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미나] 신애 神愛

아이나나|ŹOOĻ 미도 토라오 x 나츠메 미나미 황실 AU

포스타입에서 유료로 공개했던 내용을 펜슬로 이동하면서 무료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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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어나스테에 본문을 실은 재록본이 판매될 예정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 2020년 1월 11일 디.페스타에서 판매되었던 토라미나 황실 AU 소설본 입니다. 구매해주셨던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15세 이용가, 세계관에 의해 캐붕이 생길 수 있으니 예민하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 사망 소재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 본문 말미에 적은 시세이서는 부록으로 따로 제작하여 특전으로 드린 내용입니다. 부디 끝까지 완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애 神愛

アイドリッシュセブン ŹOOĻ AU
御堂虎於 x 棗巳波
15세 이용가

웹발행일  2020년 2월 27일

글쓴이       모람 @Moram_ym
편집디자인 모람 @Moram_ym
표지디자인 빵야 @Bbangyaa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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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보고 싶네요.”

“어떤 게? 나?”

“후후, 당신은 보고 있잖아요.”

새파란 하늘을 가린 푸른 나뭇가지가 여럿이다. 호화롭다기엔 소담한 궁궐 안 정원은 인적이 드물어 참 조용했다. 흙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연못을 바라보던 아이는 무릎에 고개를 기대곤 상대의 눈을 바라보았다.

“겨울의 다음이요.”

꽃향기가 가득한 계절이라고 알려주셨잖아요? 그사이에 다 잊었냐는 듯 핀잔하는 목소리가 삐죽인다. 차가운 바람이 쓸고 지나간 하얀 자리는 빨갛게 물들었다.

‥·‥ ⋅ 御堂 ⋅ ‥·‥

미도

황궁이 있는 미도의 수도 극락極樂은 대부분의 인구가 밀집한 곳으로 나라 안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로 검은 옷에 붉은 장식과 호랑이 가죽을 치장한 복식을 즐겼다. 술이 달린 귀걸이의 색깔로 계급을 드러냈는데 황족은 붉은색, 문관 귀족은 노란색, 무관 귀족은 흰색이다. (평민 이하는 귀걸이 착용이 금지되어 있다.)

영토 약탈에 여념이 없던 역대 황제들의 결실로 가장 넓은 국토와 막강한 군사력을 가졌다. 황제의 자리는 대대로 전쟁을 선호하는 호전적인 이에게 계승되었고 이로 인해 무관 귀족이 문관 귀족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했다.

미도의 황제 토라오는 이제 왕위에 오른 지 반년이다. 그는 선대 황제들이 치러온 전쟁을 멈추고 주변 국가와 평화와 화친을 약속하는 조약을 맺었다. 거대한 군사 조직은 군영 단위로 분리되면서 세력이 약해졌는데, 이로 인한 무관 가문의 반발이 극심하다.


“북전 회의를…”

미도의 검은 황궁은 많은 모순을 덮고 덮어 살육으로 일궈낸 공간이다. 소국의 장수였던 미도의 초대 왕은 반란과 전쟁으로 나라를 넓혔고 10년 만에 황제의 칭호를 거머쥐었다. 토대가 그러하니 앞길도 마찬가지였다. 두툼해진 죄의 무게란 이제 겨우 스물셋의 황제가 감당하기엔 외면하고 싶은 역사였다.

“…해서, 서역은 역시…”

황제가 머무는 북전北殿은 요란하고 아름다웠다. 검은빛이 대부분인 벽엔 금과 호랑이 가죽이 어지럽게 매달렸고 그 위로 붉은 술 장식이 쏟아졌다. 황실의 상징인 붉은색은 어김없이 황제의 귀에도 걸렸다. 그가 고개를 기울자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길이의 술은 움직임을 따라 살랑였다.

“하여 이에 대한 상소로…”

간만에 좋은 꿈을 꿨다. 오래되어 낡은 기억이 모처럼 끄집어져 나오자 미소가 번진다. 그랬던 때가 있었지, 그런 아이가 있었지. 나랏일은 물론이고 해치워야 할 문제가 많았던 그는 미처 챙기지 못한 과거를 소중하게 보듬었다. 초점 없는 눈에 또렷함이 생기고 굳게 닫혀있던 입술은 부드럽게 휘어졌다.

“―나츠메로 간다.”

내내 다물렸던 황제의 입이 내뱉은 말은 회의의 내용과는 일절 무관했다. 기다란 두루마리를 들고 줄줄 읊던 신하는 당황해 그대로 얼어붙었다. 덧붙이는 말 없이, 토라오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북전 안은 싸늘해졌다.

“…황제를 갈아치우든가 해야지.”

“말조심하세요, 저 자리에 앉겠다고 동생과 어미를 죽인 자인데 우리라고 무사할 것 같습니까…”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웅성거린다. 텅 빈 황좌를 바라보던 이는 쥐고 있던 상소문을 돌돌 말아 품에 안고 돌아섰다. 하나같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들이다.

‥·‥ ⋅ 棗 ⋅ ‥·‥

나츠메

나츠메의 수도 자紫의 양옆은 청靑과 적赤으로 귀족과 신관이 지내고 위, 아래는 각각 녹綠과 황黃으로 평민과 노예층이 거주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소국으로 흰색 옷과 금장식을 즐겼다. 모든 국민들이 신을 사랑하고 섬겨 신국神國이라고도 불렀다.

500년 전 가장 강력했던 국가 나츠메는 연합국의 공격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하지만 신 시세이紫西의 도움으로 무사히 존속한다. “이 나라가 영원하게 하소서, 온전히 바치겠나이다.” 나츠메의 영원을 비는 왕의 기도에 시세이는 은총을 내렸다.

‥·‥ ⋅ 天愛 ⋅ ‥·‥

천애

오직 나츠메의 땅에서만 태어나는 특별한 아이를 ‘하늘의 사랑을 받았다’ 하여 천애라 불렀다. 이들은 신체 어딘가에 하얀 뱀 문신―사문(巳文)―을 갖고 태어난다. 보통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데, 피부색에 따라 드러나는 시점은 다르다. (보통 0~9살 사이에 발견한다.) 천애들은 사문이 드러나도록 옷을 고쳐 입었는데, 시세이의 사랑을 받은 흔적을 감추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천애는 나라에서 직접 보호했다. 가족의 성을 버리고 궁에 들어오게 하는 대신 천애를 배출한 가문엔 막대한 금품과 신분 상승의 기회를 주는 등 합당한 예우를 다했다.

나츠메는 천애를 끔찍하게 아끼고 보호했다. 하여 왕족이나 궁 내부의 사람이 아니면 말도 섞지 못하게 했는데, 특히 타국인과의 교류에 민감했다.

천애가 구사하는 능력은 특정 원소의 지배, 날씨 제어, 독심술, 저주, 순간이동 등 종류는 무궁하며 공격에 특화된 능력일수록 높게 평가했다. 능력은 25살을 기점으로 쇠약해지며 30살이 되면 소멸한다. 능력을 잃은 천애는 일반인으로 돌아가 출궁하게 했는데, 오랜 세월 융숭한 대접을 받고 산 천애들의 대부분은 평범해진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위층의 삶과 함께 능력을 영원히 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신애神愛’가 되는 것이다. 쥐고 있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천애의 대부분은 신애를 목표로 삼았다.

‥·‥ ⋅ 神愛 ⋅ ‥·‥

신애

천애 중에서 하얀 뱀의 형상을 띤 신의 사자使者 백야白夜를 강림시키는 데에 성공한 이를 ‘시세이의 사랑을 받았다’ 하여 신애라 불렀다. 신애는 왕실의 성 ‘나츠메’를 하사받고 왕 이상의 자리에 앉아 국정 전반에 관여했다. 왕의 명령도 신애의 허가가 없으면 철회되는 등 최고 권력을 가진 신의 대리인으로, 보통 공격형 능력을 가진 천애가 발탁되었다.

신애의 교체 시기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5개월, 누군가는 50년을 지켰다. 모든 것은 시세이의 뜻에 달려있다.

신애의 능력은 50살을 기준으로 쇠약해진다. 능력 사용에 쓰이는 체력 또한 커지기 때문에 간혹 나이가 많은 신애는 능력을 쓰다 죽기도 했다.


나츠메는 조용하다. 하얀 빛깔의 목조 건물로 짜 맞춰진 왕실은 궁궐이라기엔 신비로운 유적 같은 느낌이다. 왕이 지내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천애들이 지내는 성전聖殿이 있고 그 안에 신당神堂이 갖추어져 신 시세이를 향한 모든 제사와 행사를 치렀다.

신당으로 들어서는 신애는 백야를 부른 지 이제 겨우 한 달을 채운 신예였다. 부족함이 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시간이지만 그는 아주 능숙하게 시세이를 받들었다. 얇은 의복은 움직임을 따라 하얀 선을 그렸고 한쪽을 곱게 땋은 단발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길게 늘어지는 붉은 끈으로 묶였다.

금 그릇 안은 각종 과일과 고기로 가득했다. 신애는 그릇 안에 깨끗한 물을 붓고 주변에 깔린 얇은 촛대 열다섯 개에 불을 붙였다. 대추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토리이는 그릇의 앞뒤에 놓여졌으며 이 모든 의식을 행하는 내내 신당 안은 세상과 격리된 듯이 고요했다.

신애가 시세이서紫西書―시세이의 전설을 담은 책으로 천애의 교육서. 신애가 천애 시절부터 소지하고 있던 책을 사용한다.―를 토리이 앞에 내려놓고 눈을 감자 그의 왼쪽 허벅지를 휘감으며 나타난 백야가 그릇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거대하게 쩍 벌어지는 입은 가히 위협적이었기에 어떤 이는 백야를 보지 않기 위해 의식 내내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미나미 님의 백야 님은 왜 저렇게 사나워…?’

‘성격 이상한 건 알잖아, 소환된 백야 님은 신애의 성격이 많이 반영 된다고…’

아침부터 딱 한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내내 신애는 경건한 분위기에서 아주 많은 것을 소화해야 했다. 금실로 수를 놓은 푸른 비단을 두르고 맨발로 춤을 추면 백야도 요란스레 움직이며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너희들 조용히 해, 들으시면 어쩔 거야.’

뱀이 바닥을 쓸고 다니는 소리는 등허리를 쭈뼛하게 만들었다. 백야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움직이다 몸을 작게 만들고는 빈 제단 위로 올라가 똬리를 틀고 앉았다. 토리이 사이에 자리 잡은 백야의 머리 위로 신애의 푸른 비단이 덮인다. 비단 위로 그려지는 크고 작은 굴곡은 얼마 지나지 않아 훅 꺼졌다. 신애가 빈 제단에 놓인 푸른 비단을 거둬 신당 밖으로 나가면 그걸로 의식은 끝이 났다.

신당을 먼저 나간 신애는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걸음엔 기품이 묻어나고 표정은 고고했다. 열흘에 한번 꼴로 있는 제사를 주도한 것은 이걸로 겨우 두 번째였다.

*

미나미는 방문을 열자마자 침대 위로 쓰러졌다. 땀에 절어 눅눅해진 겉옷을 벗어 던지고는 참아왔던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미나미 님의 백야 님은 왜 저렇게 사나워…?

성격 이상한 건 알잖아…

그렇게 조용한데 과연 안 들렸을까, 잠잠한 공기를 들쑤시며 들어온 잡담에 순간 춤이 멎을 뻔했다. 말에 담긴 내용에 감정이 뒤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놀랐을 뿐이지만 상한 기분은 도무지 풀리질 않았다. 제사를 방해한 이들을 징벌하기 위해 잠시 끊어도 되었지만 미나미는 흐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신애가 되고서도 멈추지 않는다면…’

…그럼 이대로 무디게 있으면 된다는 소린가.

조롱엔 익숙했다. 다섯 살 무렵 궁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미나미는 시세이의 초상화와 닮았다는 이유로 질투와 시샘의 대상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닮아갔고 그럴수록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고작 ‘예언’을 능력으로 갖고 태어난 이가 감히 시세이 님의 얼굴을 닮았다는 궤변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그러면서도 남의 마음을 얻고 싶어 최선을 다해 타인을 사랑하려 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건 당시에 신애였던 아키 뿐이었다. 크게 될 아이라며 여러모로 제 뒤를 봐주던 권력자는 모순적이게도 가장 필요한 순간엔 곁에 없었다. 그런데도 미나미는 그를 놓지 못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형태적 이게나마 아낀다는 행위를 해주는 건 아키가 유일했다. 채워지지 못한 속은 머잖아 비틀리기 시작했고 미나미는 곧 제게 쏟아지는 악담을 받아치기에 이르렀다.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밀고 나가면 그만이었고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신애의 자리는 자신이 차지하면 되는 일이었다.

제 딴엔 복수랍시고 한 결심이었다. 노예 집안에서 태어나 이 자리까지 왔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천애를 거둘 적의 예우로 친부모의 신분은 평민으로 올랐지만, 그가 노예의 위치에서 목표로 삼았던 건 주인으로 모셨던 귀족의 삶이었다. 이제는 그 귀족보다 더한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니, 평민의 삶도 싫은 것이 당연했다.

이만한 권력을 갖고도 모자랐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적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그마저도 없다면? 비탈길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리고 지금, 스물하나가 된 해의 1월에 백야를 강림시킨 미나미는 바로 신애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오랜 염원을 이룬 행복보다도 끔찍한 착잡함이 주저앉았다. 공격형 능력이 아닌 천애가 신애로 선택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시세이 님이 나라를 버리신 건 아닐까…”

수군거림은 고스란히 들려왔다. 시세이의 선택.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그렇게 가르치던 고위급 관리들은 시세이의 선택이 ‘미나미’로 향했다는 이유로 신의 결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미나미는 왼쪽 허벅지에 드러난 하얀 사문을 쓰다듬었다. 진심은 닿을 것이라 믿으며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던 지난날들이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백야의 강림 날, 미나미는 시원한 물 냄새를 느꼈다. 청량함에 깔린 옅은 꽃향기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마치 시세이가 와서 품을 내어준 듯했다. 미나미는 그때 확신했다. 시세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신애 님, 실례합니다!”

문밖에서 나는 커다란 목소리에 미나미는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입술은 작아지고 한껏 풀려있던 표정은 다시금 딱딱하게 굳었다.

“의식이 끝난 후엔 내 방에 오지 말라 했을 텐데요.”

“그것이, 지금 아키 님이―”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미나미는 짜증스레 문을 옆으로 밀어젖혔다. 입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천애가 문소리에 화들짝 놀라 신당 쪽을 부산하게 힐끔거렸다. 그 시선이 닿는 곳에 보이는 새까만 무리에 미나미는 표정을 구겼다. 쨍하게 찢어지는 아키의 고함에, 걸음은 곧장 그리로 향했다.

