조용했다. 자그마한 { A }도 커다란 { B }도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만 같다. 솔직히 다시 만나고, 이 꼬마가 형이라는 걸 확신한 이후로 뭐 대단한 말을 하지도 않았다.

 

잘 지냈어?

어, 뭐 그렇지.

미안.

미안할 정도인가.

 

그런 시시한 것들.

 

{ B }은 여전히 형을 껄끄럽게 생각했고, 형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 몸으로 제 식사나 잠을 챙기는 모습에 몇 번이나 경악하여 떼어놨는지 모른다.

 

“형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생각해 봐. 그러니까, 마음은 고마운데 잘못하면 크게 다칠지도 모르잖아. 그 키로 어떻게 칼을 들고 불을 다뤄? 지금은 어쩌다 그렇게 된 지 생각해 보는 게…낫다고 생각해.”

 

말은 했지만, 형을 걱정하는 제 모습이 낯설다. 한순간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 A }을 걱정하기는커녕 열등감 이외의 감정으로 ‘인지한’ 순간이 있기나 했던가? { B }은 자조했다.

 

그리고 다시 궤도 엘리베이터.

 

속이 터지도록 조용한 건 여전했다. 이대로 톨레미에 닿을 때까지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것이 아{ A }까. { 단체명 2 }에 도착하면 { 단체명 1 } 소속인 이상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러지도 않았지만, 흐릿한 어린 날의 기억처럼 어울려 부대끼는 일 따위 눈치 보여서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셈인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형이 돌아왔다고 변한 건 없어.’

 

그렇게 결론짓고 끝내려던 참이었다.

 

“{ B }.”

 

곧고 앳된 목소리가 { B }의 귓가에 파고든다. 괜히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 B }의 몸이 떨렸다. 여전히 남은 껄끄러움이 온몸을 달리는 듯하다. 어련히 좋은 일을 하고 있겠지. 잘난 형이니까. 별생각 없이 받고 넘겼던 돈과, 그에 얽혀 있을 형의 사정. 이제는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형의 예전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하다.

 

“미안해.”

 

그러나 작게 벌린 입에서 나온 것은, 기어갈 듯한 사과였다. 몇 번이고 들었던. { B }의 마음이 심란한 만큼, { A }의 마음도 심란했다. 죽은 뒤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은연중에 지옥 같은 걸 떠올렸던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은 지옥에 떨어질 테니까. 그러나 죽은 그를 맞이한 것은 지옥도 악마도 아닌 당황한 { B }의 얼굴이었다. 낮아진 시선이었다. 아일랜드의 추모 공원, 가족묘에 선 6살의 어린 { A } 디란디. 동생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다른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만, 형을 대신하여 록온 스트라토스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더러운 일에 몸담은 자신과 달리 { B }은 자신이 보내주는 돈과 주어진 시간 속에서 그저 안온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는데.

 

“왜 자꾸 미안하다는 거야.”

“나 때문에…”

 

안 돼. 형이라면 더 똑바로 말해야지. { A }의 눈에서 뚝, 뚝 눈물이 흘렀다. 어려졌다고 정신까지 어려진 건가. 한심했다. { B }의 당황한 얼굴이 매달린 눈물방울 사이로 띄엄띄엄 보인다.

“나 때문에…{ B }이…록온이 되어버렸잖아…”

 

그런 거냐고. { B }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죽지 않았더라면, 괜한 허세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괜한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그때, { A }의 판단은 지극히 옳다 못해 무시무시할 정도였지만, 어린 몸과 정신은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별로, 당신 때문에.

 

“…형을 위해서 록온이 된 건 아니야.”

 

록온이 된 건 아니야.

 

{ B }이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 { A }과 시선을 맞추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신의 앞에서 우는 형이라니,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뿐이니까. 그거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잖아. 형만큼은 못 하지만 사격 실력도 쓸만한 것 같고, 녀석들도 원했으니까. 별로 형 때문에 솔레스탈 비잉에 들어간 건 아냐. 그렇게까지 형을…”

 

의식하지는 않았으니까. 그 말을 하기에는 양심에 찔려 말을 흐렸다. 무슨 소리야. 형을 의식해서 먼 기숙학교로 떠난 주제에. 일평생 신경 쓰면서, 타자화하면서 살았으면서. 그래도 형제는 형제다. 돈을 보내주고 나름대로 자신을 걱정한 형이 아닌가. 그런 그가 쓸데없는 죄책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죽는 건 가족으로서, 동생으로서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혼자 다 짊어지지 마.”

“형에게는 믿음직한…믿음직한가. 하하, 아무튼 동료가 있잖아.”

 

이제는 나도 있고.

그 말은 목 속 깊이 숨기며 { B }은 괜히 웃어 보였다.

 

“…쑥스럽지만, 돌아와줘서 고마워, 형. 앞으로 잘해보자고.”

“응, { B }. 나도 잘 부탁해.”

 

눈물을 그친 { A }이 { B }에게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 B }은 그 손이 부서질 것이라도 되는 양, 가지런히 잡아 악수를 청한다.

 

태양은 그들의 등 뒤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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