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지스카치
(2022.01.07 작성본)
※ 히로미츠의 가명에 대한 날조가 있습니다. 히로미츠가 어떻게 조직에 잠입했는지 날조가 있습니다. 스카치에 대한 날조도 있습니다.
※ 1082~1084화 스포가 있습니다. 쓰인 시점은 1084화 개시 후인 2022년 1월 초순으로, 한참 후에 보시는 분들은 이걸 감안해주세요... 설정충돌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 슈조디 요소가 약간 있습니다.
※ 정사가 되지 못한 극장판과 제로티의 내용은 차용하지 않았습니다.
※ 치지스카치 보고 싶다! 하나로 시작된거라 개연성 개나 줘버림 주의. 정말 보고 싶은 장면만 쓴거라 연결도 매끄럽지 않습니다. 퇴고도 안했어요... :)
'눈을 떠보니 어린아이가 되었다.' 아주 평탄한 인생을 살았어도 모두가 꿈꾸는 상황이 아닐까? 당연히 나도 꿈꿔봤지. 근데 이런 형태는 아니었어. 모로후시 히로미츠는 헐렁한 청회색 후드집업을 담요처럼 걸친 채 신음했다. 모두가 꿈꾸던 상황이라면 히로미츠의 눈앞에 있는 건 예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형인 타카아키였을 것이다. 워커, 라이가 아니라.
"그러니까 이 애새끼가 스카치라고? 지금 그걸 믿으란 거냐?"
"정황상 이게 제일 맞다고 생각하는데, 이름을 물어보니 스카치의 이름과 똑같았어. 방의 인원이 바뀌는 기척도 없었고."
라이가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대답했다. 일주일 전, 라이와 스카치에겐 암살임무가 내려졌었다. 피스코의 회사 정적을 암살하라는 임무였다. 타겟의 루틴을 분석하기 위해 라이와 스카치는 일주일 내내 같이 지냈었다. 바로 전날만 해도 저격 포인트를 문제없이 확인하고 둘이 묵는 비즈니스 호텔에 돌아왔었다. 스카치의 몸상태엔 이상이 없었다. 자기 직전까지도. 라이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성인 남성인 스카치는 온데간데없고 침대엔 스카치와 쏙 빼닮은 어린아이가 스카치의 옷을 입은 채 침대에 곤히 자고 있는거 아닌가?
흔들어 깨워보니 아이는 아저씨는 누구냐고 물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암살 당일 저격수 한명이 사라졌단 소식에 해당 작전을 관리하던 조직의 첩보부가 완전히 난리가 났단건 말 안 해도 뻔하다. 일단 조직 제일의 저격수인 라이가 단독으로 임무는 완수했으나, 스카치의 행방과 아이의 정체란 숙제가 남아있었다. 라이는 임무 후 돌아와서 아이의 정체를 캐물었다. 아이는 7살. 이름은 스카치의 이름과 완전히 똑같았다.
라이는 곧바로 스카치의 핸드폰에 남은 지문과 아이의 지문을 채취해서 조직에 넘겼다. 아무도 풀 수 없는 핸드폰은 호텔에 찾아온 버본이 포렌식을 하겠다며 반쯤 갈취해갔다. 지금의 기술로는 분석에 시간이 걸렸다. 이 꼬맹이가 스카치가 맞다면 스카치는 살고, 아니면 찾아내 정당한 제재를 가한다는 아주 심플한 처분도 예약 되었다. 워커가 욕을 내뱉더니 시선을 히로미츠에게 돌렸다.
"어이! 꼬맹이! 이름이 뭐라고?"
"...! 미도리카와 유이..."
사실 히로미츠는 새벽에 몸의 이상을 알아채고 한번 일어났었다. 자기 몸이 줄어있었던 걸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이다. 다행히도 라이는 잠들어있었다. 먼저 히로미츠는 핸드폰을 켜 모로후시 히로미츠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삭제했다. 그후 시나리오를 짜냈다. 몸도 기억도 어려진 천성 조직원 스카치로. 지문은 일치할 테니 조직 모두가 믿겠지. 그들이 아는 스카치의 뒷배경을 기정사실로 바꿀 수 있는 최고의 찬스였다. 아이의 몸이 된 영문은 도저히 모르겠지만.
"저기... 아저씨, 혹시 야쿠자야?"
워커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 아이의 목소리에 라이는 큽, 하며 숨을 들이켰다. 진에게 형님, 형님 하는 모습이나 그의 풍채를 본다면 누구나 야쿠자를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야쿠자? 그런 피라미들관 달라!"
"아니야...?"
웃겼던 것도 잠시 라이는 그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 아이가... 이렇게 침착할 수 있나? 라이 본인은 아이가 아저씨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부모님의 친구란 아주 보편적인 거짓말을 했었다. 그랬기에 아이가 순순히 자신을 따라온 건 이해가 되었다. 근데 워커 앞에서 이렇게 침착하다고? 라이는 스카치의 배경에 대해선 잘 몰랐다. 유일하게 아는 건 안 어울리는 이름뿐이었다. 그와 팀을 맺을 때 몇번 그에 대해서 넌지시 캐묻긴 했으나 돌아오는 건 '들어봤자 재밌는 얘기는 아닐텐데.' 란 답 뿐이었다. 두 가지 간단한 가설이 생겼다. 모종의 이유로 스카치는 기억도 어려진 것처럼 연기하고 있단 것. 또 하나는 스카치는 조직에 들어오기 전 야쿠자와 연관이 있었다는 것. 그것도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어이 너, 야쿠자가 뭔지는 알고 있나?"
"아빠가 빚을 갚지 못하면 야쿠자 아저씨들이 나를 팔아버릴 거라고 했는걸?"
침묵.
"워커, 지문 대조 결과 나왔습니다. 빨리 진에게 알려주세요. 애먼 사람한테 총질하기 전에."
아주 잠깐의 침묵을 깨고 버본이 차고의 문을 열고 파일을 흔들었다.
"지문 결과?"
"아, 말하는 걸 잊었군. 지문을 채취해서 조직에 넘겼거든."
"너 이자식...!"
발끈한 워커의 손에 파일을 쥐여주고 버본은 천천히 히로미츠에게 다가왔다. 진이 다가와도 이렇게 긴장되진 않을텐데... 히로미츠는 침을 삼키고 버본, 후루야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스카치도 이런 때가 있었군요? 난 또 진이랑 라이처럼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았네요."
갑자기 당겨지는 볼에 히로미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으아!(아파!) 하면서 길이도 근육도 줄어든 팔을 휘저었지만, 당연히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호오, 아무래도 진짜 스카치인가 보군."
라이의 무미건조한 리액션을 무시한 버본은 계속해서 스카치의 볼을 꼬집을 뿐이었다. 소꿉친구 경력 18년, 히로미츠는 이 손맛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레이는 무언으로 히로!!! 너 도대체 뭘 주워 먹고 이 꼴이 난 거야?!??! 라고 외치고 있었다. 히로미츠도 억울함을 가득 담아 소리치고 싶었다. 나도 진짜 몰라!!!!!!! 라고...
**
진이 워커의 연락을 받고 스카치에게 어느 정도 자유가 내려졌다. 버본은 신변 조사도 할 겸 옷을 사주겠다며 스카치를 끌고 나갔다. 라이가 스카치랑 그렇게 사이가 좋았냐고 물었지만, 레이는 사이가 좋아? '그런 게 아니고, 언제까지 헐렁한 옷만 입힐 겁니까? 평생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라고 일갈했다.
