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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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풀 위로 하나의 풀을 떨어트린다. 가벼운 것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공기를 뒤흔들만한 힘조차도 없이 작고 초라하다. 하지만 초원 위를 쓸어가는 바람으로 인해 그 풀들이 모여 내는 소리는, 평야를 뒤집을 것처럼 날카롭고 스산하게 멀리까지 퍼진다. 때론 잠든 아이에게 악몽을 선사하는 소리로 변질되기도 한다. 지금 듣는 이 소리는 마치 자야의 기억 속의 그
[옛날에 태양을 삼키고, 달을 삼키고 싶어 하는 늑대가 있었다] 신들의 종말을 고하는 날, 두 쌍의 늑대는 태양을, 달을 삼킨다고 한다. 그는 마치 우리와도 같지 않나고 물었다. 하늘을 지배하는 자들, 그들을 쫒으며 그들이 모는 태양과 달을 무너트리는 존재. 그리고 그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세운다. 한 쌍의 늑대 중 한마리는 감히 신에게 도전했기
(*날조와 유혈 묘사가 있습니다) 밖에서 요란하게 들리던 사이렌 소리가 그리워질 지경이다.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며 어느 정도 잡힌 불길에 진입 허가를 받고 들어왔으나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게 얼마나 한심한 일이냐고 하늘이 질책하는 것 마냥 다시 거세진 화염이 타올랐다. 거세진 화염은 닿는 것들을 태워버리고 터트려 버리며 불길한 작은 소리를
시뮬라크럼이 된 사람들은 기계가 된 자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로봇의 몸체가 되었어도 자신이 여전히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자아 유지 시스템이라는게 모든 시뮬라크럼에 존재한다. 모든 시뮬라크럼들은 '자아 유지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안정하기 위해 자신을 인간, 혹은 강화 인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시뮬라크럼들이 듣는 말을
자신의 주변의 존재들이 총을 꺼내드는 소리가 들린다. ‚배신자들‘ 이라 처음 든 생각은 이네 흩어지며 도리어 조소를 짓는다. 내가 누구에게 배신자라고 부를 자격이 있겠는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다가오는 무리들을 보며 조금씩 물러난다. 그러다 눈에 흔해빠진 공구상자가 하나 보인다. 거기서 삐져나온 작은 나무 손잡이. 그 끝에 뭐가 달려 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머리를 잡으면 날뛰는 그의 위에서 '그럼 불만을 가지면 안되지' 라며 급박하지도 않은 말투로 말한다. 이내 몸이 기울어지는게 느껴지며 그와 함께 쿵 벽에 박으려는 순간 얼굴을 놓아주고 단단한 머리를 지지대 삼아 바닥으로 가볍게 뛰어 내린다. 그가 반쯤 씹다 뱉은 제 끊어진 발을 들어 위장막의 틈 사이로 밀어넣으면 마치 발을 먹어 삼키듯 스르륵 어둠속으
알려달라는 말이 끝나면 장막 사이에서 다시 기다란 손가락이 서서히 비져 나온다. 몸에 비해 유난히 길고 뼈밖에 없는듯 가는 손가락을 가진 손은 그의 목을 천천히 휘감으며 잡는다. 목을 조르진 않고 고정하는 것 마냥. 그리고 그의 목을 휘어 감고 남은 손가락은 턱에 가져다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다른 손이 튀어나와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위장
땅만 보던 소녀는 오랜 침묵을 깨며 자신들을 슬쩍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럼 아저씨와 동료들은 그걸 알면서도 한 것이에요? 그 질문에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지만 이어진 말들은 질문을 해소하는 답이 아닌, 또 다른 물음이었다. >군인이 무얼 위해 존재하는 줄 아나? 국민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아닌, 사회의 시스템을 위해서 존재한다. 나라
전원을 차단하자 놀란듯한 소리가 내부에서 들려온다. 지금 티보르가 집중하는건 소리와 빛이 아니다. 깊은 바다 속, 빛 조차 들지 않는 곳에서 기원한 사이폰들은 빛보다 흐름에 민감하다. 달빛도 들지 못하는 폐허가 된 구시대의 공장의 지붕 아래는 어둠으로 가득찬다. 이 어둠속에서 제 유전자에 새겨진 옛 기억이라도 살리려는 듯 방독면도 벗어 던지고 흐름을 피부로
내가 기억하는 풍경은 산과 논, 그리고 이따금 굽이치는 강,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크고 작은 단어들 뿐이었다. 물론 이 기억속의 풍경 중 어느 한곳도 이렇게 하얀 공간과 일치하지 않는다. 눈이 오지 않았음에도, 서리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하늘과 땅의 경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하얀 세상. 그 하얀 세상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슬픈 얼굴이 있었다. “바닷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