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마이어 베가] 언니, 아직도 내가 보고 싶어?

"허억, 허억... 후... 좋아, 이대로 조금만 더 줄이면 돼. 한 바퀴만 더, 갔다 올게."

"아야베 씨! 조, 조금만 쉬어요! 지금 벌써 다섯 바퀴나..."

열심히 뒤에서 쫓아오는 나리타 탑 로드의 단말마와도 같은 외침을 가볍게 무시하고, 또다시 코스에 내딛은 다리에 힘을 더하며 잔디를 달려나간다. 드디어 겨울이 왔음을 체감하게 해주는 차가운 바람이 폐에 한가득 들어차며 휴식을 권해왔지만 어드마이어 베가는 아직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많은 우마무스메들과 트레이너들이 연습 일정으로 실내 트레이닝을 고르기 시작하는 날씨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산해진 야외 코스는 어드마이어 베가와도 같은 아리마 기념을 준비하는 우마무스메들에게는 좋다고도 할 수 있는 날씨였다.

"언니의 운명은, 내가 갖고 갈 테니까. 앞으로는 자신만의 레이스를 마음껏 즐겨 줘."

국화상 도중에 만난 그 아이. 알 수 없는 말만을 남기고 떠나가버린 그녀의 동생. 그 날,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더라도, 어드마이어 베가 자신에게는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자나 깨나 그녀 주위를 맴돌며 속삭이던 비난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꽂히던 죄책감과 부담감도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이 덜어냈다. 지독하게도 밀려오던 발목의 통증까지 사라진 지금, 그녀는 동생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 그대로 자신만의 레이스를 있는 힘껏 즐기며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벌레 군집이 한번 친 약으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그녀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은 구석에 남아 다시 번성할 그 날을 기다리는 여왕개미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리움을 덮기 위해 그녀가 택한 방식은 다시금 그 가혹한 트레이닝에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한 번 더 국화상처럼 절실한 달리기를 보인다면, 그 염원이 하늘 어딘가에 있을 여동생에게 다시 한 번 닿아 여동생과 또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섞으며.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분명 그녀의 트레이닝 루틴을 가지고 더비 우마무스메를 이렇게 혹사시켜도 되겠냐면서 이사장 비서실에 찾아가 따졌을지도 모른다.

"하아.. 하아... 아야베 씨, 이제 진짜 조금만 쉬어요! 더 하다간 다칠지도 몰라요."

"...응, 그래. 숨이 진정되면 다시 달리자."

"세 분 모두 고생하셨어요오오... 여기 물 조금 드세요오..."

"아, 도토 씨! 마침 목말랐는데! 잘 마실게요."

"고마워."

"고맙네, 도토! 역시 패왕의 옆을 지키는 책사답군! 딱 좋은 타이밍에 맞춰서 왔네, 잠시 이쪽으로 와서 내가 직접 쓴 각본의 검수를 맡아주게!!"

"이, 이런 제가 감히 검수를 맡아도 되는 걸까요오오오오오...."

"그래도 역시... 한 번 쯤은 더 보고 싶네."

"아야베 씨, 제게 뭔가 말했나요? 뭔가를 들었는데..."

"아, 아니야. 아무것도."

"하-앗핫핫하!! 역시 나에게 반해 고백멘트를 고민하다가 멋대로 흘려버린 것이로군! 허나 아쉽고도 아쉽도다, 아야베 씨!! 이 몸은 아직 왕도의 길을 걷는 중이라, 아직은 누군가에게..."

"여... 역시 오페라오씨에요오오오... 대단해요오오오..."

"시끄러워. 난 다 쉬었으니 한 바퀴 더 뛰러 갈 거야."

"앗, 아야베 씨! 저도 같이!"

"부끄러워 할 것 없네, 아야베 씨! 자네도 나와 같이 왕도를 걷는 자 아닌가! 어쩌면 우리는 같은 세대로 살아가기로 된 운명과도 같은 존재일세! 물론 탑 로드 씨와 도토도 마찬가지지만! ...하-앗핫핫하!!! 라이벌도 포용하는 너른 마음을 가진 이 몸의 광휘에 눈이 멀 것 같아서 멀리 자리를 피하는 것이겠지!!..."