*

“방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새하얀 성전 안을 검게 물들인 무리는 어깨에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있었다. 새카만 옷에 붉은 장식을 섞은 의복은 명백한 미도의 상징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가 앞으로 나섰다.

“비열한 방법으로 황제가 된 주제에 이젠 감히 신의 아이를 탐을 낸답니까? 당신이 그러고도―”

“무례한 언사는 여전히 수준급이네.”

황제가 친히 행차해서 모셔가겠다는데, 이 정도면 예의는 다 차린 것 아냐? 남자는 팔짱을 낀 채 아키를 내려다봤다.

더럽기로 유명한 아키의 성미라면 진작 상대의 멱살을 잡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아키는 주먹을 꽉 쥔 채 상대를 노려보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뒤늦게 미나미가 달려오자 남자는 그에게 눈을 굴렸다.

“아, 왔다.”

오랜만이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미나미에게 손을 흔들었다. 대체 누구이길래 제게 이런 살가운 인사를 보내는지 몰라 머뭇거리던 그는 곁에서 꿈틀거리는 아키의 손을 잡아 진정시켰다.

“…나츠메의 신애 미나미입니다.”

고운 얼굴로 옮겨진 눈은 부드럽게 휘어졌다.

“따라올 거지?”

“네?”

미나미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입을 다물었다. 말뜻을 인지하지 못한 미나미는 와락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가만히 서 있었다.

“네가 여기서 왕 이상의 권력을 갖는다지.”

황제 이상의 권력을 준다면 올 거야? 호랑이와도 같은 붉은 눈동자에 미나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이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 그 이상을 줄 수 있다며 여유롭게 꼬드기는 모양새에 미나미는 무턱대고 설레고 말았다.

“네가 바라던 풍경도 보여줄 수 있어.”

내가 바라는 풍경? 그런 게 있나? 미나미는 성전 안에 감도는 다른 천애들의 시선을 느꼈다. 정말로 따라갈 거냐는 물음. 당장 거절해야 하는 권유에 무얼 재고 있느냐며 꺼지라는 외침.

미나미는 눈을 감았다. 갑자기 나타난 미도의 황제가 내민 손은 큰 유혹이었다. 다른 나라로 떠난다, 라. 아키는 다급히 미나미를 잡고 흔들었다.

“정신 차려요, 당신이 없으면 나츠메는…”

“새로운 신애를 맞이하겠죠.”

“…….”

아키는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천애들을 돌보는 신애가 가장 아끼는 아이에 대한 평가를 모를 리 없다. 그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괴롭힘당했단 사실을 알고도 아키는 가만히 있었다. 이 또한 시련이라며,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아이가 될 거라며 믿고 기다리기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나미를 완전히 등 돌리게 했다.

다른 이가 대체하면 된다. 아니면 새로운 신애가 나타날 때까지 다시 그가 신애의 자리를 맡으면 된다.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에 아키의 까만 눈동자는 무섭게 번뜩이며 미도의 황제에게 꽂혔고 그 불같은 시선에 황제는 그저 웃기만 했다.

“나츠메는 괜찮을 거예요.”

만약 황제께서 나츠메를 해칠 생각으로 제안하신 거라면 백야 님이 나타나셨겠죠. 몇몇 천애들이 쑥덕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키는 이마를 짚었다. 탓할 것 없는 현실에, 잘못 선택한 일에 껍데기만 남은 후회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진다.

“그럼 가는 거지?”

황제의 물음에 미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여기보다는 나으리라, 이곳보다 더 부강한 나라에서 황제의 위에 앉을 수 있다는 것도―당장은 믿을 수 없지만―마음에 드는 제안이었다.

“약속만 지켜주신다면요.”

“다 들어줄게.”

황제의 투박한 손길이 미나미의 뺨을 훑고 지나간다. 거친 손이지만 따뜻했다. 가만히 황제를 올려보던 그는 한 발짝 물러나 손길에서 벗어났다.

“…황제께서는”

아키의 목소리에 칼바람이 들었다. 나츠메를 떠나겠다는 미나미가 아니라 그를 꼬드긴 황제에게 화가 났다. 미나미가 신애의 자리에 오른 지는 이제 겨우 한 달이다. 못해도 1년, 아니, 반년만 더 버텼다면 상황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가장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겁니다.”

“가졌다 하더라도 잃게 될 겁니다.”

아키의 까만 눈동자는 밝은 빛으로 물들었다. 이게 그 능력이라는 거지? 황제는 미나미와 얼핏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게 끝이야?”

“두고 보셔야죠.”

여전히 웃음기 없는 얼굴이다.

‘내가 조금만 더 버텼다면 나아졌을까?’ 의문엔 그 어떤 확신도 끼워지지 못했다. 나아질 상황이었다면 진작 나았어야 했다.

성전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1

미도에 도착했을 적엔 하늘빛이 온통 노랬다. 얇은 옷을 여럿 껴입었지만 나츠메의 날씨보다 추운지 미나미는 연신 제 팔을 문질렀다. 가는 내내 아무 말도 걸지 않던 황제는 그의 어깨에 두툼한 털옷을 얹어주었다. 폭신한 감각이 기분 좋게 뺨을 간질였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도 황제는 대답이 없다. 미나미는 그에게 무어라 말을 붙이려다 말았다. 괜히 따라온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멀거리기 시작할 즘이였다.

“…정말이네.”

황제는 허탈하게 웃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인다.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엔 무어라 얹을 말도 없었다.

검고 붉은 천으로 꾸며진 대궐은 밤이 깊어지면 바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낮에야 빛이 들어오니 망정이라지만, 날이 조금만 저물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궐 내엔 큼직한 촛대가 잔뜩 세워졌다.

금색 실로 장식된 하얀 옷을 입은 미나미는 얼핏 보기에도 이방인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다르게 왼쪽 다리는 옷이 트여 허벅지에 난 사문을 드러냈다. 목을 꼿꼿이 빼고 걷는 미나미의 자태에 미도의 신하들은 신애가 왔다며 함성을 질렀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몸짓은 과연 신이 가까이 둘 만한 것이었다.

다물린 입술 너머로 미나미는 마른 침을 몇 번이나 삼켰다. 궁궐은 나츠메보다 열 배는 족히 커 보였고 신하의 수는 곱절도 더 되어 보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란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황좌가 있는 북전北殿엔 황제를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이들이 줄을 섰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예를 갖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는 나츠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키가 황제에게 무례하게 굴어도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보통은 칼이라도 빼들지 않던가, 미나미는 몰래 황제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왜 신애인 자신을 데려왔는지 궁금했다. ‘나츠메로 가서 신애를 데려오겠다’는 포부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을 문장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를 따라온 자신도, 하나같이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권위를 가진 자의 손을 잡고 감행한 탈출은 굉장히 후련했다. 시세이의 사자인 백야는 아직 미나미에게 있다. 신애라는 신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커다란 안심이었고 또 다른 의미로는 불안이었다.

“예언할 줄 알지?”

“네, 폐하.”

“아까 그 저주 말이야.”

그거, 어떻게 돼? 미나미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아키의 능력은 언령으로 깃드는 ‘저주’다. 그의 주술은 풀어낼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적중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라지만 아키의 능력은 강했다. 그러니 따르는 이가 많았고―물론 지독한 성미에 짓눌려 마지 못했던 이도 많았지만―그가 신애로 지내는 긴 시간동안 나츠메는 무척이나 안전했다.

미나미는 미래를 보기 위해 황제와 시선을 이었다. 맑은 붉은색 눈동자엔 제 얼굴이 깨끗하게 비쳤다. 그 빛깔이 아름다워 필요 이상으로 오래 바라봤기 때문일까, 황제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미나미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하면 감긴 눈꺼풀 아래로 상대방의 미래가 영상의 형태로 재생됐다. 처음엔 언제 어떻게 벌어질 일인지 모르고 무턱대고 보이는 것만 말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언제 일어날 일이며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 미나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나츠메의 땅을 떠나 능력이 사라진걸까, 그는 황제의 곁에 서 있던 호위무사를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곧 결혼을 앞둔 이구나, 무사히 보이는 영상에 미나미는 다시 황제와 눈을 마주했다.

“왜 그래?”

“저주의 결과가 궁금하신 건가요, 아니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신 건가요?”

“글쎄. 양쪽 다. 왜, 그렇게는 안 보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황제의 미래에 대해서는 요만큼의 영상도 나타나질 않았다. 새까만 시야가 의미하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미나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알 수 없네요. 폐하께서 무엇을 원하게 되실지는 시간이 지나야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 밤에 있을 일은?”

“……때가 되면 주무시겠죠.”

미나미의 심드렁한 대답에 토라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극심한 피로를 느낀 탓일까, 미나미는 저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에 스스로 놀라 입술을 말아 물었다.

“피곤하지? 목욕이라도 하는 게 어때.”

왕 이상의 권력을 잡았다만 그럴듯하게 써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출발한 신분도 저 아래였으니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넓은 국토를 다스리는 황제보다 위에 선다니, 답지 않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네 처소는 서북전西北殿이고… 그래, 나머진 저 녀석한테 들어.”

“제가 모시겠습니다.”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허리를 조아렸다. 미나미는 황제가 걸쳐주었던 털옷을 벗어 곁에 있던 궁녀에게 건넸다.

“입고 가도 돼.”

“괜찮아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싸늘하지만 고운 말투에 토라오는 흡족하게 웃었다.

*

서북전은 북전에서 몇 발자국 안되는 거리였다. 곧장 처소로 안내받은 미나미는 이전에 쓰던 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은 공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베개만 다섯 개나 놓여있는 큼직한 침대는 성인 셋이 누워도 너끈할 정도였고 이불은 부드럽고 두툼했다. 묘한 꽃향기가 도는 방안을 둘러보던 미나미는 자개로 장식이 된 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한눈에 봐도 비싼 물건이었다. 나츠메에서는 본 적 없는 모양인 장식을 훑어보던 그는 벽에 딱 붙어있던 문을 옆으로 밀어젖혔다.

“인사 올립니다, 신애 님. 오늘부터 신애 님을 모시게 된 우메하라 히카리라고 합니다.”

“마침 잘됐네요.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옷은 전부 제가 입어도 되는 건가요? 우메하라의 눈이 한번 깜빡인다.

“물론입니다, 전부 신애 님을 위해 폐하께서 직접 고르셨습니다.”

“나를 위해서요?”

내가 누군 줄 알고? 미나미는 겉옷을 벗자 쪼르르 달려와 받아 가는 우메하라를 보다 다시 옷장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은데.”

“목욕은 필요 없으세요?”

“아, 목욕 후에 입을게요.”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재빠르게 옷을 고르고는 미나미의 어깨에 얇은 비단옷을 얹었다. 하얗고 투명한 재질의 원단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나미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서북전 복도를 거슬러 올라가자 가장 구석 즈음에 거대한 문이 보인다. 문고리를 잡아 연 우메하라는 명랑한 목소리로 조잘거렸다.

“목욕 수발은 제가 들어드릴게요, 안에서…”

“늦었네.”

“…폐하?”

우메하라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좀 전에 궁녀들에게 준비를 지시한 후 신애를 모시러 나왔을 뿐이니, 그 사이에 누가, 그것도 황제가 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발은 내가 들어드릴 테니 넌 그만 가봐.”

“황제께서 제 수발을요?”

“왜, 거부하게?”

“후후, 영광이네요.”

괜찮아요, 이만 가보세요. 미나미는 곁에서 우물쭈물하던 우메하라에게서 옷을 건네받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메하라는 얼른 머리를 조아리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미나미는 한숨을 쉬며 문을 닫았다. 커다란 욕조에 앉아 이쪽을 보고 있는 황제의 모습이란 아무리 봐도 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나미는 긴 옷자락을 끌고 황제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늦었다, 고 하셨죠.”

“그래.”

“저를 기다리셨나요?”

“맞춰봐.”

미나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물론 아주 가까운 근미래를 보는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만, 황제의 미래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굳이 안 보인다는 대답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글쎄요, 절 안기라도 하실―”

“―정답.”

황제는 두꺼운 팔뚝으로 미나미의 허리를 둘러 잡곤 욕조 안으로 끌어왔다. 갈아입을 옷도, 입고 온 옷도 전부 쫄딱 젖어버리자 미나미는 구겨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미나미는 짜증스레 품고 있던 옷가지를 욕조 밖으로 던졌다. 물먹은 옷이 철퍽 소릴 내며 떨어지자 나무로 된 바닥에 긴 물 자국이 생긴다.

제 딴엔 그를 받쳐서 내려놓는다는 게, 그러니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잡힌 시점에 팔을 할퀴거나 물어뜯길 줄 알았는데 곱게 당해주니 도리어 당황했다. 물론, 이후에 쏟아진 어마어마한 짜증에 그럼 그렇지 하는 미소가 샜지만.

“전 폐하의 노리개로 온 게 아니에요.”

“노리개라니, 날 뭘로 보는거야?”

“좀 전에 무어라 하셨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말 한번 당돌하게 하네. 너도 나 안 무서워?”

미나미는 고개를 기울였다. 안 무섭냐니, 꿍꿍이를 알 수 없으니 한숨과 함께 어깨가 내려갔다.

“꼭 무서워해야 하나요.”

“아니, 뭐, 그렇긴 하지. 사납길래 해본 소리야.”

“이만하면 얌전하지 않나요?”

곱게 안겨있는데. 미나미는 둥둥 뜬 제 옷자락을 손으로 흩어내며 퉁명스레 말했다. 젖은 옷이야 말리면 그만이지만, 당장 제 처소로 돌아갈 때 입을 것이 없어져 암담하다. 물론 이대로 벗지 않고 질질 끌고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미나미는 불만 가득한 눈으로 황제를 힐끗 올려봤다.

원망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거추장스러운 옷자락에 숨겨진 미나미의 손을 찾아냈다. 가늘고 여린 손목을 조심스레 쥔 그는 혀 차는 소릴 내며 그를 놔주었다.

“사내 몸이 이리 얇아서야.”

“부러뜨릴 맛도 나지 않게 말입니다.”

“흐, 그러게.”

곱살 맞게 휘어지는 눈매에 황제는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어디 기생집에서 놀았다고 해도 믿을만한 교태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황제는 미나미의 가슴 아래에 묶인 리본을 잡아당겼다.

미나미는 누군가와 같이 목욕하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았다. 천애는 개인 욕실이 따로 있었다. 물론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도 있었지만, 미나미는 웬만하면 다른 천애와의 만남 자체를 피하고 살았다. 그랬기에 누군가와 이만큼 가까이 붙어있던 적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아주 어릴 적에 아키의 무릎에 앉아 떠들던 것이 전부였다.

