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티보르 -2-

땅만 보던 소녀는 오랜 침묵을 깨며 자신들을 슬쩍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럼 아저씨와 동료들은 그걸 알면서도 한 것이에요?

그 질문에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지만 이어진 말들은 질문을 해소하는 답이 아닌, 또 다른 물음이었다.

>군인이 무얼 위해 존재하는 줄 아나? 국민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아닌, 사회의 시스템을 위해서 존재한다. 나라가 지정한 시스템이 외부의 힘에 의해서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지. 그럼 그 외부의 힘은 무엇인 줄 아나?

반대로 되묻자 소녀는 이야기를 꺼내는 위압감에 눌려 고개를 들지 못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다른 나라라던가… 적국이요?

>아니. 나라가 지정하는 모든 세력이다. 그 말은 내부의 국민조차 나라가 지정하면 외부의 힘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우린 그걸 알고 했다. 그야, 그들은 나라가 지정한 적국이었으니깐. 그럼 그들이 같은 국민인건 알고 있었나? 아니 그건 알지 못했다.

>그럼… 그걸 알고 나서 다들 어땠어요…?

>괴로워 하는 이들이 많았지.

짧은 대답의 대상이 스스로를 향한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린은 고개를 들고 뿌연 방독면의 눈 부분을 바라보며 이야기 한다.

>아저씨는요?

>그다지 큰 생각을 갖지 않았다. 조직을 이루는 요소 하나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의심을 가지며 행동을 하면 그 전체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니깐. 우리에게 온 명령은 명령이고 우린 그걸 따를뿐이다. 그 외의 것은 그저 움직임을 방해할 뿐이야

그 말을 하며 타오르는 불안으로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던져 넣는다. 더욱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서로 말이 없다가 그로서는 드물게 먼저 입을 연다.

>허나 진실을 알았다고 해도 우린 시행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당연한거니깐. 다른 이들은 잔인하다고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군. 그저 우린 우선순위가 다른 것이다. 군대라는 전체를, 가족이라는 집단을, 사회라는 시스템을 뒤흔들려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누구이던 주저없이 그들을 막기 위해 무엇이던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뒤의 말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지만 린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회는 무너지고, 군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그의 가족마저 전부 붕괴되고 남은 이 땅엔 눈과 바람에 풍화된 자갈밭 뿐이었다. 그 위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인 자신만을 붙들고 있는 채 걸어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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