이후 오페라 오는 "운명이에요오오오..." 라며 옆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도토를 위해 즉석에서 오페라를 열어주었다. 그런 오페라 오의 모습에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어드마이어 베가는 또 다시 트랙을 달린다.

다만 여동생을 향한 그리움에 의해 집중력이 조금 떨어진 탓인지, 마지막으로 달렸던 트랙 기록은 아까보다 미묘하게 조금 더 늦은 것 같이 보였다.

기록이 늘어진 것을 눈치챈 건 옆에서 같이 달린 나리타 탑 로드밖에 없었지만 천성이 낙천적인 탑 로드답게 트랙을 도는 내내 들려오던 오페라에 기가 눌려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 그런 것 치고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안 맞았지만 - .

트랙에서는 다들 자신의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기도 하고, 더군다나 오페라 오의 즉석 공연 덕에 어드마이어 베가 본인 외에는 그녀의 기록에 다분한 관심을 갖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지만, 기숙사에 들어오면 말이 달라진다.

다들 자신만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거나, 룸메이트끼리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다른 방에 놀러 갔다가 후지 키세키의 특제 잔소리와 함께 돌려보내지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어드마이어 베가의 룸메이트인 카렌짱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날은 많지 않았다.

"아야베 씨, 표정이 안 좋은데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응? 아... 별 거 아니야. 신경 안 써줘도..."

"요즘은 그런 표정을 별로 못 봤는데... 전에 마지막으로 그런 표정을 지었을 때 한밤중에 몰래 기숙사를 나와서 뛰다가 돌아오는 길에 후지 씨한테 걸렸잖아요. 심지어 뛰다가 넘어져서 다리까지 절뚝이면서 들어와 놓고."

"아, 아니... 그건 어떻게..."

"아야베 씨도 알면서, 카렌은 귀가 생각보다 밝답니다?"

"그... 그게..."

"아무리 국화상 이후에 다리가 나았다고는 해도... 카렌이 계속 쉬라고 해도 산속에 또 다녀왔잖아요!"

카렌의 말 그대로, 그녀는 국화상 바로 며칠 전에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가 강변에 로드워크를 나갔다가 피로가 원인인 전방 주시 태만 덕분에 혼자 미끄러져 강변 풀숲에 빠진 적이 있다. 멀쩡할 때야 몰래 나갔겠지만, 부상을 당한 다리와 함께 후지 키세키의 시야 밖에서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또한 늘 하던 전통과도 같은 매달 음력 초하루의 나 홀로 산속 캠핑 역시도 카렌이 '장거리 레이스를 막 끝내놓고 야외에서 밤을 새우는 것은 위험하다' 며 뜯어말렸음에도 강행했기 때문에 어드마이어 베가로서는 더욱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몇 개월 전의 표정보다는 한층 밝아졌다지만, 그럼에도 세심하고 기억력 좋은 카렌에게는 다시금 어드마이어 베가가 몇 달 전의 그 침침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올까 봐 걱정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어드마이어 베가는 또 다시 한밤중에 다쳐서 절뚝거리며 돌아올까 걱정된 카렌을 진정시키고 우마스타그램에 올릴 각종 사진과 영상들을 골라내는 데에 집중하게 하려고 그날 저녁을 홀랑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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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잘 지냈어? 딱히 안 물어봐도 됐으려나. 후훗."

"나는 뭐, 매번 그랬듯이 언니를 지켜보고 있지. 요즘은 내 생각에만 집중하는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야."

"언니 근데 있지, 오페라 오 씨한테 조금 더 착하게 대해주면 안 돼? 내가 보기엔 오페라 오 씨 엄청 착하고 좋은데."

"여긴...?"

어드마이어 베가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장소에서 눈을 떴다. 분명 이곳은 교토 경기장... 그런데 교토 경기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붕 떠 있는 느낌...