노예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에게도 뒷전이었다. 이렇다 할 관심도 받지 못하고 살았더니 사문이 발견된 것도 늦었다. 허벅지에 도드라지게 올라온 사문. 무척이나 맑은 피부를 새하얗게 뒤덮은 문장은 미나미의 부모를 노예에서 해방시켰다. 이젠 신애가 된 아들을 두게 되었으니, 아마 그보다 더한 예우를 받았을 것이다.

미나미가 오래도록 입을 다물고 있자 황제는 재미없다는 듯 그의 옷을 풀다 말았다.

“저항도 하고 소리도 지르지 그래.”

“폐하의 입에서 죄인이 할 소리가 나오다니요.”

“아니,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나 지금 네 옷 벗기고 있잖아.”

미나미는 어느새 풀어진 허리끈을 손가락에 휘감고 노는 황제와 마주쳤다. 끈에 묶여 고정되었던 노란 오비가 풀려나가고 곱게 포개어졌던 앞자락 사이가 벌어져 새하얀 가슴이 드러났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나도 안 망극하면서.”

“티 났나요?”

“엄청.”

황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전개에 그는 미나미의 허리를 잡아 제 옆에 앉혔다.

“나 남자하고도 해.”

“그렇군요.”

“아니, 너 정말… …됐다, 관두자.”

뭐 이렇게 답답한 녀석이 다 있지. 토라오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더니 꾸무적 젖은 옷을 벗어 욕조 밖으로 떨어뜨리는 미나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쁘장하니 여리게 생겨서는 어딘지 모르게 묵직한 건 여전하다.

물론 정말로 손대려고 했던 건 아니다. 그냥 딱딱한 얼굴이 다른 표정으로 변하는 것이 보고 싶어 이상한 안달이 나고 말았을 뿐이다. 잘 웃지 않았나, 토라오는 미나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해봐.”

“왜 저를 원하셨나요?”

나츠메의 신애를 원한 미도의 황제. 만약 그가 충분한 사랑을 받은 신애였다면 당장 전쟁이 났을 사건이다. 궁에 있는 모두가 날뛰며 칼을 들고나와도 모자랄 일인데 그저 조용했다.

신애는 나라의 보물이었지만 미나미는 그런 대우를 받지 못했고 언제 다시 교체되느냐는 신하들의 뒷담에 질려있었다. 그런 신애가 갑자기 타국으로 떠나면서 자리를 비워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이 상황에 박수를 치고 좋아할 사람만 눈에 선했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그 지옥에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글쎄.”

황제는 가만히 웃으며 신애와 눈을 마주쳤다.

“그냥 생각나서.”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것도 아니야.”

황제는 뒷목을 문지르다 투명한 속내의 차림의 미나미를 눈으로 훑었다. 그때는 더 작고 연약해 보였는데. 아니, 이렇게 클 줄은 대충 짐작은 했지만…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미나미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필요한 거 없어? 제사라던가.”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내일 궐 안을 둘러보고 말씀드릴게요.”

필요한 제사는 막 치르고 왔으니 앞으로 열흘은 괜찮았다. 나츠메의 땅이 아닌 타국에서 해도 시세이 님이 받아주실까, 만약 미도에 시세이 님의 축복이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시세이 님이 나츠메를 버리고 나를 따라 이곳을 택해주신다면? 오만한 생각인 줄은 알았지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건 자를 수 없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미나미는 조용히 웃었다.

“왜 웃어? 나랑 있는 게 좋아?”

“후후, 그렇다고 할까요.”

“말을 예쁘게 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 바닥에 발자국이 생긴다. 선반에 놓인 작은 그릇들엔 여러 가지 꽃이 가득이다. 보랏빛 꽃물을 고른 황제는 미나미에게 대뜸 그릇을 내밀었다.

“이런 꽃 본 적 있어?”

“제비꽃이네요.”

“알고 있네.”

겨울에 피는 꽃이니 아는 게 당연한가. 미나미는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향기에 잠시 눈을 감았다.

“나츠메에서도 종종 사용했어요.”

“다음엔 네가 써보지 않았을 녀석으로 준비하라고 할게.”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너 꽃 좋아하잖아.”

아니, 정확히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니까. 토라오가 덧붙이는 말에 미나미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폐하께서는 저를 알고 계셨나요?”

자신과 구면인 인연일 테다.

2

호전적인 이를 차기 황제로 지목해가며 꾸준히 이어가던 유구한 전통은 황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승되어 전쟁이 끊어지지 않게 했다. 귀비의 아들 토라오는 서열상으로는 1황자였다. 하지만 2황자가 황후의 소생이었기에 황태자로 책봉되지는 못했다. 야욕이 있다기보단 무언갈 해내고 싶어 하는 성미였기에 굳이 황제가 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고 2황자와의 관계도 좋았기에 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문무는 기본이며 그림과 음악에도 능통한 토라오는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저 애지중지하며 아끼려고만 하는 황제의 사랑 때문이었을까, 황자라는 이유로 재능이 없는데 추켜지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던 어느 날이었다.

열다섯 무렵, 토라오는 가짜 신분을 만들어 궐 내에 대신들을 뽑는 시험에 응시했다. 상上점을 받으면 입궐하는 것이요, 최상最上점을 받으면 첫째로 뛰어난 이라는 평가였다. 그리고 토라오가 이 시험에서 내로라하는 이를 모두 제치고 최상점을 받아 황제의 앞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을 증명했다는 확신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징벌이었다. 황실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다른 이도 아닌 황족이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며 크게 질타당했다. 합격한 대신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처벌의 수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잘못인 줄은 알았다만 그저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던 토라오는 그게 그리도 억울했다.

그는 교육의 일환이라는 구실로 황태자인 동생을 따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게 됐다. 제 능력을 감당하지 못해 사고를 치는 것이니 그만한 배출구를 만들어주는 게 이로울 것이란 황제의 판단 때문이었다.


―신국 나츠메. 토라오가 황태자를 따라 도착한 곳은 무료하고 밋밋했다. 진귀한 능력을 지녔다는 천애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에게 허락된 것은 성격 나쁜 신애의 잔소리를 듣는 게 전부였다. 신애가 다른 이였다면 조금 재밌었을까, 토라오는 미도의 황태자를 환영한다는 연회에서 빠져나왔다.

궁 안은 굉장히 좁았다. 물론 황궁에 비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아무튼 사람도 적어 쓸쓸할 정도였다. 천애로 보이는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꽃과 나무는 많은데 어째서인지 새와 나비는 없다. 토라오가 하품을 하며 연못가 근처를 지나가던 그때였다.

“히익!”

물소리가 확 일더니 누군가가 연못에서 기어 나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풀조각이 잔뜩 붙어 지저분했고 얇은 옷은 흙탕물에 젖어 얼룩덜룩했다. 깜짝 놀라 주저앉은 토라오와 달리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이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무, 뭐, 귀, 귀, 귀신…!?”

“누구세요?”

머리카락 사이로 말간 눈동자가 보인다. 또렷한 눈망울에 토라오는 그가 사람임을 자각하곤 크게 한숨을 쉬었다.

“뭐야, 사람이잖아…”

“처음 보는 분이네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사람은 없다고 들었는데.”

“아, 응. 나는 미도에서 왔어.”

“……아.”

입이 꾹 다물린다. 아이는 그 후로 말없이 옷자락을 비틀어 물기를 짜내기만 했다. 옆이 죽 트여 있는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뱀 문신에 토라오의 눈동자가 굴러간다.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사문인가? 그럼 이 애가 천애야? 아이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머리카락에 묻은 나뭇가지를 떼어냈다.

“그런데 너 어쩌다 여기에 빠진 거야?”

“…모르겠네요.”

이제 열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지을 표정이 아니었다. 착잡함엔 자기 비하와 같은 조소가 섞였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에 토라오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그의 어깨에 얹어주었다.

“날이 더워도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

“미도의 사람이라고 하셨죠?”

“응.”

아이는 어깨에 올라온 옷을 꼭 쥐었다. 더러워진 몸에 닿으면 안 될 고귀한 것은 옷 하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고운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제게 주신 친절은 잊지 않을게요.”

하지만 이곳에 더 계시다간 큰일이 날 테니 이만 돌아가세요. 아이는 걸치고 있던 옷을 돌려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토라오야.”

“…미나미에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미나미는 가볍게 목례하곤 황급히 자리를 떴다.

*

“―모를 리가 있나. 유명한 신애이신데.”

“제가 유명한가요?”

“시세이를 닮았다고 하고. 또 얼굴만큼 그런 걸 좋아한다고 하고.”

“후후, 그런 소문이 타국에까지 번졌을 줄은 몰랐네요.”

그리고 ‘시세이 님’입니다. 단호하게 호칭을 꼬집는 어투에 토라오는 키득거리며 다시 그의 곁으로 가 앉았다. 어느새 욕조 안엔 보랏빛 꽃물이 번졌다.

“그래, 그래. 시세이 님.”

“미도에도 신이 있나요?”

“이곳이 극락이니 황제인 내가 신이겠지.”

미나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자 토라오는 키득이며 그의 머리를 와다닥 쓰다듬었다.

“뭐야, 그 표정. 다른 놈들도 내 면전에서 그러진 않아.”

“실례했네요. 터무니없는 소릴 하시기에.”

“나츠메 사람은 다 그래?”

“글쎄요.”

미나미의 하얀 손 안으로 조그만 꽃송이가 들어온다. 따뜻한 온도에 푹 녹아들어 등을 붙이고 앉자니 보랏빛 향기가 기분 좋게 올라온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온몸에 힘이 풀린다. 제 곁에 앉은 이가 황제임에도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적어도 시세이 님에 대한 건 허투루 듣지 않아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던데… 졸려?”

“조금요.”

“잘래?”

“여기서요?”

토라오는 미나미를 훌쩍 안아 들어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어떤 자세가 편할까 이리 안고 저리 안는 통에 미나미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졌다.

“굳이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잘못하면 물에 빠질 거 아냐. 좋은 기억도 없으면서.”

잡아줄게. 토라오는 미나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폐하.”

“자. 잠들면 처소로 데려다줄게.”

“저는…”

“걱정 말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잠이 쏟아졌다. 갑작스레 편안한 환경에 놓인 듯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모닥불을 발견한 작은 짐승이 된 듯이. 하얀 뱀은 그렇게 커다란 호랑이의 품에 안겼다.


“…너 수영하는 거 좋아해?”

“아니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린 연못가엔 누군가가 대자로 누워있었다. 분명 어제 봤던 아이가 맞다. 왜 또 물에 빠진 거야, 토라오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세 발짝 더 걸으면 넘어져요.”

“어? 뭐라고? …악!”

“후후, 거봐요.”

정말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걸린 것도 없는데 휙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우당탕, 토라오는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사람이 넘어졌는데 왜 웃어.”

“아아, 죄송해요. 아름다운 분이 망가지는 건 재밌어서.”

“성격 이상하네, 너.”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미나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시야는 뿌연 조각구름으로 가득했고 햇빛이 가려져 조금 어둑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있을 거야?”

“비가 올 때까지요.”

“비?”

“비 맞아서 젖었다고 하면 되니까…”

미나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토라오는 그의 앙상한 손목을 잡았다. 조그만 맥박이 통통 튀어 오르는 것이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물에 빠져서 그런 걸까, 더운 날임에도 차가운 피부에 그는 혹시나 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괴롭힘 당하는 거야?”

우리 같은 외국인이 있으면 천애들은 밖으로 못 나가게 한다고… 아, 너 나랑 이야기해도 되는 거야? 토라오는 그제서야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모르게 하면 그만이죠.”

신애 님은 절 크게 혼내진 못하세요. 미나미는 미동 없이 입만 벙끗거렸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래.”

“제 얼굴?”

“그건 좀 인정한다.”

“후후.”

토라오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으로 쓰던 면포를 꺼냈다. 흙이 묻은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주는 내내 미나미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미도는 어떤 나라인가요?”

“화려하고 커다래. 시끄럽고 요란하지. 함성이 멎질 않아.”

“여기와는 반대네요. 당신이 보기에 나츠메는 어떤가요.”

“지루해. 천애도 만나면 안 되고.”

“만나고 있잖아요?”

“…아, 그렇지.”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사문에 토라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그맣고 예쁜 몸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저절로 붕 떠오른다.

“나츠메엔 얼마나 더 계실 거에요?”

“왜?”

“그냥요.”

“아마 아흐레는 더 있을걸.”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대화겠지만 미나미에겐 특별했다. 소소하게 느껴지는 행복. 날 서지 않은 대화. 비웃음이 아닌 진심 어린 웃음을 흘려보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

―까만 천장이 먼저였다. 그 다음이 범의 가죽과 붉은 장식. 미나미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미나미 님, 일어나셨어요?”

“제가 어떻게…”

“폐하께서 직접 데려다주셨어요.”

그렇게 상냥한 폐하는 처음 보네요. 우메하라는 조용히 웃으며 창가에 드리워진 장막을 거두었다. 밝은 빛이 방안에 퍼지고 냉기가 훅 파고들었다.

정말로 거기서 잠들어버릴 줄이야, 워낙 예민해서 곧잘 깨어나기에 제 발로 걸어갈 줄 알았다. 옷도 다 젖었으니 갈아입힐 것도 없었을 텐데, 미나미는 그제서야 제 몸에 둘러진 까만 옷이 토라오의 겉옷임을 깨달았다.

“실은, 폐하께서 기다리셨다기에 미나미 님을 취하려는 줄 알았어요. 마음에 드는 후궁에겐 그렇게 하셨거든요.”

“아무 일 없었어요.”

“그 누구도 처소까지 데려다주는 법은 없으셨는데.”

진짜로 폐하께서 직접 목욕 수발을 들어주신 건가요? 우메하라는 조잘거리며 미나미가 벗어주는 토라오의 겉옷을 받아들었다.

“우메하라.”

“네?”

“질문이 지나치네요.”

“아, 소, 송구합니다. 제가 너무 들떠서…”

들뜰 일인가? 미나미는 버벅거리며 얼른 새 옷을 꺼내 제게 입히는 우메하라의 얼굴을 힐끗였다. 단장시키고 머리를 빗겨주는 내내 그는 귀까지 빨개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 다물린 작은 입술이 이리 움찔 저리 움찔하는 것이 아무래도 묻고 싶은 말이 한가득인 듯하다.

“후후, 궁금한 게 많나 보네요.”

“ㄴ, 네… 폐하께서는 황후의 자리도 비워두신 상태거든요.”

찾는 후궁은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첩지를 내리지 않으셨어요. 미나미는 우메하라의 말에 눈을 끔벅였다.

“첩지를 내리지 않아요?”

“네, 황위를 위협 받을까 봐 미리 싹을 자르는 거라는 소문이 파다해요. 폐하와 밤을 보내면 탕약을 먹었다 하고…”

그건 아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하는 탕약일 거에요. 미나미는 경첩 너머로 보이는 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게 친절하고 상냥한 황제는 뭇 백성들에게 어떤 존재일지. 진짜 모습은 또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래서 저는 황제께서 미나미 님께 특별한…”

“신애니까요.”

