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류
티보르 -1-
전원을 차단하자 놀란듯한 소리가 내부에서 들려온다. 지금 티보르가 집중하는건 소리와 빛이 아니다. 깊은 바다 속, 빛 조차 들지 않는 곳에서 기원한 사이폰들은 빛보다 흐름에 민감하다. 달빛도 들지 못하는 폐허가 된 구시대의 공장의 지붕 아래는 어둠으로 가득찬다. 이 어둠속에서 제 유전자에 새겨진 옛 기억이라도 살리려는 듯 방독면도 벗어 던지고 흐름을 피부로 느낀다. 작은 소용돌이가 느껴진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소용돌이. 차갑고 매끄러운 피부위를 흐르는 듯 한 기류는 달궈지지 않고 주변의 공기와 동일한 온도로 자신들에게 다가온다. 당황하는 거대한 두 존재의 움직임은 잔잔히 흐르는 층류를 깨버리고 와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두 존재의 틈으론 좁은 길목을 흐르는 공기의 빠른 흐름이 느껴진다. 그리고 떨리는 흐름. 잔뜩 웅크린 존재의 끝에서 깨져 흩어지는 소용돌이다. 잔뜩 웅크려 떨고 있구나. 그들에게 입술이 있었으면 내부의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듯 혀차는 소리를 내었겠지만, 대신 들려오는것은 부글부글, 깊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공기방울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뿌드득]
상황을 파악한 티보르의 몸에 다시 갑각이 생겨나며 기괴한 마찰음을 낸다. 후드를 깊게 뒤집어 쓰고 적들의 위치를 계속 파악하기 위해 갑각 군데군데를 열어놓는다. 다시 트인 시야에 저벅저벅 망설임 없이 걸어간다.
2m의 덩치를 가진 육지의 심해생물의 발걸음 소리는 애석하게도 물 속 처럼 지울순 없다. 그 기척에 놀란 한명이 돌아서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들고 있던 총을 쏜다. ‘파앙!’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에 화약이 터지는 불꽃으로 거대한 존재의 실루엣이 보인다. 산탄의 작은 펠렛들이 저를 향해 날아오지만 수년의 전장에서 자신들을 지켜준 갑각은 펠렛들을 막아낸다. 무언가 박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림에도 멈추지 않고 다가가자 두 비인간들은 당황한듯 뒷걸음친다. 그들이 공포에 질려 뒷걸음치는 속도보다 고여있는 분노에 잠긴 존재의 손이 더 빨랐다. 목이 긴 뱀수인의 목이 덜컥 꺾이더니 어둠속에서 불길한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그의 동료는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저를 바라보고 있는 왜인지 모를 수많은 시선에 하나의 생명이 삼켜졌다. 그리고 다시 번쩍이는 섬광과 파열음. 다시 그 섬광속에서 비인간은 조금 더 뚜렷하게 그 수많은 시선을 알 수 있었다. 동물적 본능이 알리는 것과 다르게 찰나의 빛속의 존재는 어떠한 시선을 제게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분은 뭐지? 미지의 공포에서 그를 구원해준건 또 다른 동물적 본능이었다. 비릿한 피냄새. 인간보다 더 좋은 후각에 죽음의 냄새는 증폭되어 뇌를 강타한다. 겨우 등을 돌려 도망치려 하지만 이내 뒤에서 둔탁한 충격과 함께 빛을 보는 두 눈엔 어둠이 덮힌다.
납치범들의 상황이 정리가 되자 다시 방독면을 쓰고 휴대용 전등을 켠다. 빛이 닿는 끝에 제가 상대한 덩치들과는 다른 작은 존재가 있었다. 티보르는 고개를 잔뜩 숙인채 덜덜 떨고 있는 린에게 다가간다.
“우리다”
한 마디일뿐이었지만, 린은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많은것을 알고 있었다. 스스로를 우리라고 불리는 자들. 방독면을 써서 울리는 특유의 목소리. 퍼득 고개를 들고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형체를 향해 달려가 안긴다. 제 양팔로 다 감싸기도 힘든 허리와 비릿한 냄새
“…아저씨”
두려움에 떨고 있던 목소리를 겨우 삼키며 그 존재의 이름을 불러 확인한다. 대답 대신 머리위에 장갑을 껴 단단하게 느껴지는 커다란 손이 내려앉는다. 잠시 린을 진정시키는 동안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쓰러져 있던 수인이 일어난다. 티보르는 더 대답 없이 쓰러진 존재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정신을 차리기 전에 죽은 존재의 옷을 벗겨 팔을 뒤로 돌려 묶는다, 그리고 자신이 뺏은 산탄총의 몸통을 꺾어 내부를 확인해본다. 자신들에게 한발, 자신들이 한발, 그리고 마지막 한발이 남아있었다. 티보르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음 총을 돌려 개머리판쪽을 린에게 건낸다. 찌르듯 갑작스럽게 밝은 빛이 들어오자 눈가를 찌푸린 린은 이내 총의 손잡이가 제게 다가오자 놀란듯 눈을 크게 뜨면서도 그 총을 받아들고 어색하면서도 티보르가 가르쳐 준 자세대로 들고 있는다.
“그 총안엔 아직 한발의 탄이 남아있다. ”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고 있는 시체를 보고 린은 총을 다시 꾹 잡는다. 허나 티보르가 가리키는건 그 옆에 동료의 피웅덩이에 얼굴을 쳐박고 있다 정신을 차려 일어나기 시작한 존재였다. 날카로운 이빨과 울퉁불퉁한 가죽을 가지고 있는 수인이었다. 린은 자신을 먹으려는 듯 연신 이빨을 따닥 부딪히던 장면이 떠오르면서도 그 이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기 너를 아프게 한 녀석이 있다”
그 말을 하고 티보르는 저벅저벅 이제 몸을 일으킨 상대에게 다가가 도망가지 못하게 머리를 콱 잡아 붙들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선 신음소리가 들린다.
“너는… 이들에게 맞고, 이들은 너를 위협했다”
어둠속에서 들려온 천박하면서도 흉흉한 그들의 말을 기억한다. 세상의 질서가 사라지고 온갖 미신과 증오가 섞인 거짓들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시대다. 그 시대에서 그 말들의 목표가 되는 대상은 인간이 되었다. 그들이 과거에 퍼트리던 말들이 역으로 되돌아온 세상이다.
“그 한발로 네가 겪었던 두려움을 힘으로 표출할 수 있다.”
총을 든 린의 눈빛이 제 앞의 상대를 보며 머뭇거리는것이 보였다. 인간들의 눈이란 감정을 깊게 담아내 알기 쉬웠다. 그 흔들리는 눈빛을 티보르의 많은 눈들이 놓치지 않았다.
“이 세상의 당연한 흐름이다. 그러니 죄책감 가질 것 없다. 이미 네게 우리들이 가르쳐주지 않았나.”
묵직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린을 진정시키는 듯 흘러간다. 그 목소리와 옛 가르침에 린은 총신을 잡은 손을 들어 제 앞의 상대에게 겨눈다. 방아쇠 옆 총신에 닿은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인다. 손가락이 방아쇠에 올라간다면 네 앞의 것들을 쏜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예전 린에게 가르쳐준 마음가짐 중 하나다. 그 각오를 향해 손가락이 움직이는 듯 하면서도 여전히 망설이는 듯 하다. 티보르는 재촉하지 않고 그저 상대가 도망치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고 기다릴 뿐이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어린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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