어려진 히로미츠를 태우고 렌트카의 문을 닫자마자 레이는 히로미츠에게 조그만 종이와 펜을 건넸다. MD에 버본과 스카치의 문답을 녹음하는 동시에 필담으로 모로후시 히로미츠의 상황을 보고하라는 신호였다. 히로미츠는 자신과 라이는 24시간 내내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웠으며 이상한 약 같은 건 절대 먹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스카치의 설정에 어긋남 없이 행동했단 것도 보고했다.
발견 당시 아무리 라이여도 당황했는지 '어이, 스카치가 자기 애를 호텔에 버리고 간 것 같다.' 라고 연락책에 전한 것은 아마 히로미츠 인생 최대의 안줏거리가 될 것 같았다. 듣자마자 머리가 아팠지만, 그만큼 조직에 잘 물들었단 표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히로미츠는 분위기를 풀려고 그 얘기를 꺼냈고 (물론 아이처럼) 그걸 들은 레이는 '라이 그 새끼...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하면서 이를 갈았다.
버본으로서 할 일을 끝낸 레이는 먼저 주변의 상가에 내려 아동복을 구매해 히로미츠에게 입혔다. 드디어 몸에 맞는 옷을 입어 히로미츠는 내심 안도했다. 작아지기 전에 입었던 옷을 최대한 여미긴 했으나 썰렁한 바람이 들어와 몸이 추웠기 때문이었다.
"자! 옷을 샀으니 이제 가자!"
"어디로?"
"옷을 사러 가는 거지 당연히?"
"...응?"
레이는 이때를 위해 돈을 모았다 싶어질 정도로 히로미츠의 옷을 골랐다. 히로미츠가 막았지만, 레이의 지갑에선 두려울 정도로 막힘없이 돈이 나왔다. RX7을 산다고 돈을 모으는 레이의 사정을 알았기에 히로미츠는 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형 몰에서 아동복을 왕창 사는 혼혈 미남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선이 단정한 미소년은 주목받기 쉬웠다.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관계에 관한 질문을 들어 벌써 13번째 같은 답을 내놓고 있었다. 아이의 체력이 바닥 나는 건 당연했다.
"토오루형. 나 쉬고 싶어..."
후루야의 가명에 맞게 바꾼 호칭이었다. 레이는 배도 채울 겸 몰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히로미츠를 데리고 갔다. 혹사한 다리가 드디어 휴식을 얻게 되어 히로미츠는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근육이 없으니 힘들구나... 히로미츠는 레몬수를 마시며 한탄했다. 메뉴판을 뒤적이던 레이가 짓궂게 말했다.
"어린이 런치메뉴라도 시켜줄까? 마스코트 큐쨩이 해맑게 웃고 있는 깃발이 꽂혀있다고?"
"...놀리지마..."
레이는 웃으면서 카레 세트를 주문했고 히로미츠는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둘은 우회적인 대화로 미도리카와 유이의 앞날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몸도 정신도 7살인 스카치로서의 행동, 성격도 전부 재정비했다. 새로운 신분으로 재시작하는 것은 만장일치. 새로운 신분에 맞게 초등학교도 다녀야 했다. (히로미츠는 여기서 쓰게 웃었다.)
**
스카치에 대한 의학적인 조사는 1주일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체모, 피부, 골격 전부 7살 아이의 것으로 나왔다. 그의 몸에 있던 흉터, 신분을 증명하던 이레즈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임상시험에서도 25세 성인을 7살로 만들었을 만한 것이 검출되지 않았다. 7살이었던 시절의 스카치가 그냥 지금 뚝 떨어진 것과 같은 결과였다. 조직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기억 못하는 척 연기를 하는 걸 수도 있단 진의 말에 자백제와 거짓말 탐지기도 동원되었다. 결과는 하양이었다. 스카치, 미도리카와 유이의 과거 행적은 전부 진실이며 NOC 따위가 아니라 순수한 범죄자란 뜻이었다. 그 분은 스카치의 코드네임을 유지하는 걸로 결정한듯했다.
스카치는 버본을 잘 따랐다. 어린애는 눈에 안 띄는 게 편하다고 옷도 사주고 밥도 사줬다는 게 이유였다. 이곳저곳 잠입한 덕인지 버본은 스카치를 나름 잘 돌봤다. 친절하진 않지만, 필요는 충족해주고 있었다. 버본이 18년의 괴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7살 스카치는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 봐요. 하며 멋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던 버본은 자기 주관이 희미해 편한 아이라며 비릿하게 웃었다.
아카이는 쉐보레의 시동을 끄고 성냥을 켰다. 담배 말단이 붉게 물들고 이윽고 연기가 났다. 스카치, 그도 자신의 동류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지쳐 같은 NOC 동료의 허상을 쫓은 거라고 결론지었다. 지쳤다니, 자존심은 상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스카치가 어려진 그날. 도쿄 지하철 역 플랫폼에서 여동생이 따라온 장면이 플래시백 되었다. 그 사단이 아니었다면 진짜 조직원에게 혈육을 노출하는 사고가 일어났을 수도 있던 거였다. 조디를 희생시키고 아버지, 아카이 츠토무를 사라지게 만든 조직이다. 미야노 아케미를 속이면서 잠입한 조직이다. 자기 동료는 FBI뿐이라며 자신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찌푸린 미간이 점점 펴지고 담배 연기가 차 안을 매웠다. 천천히 눈을 뜬 아카이는 FBI에 올리는 보고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安室 優]
아무로 유이
법적 보호자 아무로 토오루.
공안은 모로후시 히로미츠를 지웠다. 아무로 유이는 후루야 레이의 협력자로 기록되었다. 제로가 그것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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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닮지 않은 청년과 친척이고 부모란은 공백. 하교할 때 데리고 오는 사람들은 가끔 제각각. 사연 있으니 묻지 마세요. 란 분위기를 은근히 흘리는 아무로 유이는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그사이 동기인 마츠다 진페이와 다테 와타루가 순직했다. 조직 쪽에선 라이가 FBI의 NOC란 사실이 밝혀졌었다. 셰리가 가스실에서 도망쳤다. 데킬라가 폭사했다. 피스코와 아이리시가 진에 의해 사살되었다. 키르가 아카이 슈이치를 사살했다. 정말 많은 죽음이 있었다.
스카치란 코드네임을 받은 지 4년째 되던 날이었다. 베르무트가 다가와서 하얀색과 빨간색의 알약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뭔지 아냐고 말을 걸었다. 감기약이냐고 되물었더니 베르무트는 웃었다. 정말 재밌다는 듯이. 스카치도, 유이도, 히로미츠도 영문을 알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베르무트를 쳐다보았다. 다 웃은 베르무트는 목소리에 유쾌함을 숨기지 않은 채 스카치의 이마를 길고 우아한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며 말했다.
"정말 모르나보네... 진정한 스카치가 되었는데도 말이야. 이제 10년산일까."
**
글록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순수배양 범죄자를 만들겠단 건지, 조직은 스카치의 손에 점점 총을 쥐여주기 시작했다. 아직 이 신분으로선 사람을 쏴본 적은 없었다. 이들에게 모럴을 기대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조직은 아이를 살인에 연루시키면 안된다는 기본적인 도덕관념을 들이밀지 않았다. 암살 타겟을 포인트에 유인한 적도 많았다. 몇 명이나 자신의 눈앞에서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졌던가. 아직 아이의 팔이라 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무로 유이는 직접적인 살인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었다.