미나미는 우메하라의 말 허리를 뚝 잘라 먹었다. 해본 적 없는 부류의 의심이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어서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우메하라는 멋쩍은 듯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까맣고 북슬북슬한 털옷이 둘러진다. 두툼하게 얹어진 털 장식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미나미는 왼쪽 허벅지 쪽이 길게 트여있는 옷자락을 보고 무어라 물으려다 말았다. 신애가 된 지 고작 한 달인데 타국에서 이리 잘 알고 맞는 옷까지 준비했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나갈 채비를 마친 그는 우메하라와 함께 황궁 안을 돌아다녔다. 날이 차가워 하얀 뺨은 금방 빨갛게 물들었지만 다른 쪽은 따뜻했기에 움직이는 데엔 무리가 없었다.

“이쪽으로 가시면 동궁전이 있는데 첩지를 받지 못한 후궁의 처소가 있습니다. 또 이리로 가시면 비어있는 궐이 있는데 본디 황후마마를 모시는…”

“제사를 지낼만한 곳은 어딘가요?”

“제사요?”

미도는 섬기는 신이 없었기에 사제나 신관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래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긴 했으니, 혹시나 싶은 마음에 우메하라는 걸음을 멈췄다.

“선대 황족을 모신 신주가 있는 사당은 있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안내해요.”

황족을 모신 신주. 조상에 대한 제사 정도는 치르는 모양이다. 미나미는 우메하라가 가는 걸음을 따라갔다. 하루아침에 나츠메에서 미도로 변한 세상은 새롭게 일궈야 하는 것이 많았지만 미나미는 지나치게 침착했다. 마치 끝없는 굴레에서 겨우 탈출한 해방자의 얼굴이었다.

서전西殿은 오롯이 역대 황족들을 위한 궐이었다. 북전 다음으로 큰 궁은 초상화와 신줏단지가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외국인인 미나미로서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복식이나 생김새를 보고 황족 중에서도 어떤 일을 한 사람인지 대충 짐작했다.

“…이분이 현 황제의 아버님이시군요.”

“어찌 아셨어요?”

“폐하와 닮으셔서.”

또렷한 이목구비와 꾹 다물린 입은 투박한 인상이었지만 지금의 황제와 참 닮은 구석이 많았다. 미나미는 예를 갖춰 절을 올렸다.

“전쟁으로 승하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네, 3년 전에 아오타靑田와 전쟁이 있었습니다.”

“…옆에 계신 분은”

“반년 전에 돌아가신 선황제 폐하십니다.”

“…….”

아직 젊어 보이는데. 미나미는 제 또래로 보이는 이의 초상화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반년 전이라, 그렇다면 이다음이 지금의 황제일 테다. 몸이 아팠나?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미나미는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

신주가 모여든 곳이기 때문일까, 그는 본능적으로 스산함을 감지했다. 차가운 피부로 스며드는 영혼들의 일렁임. 보이지 않는 것이 반기는 이곳은 시세이를 향한 제사를 올리기엔 지저분했다. 황족을 상대로 이런 표현은 할 수 없겠지, 미나미는 사당 안을 더 돌아다녔다.

황제의 초상화가 놓여있던 곳의 가장 안쪽 구석엔 작은 신줏단지 몇 개와 초상화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어떤 것은 훼손이 심해 사람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기에 순간 버릴 것들을 모아둔 줄 알았다.

“…이건.”

“아, 그쪽에 있는 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족이 아닌가요?”

“황족이지만, 역모를 꾸미거나 가담한 사람들입니다.”

역모라면 초상화는 물론이요, 신줏단지도 부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쓰레기 취급을 하더라도 황족과 같은 사당에 놓다니, 미나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미도는 자비로운 나라군요.”

“아닙니다, 본보기로 둔 거니까요.”

제사 일엔 여기에 걸린 초상화는 전부 바깥으로 빼냅니다. 지나가던 백성들이 돌을 던지고 침을 뱉기도 하죠. 죽어서도 벌을 내리는 겁니다. 우메하라의 설명에 미나미는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역시 과한 처사죠.”

누명을 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미나미는 가장 깨끗한 초상화로 시선을 옮겼다. 그림 속 아름다운 여인은 피부가 하얗고 눈이 붉었다. 머리카락도 어두워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토라오와 닮아 보였다.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던 미나미는 속이 울렁거려 고개를 돌렸다. 느글거리는 속을 잡고 숨을 몰아쉬니 사문에서 백야가 흘러나왔다.

“…미도에는 시세이 님을 모시는 신당이 없어요.”

백야는 주변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미나미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자는 꾸물거리며 미나미의 다리를 감싸고 올라와 어깨에 턱을 기댔다. 성인 팔뚝만 한 굵기의 뱀은 긴 혀를 날름거렸다.

“혹시 화나셨나요?”

사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폐하께 신당을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어요.”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미나미는 하얀 입김을 내쉬며 두 손을 모았다. 시세이에게 전해질 기도는 그가 지내는 이계異界로 통하는 입구에서 치렀는데, 그 입구와 이어져 있다고 믿는 곳이 나츠메의 신당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신당이 있는 장소가 인간계에 온 시세이를 처음 발견한 곳이라고 한다.

“신애 님, 이제 식사하시러… 힉!”

배, 뱀!? 우메하라가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지르자 미나미는 태연히 그를 부축했다. 그냥 뱀이 아니에요, 우메하라. 백야는 얌전히 미나미에게 붙어 혀만 날름거렸다.

“아, 시, 신의 사자…”

송구합니다. 제가 무지하여… 고개를 숙인 우메하라는 백야의 꼬리 끝이 미나미의 허벅지에 박혀있음을 알곤 화들짝 놀라 들썩였다. 저기서 나온 거구나, 덜덜 떨리는 눈동자는 미나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해치지 않으시니 그렇게 겁먹지 마세요.”

백야는 미나미에게서 완전히 떨어져나와 주변을 살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그는 사당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누가 궁 안에 그런 큰 뱀을 들이라고 했지?”

황제는 사당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사당에서 나온 미나미와 우메하라는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신애 님은 시세이 님의 신당으로 삼을 곳을 찾고 계세요.”

“그래서 여기에 있었구나.”

“네, 황궁을 안내받다가…”

“걸어서 언제 다 보려고?”

마차 준비해, 토라오는 곁에 있던 신하에게 턱짓으로 지시했다.

*

무어라 거절하기도 전에 마차가 준비되었고 다른 신하들은 전부 물러갔다. 얼떨결에 황제와 단둘만 남게 된 미나미는 어느새 마차에 올라있었다. 백야는 미나미의 발밑에 똬리를 틀고 앉았고, 황제는 직접 고삐를 쥐고 마차를 몰았다.

“신당도 신당이지만, 의식에 쓰일 물건도 필요할 것 아냐.”

보통 물건도 아닐 테고. 미나미는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빚어 만든 금 그릇과 나츠메의 땅에서 난 대추나무로 만든 토리이, 그 밖에도 시세이서와…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미나미는 이마를 문질렀다.

“어려워졌네요.”

“왜, 뭐가.”

“나츠메에서만 구하는 물건도 있고…”

“구하지, 뭐.”

어쩜 이리 쉽게 말할까. 미나미는 입술은 달싹거리기만 할 뿐 무어라 덧붙이지 못했다. 황제가 직접 모는 마차는 황궁 안을 이리저리 쏘다녔다. 국정을 봐야 할 자가 이렇게 노닥거려도 되는 걸까, 미나미는 황제를 빤히 올려다봤다.

“왜 그렇게 계속 쳐다봐?”

“아름다운 얼굴이어서요.”

“내 용모가 마음에 드나?”

“후후, 그럼요.”

황제는 실소를 터뜨렸다. 말발굽 소리는 경쾌하고 스치는 바람은 시렸다. 백야는 미나미의 발치에서 스멀거리다 그의 무릎으로 올라가 누웠다. 허벅지 위에 턱을 툭 놓곤 황제를 빤히 바라보는 빨간 눈동자는 꼭 보석처럼 예쁘게 반짝였지만, 그는―

“조, 좀 그거, 치워줄래?”

“네?”

바짝 쫄아붙어 눈을 피했다. 미나미는 ‘그거’라는 호칭을 타박하려 했지만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말을 삼켰다.

“백야 님, 이리로.”

미나미는 능숙하게 그를 안아 들었다. 백야는 혀를 날름거리며 미나미의 목덜미를 감싸더니 눈을 감고 늘어졌다. 신당을 세울만한 장소가 나타난다면 일어나실까,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무서우신가요.”

“징그러워.”

“귀여운데…”

징그럽다는 말에 백야가 고개를 꼿꼿이 쳐들자 토라오는 얼른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간밤엔 신세 졌어요.”

“아, 뭐. 내가 자라고 했잖아.”

“그래도, 초면에 실례가 잦아서요.”

황제 폐하를 상대로. 미나미는 걸치고 있던 까만 털옷을 조금 더 바짝 여몄다. 초면, 초면이라. 토라오는 부드럽게 고삐를 당겼다.

“신경 쓰지 마. 넌 내 위에 앉을 사람이니까.”

“정말 그렇게 해줄 생각이세요?”

“새삼스럽네. 그래서 나한텐 말도 가볍게 했던 것 아냐?”

“…그건 그래요.”

“거 봐.”

미나미는 작게 웃었다. 쿡쿡거리는 웃음소리에 토라오는 그를 따라 입꼬릴 늘렸다. 오랜만이네,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가득 번졌다.


“아, 있다.”

토라오는 미나미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연못가에 멍하니 앉아있던 미나미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토라오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무사하네.”

“도망쳤어요.”

괴롭힘당하는 게 맞구나. 미나미는 조금 분해 보였다.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짜증이 난 모양이다.

“실컷 패주지 그랬어.”

“그랬다가 죽으면 어떡해요?”

“누가?”

“걔가요.”

아까 목을 졸랐더니 치사하게 신애 님을 부르는 것 있죠? 들킬까 봐 여기로 도망친 거거든요, 난 한 번도 자기들 이른 적 없는데. 미나미는 제 손을 내려다보며 씩씩거렸다.

“목을 졸랐다고?”

“네, 왜요?”

저 조그만 몸으로 저 작은 손으로 누군가의 목을 졸랐다니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토라오는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소리 내 웃었다.

“아니, 좀 반한 것 같아서.”

“후후, 저 남잔데요.”

남자라고? 순간 당황한 얼굴은 감춰지지 못했다.

“그, 게 뭐가 중요해, 예쁘면 됐지.”

“방금 멈칫하지 않았어요?”

“안 했어.”

“했는데요.”

“안 했다니까…”

“후후.”

꼭 뱀 같다.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미끄덩 지나가 버린다. 깨끗한 옷에 말끔한 얼굴로 저렇게 눈꼬리를 휘고 웃으니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토라오는 미나미의 곁으로 가 앉았다.

“미도도 이렇게 덥나요?”

“우리? 6월이니까 더울 거야.”

그러고 보니 나츠메는 계절이 두 개밖에 없다고 했지. 토라오는 허공을 보다 시선을 내렸다.

“나츠메는 여름하고 겨울만 있다던데 정말이야?”

“네. 미도는요?”

“우린 봄하고 가을도 있어.”

“봄이랑 가을이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와. 봄엔 꽃도 많이 피고 가을엔 단풍이 들어서 세상이 울긋불긋하니 예뻐져.”

왠지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미나미는 작게 웃었다.

“꼭 보고 싶네요.”

“천애들은 여행도 못 가?”

“네, 일단은요.”

“너무하네.”

내가 나츠메한테 말해볼까? 제 왕을 쉽게 지칭하는 말에 미나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긴 미도에서 왔다고 하니 그의 직책 또한 높겠거니 짐작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을 이리 쉽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당신은 황족인가요?”

“당연하지.”

“혹시 황태자…”

“아니, 그건 내 동생이야.”

난 밀렸거든. 토라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분한가요?”

“전혀.”

“기운 내요.”

“아니, 정말로 괜찮다니까. 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게 아니야.”

그냥 적당한 위치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고 어딘가에 도움이 되고, 그렇게 살고 싶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수호신은 되지 못해도 누군가의 영웅은 되고 싶은 거.

“…구원자?”

“그것도 거창하네, 아무튼 비슷해.”

“전 신애가 되고 싶어요.”

“신애? 그 성질 더러운 여자처럼?”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순하게 내려가 있던 눈매가 희번뜩하자 토라오는 움찔했다. 이 나라에서 신애는 왕 이상이었지, 괜스레 민망해져 말을 돌린다.

“신애가 되면 좋아?”

“네. 왕실 사람이 되는걸요.”

그럼 누구도 절 무시하지 않을 거예요. 미나미의 말에 토라오는 뒷목을 문질렀다.

“꼭 그렇진 않아.”

“…그런가요?”

“뭐, 너라면 다를지도 모르지.”

토라오는 미나미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리지만 마냥 어리게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엔 갖은 풍파가 뭉쳐져 넘실거렸다. 무어라 위로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할 말이 없었다.

황태자인 동생과는 사이가 좋아 망정이지, 황후는 토라오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한 귀비의 아들. 황좌에서 내려와 귀비와 함께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황제의 말이 황후의 귀에 들어가고부터는 완전히 눈 밖에 났다.

도처에 도사리는 칼날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없다. 황제의 사랑을 받고 있다지만, 그게 당장 튼튼한 울타리가 되는 건 아니었다.

*

황궁을 크게 둘러보고 돌아온 곳은 북전이다. 미나미는 황제의 권유로 그와 함께 식사까지 마치고서야 처소로 돌아왔다. 백야는 오래도록 나와 있던 것이 부담이었는지 배를 깔고 길게 엎어졌다. 문 바로 앞에서 그러고 있는 걸 잘 달래 침대 쪽으로 들여오니 이불에 파묻혀 푹 늘어졌다.

“백야 님, 빠른 시일 내에 장인들이 궁에 온다 하니 기다려보세요.”

금 그릇과 촛대를 만들 장인들이다. 늘 있는 도구로 쉽게 하던 것을 백지부터 시작하려니 마음이 급했다. 백야는 느릿하게 꿈틀거리다 미나미의 사문으로 돌아갔다.

신애가 외부로 나가는 경우 제사 일이 겹치면 가장 기운이 좋은 땅에서 제사를 올렸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나 하던 일이었으니, 임시방편으로는 적합했지만 이런 방식을 길게 고수할 수는 없었다.