"아, 다른 배경을 가져오기엔 너무 힘들어서... 괜찮아, 언니는 그냥 꿈 속에서 나를 만난 것인걸? 여기는 언니가 아는 교토 경기장은 아니긴 한데, 내가 저번에 나올 때 쓴 배경이라..."

"별 거 아니야. 진짜 꿈이라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꿈처럼 느낄 걸? 이 공간은 내가 여신님한테 빌려달라고 떼 좀 썼지만. 어쨌든 빌려주셨으니까, 내일 아침에 등교하면 삼여신상 앞에 동전이라도 하나 던져줘야 해?"

"그래도 그냥 막 되는 건 아니야. 언니가 맨날 이날 밤마다 밖에 나가선, 제대로 안 자고 그러니까 내가 그동안 구경할 기회가 없었잖아!..."

저 앞의 자신과 닮은 우마무스메...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명백히 그녀의 여동생이었다. 생김새, 말투, 심지어 목소리 톤까지. 무언가 거래를 통해 이 이상한 꿈으로 자신을 끌여들인 듯 하긴 한데, 지금 당장의 어드마이어 베가에겐 그건 딱히 중요치 않았다.

"이날 밤마다...?"

"그래, 언니 매달 신월의 밤에 나 찾으러 가겠다고 산에서 해 뜰 때까지 안 자잖아. 하루 이틀 날이 달라진다고 내가 어디 가버리는 것도 아니고. 자꾸 이렇게 일방적으로 보기만 하면 나 섭섭해?"

"..."

그제서야 어드마이어 베가는 그날이 음력 초하루 되는 날 - 12월 10일, 그러니까 음력으로 따지자면 11월 3일 되시겠다 - 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오늘은 지금까지 매달 동생을 보기 위해 외박신청을 하고 기차를 타면서까지 저 멀리 숲속에 작은 텐트를 쳐놓고 밤새도록 동생의 별을 찾아 해가 뜰 때까지 헤멨던 그 날이었던 것이다.

그건 국화상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국화상을 뛰고 3일밖에 지나지 않은 탓에 카렌의 오만 걱정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뚝심있게 산을 올라 밤을 새웠다. 지금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기 때문에 마치 의례를 치루듯이 간 것이기도 하지만, 더군다나 그 전까지는 계속 알게 모르게 죄책감에 시달려왔던 터라 산에 올라 별을 헤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 하기도 했다.

"언니, 아직도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국화상 뛰고 나면 힘드니까 그때 다시 볼 줄 알았는데."

"...미안..."

"아니! 사과를 하라는 건 아니고! 나한테 아직도 미안하냐구!"

"..."

"어라~? 진짜였던걸까~? 딱히 벌을 준다거나 그러려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조금.."

"언니 착해졌네. 옛날에는 내가 무슨 말 하려고 해도 끊어먹고 더 힘들어하더니,"

"..."

"이번 달에도 또 산 오르는 줄 알고 걱정했단 말이야. 그래도 이번 달은 웬일로 안 올랐대. 의외네~?"

어드마이어 베가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국화상 이전까지 그녀는, 여동생이 뭐라 하던 간에 그 위에 그녀 마음 속의 죄책감을 한 사발 끼얹고 우울해하기 일쑤였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화상 이후에도, 동생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은 갖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밤에도 산에 오르려 했던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었다. 침대 발치 밑에는 어젯밤 미리 싸놓은 캠핑 도구들이 내일 아침 다시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뭐, 그래도 괜찮아. 이번 달은 오페라 오 씨랑 카렌 씨가 언니의 체력을 다 빼줘서 산에 가는 것도 놓치고 이렇게 잠드는 바람에 나도 말 할 기회가 생긴 거잖아?"

"그렇다고 아예 '날 보고 싶다고 야밤에 산에서 혼자 캠핑하는 건 영원히 금지!' 이런 건 아니니까! 이 날만 예외로 해 달라는거지! 나 아예 없어진 것도 아니니까 무리하지 말라구!"

"너는... 어떻게..."