모 국가 조직의 NOC라고 판명되어 사살된 누군가는 자신을 붙잡고 울면서 물었었다. 어째서 어린아이인 네가 이런 일을 하는 거냐고. 아무로 유이는 '그래야 버본이 칭찬해주니까.' 라고 답했다. 히로미츠는 아직도 그 대답을 듣고 일그러진 NOC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자는 모리 코고로도 깨어나는! 에너지 드링크-...]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라디오가 끊겼다. 누군가 훈련용 헤드셋을 벗겼겠거니 하고 위를 올려다보니 버본이 있었다.
"사격이 재밌나 보네, 스카치."
"응. 점점 가운데로 몰리니까 재밌어."
"팔은 안 아파?"
"사실 아파."
조직의 잔인한 정보원 버본과 조용하게 어긋난 꼬마 스카치의 조합은 조직의 사격 연습장에선 이젠 흔한 풍경이었다. 스카치는 능숙하게 리볼버 안의 탄창을 빼서 정리하고 버본의 손을 잡고 연습장 밖을 나왔다. 피곤한 듯 눈을 비비는 버본에게 스카치는 바지 주머니에서 레몬 맛 사탕 하나를 꺼내 주었다.
"...사탕?"
"키안티가 줬어."
키안티는 조직의 저격수들에게 동료 의식이 강한 간부였다. 라이가 NOC란 게 밝혀졌을 때 날뛰던 게 아직도 선명했다. 칼바도스가 죽었을 때도 베르무트에게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았으니... 천성 조직원으로 보이는 스카치에게 사탕 하나 쥐여주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됐어. 포아로에서 커피 마시고 왔거든."
"그렇구나."
스카치가 RX7에 폴짝 올라탔다. 한 2주 전만 해도 한쪽이 아예 박살 났는데, 국가 정보 기관의 기술자는 역시 대단했다. 벌써 고치다니... 히로미츠는 감탄하며 안전벨트를 매었다.
"집에 가는 거야, 아니면 일하러 가는 거야?"
"집. 오늘은 영업 종료. 오랜만에 여유로운 저녁이야."
**
"코난군! 하이바라양! 큰일이에요!"
"큰일이야!"
"대박이라구!"
여느 때보다도 텐션이 높은 미츠히코, 아유미, 겐타의 목소리에 귀가 울린 하이바라는 귀를 손으로 살짝 감쌌다. 책가방을 다 챙긴 코난은 가방을 책상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소년탐정단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잘 들어주세요!"
"옆 초등학교 기자단에서!"
"우리 소년탐정단을 취재하고 싶대!"
잡지 취재 권유야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이전 사건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 취재를 막았었다. 초등학생 대 초등학생이니 문제 될 건 없단 건가, 코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언젠데?"
"오늘!"
"오늘?!?"
"코바야시 선생님이 말 전하는 걸 깜빡하셨대!"
고문 선생님이 그래도 되는거냐... 코난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진도 찍는대!"
"난 패스."
겐타의 말에 하이바라는 가방을 메고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리 초등학교 신문이어도 하이바라는 얼굴 노출을 삼가야 했다. 언제 어디서 검은 조직의 마수가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카페 종업원인 아무로 토오루가 버본인게 밝혀졌으니 경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바라는 박사님 발명품 청소를 도와줘야 한다며 떠났고, 나머지 소년탐정단은 빠진 하이바라 몫까지 열심히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약속 장소는 역 주변의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신문부의 고문 선생님도 바쁜 일이 있는지 계산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 신문부의 구성원은 4~6학년으로 되어있었다. 1학년을 상대하는데도 다들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키드킬러로 유명한 코난에게도 지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2시간 동안의 취재를 끝내고 드링크 바에서 가져온 음료로 목을 축이던 중이었다. 낮은 비명이 들리고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괜찮으신가요?!? 하는 직원의 목소리에 이어 패밀리 레스토랑은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코난은 쓰러진 남성의 상태를 살폈다. 남성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약간의 아몬드향이 나는 것을 보기 청산 계의 독에 당한 것 같았다. 코난은 경찰을 불러달라고 외쳤고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소년탐정단 아이들에게 신문부 아이들이 현장을 보지 못하도록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먼 구석의 자리로 이동하도록 도와주는 미츠히코에게 한 아이가 물었다.
"너희... 혹시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니?"
"자주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저 에도가와군도 지금이랑 똑같이 저렇게 행동해?"
"네! 코난군이 있으면 이 사건은 이미 해결된 거나 다름없어요!"
그 말대로였다. 7살짜리 소년은 경찰이 오자 익숙한 듯 사건에 대해 읊었다. 경찰마저도 소년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범인까지 일사천리로 잡혔다. 화장실에서 발견된 안약통이 그 증거였다. 신문부의 한 아이는 그 광경에 감격한 듯 신문에 싣겠다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코난과 같은 탐정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뿌듯하긴 했지만 살인 사건은 초등학교 신문에 실릴만한 것이 아니었다. 저지하려고 하는 순간 한 아이가 흥분한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안돼. 살인 사건은 교지에 실을 내용이 아니야.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유이군!"
유이라 불린 갈색 머리 아이는 코난을 보며 웃었다.
"그렇지 에도가와군? 취재한 것만 실을 테니까."
"응. 부탁할게."
어른스러운 애네, 코난은 생각했다. 청회색 눈이 잠시 코난에 꽂히더니 이내 같은 신문부 아이들과 식당을 떠났다. 사정 청취는 소년탐정단의 몫으로 넘긴 후였다.
교내신문은 일주일 후 탐정단의 손에 들어왔다. 후루룩 읽어 내려가던 코난의 눈에 한 이름이 걸렸다. 아무로 유이. 갈색 머리에 청회색 눈을 가진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아무로라는 성씨는 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본과 연관이 있다기엔 그 둘은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에이 설마..."
아무로 토오루란 이름이 진짜일 보장도 없는데, 버본과 그 아이가 연관이 있다니. 너무 비약적인 사고라며 코난은 자신을 진정시켰다.
**
"전에 부탁한 에도가와 코난이란 아이 있잖아."
식탁을 닦은 행주를 건네주며 히로미츠가 입을 열었다. 응, 레이가 호응하며 그 뒤의 말을 기다렸다.
"초등학교 1학년이랑 만나달라니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 아이 뭔가 있긴 있는 것 같더라. 초등학교 1학년이 사건을 그렇게 많이 조우하고 경찰에게 공신력을 얻을 수 있나? 다카키란 형사만 봐도 그래. 아무리 어리고 순박해 보여도 그 나이에 본청 수사1과에 있는 엘리트야. 아이의 통찰력을 수사1과의 형사들이 못 이긴다니, 이상하잖아."
"모리 코고로가 옆에 있었다 해도 순수한 초등학교 1학년에겐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 미츠히코란 아이 알지?"
히로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옆에서 들은게 많아도 미츠히코 정도의 행동을 보여줄 터였다. 정확한 정체는 몰라도 일단 그 아이는 평범한 환경 출신이 아니란 소리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잠시 멈췄다. 히로미츠는 레이와 눈을 마주쳤다.
"모리 코고로가 카모플라쥬일수도 있어."
"그 사람이 그 아이를 감춘단 소리야?"
"거기까진 잘 모르겠어. 아직 완벽하게 녹아들어 간 것이 아니라."
"RX7을 반파시켜놓고?"