미나미는 시세이서와 푸른 비단을 침대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제사 과정을 천천히 떠올리는 머릿속은 온통 시세이와 나츠메로 가득했다. 신애가 없는 나츠메는 어떻게 됐을까. 지상에 살아있는 천애 중 백야의 선택을 받은 이는 딱 둘 뿐이니, 빈자리는 아키가 다시 맡았을 확률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들끼리 멋대로 정한 ‘능력 좋은’ 천애를 끌어다 앉혔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돌연 입안이 썼다.

―이젠 아무도 없다. 조롱의 목소리도 쓸데없는 기대를 걸던 이의 모습도. 애정 아닌 애정을 받아먹고 살던 긴 시간동안, 미나미는 자각하지 못한 외로움을 비로소 느끼고 말았다. 평범한 삶이었다면 더 좋았을까. 아니, 차라리 나츠메가 아닌 미도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어디선가 보라색 제비꽃향이 났다.

3

“신애 님,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또?”

“또 라니, 왜. 그만 찾았음 좋겠어?”

토라오가 심드렁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자 미나미는 그저 웃기만 했다.

“관심이 많으시네요.”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는 신하를 시켜 두루마리 하나를 가져오게 했다. 새하얀 두루마리를 받아든 미나미는 천 위에 수 놓인 금실을 보곤 어디에서 온 물건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나츠메에 사신을 보내서 받아왔어. 어쨌거나 시세이를, 아니, 시세이 님을 모실 신당부터 시작해서 전부 만들 생각이니 도우라고 했지.”

그런데 글자를 읽을 수가 있어야지. 이거, 천애들만 읽을 수 있는 거라며? 미나미는 두루마리를 열어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신당을 세울 적에 쓰인 나무들, 금 그릇과 같은 제사 도구를 주조하는데에 쓰이는 재료의 출처와 만드는 방법, 엄선하는 과일의 재배 지역, 맑은 물을 구분하는 방법 등 꽤나 상세한 설명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네, 맞아요. 이건 언제―”

“네가 부탁하던 날 바로 했지. 급하잖아.”

미나미는 두루마리 끝자락에 찍힌 도장을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아키의 도장이다. 신애의 자리는 다시 그가 맡았구나,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괜한 것이 울컥 올라왔다.

“그리고, 이거.”

토라오는 조그만 상자를 내밀었다. 까만 상자 안엔 하얀 비단이 도톰하게 접혀있었고 그 위로 새빨간 귀걸이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토라오의 귀에 걸린 것과 비슷한 모양새에 미나미는 눈을 깜빡였다.

“미도의 황족은 이걸 끼워. 그 아래 계급은 다른 색이고. 봤지?”

미나미는 어색하게 제 귀를 만지작거렸다. 나츠메에서도 장신구는 썼지만, 천애의 몸엔 구멍이 나서는 안된다는 아키의 말에 귀찌가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살이 눌려 아팠기에 자주 사용하지 않았는데, 토라오가 가지고 온 귀걸이는 귀찌가 아닌 작은 갈고리가 달린 것이었다.

“성씨도 바꿀래? 미도 미나미.”

“후후, 그건 사양할게요. 그런데 저는…”

“너 생각해서 작은 걸로 가져왔어.”

몸에 상처를 낸다, 라. 미나미는 마른 침을 삼켰다. 물론 시세이서에 천애의 몸이 상하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다. 아키가 천애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기에 생긴 조항일 뿐이다. ‘…그것도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나미는 귀걸이와 토라오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직접 해주시나요.”

“물론.”

“영광이네요.”

토라오가 손짓하자 함께 온 궁녀 하나가 돌돌 말린 천 뭉치를 꺼내 펼쳤다. 깨끗한 천 위엔 굵기가 제각각인 침이 네 개였다. 불에 달궜는지 끝은 아직 빨갰다.

“…안전한 거죠?”

“앉아봐.”

“저기, 폐하.”

“영광이라며.”

미나미는 그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앉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토라오는 그의 귓불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궁녀가 건네는 작은 면포로 미나미의 귀를 닦았다. 화한 느낌이 올라온다. 무엇을 발랐는지 물으려던 찰나였다.

“아!”

얇은 침이 귓불을 통과한다. 조금 따갑기만 했을 뿐, 정확하게 누르고 들어가자 고통은 그게 다였다. 피가 얼마 나지 않는 귀를 본 토라오는 이번엔 조금 더 굵은 침으로 뚫었던 자리를 눌렀다.

“잠깐만…!”

“황실 사람이 되는 과정이야, 좀 버텨.”

미도로 왔으니 미도의 법도에 맞는 신애가 되어야지, 안 그래? 토라오는 나머지 굵은 침을 빼내곤 배어 나오는 피를 닦아냈다.

“―아, 젠장. 나타날 줄 알았어.”

발치에 무언가가 지나다니더니 토라오의 발목을 휙 감는다. 미나미가 위험한 줄 알고 나타난 건지 백야는 황제를 빤히 올려다봤다.

“가라고 해, 좀.”

“귀걸이가 황실의 상징이라면, 굳이 살을 뚫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내 머리 위에서 놀고 싶었던 것 아니었나?”

미도는 법도대로 움직이는 나라야, 미나미. 토라오는 반대쪽 귓불을 잡았다.

“넌 이걸로 미도의 사람이 되는 거야. 네가 그 두루마리를 읽고 알려주면 장인도 바로 들일 거고. 내가 왜 이렇게 급하게 구는지 몰라?”

“…배려라는 건 알고 있어요.”

제사를 빼먹는 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장소는 둘째치고 의식에 필요한 도구는 필수였으니, 미나미는 토라오가 서둘러주는 것에 감사해야했다.

마치 등가교환이다. 내가 이만큼 도울 테니 너는 이만큼을 따라라, 대화의 기저에 깔린 의도를 읽은 그는 차분히 숨을 돌리곤 백야에게 손짓했다. 끈적한 뱀의 표피가 토라오의 살갗을 훑고 지나간다. 소름이 오소소 돋고 머리털이 쭈뼛한 것도 잠시, 미나미의 허벅지로 돌아가는 뱀의 꼬리를 본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많이 아프면 눈 감아.”

머리카락을 넘기고 귀를 만지자 얼른 눈을 감아버린 미나미가 작게 움찔한다. 아직 침은 집지도 않았는데, 토라오는 나른한 미소를 걸고 자리 잡았다.

긴 속눈썹이 내려와 덮인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새하얀 피부. 아래로 기운 눈매. 시선은 매끄럽게 따라가 그의 콧날과 입술에도 머물렀다. 어릴 적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구나, 토라오는 얇은 침을 골라 쥐었다.

“미나미, 이쪽 봐봐.”

“폐하.”

“응.”

“서로 격식은 차렸으면 좋겠는… 아야!”

“너하고는 그런 거 차리기 싫어.”

미나미가 번뜩 눈을 뜨고 이쪽을 매섭게 쏘아보자 토라오는 낮게 키득였다. 화한 기운이 귓가에 맴돌고 굵은 침이 다시금 들어갔다 나온다.

“아랫것들이 보고 무어라 생각하겠어요.”

“…사이 좋다?”

“저희가요?”

“이 정도면 좋은 거 아냐?”

솜씨가 좋긴 했는지 구멍 난 자리에 맺힌 피는 금방 멎었다. 토라오는 빨간색 술이 달린 귀걸이를 조심히 걸어주곤 만족스러운 낯으로 웃었다.

“응, 예쁘다.”

“그런 말씀은 후궁들에게 하세요, 아이도 없고 첩지도 내리지 않으셨다고…”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어?”

“여기서 지내는데 그런 말을 안 듣겠나요.”

“하여간 나 싫어하는 놈들이 한둘이어야지.”

토라오는 혀를 차며 침을 두르고 온 면포를 곱게 정리해 궁녀에게 건네곤 나가라 손짓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덧 미나미의 방엔 둘만 남았다.

“황자를 생산하라느니 뭐가 어떻다느니, 별로 듣고 싶지 않아.”

“나라를 유지하려면 후사를 보는 건―”

“내가 다른 사람하고 정을 통해서 아이를 낳는 게 보고 싶어?”

“…? 보고 싶다기보다는, 그래야 하잖아요?”

“……아아, 그래.”

아주 당연한 반응을 했을 뿐인데 황제는 의기소침해 보였다. 표정이 휙 어두워져서는 미나미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로 시선을 옮긴다.

“필요한 거 말해봐. 바로 준비할 테니.”

가라앉은 목소리에 미나미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저러시지, 고개를 숙이고 한 글자씩 읽어나가면서도 미나미는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뭐하고 계세요?”

“아, 왔네.”

미나미는 무언갈 휘적이고 있는 토라오의 곁에 앉았다. 새하얀 화선지에 붓이 몇 번 오간다. 검은 먹만 쓸 줄 알았던 그는 색깔이 있는 염료에 관심을 보였다.

“그림…?”

“응, 봄이랑 가을 얘기하려고.”

지금 그리는 건 봄이야. 미나미는 분홍색 꽃이 달린 나무가 그려진 화선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곳곳에 꽃잎이 휘날리는 것이 절경이다.

“이런 꽃이 있나요?”

“벚꽃이라고 해. 미도엔 봄이 되면 벚꽃이 많이 피거든.”

“매화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미나미가 바짝 붙어 재잘거리자 신이 났는지 이번엔 또 다른 화선지를 꺼내 붉고 노란 염료를 찍어댄다.

“이건 가을이야.”

“가을엔 꽃이 없어요?”

“있긴 있지, 그래도 색이 변하는 나뭇잎이 제일 예뻐.”

나뭇잎 색이 노랗고 빨갛다. 미나미는 능숙하게 선을 그어가는 토라오의 붓끝을 바라보았다.

“바람을 그리셨네요.”

아까도 지금도. 꼭 바람에 휘날리듯 꽃도 나뭇잎도 여기저기에 흐드러진다. 토라오는 미나미의 말에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봐 줬네.”

“미도엔 바람이 많이 부나요?”

“응, 타고 떠나고 싶을 정도로.”

미나미는 그 말이 조금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떠나고 싶다니, 그건 현재에 불만족하단 의미가 아닌가. 한참의 침묵 끝에 물음이 붙는다.

“…황족인데도요?”

“황족이라서 더 그런 걸지도. 아, 혹시 재수 없어?”

“네. 전 노예 출신이거든요.”

“아, 미안…”

샐쭉한 대답에 토라오가 과하게 침울해하자 미나미는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엔 새도 그려주세요. 미나미는 조잘거리며 토라오에게 이것저것 주문했다. 아까 다 그린 봄도 가져와 나비를 그려달라, 벚꽃을 더 그려달라 쉴 새 없이 쫑알거린다.

“미도로 가면 이렇게 많은 벚꽃을 볼 수 있어요?”

“당연하지. 근데 지금은 여름이니까 내년에야 볼 수 있겠지만.”

딱 내 생일 즈음에 많이 피거든. 생일이란 말에 미나미는 시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생일이 언제인데요?”

“나? 3월.”

“저는 6월이에요.”

“여름이네.”

봄 다음엔 여름이다. 계절이 나란히 붙어있을 뿐, 별다른 의미가 없는데도 토라오는 그걸 반가워했다. 미나미는 벚꽃과 나비가 그려진 화선지를 오래도록 내려다봤다.

“…꼭 직접 보고 싶네요.”

그 목소리가 워낙 처량해야지. 토라오는 붓질도 멈추고 미나미를 바라보았다. 황량한, 이 작은 아이의 가슴은 건조하다 못해 갈라져 보일 정도였다.

*

“…그럼 이 부분은 이렇게…”

“네, 그리고 촛대는…”

그날 저녁, 미나미는 토라오가 불러준 장인들을 직접 만나 갖은 당부를 전했다. 만들기 전엔 반드시 철에 맞는 꽃으로 손을 털어내야하며 마음가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아주 세세하게 전했다.

“완성까진 얼마나 걸릴까요.”

“최대한 빠르게 하겠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그리 명하셨고…”

저기, 그런데 신애 님. 금속 장인이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무사하신 거죠?”

“네? …네. 보시다시피.”

“그것이…”

폐하께서, 해를 끼치시는 게 아닌가 염려되어서요. 곁에 있던 다른 이들이 그의 입을 막으려는 듯 옆구리를 찔렀지만 사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선황제 폐하를 살해하고 귀비마마께 죄를 뒤집어씌우고 황제가 됐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1황자였던 폐하께서…”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제가 들어야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미나미가 딱 잘라 말하자 장인은 귀까지 빨개져 머리를 조아렸다.

“송구합니다, 그저 신애 님의 안전이…”

“저,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기일은 지킬 것이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신애 님 귀에 달린 거 안 보여?!’ 저들끼리 부산하게 쑥덕거리며 나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미나미는 한숨을 쉬며 어깨를 내렸다. 내리 느껴지던 미묘한 기운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황제의 언사가 가벼워 다른 이도 그리 대하는 게 아닌가 했다. 그래도 상대는 황제다. 어째서 신하들이 그를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만한 이유라면 납득할만하다. 장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부당하게 자리에 오른 것이라면 인정받지 못함이…

…과연 당연할까.

“부당하다, 라…”

미나미는 창가에 비치는 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차가운 유리면엔 언젠가 보았던 시세이의 초상화가 겹쳐진다. 부당하게 자리에 올랐더라도 그에 합당한 대우는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나미는 경험을 비추다 들여버린 무른 감정에 입술을 깨물었다.

“신애 님, 처소로 모시겠습니다.”

“……폐하?”

미나미는 정중하게 허리까지 숙이는 황제를 보고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신애 님.”

“폐하께서도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신당 건축은 새벽부터 당장 진행할 예정입니다.”

딱딱한 문장이지만 한껏 장난스럽다. 미나미는 그 의도를 알고 적당히 말을 맞추며 그를 따라 걸었다. 근처를 지나다니던 신하들이 이쪽을 힐끔거린다.

“의식에 쓰일 도구는 어찌 된답니까.”

“빠른 시일 내에 전해주겠다 합니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목소리가 차분해진다.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에 미나미는 어금니를 물어야만 했다. 사람과의 교류는 지루하고 피곤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만하면 즐겁게 이어갈 수 있겠다.

토라오는 서북전에 다다르고서야 어투를 풀었다.

“꼭 이렇게 해야 해?”

“체통은 지키셔야지요. 폐하께서 바로 잡히셔야 따르는걸요.”

“그런다고 올까.”

바로 잡힌다고, 와줄까. 미나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4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이세요.”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아니, 그 전에 이제 막 이불을 거두고 일어난 참이었다. 토라오는 우메하라를 불러 빨리 그를 씻기게 하곤 옷을 갈아입혔다. 하얀 옷소매엔 분홍색 실로 예쁜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런 옷이 있었나요?”

“아침에 폐하께서 가져다주셨습니다.”

