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트릿의 이야기

연극뮤지컬 여성 if 합작

작성일: 2018-03-04

집 안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트릿은 엉망이 된 대문짝을 눈에 담고는 짜증스럽게 문을 닫았다.

트릿은 입고 있던 점퍼 주머니를 뒤집었다. 손바닥만 한 포켓 나이프, 낡은 동전 여러 개, 주먹보다 조금 큰 검은 빵, 멍든 사과, 다 떨어진 낡은 지갑 따위가 주머니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트릿은 그중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집어 먼지를 털어낸 뒤에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이정도면 먹고 탈은 안 나겠지, 변명처럼 속으로 중얼거리며 트릿은 지갑을 집어 들었다. 낡은 지갑은 얄팍하기 짝이 없었다. 열어보니 달러 몇 장을 제외하고 제대로 나오는 것도 없었다. 1, 6, 8… 한 장 한 장 세어보던 트릿은 얼마 안 되는 액수를 확인하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필립. 누님이 왔는데 나오지도 않아?”

너, 내가 먼저 찾으면 가만 안 둘 거야. 내 말 알아들어? 소파에 털썩 앉은 트릿은 쥐가 파먹은 것처럼 쥐어뜯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눈가가 따끔거리는 것이 오늘도 역시 상처가 난 모양이었다. 무시당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지만, 오늘은 또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막막했다. 상처가 쉽게 보이지 않는 곳이면 거짓말이라도 보태서 아무렇지 않은 척할 텐데. 이 거리에서 나이 어린 애들끼리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고 트릿은 욕지거리를 입 안으로 삼켰다.

“…이 새끼가, 이 트릿 누님이 나오라고 했는데 듣지도 않는다 이거지?”

괜히 나오지 않는 어린 동생에게 성을 내며 트릿은 인상을 팍 썼다. 소매치기는 아무리 해도 쉽지 않았다. 정말 비싼 물건에는 손을 대기가 어렵고, 그나마 쉽게 얻어내는 물건은 값어치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도 남이 뜯어가려고 하는 걸 물어뜯고 지랄을 해서 지켜내야 하니, 남는 것은 늘 몇 푼 안 되는 돈과 골병밖에 없었다. 덩치 있는 놈들처럼 칼을 들고 강도 흉내라도 내볼까 생각했지만, 자신보다 조금 큰 남자애들도 제대로 못 이기면서 다 큰 어른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무서워서 포기하고는 했다.

집을 나갈 거면 남은 사람들이 며칠 먹고 살 정도의 돈이나 음식은 두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자기들 처지를 생각하던 트릿은 지금 상황의 원인이 된 여자가 생각나 이를 갈았다. 생각해보니 저 문짝도 그 여자가 집을 나간 탓에 저렇게 된 것이다. 그 여자가 집에 있었다면 애먼 어른들이 필립을 데려가겠다며 문을 걷어차고 난동을 부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보호시설은 지랄, 어떻게든 나한테서 필립을 떼어놓으려고. 내 가족은 이제 쟤밖에 없는데….

“…트릿 누나, 나쁜 아저씨들 갔어?”

트릿이 한참 씩씩거리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옷장 문이 열리더니 여성용 코트들 사이로 필립이 고개를 내밀었다. 코까지 올려 둘둘 감쌌는데도 물이 빠진 낡은 머플러는 길이가 제법 남았다. 트릿은 냉큼 소파에서 일어나 옷장 앞으로 다가갔다. 얼마나 숨을 죽이고 숨어있었는지 필립의 자그만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트릿은 필립을 일으켜 세우고는 머플러를 느슨하게 고쳐 감았다. 바깥 공기에 조금이라도 덜 노출시키려고, 하지만 오래 써야 돈을 아끼니까 긴 것으로 샀는데 지금 것은 좀 정도가 심했나 생각이 들었다. 머플러에서 손을 뗀 트릿은 찡그렸던 표정을 풀고 씩 웃어보였다.

“고럼, 이상한 사람들이 저 밖에 계속 돌아다니는 걸 이 누님이 남의 집 앞에서 뭐하는 거냐고 쫓아냈지. 그럼 문 안 열어주고 계속 여기 숨어있던 거야?”

“누나가 문 열어주면, 나쁜 아저씨들이 우리 집에서 못 살게 끌고 간다고 했잖아.”

“그래, 잘했어. 필립. 오늘은 뭐 보고 있었지?”

“이 앞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가….”

검은 빵을 필립에게 건넨 트릿은 멍든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동생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집을 둘러보았다. 필립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계속 숨어있었는지, 집 안은 딱히 누가 들어온 것처럼 보이는 곳이 없었다. 내 너무 신경이 예민한 거겠지, 한참 주변을 살피던 트릿은 필립이 그녀 눈가의 상처를 발견하고 약을 발라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겨우 제 앞에 있는 동생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약은 무슨 약이냐고, 제가 이 정도 다쳤는데 상대는 얼마나 더 다쳤겠냐고 너스레를 떨어도 계속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슬슬 거짓말의 패턴을 바꿔야 할 성 싶다. 제가 그렇게 못 미덥냐고 필립에게 성을 내며 트릿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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