"그 꼬마가 날 엄청나게 경계하거든. 그래서 너한테 부탁한 거야. 험한 수단은 이미 봉인 당했잖아?"
손의 물기를 닦아낸 레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베르무트와도 연관이 있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라... 대체 정체가 뭐야?"
"이제 네가 단서를 가져다줘야지. 스카치군."
"그냥 흥미 본위 같은데. 버본..."
"흥미에 가까우려나?"
레이가 아무로 페이스로 윙크를 날렸다. 히로미츠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초등학교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아이랑 어떻게 또 접점을 만들지? 이 미묘한 차이가 제일 어려웠다. 눈을 감고 고뇌하는 히로미츠에게 레이는 의뢰인에게서 받은 크림샌드를 건넸다. 친히 봉지를 까고 입가에 대주니 히로미츠는 우물우물 잘 받아먹었다.
방법이 살인사건밖에 떠오르지 않는 자신이 참 웃겼다. 사람은 언젠간 달라진다고 듣긴 했지만 이런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22세 모로후시 히로미츠가 지금 자신을 만난 상상을 하니 왠지 모를 무력감이 온몸을 덮쳤다. 괜히 히로미츠의 22년간 소꿉친구였던 레이가 아니었다. 히로의 기색을 살피더니 따뜻한 녹차를 앞에 놓았다.
"토오루형."
히로미츠는 상황을 막론하고 레이를 토오루형 혹은 버본으로 불렀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적은 탓이었다. 예전 호칭으로 부르다가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게 히로미츠의 입장이었다. 레이도 그 의견을 존중해 히로미츠를 유이군 아니면 스카치라고만 불렀다.
"뭐 하나만 도와줘."
**
카레, 맛있는 카레~! 겐타가 장작을 모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카레 하나로 저렇게 들뜨는 것도 재능이다. 라고 생각하며 코난은 마른 가지를 들었다. 주변은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라, 저 애는... 분명 아무로 유이라고 했던가? 빤히 쳐다보았던 탓인가 곧바로 코난과 유이의 눈이 마주쳤다. 유이는 반가운 얼굴을 띄며 코난의 앞으로 뛰어왔다.
"에도가와군도 왔구나!"
"어..."
"유이라고 불러도 돼. 생각해보니 우리끼린 통성명도 안했지?"
"아아, 그래. 유이형도 캠핑?"
"응, 친척분과 같이."
"어라? 신문부의! 누구였더라...?"
"분명 아무로 유이씨였죠?"
"응 맞아. 코지마군이랑, 츠부라야군. 오랜만이야."
유이는 잠시 주변을 둘려보더니 말을 이었다.
"요시다양은? 또 한명 여자아이가 있다고 했지? 사정이 있어서 못 왔다는."
"아, 아유미랑 하이바라는 텐트쪽에서 카레 준비를 하고 있어."
"아유미양이랑도 인사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장작 내가 들어줄게!"
딱히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코난 일행은 잠깐의 손님을 데리고 텐트에 도착했다. 재료 손질은 끝나있었지만 보이는 것은 아유미 뿐이었다. 영문을 물어보니 하이바라가 감자를 썰다가 갑자기 칼을 놓쳐 손을 베었다고 아유미가 말했다. 다행히 손가락 하나가 살짝 스친정도였다. 지금 박사님이 텐트안에서 하이바라를 치료하고 있다고 들은 소년탐정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코난은 장작을 놓고 상태를 살피려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과 다르게 하이바라 아이는 겁에 질린채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코난은 하이바라의 이런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주변에 조직원이 있다.
"있는 거야? 놈들이?"
하이바라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심지어 가까워...!"
아가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는게 좋겠냐 신이치!"
"조직원이 우릴 노리고 있는것 같진 않아요. 우릴 노리는거라면 저도 시선을 느꼈어야 하는데... 애초에 조직은 셰리가 죽었다고 알고 있으니 꼬마애들 뿐인 우릴 노릴리가 없죠."
"조직원이 있는게 우연이란게냐?"
"아마도요. 혹시 누군가와 여기서 접선하려는걸수도... 이런 사람 많은 곳에서 누굴 죽이려는건 아닐거고요."
"아이쨩, 괜찮아?"
아유미가 텐트 문을 살짝 열었다. 안색이 새파래진 채 떨던 하이바라가 겨우 표정을 진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름끼치는 압박감은 여전했으나, 조직이 자신을 노리는게 아니라면 일단 당당하게 행동해야 했다. 눈에 띄면 안돼. 하이바라 아이는 심호흡을 하고 일어섰다. 미스테리 트레인에서 자신을 위해 움직여주었던 모두를 믿고 있었다. 조직이 있는 것은 우연이라며 텐트 밖으로 걸어나온 하이바라는 애써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걱정하는 세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그 순간이었다.
"아, 네가 하이바라 아이양?"
맹금류가 목 뒤를 낚아 챈것 같은 감각이 덮쳤다. 하이바라는 재빠르게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는 아이가 포착되었다. 그 뒤로 온통 검은 아웃도어 웨어를 입은 순박한 인상의 덩치 큰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아이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자신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은 스카치 위스키였다.
"미안, 내가 놀래켰나봐... 괜찮아?"
"아! 아이쨩! 이 오빠는 그 전에 말한 신문부의 오빠야!"
"...아니, 그렇게 놀라진 않았어... 미안, 그땐 사정이 있었던 터라."
"사정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었는걸. 우리가 부탁한 쪽이니까."
어색한 첫 대면이었다. 응급처치 용품을 정리하고 나온 아가사는 유이를 보고 그에 대해서 물었다. 소년탐정단이 실린 교지를 읽은 아가사는 바로 알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어디계시냔 아가사의 물음에 유이는 삼촌이 데리고 와주셨다고 대답했다. 방금 뒤를 지나간 그 조직원이 삼촌역이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어색해... 버본에게서 능청스러움을 어느정도 배웠지만 히로미츠도, 스카치도 유연한 성정은 아니었다. 결국 스카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사건을 꺼내며 소년 탐정단에게 조우한 사건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그들이 호텔에서 마주한 사건을 얘기 했을 때였다. 이 아이들, 저주 받은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던 찰나 무시할 수 없는 단어가 지나갔다.
FBI. 라이이자 아카이 슈이치였던 그가 몸을 담고 있던 곳. 그들이 국내에서 조직을 물어뜯으려 돌아다니는 것은 레이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이쪽에 있는 수사관들 중 2명이나 알고 있다고? 이 어린 애들이? 아니, 에도가와 코난군... 넌 대체 정체가 뭐야?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유이는 FBI도 알고 있냐며 신나게 떠들었다. 열심히 떠들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해는 동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려 시간을 보니 벌써 5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거래가 성사되었으니 예정된 포인트로 돌아와 달라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조직원이 텐트를 철거하는 모습이 시야의 구석에 포착되었다.
"...이제 가야겠네."
"어? 카레가 다 되어가는데 먹고가지 그러냐?"
"말씀만큼은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먹고 싶은데... 삼촌이 이제 돌아오라고 해서요."
"그럼 같이 먹자!"
"우리 삼촌이 낯을 많이 가리거든. 미안해... 카레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같이 먹자."
"아쉽다. 신문부 얘기도 꽤 재밌었는데."
"너희가 만난 사건만큼은 아닌걸? 그럼 잘있어!"
유이가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아가사 박사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포인트로 뛰어갔다. 아이가 사라지고 거구의 조직원이 사라지니 하이바라는 자츰 안색이 좋아졌다. 텐트가 있던 쪽을 확인해보니 이미 공터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하이바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코난은 수고가 많았다고 조용히 속삭였다.