…예쁘네요. 미나미는 조용히 중얼거리곤 황제의 뒤를 따랐다. 한껏 들떠 보이는 황제란 정말이지 어린아이 같아서, 과연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두 사람은 정원 쪽으로 걸었다. 북전의 뒤편에 위치한 정원은 특히 나무가 많았다. 처음 걸음 해보는 곳에 미나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전에 안내해주실 적엔 보지 못했는데…”

“그땐 연못을 메우느라 보여줄 수 없었어.”

연못이라는 말에 표정이 어두워진다. 나츠메에서 지낼 적에 뻔질나게 빠졌더랬다. 썩 좋지 못한 기억이 떠오르자 입이 굳어진다.

“자, 이리로.”

토라오는 미나미를 이끌고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두 개가 얽어져 만들어진 문을 지나가니 수십 개의 나무가 길을 따라 이어졌다. 한 발 한 발 걸을 적마다 바람결에 꽃향기가 실려 왔다.

“…….”

길의 끝자락은 선연한 분홍색이다. 옷자락에 그려진 것과 같은 꽃들이 나무에 활짝 피어 흩날렸다. 바람을 타고 나풀거리는 작은 꽃잎은 공중에서 하늘거리다 미나미의 머리에 앉았다.

“봄이야, 미나미.”

미나미는 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는 토라오의 손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나츠메라면 아직 겨울이다. 겨울의 다음은 무더운 여름이어서, 볼 수 있는 꽃도 한정적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아름다운 꽃나무는 듣도보도 못한 것이어서 가슴이 왈칵 설렜다.

“정말 예쁘네요.”

“내가 말했지? 네가 바라던 풍경도 보여주겠다고.”

정말 이 사람은 미도의 신일까? 미나미는 화사한 하늘을, 바람을 그리는 꽃잎을 보며 가만히 웃었다.

“봄 내내 이럴 거야. 자주 정원에서 볼까.”

“그럴까요.”

“아, 오늘 같이 목욕할래? 벚꽃물 준비하라고 할 테니까.”

“폐하, 그런 건…”

“싫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는데, 아무튼 싫어.”

미나미는 말을 자르는 토라오를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아이의 생떼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그 다른 의도에 대한 건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궁녀들 사이에서 말이 많아요. 당신과 내가 정이라도 통한 줄 아는데.”

“그게 왜. 곤란해?”

“곤란해요.”

단호한 대답에 토라오는 불만스레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그럼 우메하라한테 전달할 테니 서북전에서 즐겨.”

별것 아닌데 괜히 거절했나. 미나미는 불퉁해진 토라오를 보다 눈을 감았다.

“폐하께서는 좋은 이를 황후로 들여 황자를 보게 될 겁니다.”

“뭐야 그거, 예언이야?”

“네.”

거짓말이다. 미나미는 여전히 토라오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니 토라오의 불만 많은 표정이 들어온다. 어쩐지 더 착잡해진 얼굴에 미나미는 그를 지나쳐 벚나무 아래에 섰다.

“그 능력 말인데, 한계라던가 있어?”

“자주 쓰면 피곤해지는 것 말곤 없어요.”

“그럼 내일부터 북전 회의에 나와줄 수 있어?”

북전에서 하는 회의는 토라오를 주축으로 상위 귀족이 모이는 자리였다. 일거수일투족을 결정하고 논의하는, 정말로 귀찮지만 없어서는 안 될 나랏일이었다.

“거기서 무얼 하면 되나요?”

“예언을 해주면 돼.”

나라에 이로울 예언을. 미나미는 흔쾌히 수락했다.

*

토라오의 부탁대로 미나미는 북전 회의에 참석했다. 미도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와 정책 부분에 대한 의견 조율이 화두였다. 그중에서도 서쪽 외곽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사들이 보급되는 물자가 부족하다고 상소문을 올렸으니 검토해달라는 주청이 핵심이었다.

“분명 군영을 나눴으니 모자랄 일이 없는데.”

“근방에서 싸움이라도 나는가 보군요.”

미나미의 말에 상소문을 전한 군사 하나가 놀란 얼굴로 엎드렸다.

“신애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설양雪養족이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날이 따뜻해지니 터전을 미도의 근처로 잡을 속셈인가 보군.”

“그런 것으로 사료됩니다.”

“군영을 다시 통합하고 물자를 늘리세요. 곧 서쪽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전쟁이 날 겁니다.”

미나미는 건조한 눈으로 바닥에 붙은 군사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물이 많은 길로 통하지 마세요. 목숨을 잃을 거예요.”

“제, 제 본가 앞에 큰 강이 있습니다. 이 또한 문제가…”

“일가친척을 데리고 산으로 가세요. 강 너머까지 해가 갈 겁니다.”

“정확한 피해 범위를 알아야겠는데. 미ㄴ, …신애 님은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입에 붙은 호칭은 쉽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다른 신하들이 있는 곳에서는 서로 경어를 쓰자 하였으니, 미나미는 얼른 말을 바꾸는 황제에게 사뭇 딱딱한 어투로 예언을 전했다.

“사각으로 만든 짚더미가 보입니다. 이건 필시 치우는 쪽이 좋습니다. 물길을 따라 침입하는 자가 여럿이니, 강을 끼우고 있는 곳 전체를 아울러 지키세요.”

미나미의 말에 북전 안은 시끄럽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회의는 그런 식으로 진행됐다. 앞날을 예견하는 이가 있으니 사리 분별이 빨랐다. 모든 것은 미나미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정해졌으니, 북전 안은 신애와 시세이에 대한 경외심으로 넘쳤다.

“신애라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되게 소름 돋네…”

“그나저나 정말 뭐야? 나츠메는 버려진 거야? 왜 굳이 미도에?”

“소문이 있잖아, 황제 폐하랑 신애 님 알던 사이였대.”

“그게 진짜야? 이러다 신애 님이 첩지를 받는 건…”

“제가 뭘요?”

불쑥 나타난 신애의 목소리에 무리는 후다닥 흩어졌다.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귀족들을 보던 미나미는 고개를 기울였다.

황제 폐하랑 신애 님 알던 사이였대…

…내가? 폐하랑 알던 사이였다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렇다 할 기억은 전혀 없었다.

“첩지는 무슨.”

“들으셨나요.”

“내가 그거에 예민해서.”

나 같은 놈은 안 만들고 싶으니 부인도 안 두는 건데. 토라오가 투덜거리자 미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같은 아들이 생기면 볼만하겠네요.”

“너 그거 무슨 뜻이야?”

“글쎄요.”

“놀리냐.”

“후후, 어찌 제가 감히.”

“…아버지는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셨어.”

황제가 아니었다면 셋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고 하셨거든. 그런데 어머니는 아니었어, 내가 황제가 되길 바라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토라오는 하려던 말을 말아버렸다.

“가서 쉬어. 저녁에 장인들이 다시 입궐할 거야.”

“폐하.”

“왜.”

“벚꽃물, 아직 쓰지 않았습니다.”

토라오는 눈썹을 치켜뜨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뇨.”

“후궁하고 쓰라며, 그래서 썼어.”

“제 몫은 아직 남아있는걸요.”

싫으세요? 애처롭게도, 황제는 미나미의 속삭임을 뿌리칠 수 없었다. 전날 밤 정사의 흔적은 아직 몸에 남아있었지만 미나미가 신경 쓰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런 와중에, 거슬려 하고 싫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피어올라 곤란해진다.

반응해줄까, 아니면 조용히 지나갈까. 의문은 대답으로 변했다.

“…밤에 서북전으로 갈게.”

“기다릴게요.”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남기는 걸까. 토라오는 새빨개진 한숨을 뱉으며 등을 돌렸다.

*

장인들이 가져온 제사 도구는 겉보기엔 완벽했다. 다만 그 속에 담긴 것들이 옳은 절차를 밟아 만들어졌는지는 백야의 판단에 달렸다.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던 하얀 뱀은 촛대 두 개를 패대기쳤다. 미나미는 산산조각이 나 부서진 촛대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금에 무언갈 섞었구나, 황제를 기만하는 것이 신애의 기만으로 이어지자 순간 열이 올랐다.

“이 촛대들은 누가 만들었죠?”

“저, 접니다.”

“채비하고 서쪽 외곽 지역으로 가세요.”

“네?”

“서쪽의 정기엔 은이 적합합니다. 은으로 만든 세공품을 서쪽 지역에서 판매하세요. 그럼 노란 귀걸이를 한 남자아이가 태어날 겁니다.”

문관 귀족이 될 아이를 낳는단 소리인가? 남자는 기뻐하며 바닥에 머리를 대고 엎드렸다.

“마누라가 임신 중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촛대를 부수시기에 만족하지 못하셨는가 하여…”

“남은 촛대는 다른 이에게 맡기겠습니다. 바로 떠나세요.”

금속 장인. 일전에 미나미에게 황제에 대한 험담을 늘어두었던 사내였다. 미나미는 부러진 촛대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백야를 불렀지만 그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이쪽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허튼 수작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기한은 내일까지 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장인들이 우르르 나가자 우메하라가 들어온다. 신애 님, 목욕 준비를 마쳤습니다. 미나미는 궁녀들을 시켜 의식 도구를 옮기게 하곤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신애 님, 아까 그 자에게 왜 그런 귀한 예언을 주신 건가요?”

“귀한 예언?”

미나미는 입꼬리를 휘었다.

“귀한 예언이긴 하죠, 명을 재촉하는 길이니.”

자못 험악해진 분위기에 우메하라는 입을 다물었다. 본디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말에 가시가 돋아있다는 건 자주 느꼈다. 지금 그가 내비친 건 가시가 아니라 날카로운 칼날이었기에, 우메하라는 잠자코 있었다.

문을 열자 향긋한 꽃내음이 풍긴다. 분홍색 꽃잎이 퍼진 욕조엔 황제가 있었다. 그 뻔뻔함에 픽 웃어버린 미나미는 우메하라에게 돌아가라 손짓하곤 문을 닫았다.

“표정이 어둡네. 물건이 마음에 안 들었어?”

“황실을 얕보는 이가 많습니다.”

미나미가 딱 잘라 말하며 겉옷을 벗자 토라오는 앓는 소릴 냈다. 모를 리가 있을까, 자신에 대한 흉흉한 소문도 빤히 알지만, 굳이 고치려고 들진 않았다.

“그게 물건에도 영향을 끼쳤단 거군.”

“네.”

그래서 심판했습니다. 미나미는 속내의만 두른 채 토라오의 곁에 앉았다. 분홍색 물결이 일고 좋은 향기가 났지만 좀처럼 구겨진 낯은 풀어지질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왜 이리 얻기 힘든 걸까요.”

잘 지내보고 싶었을 뿐이다. 천한 출신이니 그만한 신분 출신의 아이들에게 배우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시세이 님을 받드는 천애로 발탁되었으니 격에 맞는 신앙을 보이고 싶었다.

“얻기도 힘들고 지키기도 힘들지.”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자신이 품은 재능 정도는 빛나게 해주고 싶었다. 토라오는 그것을 욕심이라 일컫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하지만 능력을 보이기는커녕 보호라는 이름의 허울 좋은 옷을 두르고 살았다. 물론, 정말로 허울만 좋았을 뿐이기에 옷 아래는 찔린 상처로 낭자했지만.

“…내가 미안.”

토라오는 미나미의 손을 잡았다. 젖은 살갗이 맞닿자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울린다. 뽀얗게 올라오는 수증기와 포근함은 도드라진 절벽을 둥글게 깎아지르는 것 같았다.

“가족도, 백성도 마음을 얻는 게 쉽지 않아. 친구의 마음은, 아니, 친구는 만드는 게 문제였네. 딱 한 명 있었지만.”

“친구요?”

“어, 다른 나라 사람이야.”

말이 잘 통했거든. 같이 앉아서 이야기만 나눠도 즐거웠고, 서로 모르는 걸 공유하면서 견문도 넓히고.

“지금도 잘 지내세요?”

“아니.”

토라오는 씁쓸하게 웃으며 미나미를 바라보았다.

“나랑 친구였다는 사실도 잊은 모양이야.”

“…….”

“너는?”

“아끼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제겐 시세이 님밖에 없으니.”

“그런가.”

미나미는 꼼질 거리는 토라오의 손을 그대로 두었다. 어느새 깍지를 끼우고 손등을 문지르고 있던 황제는 슬픈 빛으로 침잠한 눈동자를 동동 떠다니는 꽃잎으로 보냈다.

왜 자꾸만 상처를 주는 기분이 들까, 미나미는 토라오의 가슴께에 난 붉은 자국을 보곤 말을 돌렸다.

“…그래서, 간밤엔 즐겁게 보내셨나요.”

“밤? 아, 뭐… …망했어.”

“네?”

“길게 묻지 마.”

토라오는 미나미의 손을 놓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질투심을 부르고 싶었지만, 간밤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떠오르자 아차했다. 알려져봤자, 좋을 것 없는 일이.

*

신당이 지어질 때까진 아직 시일이 걸렸다. 그사이에 제사 도구는 준비되었고 백야가 신당으로 지을 장소로 선택한 곳―서북전과 서전 사이―에서 한시적으로 제사를 치렀다. 자리엔 황족만 모였다. 아니, 황제만 있었다.

없던 신앙심이 갑자기 생길 리 있을까, 미나미는 자신을 데려온 것이 순전 황제의 고집에서 일어난 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백야가 그릇을 삼키고 춤을 추는 내내, 미나미는 시세이에게 집중하기 위해 ‘아무도 없다’는 최면까지 걸어야 했다.

“이런 쓸쓸한 제사는 처음이네요.”

“신당이 지어지면 많이 참석하겠지.”

밭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자 토라오는 그런 미나미를 번쩍 안아 올렸다. 의복에 흙 묻어도 되는 거야? 토라오의 핀잔 어린 목소리에 미나미는 키득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꽃잎 몇 장은 용서하실 거에요.”

“정말이네.”

“잠깐, 어딜 만지는 거예요?”

“꽃이 묻었길래 털어준 것뿐이야.”

미나미의 엉덩이를 툭툭 털어내던 토라오는 괜한 헛기침을 하며 서북전으로 걸었다. 이러고 가도 되는 건가? 미나미는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궁녀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을 자각하곤 낮게 속삭였다.

“내려주세요.”

사람 마음 얻긴 힘들어도 노력은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미나미의 말에 토라오는 얼른 그를 내려주었다.

“난 지금 그 노력을 한 것뿐인데 말야.”

하나도 안 통하네. 토라오는 혀를 차더니 앞장서서 걸었다.

*

“우메하라, 우메하라!”

궁녀 몇몇이 우르르 뛰어온다. 신애의 옷을 비단으로 감싸던 우메하라는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지금 서북전으로 가는거야?”

“응, 곧 오실 시간이라.”

“우리가 저기서 뭐 봤는지 알아?”

