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11/20, 2024

OC_크롤리바이퍼

저승 by 亡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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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 상사.“

“…켈러 준위님. 부르셨습니까?“

이전에 자신을 다그치던 목소리다. 바이퍼는 그 목소리를 좋아한다. 올바른 길을 알려주고, 하면 안되는 것과 해야하는 일을 다루며 자신을 벼려준 사람의 것. 한 발의 탄환처럼 무정해졌던 이유. 푸른 독사가 지금의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은 모두 그의 덕이다. 물론, 자신에게 책임을 지도록 가르친 것 또한 바이퍼는 받아들였다. 그닥 받아들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 긴장 풀어라. 곧 원사 달아야 할 놈이 아직도 쫄기는..“

“…”

“그래서 어디 중사 놈들이 쫄겠나. 주눅들지 마.”

“그러겠습니다.”

행동을 갈무리하는 것은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사람의 특성이다. 우리에게 침묵은 덕목이다. 적군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이 이어져도 기밀을 발설하지 않을 정신력과 불합리함과 온갖 비윤리적인 일을 자행하면서도 여전히 군인으로 남을 정체성은 모두 토대로 침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불사르고 사실을 말하길 택하나, 그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최후로서 당당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살아남고 싶은 겁쟁이라서, 그런 일들은 차마 행할 수 없다. 세상에 진실을 공개하는 것보다 침묵은 쉬운 일이다.

“지난번에 사고 친 건 수습했다.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다니, 무슨 일 있었나?”

“…별 일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에는 핀잔이 되돌아온다. “상사, 자네는 참 거짓말을 못 한다는 걸 알고 있나? 내가 가르칠 때랑 다를 바가 없어.”

“준위님..” 그러나 침묵은 금이다. 자신은 값어치를 매길 정도의 정신은 남겼다.

“…”

지금도 마찬가지, 알아야 할 일만 알고 몰라도 상관없는 일들은 소각장으로 내던지듯 버려진다. 그는 후에 훌륭한 군인이 되어 전장에서 죽는다면 칭송받겠지. 옆에서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소리가 난다. 블랙에 설탕 한 포시죠? 다음 번 자신의 파트너가 되었던 이는 커피를 타 주며 그렇게 말했다. 카터 보그다노비치는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며 그것을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준위가 권하지 않았으니 그는 빈 손이다. 먼저 말을 던지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준위는 자신의 인생에 많이 관여하고 있다. 그에게서 배운 것은 사격과 근본적인 군인 정신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를 닮아간다. 하지만 누군가의 스승이자 파트너가 되었던 이전 10년 동안 그것에 만족하는지 확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카터.”

“..예.”

“여전히 일이 버겁나?”

켈러 준위는 사람을 많이 만나봤을 것이다. 그와 파트너가 되기 이전까지의 경력, 이후로 바이퍼가 보아온 경력들을 합한다면 자신은 스승이 가르쳤던 한 제자에 불과하다. 준위는 자신을 그동안 키운 모든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고, 아끼는 애제자라고 칭했으나 바이퍼는 그에게서 애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특별함이 자신을 켈러 준위의 애제자라는 새로운 호칭을 부여했다. 그는 이명이 너무나도 많다. 때문에 카터 보그다노비치는 특별하지 않다고 자신을 속인다. 그러나 되뇌인 말처럼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바이퍼는 질문에 침묵한다. 곧이어 상대가 자신을 안타깝게 보고 있다는 시선을 느꼈다. 망가진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어 수렁으로부터 끌어올린 스승에게 무엇을 감출 수 있으랴. 그는 바이퍼 너머 카터 보그다노비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잡아당김이 점차 카터 보그다노비치의 목을 조른다는 사실을 몰랐다. 질문을 할 기운이 빠져나간다.

"얼마 전에도 파견을 다녀온 것 같았는데."

"그랬습니다."

"크롤리 중위는 잘 지내던가?" 스승은 그의 과장된 명성을 누를 저격수다. 그는 급소를 꿰뚫렸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연락도 하나 보군. 그렇지?"

침묵이 과연 준위에게는 얼마나 효과적일까? 이내 바이퍼는 거짓말을 포기하고 수긍하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사이도 좋은 것 같고. 예. 그리고 다음 질문에 카터 보그다노비치는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들어 흰색 손수건이라도 흔들고 싶었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효과적이지 못하다. 모든 것을 참고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나한테 자네 얘기를 하더군.”

“…”

“그를 만나러 가나?” 오랜만에 스승이 쏜 탄환의 궤적이 흐트러진다. 카터는 기회를 잡듯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고향으로 갑니다.”

준위는 그런 자신을 보며 웃는다. “아, 누나를 보러 간다고 했나.”

“예.”

“잘 다녀오게. 누나에게는 안부 전해 주고.”

카터는 기묘함을 읽었다. 그러나 특별히 무언가 대답할 요령은 없었다. 그저 휴가를 나가기 위한 짐을 싸기 전 마지막으로 피우려고 했던 담뱃갑의 돛대를 준위에게 건넸다. 그는 금연을 시작했다며 완고하게 거절하고 바이퍼의 등을 두드린 뒤에야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가 두드렸던 등이 좁아지는 기분이 들어, 지나가던 후임에게 입에 대지도 않았던 새 돛대를 물려주고 생활관으로 들어간다.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일순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려 잘게 떨린 호흡이 머리를 꿰뚫지 못하고 큰 비명을 만들었던 현장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징계를 받을 수준은 아니었으나 바이퍼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그는 두렵다. 자신의 명성이 바닥까지 떨어져 더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부의 내침이-

그렇다면 그 전에 떠날 것이다. 버려지는 것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켈러 준위의 보호로 단추 한 개의 지름도 되지 못한 거리의 사소한 차이를 지적하지 못했고, 바이퍼의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으나 자신만이 주위가 변했다고 착각한다. 준위는 그런 그를 안심시킨다. 모든 것이 질려간다. 때문에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을 요령으로 바이퍼를 버리고 카터 보그다노비치는 바깥으로 도망친다. 그토록 그리웠던 바다를 볼 생각에, 약간 들뜬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되지도 않는 옷가지를 먼저 챙겼다. 그 위로 누나와 형부의 결혼기념일 선물로 줄 장신구와 파견지에서 비싼 값을 주고 사냈던 디저트를 빠르게 챙겨 외출 수속을 밟는다.