**
"캠핑에서 봤던 그 조직원, 혹시 아는 사람이었어?"
아가사 박사의 집에서 수리 맡긴 안경을 찾으러온 코난이 물었다. 잡지를 읽던 하이바라가 잡지를 덮었다.
"아니, 처음보는 사람이었어. 다만..."
"다만?"
"그가 들고 있던 스카치가 마음에 걸려서."
"스카치? 위스키?"
"분명 스카치란 코드 네임을 가진 조직원이 있다고 들었어. 늘 버본과 같이 움직이는 첩보원. 모종의 이유로 스나이퍼를 그만두고 포지션을 바꾸었다고..."
"버본과 같이 움직인다고?!"
코난은 미즈나시 레나가 보낸 정보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조직의 새로운 멤버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통찰력이 뛰어난 정보원으로 코드네임은 버본! 그가 움직인다면 아무래도 스카치 또한...] 버본에 정신이 팔려 그 뒤의 말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젠장! 코난은 책상을 내려쳤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얼굴이라던가 신체적인 특징이라던가 이름 알아?!"
"몰라... 나도 코드네임을 가진 자는 아주 소수만 만나봤어. 소문으로만 아는 이들이 대부분이야. 버본도 소문은 많이 들어봤지만 얼굴을 안건 최근에서야. 그나마 그에 대해서 아는건 말수가 적고, 눈꼬리가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이고, 수염을 길렀다는 정도?"
"그럼 캠프장에 있던 그 조직원은 스카치가 아니란건가...? 날카로운 인상의 성인 남성... 버본 근처에선 본적이 없는데..."
"조심해. 쿠도군. 버본은 잔혹하고 냉정하기로 유명한 조직의 멤버야. 그가 너의 탐색하는 기척을 눈치채면 모두가 위험해질지도 몰라...!"
"알고 있어... 매일 발밑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
빠칭코 하다가 부랴부랴 병원에 오다니... 키사키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이혼감이라고요. 얼떨결에 같이 쫓겨난 코난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라? 모리 선생님 아니세요?"
아무로의 목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의외의 인물도 같이 서있었다. 2번 정도 만난 신문부 아이. 아무로 유이. 네가 왜 버본의 손을 잡고 있어? 라고 묻고 싶지만 코난은 잘 참을 수 있었다. 설마했다. 아무로란 성이 희귀하다지만 잠시 들었던 생각이 너무 비약적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진실을 외면했던 것이다. 탐정의 감이란건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라... 유이형. 아무로씨랑 아는 사이야?"
"응! 토오루형은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날 돌봐주는 친척형이거든."
친척형? 조직의 멤버 버본이? 진짜 이름이 아무로 토오루였다는건가? 아니 진짜 친척이 맞긴 한건가? 이 아이는 속고 있는게 아닐까?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가설들에 온 신경이 곤두 선 코난의 뒤에서 놀란 모리 코고로의 목소리가 나왔다.
"엥?!? 친척 아이? 아무로 너, 친척애를 돌보고... 그래서 두가지 일을... 그런 주제에 수업료를 그만큼 내겠다고 한거냐?!? 수업료 깎아줄테니까 애 맛있는거나 먹여! 둘다 비쩍 말라가지곤!"
"아하하... 명탐정의 수업인데요. 그정도야 당연하죠. 둘이 먹고 살만큼은 벌려요. 선생님. 저희 둘다 건강하고요.
코난은 점점 심장이 크게 박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이도 중앙 병원에 왜 버본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버본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아픈게 아니라면... 그 일 하나 밖에 없었다.
"코난군?"
"응?? 미안! 잠깐 멍했어... 뭐라고 했어 아무로씨?"
버본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코난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춰주고 있는 버본을 발견했다.
"쿠스다 리쿠미치란 남자. 못들어봤니? 코난군은 전에도 여기 많이 와봤다고 간호사 분들께 들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버본은 쿠스다 리쿠미치에게 돈을 받아야 한다는 가벼운 거짓말을 이어서 했고, 코난은 당연하게도 모른다고 답했다. 안다고 하면 미친거였다. 쿠스다 리쿠미치는 거대한 계획의 실마리였다. FBI의 수사관들에게도 비밀인 작전이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넘기니 버본은 부드럽게 웃었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응?"
버본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순간 옆에 있던 아무로 유이가 치고 들어왔다.
"사람을 찾는다고 하면 대략적인 정보를 물어보고 난후 대답하잖아? 이름만으로 모르는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에도가와군은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거야! 그치 토오루형?"
코난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화제를 돌려야 하는데 갑자기 화제를 바꾸면 더욱 수상해보일게 뻔했다. 다행히 버본은 바로 옆을 지나가던 여성 두명에게 쿠스다 리쿠미치에 대해 물어봤고, 주의가 잠깐 환기 되었다.
3...2...1...
제로!
아이에게 맞춰준 듯 아이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버본과 유이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동시에. 버본은 자신의 별명이 제로였어서 놀라 뒤돌아 봤다고 했고, 유이는 큰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고 했다. 코난은 알 수 있었다. 버본의 변명은 되도 않는 변명이었다. 아이가 그런 장황한 이유를 들면서 토오루란 이름에 제로란 별명을 붙일리가 없었다. 제로라고하면 생각나는 것은... 공안 경찰의 제로. 만약 버본이 공안경찰의 NOC라면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었다. 조용히 아무로 토오루를 주시하는 코난을, 아무로 유이도 주시하고 있었다. 둘의 마음 속엔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혹시...'
**
아카이가 찬장을 열어 조디와 캐멀에게 위스키를 대접했다. 세명 분의 잔에 갈색의 깔끔한 액체가 담겼다. 아카이의 생환이 기쁜지 캐멀은 평소와 다르게 스트레이트로 몇 잔을 비우더니 빠르게 블랙 아웃이 왔다. 아카이는 손님방 침대에서 재우면 된다고 말하며 캐멀을 깨웠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캐멀의 뒷모습을 보던 조디는 와일드 터키를 잔에 따르며 말했다.
"그나저나 놀랐어. 그 버본이 공안 경찰일줄은."
조디는 진심을 담은 적의를 느끼고 그가 조직의 멤버일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근데 그의 본명이 후루야 레이고 정체는 공안 경찰이라고? 다시 생각해도 믿기 힘들었다.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긴 하지만 타국에서 총기를 소유하고 수사하고 있단건 사실이잖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아카이가 조금 줄어든 얼음 위로 짐 빔을 부었다. 초콜릿을 베어 물던 조디는 이곳이나 미국이나 똑같네.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타국에서 수사하기 위해 제임스와 제임스의 상사가 얼마나 뛰어 다녔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서면 보고에서 끝나지 않고 대통령과 CIA, FBI의 국장 세명을 만나고 온 제임스의 상사는 그날 짐 빔을 거의 들이붓는 수준으로 마셨다. 아카이와 조디도 그 현장 속에 있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했다. 그는 어절마다 F워드를 넣으며 소리쳤다.
'국외는 FBI의 에리어가 아니라고?!? 잘 알고 있어!!! 근데 할 수 없는걸 어떻게 하냐고!!! 애초에 국외수사는 법적으로 가능하긴 하거든!!!'
아카이는 그때와 같은 짐빔을 한모금 마셨다.
"하나 사실을 말하자면 조직에 있었을 때부터 그와는 사이가 안 좋았어."