황제 폐하가 신애 님을 이렇게! 번쩍 안아서 가더라니까! 궁녀 하나가 꼭 짐짝을 들쳐메듯 과장되게 움직였지만 우메하라는 그게 뭐 그리 놀랄 일이냐는 표정이다.

“그리고 이거는 정말 비밀인데.”

타카네 님이랑 잠자리했을 때, 폐하께서 신애 님 이름을 불렀대! 그제서야 우메하라의 눈이 커진다.

“그거 진짜야?!”

“그렇다니까! 그래서 타카네 님이 신애 님 말만 나오면 그렇게 짜증을 내시잖아.”

옆에 서 있던 궁녀 하나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몰래 엿듣다 들었다느니, 폐하께서도 당황했는지 조용해지셨다느니. 이전에 타카네 앞에서 신애 이야기를 꺼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궁녀들의 입은 쉴 틈이 없다.

“폐하께서 신애 님을 좋아하시는 게 틀림없어.”

“그런데, 신애 님은 어때?”

우메하라는 다 글렀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종종 같이 목욕하시는데, 매번 아무 일 없이 돌아오셔.”

“그게 가능한 거야…? 폐하가 불쌍해.”

“평소에 말씀 나누는 것 보면 신애 님도 보통내기가 아닌데…”

“―여기서 뭣들 하는 게냐!”

상궁 하나가 불쑥 나타나 고함치자 궁녀들은 부리나케 흩어졌다. 우메하라는 자꾸만 들썩거리는 입꼬리를 누르려 어금니를 꾹 깨물고 서북전으로 달려갔다. 제 딴엔 두 사람을 엮고 싶었다. 그럼 자신은 신애와 동시에 황후가 될 사람을 모시게 되는 것 아닌가.

‘내가 폐하를 도와드려야지!’ 어줍잖은 오지랖이 꼬리를 흔들었다.

*

“황상, 신애 님이 오신지도 여러 날이 지났는데 아직 연회 한번 없는 게 말이 됩니까.”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은 긴 곰방대를 물고 중얼거렸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굵은 금비녀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오색 찬란한 보석은 금실에 엮여 차르륵 흘러내렸다.

“신당을 짓는 일이 먼저입니다, 이쪽이 신애 님이 원하시는 일이기도 하고요.”

“둘 다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까? 황상이 그 모양이니 내가 늘 답답한 겁니다.”

연회는 내 쪽에서 해결하지요, 황상은 신당 일에 전념하세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태황태후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기에 토라오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면 반대부터 하는 사람이다. 제 아들을 몰아내고 황좌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토라오는 어릴 적부터 그의 마음을 받고 싶었지만 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어머니를 질투한 여인에게 바라서는 안 될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친절에 놀란 토라오는 곧 환하게 웃었다. 관계의 회복을 기대해도 되는 걸까, 한껏 성질을 부리는 중에도 태황태후는 연회에 쓰일 옷감과 음식에 대해 늘어두고 있었다. 신애 님이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연회에 쓰일 장식은 백과 금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든지 등 하나같이 미나미를 배려하는 듯했다.

북전 회의의 결과도 좋고 나라는 안팎으로 많이 안정되고 있었다. 아마 그 부분을 높게 산 것이 아닐까, 토라오는 미나미로 인해 나아지는 상황에 기쁘면서도 씁쓸했다. 황제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문득 미나미가 말한 ‘노력’이란 단어가 스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것은 곧 신당을 짓는 일로 이어졌다. 한 나라의 황제가 직접 관여해 신을 모시는 장소를 만든다, 아마 이만한 노력이면 신 시세이도 기뻐하지 않을까.

믿은 적 없는 신에 대한 헌신에 힘이 실린다.

*

“…해서, 태황태후 마마께서 직접 신애 님을 위한 연회를 여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메하라에게 연회 소식을 전해 들은 미나미는 의아해했다. 금속 장인이 전한 말에 의하면 태황태후는 지금의 황제를 끔찍하게 싫어 할테다. 그런 그가 ‘황제를 위해’ 연회 일을 대신 맡았다는 표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선황제를 죽이고 그 죄를 어머니에게 덮어씌웠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태황태후 마마는 황제 폐하를 싫어하시는 것 아닌가요?”

“아, 그게…”

“괜찮으니까 말해보세요.”

“알겠습니다.”

토라오의 동생, 2황자 미도 토모에는 3년 전 전쟁에서 황제가 승하하자 바로 황위에 올랐다. 그는 훌륭한 황제였다. 민심을 살피고 외교에도 능했으며 매 전쟁도 승리로 이끌었다. 안정적으로 집권을 이어가던 어느 날, 토모에 황제는 갑자기 사망했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한 건 지금의 태황태후였다. 그는 아들의 죽음이 돌연사가 아니라 역모라고 주장했다. 머잖아 토모에 황제가 입었던 옷에서 독침이 발견되었고 정황상의 증거는 모두 토라오의 어머니인 귀비를 가리켰다. 황실의 법도대로 차기 황제에 오른 1황자 토라오는 강제적으로 자기 어머니에게 반역이란 죄목을 붙여 처형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됐군요.”

“토모에 폐하를 죽인 건 토라오 폐하라고 알려져 있긴 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비켜나가기 위해 귀비에게 뒤집어씌웠다고 해요. 미나미는 턱을 괴고 그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런데 연회를 여시겠다고…”

“황제 폐하를 용서하셨을지도 모르죠.”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원래 변덕스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우메하라는 생각 없이 떠들며 연회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 늘어놨다. 먹고 싶은 것은 있는지, 머리는 어떻게 하고 옷은 또 어떻게 할지 등등. 미나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폐하는요?”

“폐하께서는 신당 일로 바쁘십니다.”

연회 일에 맞게 완공하실 거라고 해요.

바빠서 보이지 않았던 거였나, 미나미는 고작 하루 반나절 정도 황제를 보지 못했다. 문득 느껴지는 이상한 외로움에 입술을 깨문다. 왜 이렇게 초조하지? 잘근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우메하라가 슬며시 물었다.

“폐하께 전달 드릴까요?”

“네?”

“아, 아니요. 그냥 신애 님께서 찾으신다고…”

우메하라의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본 미나미는 피식 웃었다.

“찾는 것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여쭈었을 뿐입니다.”

뒤에서 무슨 말이 도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우메하라의 투명한 행동에 미나미는 내리 가지고 있던 물음표를 확신으로 눌렀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애. 아마 태황태후의 귀엔 그렇게 들어갔을 것이다.

*

연회 날은 귀를 뚫은 지 정확히 열흘이 된 날이었다. 미나미는 저와 같은 붉은 술을 매단 이를 여럿 만났다. 황족이 이리 많던가, 하나같이 제게 예를 갖춰 인사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그 사이에 서북전 옆엔 신당이 하나 지어졌다. 오동나무와 대추나무로 만들어진 신당은 제사를 치르는 데에 무리가 가지 않는 공간만큼만 만들어졌다.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하려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 미나미도 규모에 대한 건 어느 정도 이해했다.

그가 북전 회의에 관여하면서 큰 피해 없이 나라를 지키는 일이 거듭되자 처음엔 신의 존재를 반기지 않던 이들도 시세이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신앙은 저절로 피어난다. 미나미는 그걸 잘 알았기에 능력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도움이 된다면 이들 또한 시세이 님을 향한 마음을 곤고하게 다질 것이며 기강이 굳어진다면 신애를 데려온 황제에게도 득이 될 것이 분명했다.

미나미는 태황태후가 보낸 하얀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옅은 색깔의 머리카락은 하나로 묶였고 금실이 섞인 붉은 리본으로 장식되었다.

갈채와 함성이 가득한 연회장에 들어선 그는 처음 겪는 규모의 행사에 필사적으로 태연했다. 긴장으로 눈을 언제 깜빡여야 좋을지 몰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속이 느글거릴 정도로 많은 음식이 올라왔고 내로라하는 재주꾼들이 모여 요란하게 뛰어다녔다. 나츠메에서는 본 적 없는 무대와 놀이에 시선을 빼앗긴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회를 즐겼다. 음악과 춤이 이리 재미난 것이었나,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잔뜩 분위기에 휩쓸린 그는 궁녀가 건네는 술에도 입을 대기 시작했다.

“나츠메의 신애 님을 뵙습니다.”

아니, 이제 미도의 신애 님인가요? 이제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 다가와 인사한다. 곱게 올려 묶어진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를 따라 갖은 보석으로 장식되었고 귀에 걸린 붉은 술은 어깨를 넘을 정도로 길게 찰랑였다. 고풍스러운 인상과 나긋한 말투에 어울리는 검은 옷자락엔 금색 실로 그려진 꽃이 가득했다.

태황태후 마마십니다. 곁에서 언질을 주는 우메하라의 말에 미나미는 술잔을 내려놓고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연회를 열어주신 분이 태황태후 마마라 들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도리어 늦은 것이 송구스럽군요.”

시세이 님이 노하진 않으셨을까요? 걱정하는 표정이지만 목소리는 전혀 아니었다. 철저하게 신을 무시하는 말투. 노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는 듯 잔뜩 치켜뜬 눈에 미나미는 울컥이는 속을 겨우 찍어 눌렀다.

“시세이 님은 자비로운 분이니까요. 다만…”

신애인 제가 노하는 것이 먼저일 겁니다. 미나미는 웃음기가 빠진 얼굴로 태황태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신애 님을 잃고 나츠메가 많이 기울었다고 하는데 아시나요?”

“저의 부재로 유언비어가 돌고 있나 보군요.”

“아니요. 유언비어가 아닙니다.”

천애들의 기운이 약해졌다는 소문이 있는데, 정녕 모르셨습니까? 태황태후는 빨간색 접부채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웃었다. 미나미로서는 의미 없는 도발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츠메 따윈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다만 시세이가 사랑하는 나라이니 없는 애정을 짜내어 관심을 부어야 했다.

“조만간 서신을 보내봐야겠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그나저나, 신애 님은 시세이 님을 닮았다는 이유로 신애로 선택받았다는 말이 있던데…”

“후후, 거기까지 아시다니 나츠메에 연줄이 있으신가 봅니다.”

“암요, 미도의 태황태후인데 그만한 다리는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반박하지 않으시는 걸 보니 정말인가 보군요, 이래서 사람은 잘 타고나야 하나 봅니다.

시끄러운 음악에 파묻혀 남들에겐 들리지 않을 대화였지만 상대에겐 정확하게 꽂혔다. 미나미는 태황태후의 의도를 파헤치기 위해 이성을 바짝 잡았다.

“황족 또한 천운이 있어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요. 전생에 쌓은 것이 많으니 이리 보답받는 거겠지요. 미천한 것들은 현생에서 전생의 죄를 받는 것이니, 참 딱하지 않습니까.”

헌데 꼭 그런 이들이 있지요, 낮게 태어나 감히 바라서는 안될 자리까지 탐하는 것들이. ―상냥한 말투에 뼈가 박혔다.

“출신이 천한 이나 출신이 천한 몸에서 나온 이나, 하늘의 뜻에 맞게 그 신분대로 살아가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겨우 이만한 조롱을 조롱이라 불러도 될까? 더한 수치와 질타를 겪었던 미나미는 고귀하신 분의 하찮은 언행을 어떻게 받아쳐야 좋을지 고민했다.

“태황태후께서는 여생을 편히 보내시려면 그 입부터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날것의 감정은 아주 약간의 다듬이질을 거쳐 나왔다. 신분이 높은 이는 이만한 도발에도 쉽게 무너진다. 미나미는 차가워진 태황태후의 눈빛에 가볍게 조소하며 눈을 감았다 떠냈다.

“언사가 좋지 못했군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태황태후께서는 말씀이 많아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소립니다.”

지금 품은 생각은 지우심이 좋겠습니다. 명을 재촉할 일이에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예언이라는 건 잘 아시겠죠? 미나미는 꾸며진 미소로 태황태후를 바라보았다.

“무서운 능력이로군요. 제 미래를 보셨습니까.”

“황제 폐하를 끌어내리기 위해 시세이 님을 이용할 생각은 마세요. 신을 능멸하면 그만한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전에 궁에 드나들었던 금속 장인은 서쪽으로 가지 않았나 봅니다. 태황태후는 흠칫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신애 님의 말대로 서쪽으로 가다 죽을 뻔했다고 합니다. 만삭의 아내도 자신도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고 하는군요.”

“그래요? 아쉽네요.”

미나미는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태황태후는 그의 행동에 기가 막혀 눈썹을 치켜올렸다.

“신을 모시는 자가 거짓으로 타인을 해쳐도 되는 겁니까.”

“그러는 마마께서는 한낱 백성을 이용해 절 죽이라 명하신 겁니까.”

다음 제사일. 밤. 벚나무. 미나미는 짧은 시간에 본 영상을 되짚으며 그들의 입 모양을 읽었다. ‘신애는 사기극에 지나지 않아’ ‘그저 운 좋게 맞췄을 뿐’ …제 능력을 무시하는 언사에 화에 불이 질러졌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해? 오해라 하셨습니까?”

“연회로 지치신 모양입니다. 처소로 돌아가셔서…”

미나미는 제 어깨를 다독이는 태황태후의 손을 세게 쳐냈다. 고상한 얼굴이 일순 표독스럽게 변하자 그럼 그렇지, 하는 미소가 번졌다.

“태황태후께서는 곱게 죽진 못하겠군요. 성정이 그러한―”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폐하.”

두 사람의 대화에 날이 선 것을 느꼈는지 멀리서 보고 있던 황제는 다급히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가 태황태후의 손을 쳐내고 칼이 박힌 말을 뱉어내자 토라오는 참지 못하고 미나미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 태황태후는 얼른 황제의 옷자락을 잡으며 눈썹을 내렸다.

“황상, 진정하세요. 신애 님은 피곤하신 것뿐입니다.”

“태황태후께서 널 위해 마련하신 자리야. 그런데 지금 뭐? 곱게 죽진 못해? 네가 신애라지만 해도 되는 말이 있고 안 되는 말이 있는 거잖아. 대체―”

“아무것도 모르면 입 좀 다물어요.”

고운 옷을 차려입은 여인들이 수군거린다.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벚꽃 향기에 미나미는 입을 다물었다. 황제 폐하와 밤을 나눈 이가 여기에 있구나, 거기까지 가로질러진 생각에 표정은 삽시간에 구겨졌다.

“연회는 충분히 즐겼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미나미.”

“더 할 말 없습니다.”

우메하라. 미나미가 부르자 어쩔 줄 몰라 하던 우메하라가 크게 퍼뜩였다. 이만 돌아가죠. 높으신 분들의 눈치를 살피던 그는 돌아가자는 미나미의 말에 헐레벌떡 그의 뒤를 따랐다.

