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올리버와 제임스의 이야기

연극뮤지컬 여성 if 합작

작성일: 2018-03-04

- 오늘 서울 메트로폴리탄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맑겠습니다. 황사 주의보 밤사이 해제되어 시민들은 마스크가 필요 없는 날씨가 반가운 듯 가벼운 발걸음입니다. 최고기온 23도로 한 마디로 올봄 나들이 나가기에 가장 근사한 날이 되겠습니다.

일기예보에서 아나운서가 말한 것처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걸리지 않았다. 창가로 화분을 옮긴 올리버는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내다보았다. 사람들이 봄꽃처럼 화사한 옷차림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창밖을 내다보기 근사한 날이면 제임스는 제 손을 이끌고 놀러 가자 웃어 보이곤 했는데. 제 이름을 부르며 웃던 ‘친구’를 떠올린 올리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람들은 살다 보면 특별히 잊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고 한다. 헬퍼봇에게 망각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없었으나, 올리버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제게도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생길까요?’ 묻고 싶었다. 아니, 실제로도 물어봤지. 그 때 올리버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고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 3초가 넘게 걸렸다. 그 다음에는 심각한 오류가 발생해서 데이터가 날아가거나 누군가 기억장치를 포맷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보낸 시간들 모두 메모리에 남기 때문에 제 기억은 어차피 사라지지 않는다고 변명했던 것 같다.

충동적인 자신의 행동 처리에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올리버를 보고 제임스는 웃었다. 그리고는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직까지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라 잠시 놀랐던 것뿐이라고 올리버의 손등을 토닥거렸다. 그 뒤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누구에게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으니까 올리버에게도 그렇지 않을까?’라며 되묻는 것으로 그 주제에 대한 대화를 애매하게 끝내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 정도 대답도 올리버는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올리버, 나는 네가 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들이 좀 더 즐거웠으면 좋겠어.’

‘저는 제임스가 즐겁다면 똑같이 즐거운 걸요.’

‘아냐, 올리버. 그런 거 말고. 너는 내 헬퍼봇인 동시에 친구이기도 하니까 하는 말이야.’

그 때 제임스는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즐거워야 좋은 거라고 말했고, 올리버는 제임스가 말하는 친구라는 개념을 계속 어려워했다. 올리버는 제임스가 필요한 것을 자신에게 부탁하고 자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웃어주기만 해도 좋았는데, 제임스는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계속 이야기했으니까. 제임스가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 친구라는 개념을 검색하면 1.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이 전부라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포털사이트의 통합검색은 불필요한 정보가 많아서 참고할 때 방해가 더 될 것 같아 제외. 올리버가 제임스의 말을 필요로 한 것으로 이해하고 고민하는 동안, 제임스는 올리버에게 네가 좀 더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말은 더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올리버가 고민이라도 할라 치면 필요한 것이 있다며 소소한 부탁을 하는 일이 늘어났다.

‘올리버, 여기 있는 병을 마트 직원에게 전해주고 올래?’

‘이번에도 마트에 계신 분께 빈 병을 갖다드리고 돈으로 바꿔오면 될까요?’

‘우리 올리버는 똑똑하기도 하지. 참,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서 이번 달 ‘월간 재즈’도 한 권 사오지 않을래?’

빈 병이 든 박스는 별로 무겁지 않았고, 올리버는 걸을 적마다 병끼리 부딪혀서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좋아했다. 주인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일인데 매번 고맙다 꼬박꼬박 말해주는 제임스의 목소리는 더 좋아했다. 빈 병을 가져다주면 받게 되는 동전이 반짝거리는 것도 좋아했고, 그 동전을 가지고 돌아가면 제임스가 환하게 웃어주는 것도 좋아했다.

그렇게 가지고 온 동전들을 제임스는 품에 가득 안길 크기의 원통에 넣었는데,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딸그랑 소리가 그렇게 경쾌했다. 그 통이 꽉 차면 올리버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자고 제임스는 입버릇처럼 말했고, 올리버는 얼른 채워서 제임스가 좋아하는 새 레코드판을 사자고 그 때마다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은 길에 버려진 빈 병을 주워오기도 했던 것 같다.

‘올리버. 이건 올리버 옷이야. 귀엽지?’

한참 창밖을 구경하다 고개를 집 안으로 돌렸을 때, 의자에 걸린 노란 우비가 올리버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 우비를 사온 날, 제임스는 제게 우비에 달린 후드를 씌우고는 비가 올 때 아무리 어두워도 올리버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겠다며 웃었다. 얼굴이 안 보여서 혹시 같은 우비를 입고 있는 사람과 착각하면 어쩌지? 그렇게 말하는 제임스의 얼굴은 꽤 장난스러워 보였으니까, 착각하면 어떡하냐고 묻던 것은 엄살이었을 것이다. 제임스라면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착각하지 않고 찾아올 것이라고, 올리버는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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