"어? 그랬어?"
"뭐 나도 그가 껄끄럽긴 했지만, 그걸 따질만큼 애는 아니니까."
"잠깐! 슈는 버본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거야?! 왜 쿨키드에게 말해주지 않았어?!"
조디는 식탁의자에서 일어나 식탁을 소리나게 쳤다. 이런 모습! 이런 모습에 조디는 속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위장순직건도 그렇고 혼자서만 알고 혼자서만 움직이고... 하지만 조디는 아카이의 그런 모습까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카이를 보고 바보같아진 조디는 다시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아 아카이를 바라보았다.
"그야 그 꼬마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조직에 있을 때부터 의심을 하긴 했었거든. 버본... 그가 NOC가 아닐까하고 말이야. 화상을 입은 나로 변장하고 주변을 떠볼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야."
"아아... 그거. 그것만큼은 그 후루야 레이씨에게 따질거야. 내 심장이 몇번이고 떨어졌는지 슈도, 그도 모를걸??!?"
술기운이 도는지 조디의 감정 표현이 더 풍부해졌다. 아카이는 조디의 손에 들린 와일드 터키의 병을 보았다. 혼자서 싹 비운걸 보고 아카이의 눈이 살짝 동그래졌다. 언제 벌써 저렇게 마셨나 싶었다.
"조디. 슬슬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다. 그만 마셔."
"아니! 캐멀이 다 못 마신 글렌피딕 한잔은 마셔야겠..."
조디의 눈이 커졌다.
"스카치!"
"그치. 글렌피딕은 스카치잖아?"
"아니 그게 아니고! 미즈나시 레나가 말했단 말이야! 버본의 곁에는 꼭 스카치란 조직원이 있다고! 버본에 정신이 팔려서 그를 잊고 있었어! 스카치에 대해서 알고 있어 슈???"
"당연히 알지. 그와 자주 투맨셸을 맺었거든."
"어떤 사람이야??? 후루야씨가 위험한건 아니야?!?"
"만나게 해줄까?"
"농담하지 말고 슈. 만나게 해줄까? 라니! 반려견 만나게 해준다는 것도 아니고!"
"그도 진짜 조직원은 아니니까. 보자고 하면 응할거야."
"...어?"
"그나저나 예전부터 조용히 묻어가는게 특기군 스카치. 버본과 궁합이 잘 맞아."
얼빠진 조디를 앞에 두고 아카이는 남은 글렌피딕을 새로운 잔에 부었다.
**
스카치는 눈에 띄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었다. 조용히 다가와서 흔적도 없이 현장을 벗어나는 그런 타입의 스나이퍼였다. 조직에 있던 시절 아카이는 속으로 그를 매와 같은 남자라고 평했다. 하늘에서 갑자기 날아와 흔적도 없이 사냥감을 물고 떠나는 매의 모습이 스카치가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과 닮았었다. 조직의 보스도 그의 이러한 특성을 높이 사 스카치란 코드네임을 부여했다.
알 수없는 이유로 정신과 몸이 어려진 다음엔 이러한 특기가 더 두각을 드러냈다. 범죄가 일어난 후 사건 관계자들의 뇌는 범죄를 저지를만한 어른을 기억해 내느라 어린아이의 모습을 소거하기 마련이었다. 스카치는 겉보기엔 조용하고 예의바른 아이니 사람들이 속는 것도 당연했다. 은근히 시선을 끄는 버본과 조용히 시선의 밖에서 사라지는 스카치는 좋은 궁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엇나가있는 범죄자 꿈나무를 (심지어 재능도 보장된) 유능한 조직원이 돌본다? 조직의 입장에선 환영할 일이었다. 실제로 11살의 나이에도 조직의 명령을 잘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일종의 영재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드네임을 받은 간부는 극히 드물다. 대면하기도 쉽지 않다. 소문만 있을 뿐, 실체를 아는 조직원은 드물다. 스카치 또한 버본의 개라든가 11살 어린애라든가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든가. 가설(街說)만이 돌고있다. 더욱이 유능한 정보원인 버본이 꽁꽁 싸매고 도니, 그 말마저도 소수의 인간들 사이의 이야기였다.
**
"안녕하세요. 조디 스털링 수사관님."
예의바르게 인사를 건네는 11살 아이를 보며 조디는 미간을 감쌌다. 아카이가 그를 위해 현관을 열어주기 직전 '조금 놀랄거야 조디.' 란 말을 했긴 했다. 코난마저도 옆에서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카이, 아니 오키야 스바루는 다정한 목소리로 어서 들어오라고 말했다.
"...외견이 11살짜리일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미간에서 손을 뗀 조디는 포기한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튼애플도 나이를 안먹고 셰리라고 불리던 아이도 외견은 7살이었으니까. 나이를 먹지 않는다. 아마 이 스카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근데 아무로형. 손에 들고있는 가방은 뭐야?"
정체를 밝히고 난 후 코난의 호칭이 바뀌었다. 심리적 거리가 멀어졌단 뜻인가... 레이가 아무로씨, 히로미츠는 아무로형. 정신은 29살인 사람의 이름을 부르긴 힘들지. 속으로 납득한 히로미츠는 코난의 물음에 종이가방을 들어올렸다.
"아 이거?"
유명한 구움 과자집이었다. 란과 소노코에게 붙잡혀 가본적이 있는 코난은 그곳의 맛을 알고 있었다. 까눌레가 일품이었다. 고급 바닐라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과연 자부할만한 맛이었다.
"선물. 공안은 여기서 나 뿐이잖아? 여기만큼은 치외법권이니까."
"치외법권이라니. 비약이 심하군. 잡아먹진 않을테니 걱정마."
아카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조그만 공안은 은근한 웃음을 지으며 FBI들을 응시했다.
"여긴 일본이라고? 후루야씨에게 얘기를 전달해주는건 나니까. 맛있는 까눌레나 먹으면서 정보를 나누자?"
봐주는 것은 이쪽이라는 걸 내비친 공안 요원을 보고 조디가 아카이의 어깨를 잡았다. 잘못한 건 이쪽이니 너무 입을 열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응접실 소파에 앉아 아카이가 내온 홍차를 한모금 마신 히로미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스턴트 블랙 커피만 마시던 아카이에게 홍차를 우리는 재주가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입맛에 맞나요? 라며 오키야가 묻자 히로미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놀랐어. 코난군이 나랑 같이 갑자기 어려진 FBI 요원이 아니었다니."
"난 순수한 7살이라니까? 아무로형."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거짓말인건 이 방의 모두가 잘 알았다. 그의 정체를 정확히 추리해낸 오키야는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히로미츠는 쿠스다 리쿠미치를 추적하기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부터 가진 가설을 다시 갈아엎어야했다. FBI와 강한 연관이 있고 수사관들이 신뢰하고 있는 꼬마아이. 본인의 경험도 있어서 코난이 어려진 FBI 요원이라고 추리한 것은 어떻게 보면 타당했다.
"어떻게 어려진건지 기억이 나?"
조디가 히로미츠를 보며 물었다. 베르무트에 대한 단서가 눈 앞에 있었다. 베르무트는 성장장애로 나이를 먹지 않은게 아니라 그처럼 다시 나이를 먹고 있는 걸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히로미츠 본인조차 몰랐다. 조직 측에서도 몇번이고 재검사를 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고 일어나보니 이렇게 된거라 이쪽도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제1 발견자니까 확실해. 스카치와 나는 먹었던 것도 똑같았고 심지어 편의점 음식이었으니 독 같은걸로 어려진건 아니야."