"나한테 물어볼 게 또 있는 거야? 내가 어떻게 여기 있는지?"

"그건 어렵지 않아! 저어기 있는 여신님한테 부탁했거든! 신월 밤에 언니가 자면 내려와서 이렇게 잠깐 동안 공간을 열어주겠다는 거지!"

"..."

"언니, 또 말할 게 있는 것 같은데? 뭐든 말해봐! 여기서 한 얘기는 밖에 안 들린다니까!"

"...보.. ..어.."

"음? 언니 너무 오랫동안 우울해있었어서 그런가, 잘 안 들리는데~?"

"보고... 싶었어...."

이번에는 동생 쪽에서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말이야 꺼내자면 많았지만, 보고 싶었다고 우는 언니에게 그런 말을 꺼낼 만큼 여동생은 눈치없고 딱딱한 아이가 아니었다. 대신 언니에게로 가 말없이 안아줄 뿐이었다. 자신을 안아주는 동생을, 언니는 안기면서 또 울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동생의 품에 파묻혀 하염없이 울고 나서야 어드마이어 베가는 겨우 퉁퉁 부은 눈을 뜨고 동생을 마주볼 수 있었다.

"에이, 울지 마 언니. 언니 이제 이런 걸로 울 만큼 약하지 않잖아. 내가 영영 안 오겠다는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

"아 참, 내가 평소에 있는 곳 알려줄까? 그러면 언니도 굳이 이 날만 콕 집어서 산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

"저기 저 은하수 아래에 보여? 저기 이제 막 오르려는 저 별 있잖아. 저기가 내가 있는 곳이야. 겨울이라 잘 안 보이지만!"

"......르."

"음?"

"..알타이르."

"그치! 바로 맞혔어. 일부러 언니가 금방 찾는 저 별에 자리잡았어. 그래야 다른 날에도 언니가 날 찾을 수 있잖아? 물론 나도 언니를 잘 볼 수 있기도 하고."

"물론 언니의 운명이 내가 가져가서 한번에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왕이면 은하수에 흘려보내기도 편할 겸... 헤헤."

"그치만 그렇다고 그 운명이 어디 다른 우마무스메한테 옮는 건 아니니까!"

"언니를 위한 자리도 있어! 저기 저 위로 고개를 또 돌려보면 있는데, 아직은 언니가 올 일이 없으니까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염원이 저기 자리잡고 있어. 언니가 올 만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염원은 어떤 우마무스메에게 전해지고 빈 자리가 될 테니까 언니가 딱 들어오면 되기도 하고!"

그녀가 가리킨 곳은 거문고자리나 백조자리 언저리였다, 라고 어드마이어 베가는 생각했다. 다만 이번에는 정확한 자리를 안 보여주는 바람에 무슨 별인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두 별자리 모두 강하게 빛나는 별들이 있는데다 슬슬 해가 뜨고 있어 무슨 별을 자리해두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후훗... 어딘지 잘 모르겠어? 아직은 몰라도 돼. 언니는 아직 오려면 아아아~주 한참 남았거든?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언니의 달리기에 좀 더 집중해줬으면 좋겠어. 아리마 기념, 기대하고 있으니까?"

"...응.."

"그러고 말이야, 앞으로도 또 행복하게 지내고 레이스에서도 언니만의 달리기를 계속해서 즐겨주기만 하면, 또 몰라! 내가 가끔 이렇게 와서 언니 안부도 묻고, 여기선 같이 뛰어볼 수도 있을 테니까!"

"이제 저기 봐, 해 뜨지? 언니는 곧 있으면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다음 달에도 또 올 테니까 말이야!"

------

마치 지각한 사람의 그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다만 눈 앞에 있는 우마무스메가 애매한 표정을 짓는 기숙사감 후지 키세키가 아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카렌이라는 점에서, 어드마이어 베가는 아직 지각할 정도로 잔 것은 아님에 안심한다.

"어, 아야베 씨! 어쩐지 오늘은 흔들어도 안 일어나시더니! 아야베 씨도 얼른 준비하지 않으면 지각할 거라구요?"