“이런거 안 챙겨도 된다니까. 결혼 기념일은 한참 전이었잖아. 그보다 잘 지냈어? 밥은 잘 먹었고?”

“응. 별 거 아니야, 그냥 괜찮아보이길래 산 거야… 형부도 좋아할 것 같아서.”

“좋아하지, 그럼. 오면 전해줄게. 또 나갔다 올거야?”

“저녁 먹기 전에는 돌아올게.”

카터 보그다노비치가 찾는 바다는 변함이 없다. 늘 파도치고, 사나우며, 사람을 반기지 않는다. 카터는 그게 늘 마음에 들었다. 바다에게 뭍의 인간들이란 이방인이라서, 그들을 내쫓을 것처럼 사납게 흰 거품을 일으키고 요란한 소리로 경고한다. 그러나 그 경고가 자신에게는 그닥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는 그 바다에게 이방인이 아니었으므로. 만약 이방인이라 한들 어떠한가, 20년이 넘게 찾아갔던 바다는 그 속을 항상 똑같이 보여준다. 발을 끌며 30걸음도 채 내딛지 못하고 금방 바닥에서 발을 떨어뜨려야 했으며, 금방 헤엄을 쳐야만 했다. 한 번의 숨으로 나아가면 잠시 쉬어가라는 듯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암석, 또 그 이상 나아가면 어둡게 짙어지는 바다가 좋았다. 코와 입을 지나 짠맛이 몸을 채운 뒤에야 만족스럽게 바닷속에서 머리를 꺼낸다. 차가운 바람이 저의 뺨을 때렸다. 개운했다.

젖은 옷을 바람에 말리며, 상념에 잠긴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고 강한 진동으로 흔들리는 휴대폰. 발신자는 확인할 수 없으나 바이퍼가 아닌 카터의 개인 연락처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중에서 자신이 휴가를 나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상대가 누구인지 금세 알아차리고 세 번의 진동이 끝날 때쯤 받아 먼저 말을 걸어올 상대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Hola, mi cerdo. 전화를 늦게 받네. 그의 언사는 언뜻 듣자면 경박하고 무례한 언사지만, 품위를 말아먹은 수준은 아니다. 아마도. 상대에게 건넬 말을 구순에 올리지 못하고 고민하다 한 문장으로 퉁쳤다. 저는 대화에 재능이 없다. 전화를 걸어준 이도 알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중위님.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목소리 들으려고 전화했는데. ..밖이야?

"휴가 중입니다."

-실례, 내가 방해한 건 아니길 바라지. 고향?

"예."

방해하지 않았다는 말은 안 꺼내네. 휴대폰 너머에서 음질 나쁜 웃음소리가 들린다. 잠시 수화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동전을 몇 개 더 집어넣는 소리가 울린다. 왜 본인 휴대폰은 쓰지 않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카터 보그다노비치에게 바라는 게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것을 돌려 말하는 법을 알았다면 분명 더 괜찮았겠지만, 자신은 그 정도로 섬세하지 못하다. 그는 공 하나를 발로 툭 굴렸다. 그와 훈련하던 크롤리 중위가 아닌 헥터 산체스에게. 불친절한 말투라고 혼이 난다는 가정을 덧붙였다. 아마 그건 전부 자신의 망상에 불과할 테지만.

“할 말 있으십니까?”

-뭐, 그렇지. 상사가 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야 아무 말씀 없으셨으니까요.”

-진심은 아니길 바라.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고 말하는건가?

“11월 20일입니다. 부대에 특별한 일정은 없었습니다.”

상대방은 크게 웃었다. 정말 무슨 날인지 모른다고? 상사는 너무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 입 안에 들어간 모래를 뱉어내고 벗어두었던 겉옷에서 구겨진 담뱃갑과 쓰던 푸른빛 지포라이터를 꺼낸다. 바닷바람은 카터 보그다노비치가 입에 문 연초 끝에 불을 붙이는 걸 지독하게 방해했다. 한 번 더 들어오라는 듯 잠시 잔잔해진 파도가 저를 유혹한다.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을 그친 헥터 산체스의 말은 뒷통수를 때린 것처럼 얼얼했다. 물고 있던 담뱃재가 옷 위로 약간 떨어졌으나 금방 바람을 맞아 날아갔다. 옷에 구멍이 날 걱정은 덜었다.

-상사의 생일이잖나. 기억이 나서 전화했어.

“…예?”

-말 그대로야. 생일 축하해. 좋은 휴가 보내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긴다. 카터 보그다노비치는 끊어져 기록만 남은 전화 기록을 한참동안 응시하다, 떨어지는 빗물이 화면을 적시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금방 모래사장에서 일어나 주머니에 폰을 구겨넣고, 겉옷을 챙긴 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담뱃불이 꺼지기 직전까지만 제 생일을 떠올리기로 했다. 그에게 축하받은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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