"모르는건가... 조직측에서도 모른다면 정보를 얻을 가망은 없어보이네."
"베르무트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입을 열지 않고..."
조디의 눈이 베르무트란 단어를 듣자마자 커졌다. 로튼애플과 접촉을 했었다고? 아카이와 잠시 시선을 교환한 조디는 침착하게 물었다.
"크리스 빈야드 말이지?"
히로미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낌새를 보고 뭔가 알고 있다라고 생각한거지?"
"어떤 약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코난은 먹고 있던 까눌레를 내려놓고 어른들 쪽을 쳐다보았다. 언급되는 약은 확실하게 APTX4869였다. 아카이에게도 말하지 않은 정체에 대한 단서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다행히 아포톡신의 외형자체는 흔하디 흔한 모습이었다. 약의 외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히로미츠와 조디, 아카이 전부 고뇌에 빠졌다. 무언가 또 기억해낸 히로미츠는 잠깐 탄식을 내뱉었다. 히로미츠는 베르무트에게 들었던 의문스러운 말을 그대로 말했다.
'진정한 스카치가 되었는데도 말이야. 이제 10년산일까.'
조직원 특유의 은유적이고 우회적인 말투였다. 과연 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한 베르무트다웠다. 아포톡신을 모르는 어른들과는 달리 복용자인 코난은 바로 뜻을 알아차렸다. 스카치 위스키를 주조할 땐 셰리 오크통과 버본 오크통을 사용한다. 각각의 오크통에서 증류된 것을 섞어 만든게 스카치 위스키다. 이렇게 만들지 않으면 스카치 위스키가 아니다. 셰리가 만든 약을 먹고 (추정이지만) 어려져 버본이 돌보고 있으니 베르무트는 진정한 스카치라고 부른 거겠지. 일단 베르무트의 말뜻은 본인만이 알아야했다. 코난은 홍차와 함께 말을 삼켰다.
"그건 그렇고 스카치."
"왜?"
아카이가 히로미츠의 뒤로 다가왔다.
"너의 진짜 이름을 듣고 싶은데. 후루야와 만든 소꿉장난같은 이름 말고."
"그건 무리같네."
히로미츠는 바로 거부했다. 레이의 정체를 경찰학교 시절부터 추적했다면 자신의 본명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경찰학교 시절부터 추적한게 아니었던건가? 히로미츠는 아카이의 시선을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자신을 떠보는 거여도 진짜 이름은 알려줄 수 없었다. 카드를 전부 보여줄 순 없으니까.
**
[나가노 현경은 앞으로도 이러한 실수가 없도록 정진할 것을 약속드리며-...]
히로미츠가 진지한 얼굴로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여자 사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 사건이었다. 사건 장소는 나가노의 산장. 나가노 현경이 담당하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용의자의 백골 시신이 발견되는걸로 마무리 되는 듯 싶었다. 갑자기 기자회견이 잡혔단걸 레이에게 전해듣고 혹시 몰라 숙제를 집어던지고 TV 앞에 앉았다. 화면에선 정말 눈물날정도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모로후시 타카아키. 몇년 째 못보고 있는 형이었다. 모로후시 히로미츠와 연관되는 물품은 레이가 전부 소각처리를 해주었다. 그래서 형을 생각할만한 물건은 히로미츠 방 책장에 있는 삼국지 밖에 없었다. 몇년 만에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걸까. 히로미츠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스카치가 된 이후론 운적이 없었다.
아. 이건 못 참을지도.
히로미츠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조직이 사라진 후엔 타카아키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도닥이며 히로미츠는 눈물을 닦았다. 어려진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1살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 설마 아무로 유이란 이름으로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못 만나는건 아니겠지? 히로미츠는 시선을 내렸다. 타카아키도, 나가노 현경의 대변인으로서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너무 반가운 나머지 실수로 진짜를..."
"우와아..."
운석에 얽힌 사건에 대해 듣던 히로미츠는 카자미의 말에 진심을 다한 탄식을 내뱉었다. 폭탄 도난 사건 때문에 목장에 간다던 레이가 잔뜩 화가 나서 돌아온 이유가 이거였구나. 나한테도 안 말한건 前선배인 카자미씨의 명예를 지켜준걸까... 히로미츠는 크림소다에 바닐라 아이스가 잘 섞이도록 빨대를 휘저었다. 카자미는 어려진 히로미츠를 前후배 모로후시 히로미츠로 대하지 않았다. 후루야 레이의 특별한 협력자 11살 아무로 유이로 대했다. 가끔 허당같긴 하지만 이렇게 선이 철저한 카자미니까 레이가 신뢰하는 거겠지. 히로미츠도 카자미를 신뢰했다. 이런 기묘한 사태에 휘말린 후배를 봐도 꿋꿋하게 그가 대해야 할 모습으로 대해주니까. 후루야씨라고 부른 그 실수는 커버 못쳐주겠지만.
"그건 그렇고 ㅋ...히다...씨. 저한테 무슨일로?"
"사실 그 사건 당시 아무로씨가 발견한 각에 대해서야. 너도 알고 있을거야. 이전에 수업을 들었을테니..."
"쇼기말... 그 사람의 것이었죠?"
공안 연수 시절 하네다 코지 살인 사건에 대해 배울 때 쇼기말의 사진을 본적이 있었다. 하네다 코지를 살해한 범인이 그때 기적적으로 있었던건가? 히로미츠의 표정이 바뀌었다. 레이는 그 목장에서 범인의 전리품이 되었을거라고 추정되는 쇼기말을 찾았고, 지하실 문에 머리를 맞고 깨어나보니 쇼기말은 온데간데 없었다. 라는게 당시 상황이었다.
"아무로씨의 전언은 이거야. 부활동을 가장해 현장에 있던 미티어 헌터들을 취재할 것. 특히 용의자 중 하나는 유단자라고 했으니 그를 조심할 것. 더 자세한 내용은 이 파일 안에 있어."
히로미츠는 파일철을 건네 받았다. 대략적인 신상 정보가 적혀 있었다. 히로미츠는 부활동을 가장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그만큼 애들 앞이라고 입이 가벼워지는 작자들을 몇번이고 봐왔다. 그 정보들은 전부 레이와 버본에게 넘어가 유용하게 쓰였지만.
"그럼 애들에게 우주 SF라도 보여줘야겠네요. 그 아이들... 은근 귀가 얇으니까."
"원래 그 나이때는 관심사가 잘 바뀌는거야. 유이군."
"히다씨도 그랬어요?"
"아아, 아마 그랬을거야. 기억은 안나지만."
히로미츠는 11살 때가 잘 기억나질 않았다. 선명하진 않아도 경찰을 꿈꿨을거란건 틀림없었다. 몇살인진 기억이 안나지만 작문 숙제의 주제가 미래의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울면서 경찰이라고 쓴 기억이 흐릿하게나마 존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안에 배속되어 잠입수사를 하다가 이렇게 될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어린아이의 몸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지금도 사실 괴리가 느껴지긴 하지만. 계산을 하고 나온 카자미가 헤어지기 직전 허리를 숙여 히로미츠와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로씨에겐 편이 많을수록 좋거든."
"저도 동감이에요. 히다씨가 있어서."