"....헉."

안심도 잠시, 시계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허겁지겁 나갈 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며 카렌이 묘한 웃음을 짓는다.

사실 저렇게까지 급하게 준비할 만큼 엄청난 지각까지는 아니지만, 그 어드마이어 베가가 저렇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는 건 흔하지 않았기에 카렌은 잠자코 나갈 준비를 마저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야베 씨, 어제는 좋은 꿈을 꾸셨나보네요? 일어나기 직전까지 계속 미소를 짓고 계시던데..."

"아... 혹시 나, 자다가 무슨 소리 했었어?"

"으음~? 아야베 씨, 혹시 자면서 잠꼬대 하는 타입? 의외네요~"

"그, 그건...!!"

"히힛, 이건 아야베 씨와 카렌만의 비.밀~ 그러고, 그렇게 급하게 나갈 만큼 늦은 시간은 아니에요~"

대체 어디가 비밀인지는 안 알려주면서 자신이 준비를 다 마친 이후에야 시간을 알려주는 카렌에게 약간 실망하면서도, 그럼에도 그녀의 입꼬리를 내릴 수는 없어 보인다.

그녀의 소중한 여동생이 아직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님을, 그녀를 저 하늘 위 1년 4계절 내내 보이는 별의 자리에 자리잡아 지켜보고 있음을, 그러고 가끔 한번씩 내려와 안부를 전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까.

오늘이라면 티엠 오페라 오가 자신을 붙들고 트레이닝 시간 내내 쫓아다니며 오페라를 열어도 즐겁기만 할 것 같다는 묘한 생각까지 가지고, 어느 새 신발장 앞까지 가 있는 카렌을 따라간다. 더 이상 어드마이어 베가 본인에게 생길 걱정이란, 아마 하늘이 무너지는 일 말고는 없을 것이므로.

"하-앗핫핫하!! 의외로군!! 아야베 씨, 드디어 내 진심이 담긴 오페라를 봐 줄 생각이 들었다니! 이것이 과연 어젯밤 꾸던 꿈의 연장선일지, 아니라면 이곳이 정말 지상 속의 낙원과도 같군!!"

"으... 봐 줄 생각 있다고 말 한 적은 없는데."

"그거라면 걱정 말게!! 이미 그 사실은 아야베 씨의 룸메이트인 카렌 양에게 전부 전해들었으니!! 자네를 위한 특등석까지 마련했으니 부디 앉아 주게나! 도토!! 어서 이 패왕에게 대항하는 칠전팔기의 용사 역을!!"

"카렌에게도 그거, 말 한 적 없는데?!"

"제, 제가요오오오...? 오페라 오 씨의 공연에 직접....?"

오페라를 다섯 시간 넘게 보고 있어야 한다는 공포는 아침에 몰래 한 -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미 들켜버린 (카렌은 아니다) - 생각을 싹 잊게 만들어 주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코즈믹 호러를 경험하듯, 어드마이어 베가는 자리에 앉혀지면서도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기껏 최상으로 올라간 컨디션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아침부터 일찍 나와 계시네요~ 저도 트레이닝 준비는 다 됐으...어라?"

"아야베 씨...? 어째서..?"

그러고 여기, 아침에 숙제 노트를 걷어 교무실에 제출하고 온 나리타 탑 로드가 뒤늦게 어드마이어 베가가 티엠 오페라 오의 연극을 지켜보는 모습을 환각을 보는 것으로 착각하고 양호실에 다녀오는 아주 사소한 사고가 있었다.

양호실에 간 나리타 탑 로드의 설명을 듣고 양호 선생님 역시 자신이 환청을 들었으며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우마무스메는 사실 나리타 탑 로드로 위장한 귀신일 것이라고 잠깐 오해하는 더 사소한 사고가 있었으나, 곧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여럿 나타나는 바람에 양호실 오전 업무가 조금 마비되는 것 말고는 큰 문제는 없었던 걸로 넘어가게 되었다.

오늘도 트레센 학원은 평화로운 아침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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