**
쿠도저로 불려서 갔던 히로미츠는 나가노현의 소바면을 받고 들떠있었다. 오랜만에 다시국물을 내서 제대로 소바를 만들 생각이었다. 레이가 바쁘니 요리는 늘 자신의 담당이었다. 나가노현의 것이니까 좀더 기합을 넣어볼까? 닭육수를 쓰는것도 좋겠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히로미츠에게 코난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낌새를 눈치채고 히로미츠는 코난에게 귀를 대줬다.
"아무로형의 이름... 혹시 모로후시로 시작하지 않아요?"
형을 만난건가... 히로미츠는 코난을 바라보았다. 확신에 찬듯한 웃음이 코난의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타카아키만을 만나고 이런 말을 하는거면 화제를 돌릴 순 있었다. 이 자신 넘치는 아이가 형에게 '모로후시 경위님 혹시 동생있어요?' 라고 묻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형이라면 자신이 공안인걸 눈치채고 입을 닫아줬을 수도 있고. 히로미츠는 상황을 알기 위해 의도적으로 말을 돌렸다.
"분명 군마현에 갔다고 하지 않았어? 에도가와군? 군마현의 역에도 나가노 소바를 팔던가?"
"군마에 가긴 했는데, 군마와 나가노 현경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서요. 군마현의 야마무라 경부의 부탁으로 거기까지 간거에요."
"아하, 그래서 나가노 소바를 살 수 있었던거구나."
히로미츠의 뇟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야마무라 미사오. 머릿속에서 부르는 이름은 밋쨩. 부모님 사건 때문에 말도 못하고 헤어진 또다른 소꿉친구였다. 현경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나가노의 경찰도 왔을거고, 그 속에 형이 있을수도 있었다. 형과 눈매가 쏙 닮았다고 친척에게 자주 들어왔으니 밋쨩이 자신을 기억해냈을 수도 있었다. 형만 온게 아니라 야마토씨, 우에하라씨도 있었다면 동생의 존재를 부정할수도 없었겠지... 그리고 정말 생각한 대로의 사건이 벌어졌음을 코난의 입으로 듣던 히로미츠는 고개를 떨궜다.
"비밀기지는 아직도 있어요. 히로쨩. 밋쨩이 비밀기지에 새긴 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요."
"이거 낭팬걸. 집에 돌아가면 토오루형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
히로미츠는 가디건의 단추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부정할수도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본명이 밝혀질 줄이야. 휴대폰의 진동이 울려서 확인해보니 레이에게 메일이 와 있었다. 내용은 [그러고도 공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거냐] 였다. 제로 너는 말실수로 들켜놓고선... 히로미츠는 [내 관할 밖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내 잘못 아니야.] 라고 답장을 보냈다.
코난에겐 앞으로도 아무로형이라고 부를 것, 타카아키와 미사오에게 자신에 대해 더이상 묻지 말것, 본명은 기억 속에서 지울 것이라고 신신당부를 한 히로미츠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레이의 입을 소바로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게 만들어보자. 히로미츠는 다짐했다.
**
조직이 사라졌다.
모로후시 히로미츠는 다시 공안의 일원으로서 부활할 수 있었다. 몸은 12살이지만 후루야 레이의 부하로서 제 기능은 할 수 있었다는게 그 이유였다. 카자미가 모로후시 라고 다시 불러주는 순간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마음을 지배했었다. 아카이를 포함한 FBI의 주요 수사관들도 이제 그를 모로후시로 불렀다. 초반엔 간질간질해서 견딜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신이치는 가끔씩 레이와 히로미츠를 아무로씨, 아무로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명은 계속 사용할테니 원하는대로 불러도 된다고 했다.
타카아키와의 만남도 이뤄졌다. 6년 동안 연락 두절인 동생이 공안에 배속되었을거란 짐작은 했지만 어려졌을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타카아키는 히로미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로미츠. 라고 불러주는 형의 목소리가 따듯했던 나머지 히로미츠는 정말 12살 아이처럼 행복해 했다. 타카아키는 동생을 돌봐준 감사의 마음으로 레이에게 고급 레스토랑의 파인 다이닝을 대접하기도 했다.
히로미츠는 여전히 공안의 일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모로후시 히로미츠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있는게 어디인가. 히로미츠는 6년간 스카치이자 아무로 유이였다. 이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
.
.
"중학교 교복 어울리네."
"가쿠란 입은 것도 어울리지만 블레이져도 어울리는구나 히로미츠."
쿠도 신이치와 같은 방식으로 어려진 것이 아니라 히로미츠는 계속 커야했다. 다시 시작하는 중학교 생활이었다. 자켓을 여미던 히로미츠는 쏟아지는 시선에 어쩔 줄 몰라했다. 빤히 쳐다보는 레이와 타카아키의 시선이 대단했다.
"조금 어색한데... 그리고 교복은 내 저금으로 산다니까 벌써 돈을 내서는..."
"중학생이 무슨 돈이야. 이런건 어른에게 맡기는거야. 히로."
"그렇단다. 히로미츠. 후루야군의 말대로 이런건 어른에게 맡기는거야."
입을 다물었다. 속은 벌써 32살. 스카치로서 모은 돈은 건들기 힘들지만 공안으로서 모은 돈은 있었다. 그 돈으로 교복을 사보고 싶었다. 중학생의 외형으로 나도 어른인데. 라고 했다간 옆에서 옷 사이즈를 적는 점원분도 웃을게 뻔했다.
"사촌 분들이 서로 사이가 좋으시네요. 보기 좋아요."
점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옷가게에선 타카아키는 아빠, 레이는 삼촌인 설정이었다. 적당히 모로후시 히로미츠와 아무로 유이가 섞여있었다.
"예. 이번에 중학교도 수석으로 들어가서요."
"어머, 명문 중학교 학생인데 심지어 수석이요?"
조카 바보 설정은 언제 없어지는걸까... 자랑을 친형인 타카아키보다 더 늘어놓는 레이의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다. 말려달라며 타카아키를 보았지만 타카아키는 다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주책이야 정말... 히로미츠는 앓는 소리를 내었다.
명문 중학교 수석 입학생.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제로 소속 후루야 레이의 명령이면 공안인 히로미츠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몇년 일찍 선행한걸로 생각하라고 레이는 넘겼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사실 지금도 히로미츠는 양심이 아팠다. 그 이후 레이가 한 말은 아직도 충격이었다.
'이왕 들어가는거 수석으로 들어가야 아무로 유이지.'
'...저기 제로, 혹시 너 날 이제 아들로 생각하는거야?'
'그걸 지금 알았어 히로? 내가 널 5년 동안 돌봤어. 히로가 대학 들어갈 생각 하니까 벌써부터 눈물이...'
'역시!!!'
그리고 그해 아버지의 날, 히로미츠는 레이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빵터져서 눈물날 때까지 웃은 레이는 아직도 그 카네이션 장식을 보관중이다. (실제 부모님께도 카네이션을 보냈다) 저녁까지 먹고 난 후, 타카아키는 나가노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려고 RX7에 탄 레이는 히로미츠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럼 중학교에서도 잘 부탁해. 히로."
"열심히 할테니까. 제로도 너무 무리하지마. 제로도 내 가족이니까."
"알았어 알았어."
후루야 레이와 모로후시 히로미츠는 공안.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신분이었다. 친구이자 협력자이자 법적 보호자... 서로를 수식할 단어는 많았다. 세상 어디에도 둘과 같은 관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었다. 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기묘한 가족관계지만 히로미츠와 레이는 만족했다. 그 많은 일을 거쳐오면서도 옆에 있어주니까.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레이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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