멍청한 토라오. 미나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태황태후가 제 아들을 앗아간 이를 그리 쉽게 용서할까. 잠깐 만나 이야기한 것이 전부지만 그의 성격을 파악한 미나미는 토라오의 뺨이라도 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태황태후의 본심 따위야 사실 미래를 보지 않고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혹시 모를 만약에’가 걸려 봐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만약에라는 것은 흔적조차 없었다. 태황태후의 앞날은 황제와 신애를 해칠 미래로만 가득했다.

거기서 미나미는 자신의 장례식을 보았다. ‘신애를 죽인 황제’란 오명을 뒤집어쓴 토라오의 눈물도, 나츠메로 끌려가는 그의 마지막까지도. 이런 걸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내 죽음이 뭐 그리 슬프다고.’ 미나미는 오열하고 있는 황제를 상기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본디 자기 자신에 대한 미래는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주변 사람의 미래에 담긴 제 모습을 보는 것으로 유추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죽음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태황태후에겐 경고했지만, 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은 그것보다 황제와의 오해를 어쩌면 좋을지가 문제였다. 방법도 몰랐을뿐더러 지금 당장은 잘 풀어보려는 의지도 없었다. 황제에게 해줄 말이라곤 욕밖에 떠오르지 않았기에, 미나미는 짜증스레 머리를 헝클이다 이불 속에 파묻혔다. 몇 잔 마신 술에 취한 걸까, 머리가 핑핑 돌았다.

“…신애 님.”

“왜요.”

“폐하께서…”

“잔다고 해줘요.”

“안자잖아.”

눈치도 없어. 미나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그래, 난 대접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무능한 황제야. 그렇다고 너까지 날 이렇게 대할 필욘 없잖아. 태황태후 마마께 가서 사과드려. 그리고 나한테도 사과해.”

그 많은 사람 앞에서 황제를 가볍게 대했다. 그것 하나는 제 잘못이라고 인정했지만, 태황태후에게만큼은 죽어도 사과하기 싫었다. 조금 잘해준다고 풀어져서는 거기에 쏠랑 넘어간 황제가 답답했지만 입은 소리 없이 벙끗거렸다.

그가 당신을 모함하기 위해 나를 죽였다고 말한다면 무어라 반응할까. 당신도, 내 능력을 의심할까. 미나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신도 나한테 사과해요, 무턱대고 소리 지를 건 없었잖아요.”

“네가 예를 갖추지 않은 건 잘못이잖아.”

“그래서 지금 소리 지른 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나한테는 노력을 해라, 경어를 써라 하던 네가 지금 나랑 태황태후께 한 짓을 생각해봐. 내가 화를 안 내게 생겼어?”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미나미는 이불에 웅크린 채 귀를 틀어막았다. 역시 술 때문일까? 아니, 잘 모르겠다. 미나미는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넘기고 싶었다.

“내일 얘기해요.”

“지금 해, 상심이 크시다고. 네가 사과만 해도…”

“그만하라고요!!”

미나미가 버럭 소리 지르자 이불 밑으로 하얀 뱀이 흘러나왔다. 평소보다 더 굵고 크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던 백야는 미나미의 곁을 둘러쌌다. 새빨간 눈동자는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았고 둥글었던 머리는 뾰족하게 세워져 기다란 혀를 날름거렸다.

토라오가 느낀 건 단절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문을 거세게 닫았다.

*

미나미는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신애가 황제와 싸웠다는 소문과 백야가 그 방을 지키고 있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다. 신애를 화나게 만들었다면 이제 시세이의 심판도 오는 거냐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번졌다.

미나미는 당연히 북전 회의에 불참했다. 그가 있었기에 금방 끝나던 것이 더뎌지고 복잡해지자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잦았다. 신애 님은 아직도 방에서 안나오십니까, 신하 몇몇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리 물었다.

토라오는 화가 났다. 이제 겨우 태황태후와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얻었나 했는데 면전에서 못된 소리를 늘어두는 미나미 때문에 다시 멀어지고 말았다. 신당도 연회도 모두 미나미를 위한 자리였다. 고맙다는 말도 모자랄 판에 죽음이 어쩌고, 물론 대화 내용을 몰랐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의 무례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었다.

황실엔 아직 태황태후의 사람이 많다. 그랬기에 토라오는 더더욱 그의 마음에 들고자 했다. 이미 빼앗긴 사람을 제 편으로 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아첨도 필요했지만, 어릴 적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상대였단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미나미를 대신해 올린 사과도 여러 번이지만 태황태후는 전부 거절했다.

지난 제사로부터 곧 있으면 열흘이 채워진다. 의식을 치를 때가 됐으니 곧 나오지 않을까, 토라오는 신당을 떠올리며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미나미는 제사 일이 지나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고집을 부리는 건지. 결국 참지 못한 그는 직접 미나미의 처소를 찾았다.

“미나미.”

토라오는 미나미의 방문 앞에 서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두텁게 쌓여있던 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조용함 속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묻어남을 느낀 그는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커다란 침대 위에 미나미는 웅크려 있었다. 무릎을 세운 채 고개를 파묻고 숨죽여 끅끅거리는 모양새에 토라오는 인상을 찡그렸다. 거의 벗다시피 한 몸의 곳곳이 빨갛다. 손톱으로 내리 긁은 듯한 자국이 여럿이고 어떤 부분은 피가 맺혀 있었다. 깨끗한 몸에 상처가 보이자 토라오는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잡았다.

“너 왜 이래.”

“이거 놔요.”

“몸이 왜 이러냐고.”

“놓으라고요!”

“미나미!”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래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구요!!”

목이 다 갈라져 찢어진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토라오는 멈칫했다. 아무렴, 이런 사람을 데리고 시시비비를 따져가며 다시 사과를 받네 마네할 문제는 아니었다. 토라오는 일단 제 감정을 삭였다.

“뭘 따지려고 온 거 아니야.”

“날 찾아오지도 않았잖아요.”

“네가 나오지 않았잖아.”

“나올 수 없었다구요!”

머리가 미치도록 아파서 이대로 죽는 줄 알았어요. 당신에게 무어라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다 잊을 정도로 아팠다고요.

서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에 토라오는 할말을 잃었다.

미나미는 이불을 거두었다. 두꺼운 이불에 깔려 보이지 않던 곳엔 무언가에 물린 상처가 잔뜩이다. 왼쪽 허벅지, 사문이 있어야 할 곳에 핏자국이 낭자하자 토라오는 헛숨을 들이켰다.

“이게, 무슨…”

“백야 님이 날 공격했어요.”

잠깐 진정되었던 눈물이 다시금 터진다. 미나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때에 점점 몸집이 작아지던 백야를 기억했다. 그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뻗었다. 신의 사자는 신애를 지키는 이니까, 나 좀 어떻게 해달라며 몇 번이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백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제 몸이 평범한 뱀의 크기까지 작아지자 갑자기 미나미의 사문을 마구 물어뜯고 사라졌다. 당장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미나미로서는 그가 왜 자신을 물고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나라를 떠나서? 헌신이 부족해져서? 올라오는 모든 의문엔 억울함이 녹았다.

“개 같은 나라에서 개 같은 대우 받은 게 내 잘못이에요? 시세이 님은 대체 하는 게 뭐에요? 내가 신의 사랑을 받았다고? 날 사랑한다고요? 나는, 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시세이 님을, 날 지키지 않는 그분의 사랑도 다 믿고 섬겼어요.”

“……미나미.”

미나미에게 시세이란, 미나미에게 천애의 증거란 의미가 남달랐다. 유일하게 버티고 살았던 존재. 잡고, 바라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주던 목숨줄. 토라오는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그를 품으로 당겼다.

신애의 증거가, 천애의 증거가 사라졌다. 미나미는 꺽꺽이며 울다 토라오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생의 모든 것을 여기에 쏟아부었는데, 돌아온 것은 역대 신애들의 기록에도 없는 탈락이다. 사무치는 외로움은 비참함으로 점철되어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

“신이 너를 버리고 떠났어?”

이제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대?

미나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토라오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오롯이 바라보고 온 마음을 다 바친 존재를 이렇게 쉽게 버리나. 제 속에 품었던 분노는 잠시 옆으로 미뤄둔다.

“그게 슬퍼서 우는 거야?”

“화나요.”

“널 버려서?”

“사랑할 것이 사라져서.”

“…미나미.”

토라오는 그를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조그만 몸이 품에 쏙 들어오자 한숨이 절로 난다. 며칠을 굶고 이러고 있으니 몸에 탈이 나진 않았을지 걱정이 앞섰다.

사랑할 것이 사라졌다. 삶의 이유를 잃은 것 마냥 미나미는 처절하게 슬퍼했다. 그게 그리 슬픈 일일까. 토라오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위로할 수 있었다.

“…신애는, 신의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어요.”

“그거 혹시 죽고 싶다는 뜻이야?”

미나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토라오는 앓는 소릴 내며 자세를 고쳤다.

“미나미. 네가 사랑할 것이 없어서, 받들 것이 없어서 살아갈 수 없게 됐다면”

‘네가 사랑할 것이 나타나 너를 사랑하면 될까.’ 토라오는 잠시 입을 다물어 다음 문장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는 아직 물기 어린 미나미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쥐었다.

“그 헌신을 내게 향해.”

그럼 내가 너의 신이 될 테니. 짧은 문장엔 무거운 의미가 놓였다.

토라오는 미나미가 진정할 때까지 안고 달랬다. 엉망이 된 허벅지를 치료하는 것도 먼저지만, 사문이 사라졌다는 건 숨기는 편이 좋았다. 문 쪽을 바라보자 미나미의 고함을 듣고 달려왔는지 우메하라가 서성이고 있었다. 토라오는 그를 불러 상처를 처치할 것을 가져오게 했다.

작아졌다 해도 일단은 뱀이다. 날카로운 송곳니 두 개가 곳곳에 남긴 자국을 보던 토라오는 적신 면포로 어질러진 검붉은 핏자국을 닦아냈다. 생각보다 환부가 깊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새 컴컴해진 바깥 때문에 방 안은 촛불 하나로 밝혀졌다. 그 불씨에 의지한 토라오의 움직임을 미나미는 잠자코 보고만 있었다. 가끔씩 코를 훌쩍이고 히끅이는 소리가 들릴 뿐, 방 안은 침묵으로 찰랑였다.

―너의 신이 될 테니, 그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걸 그는 알까.

토라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처박고 묵묵히 치료에만 전념했다. 약을 발라주고 상처를 덮어주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미나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방을 나섰다.

“폐하, 신애 님은…”

“쉬고 있어. 날이 밝는 대로 식사 좀 챙겨주고.”

우메하라는 벌겋게 물든 황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 얼른 고개를 숙였다. 헌신이라는 말에 숨긴 비겁함이란 그토록 또렷했다. 차마 숨겨지지 못한 붉은 빛은 여실히 드러났다.

신. 신이라. 토라오는 괜스레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파란 녹읍은 물결이다. 바다처럼 너울거리는 잔잔한 울창함에 미나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피부를 타고 들어오는 바람의 온도도 곁에 있는 이의 온도도 전부 좋았다.

“있잖아요.”

“응.”

“더 만나긴 힘들 것 같아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토라오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왜?”

“아키 님이 알아버리셨어요.”

토라오는 입을 비죽이며 다시 미나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귀국까지 얼마 남지 않아 침울해 있었는데 더는 만날 수 없다니. 미나미는 낮게 웃었다.

“후후, 커다란 고양이 같네요.”

“고양이라니, 이왕이면 호랑이라고 해줘.”

“호양이?”

“아니, 호랑이.”

저보다 어린아이에게 기대어 어리광부리는 꼴이란. 하지만 토라오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미나미를 데리고 제 나라로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이만한 말동무가 있어 준다면 무슨 일이든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전에, 당신이 황제가 되는 미래를 봤어요.”

“그럴 리 없어.”

토모에가 황태자 자리에서 내려올 일은 없을 거야. 토라오가 딱 잘라 말했지만 미나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꼭 전해야 하는 말을 하듯이, 목소리는 평소답지 않게 사뭇 비장했다.

“그런데 무척 슬퍼 보여요. 구할 수 없었다, 고 하면서.”

“그게 뭐야…”

토라오는 자세를 바로 했다. 이런 말을 듣고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와락 내려앉은 속이 영 찜찜하다. 괜한 소릴 들려준 미나미가 원망스럽기까지 해 말하지 말라는 양 두 손을 내저었다.

“당신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면 날 불러주세요.”

날 불러준다면, 그 또한 내게 구원이 될 거에요. 알 수 없는 말에 토라오는 인상을 찌푸렸다.

“부른다고 와?”

“미도로 데려간다면요?”

“천애는 못 나간다며.”

토라오의 툴툴거림에 미나미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저는 당신을 만난 기억을 전부 잊을지도 몰라요.”

“왜? 아키… 신애 님이 그렇게 만든대?”

“아마도요.”

그 아이에게 흠집이 남아서는 안 돼, 미도의 황자와 지낸 기억은 네 능력으로 지워두렴. ―미나미는 우연히 본 어떤 천애의 미래를 되짚으며 답했다.

“네 말대로 내가 황제가 됐다고 치자, 근데 무슨 수로 널 미도로 데리고 와?”

기억까지 잃는다면, 그땐 무슨 수로. 퉁명스러운 말투에 미나미는 고개를 기울였다. 확실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움직이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건 작은 벚꽃잎이였다. 토라오의 화선지 위에 그려진 분홍색 꽃잎. 바람결을 따라 흩날리던, 그 아름다운 꽃잎은 곧 설렘이었다.

“…네가 바라던 풍경을 보여준다고 하세요.”

꽃바람이 부는 낙원이 있다고. 당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난 거기에 움직이겠죠. 기억을 잃어도 사람은 감정을 기억한다고 해요. 저는 제 안에 잔류할 감각에 기대할게요.

토라오는 어깨를 내렸다.

“그리고, 당신의 기억을 지키고 싶으면 바로 떠나세요.”

지우고 싶다면 이대로 머무셔도 상관없어요. 미나미의 차분한 말에 토라오는 제 머리를 헝클였다.

“내 기억도 손을 댄단 소리네.”

“그럼요. 신애 님은 완벽한 분이니까요.”

“지금 바로 떠날게. 그리고, 데리러 올 테니까.”

내가 너의 구원이 될 수 있다고 했지?

*

나는, 너의 구원일까. 토라오는 이마를 문질렀다.

귀국과 함께 나츠메에 대한 일은 금방 옅어졌다. 그는 황자로써 벅찬 삶을 살았기에 그날의 기억을 환상처럼 묻어두고 살았다.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라고,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라고 멋대로 규정했다. 어릴 적의 기억은 파편에 불과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이토록 덧없다. 그저 흐름대로 흘러갈 뿐이었다.

반년 전, 어머니는 황제의 자리를 탐하다 토모에를 죽였고 그걸 황후에게 들켰다. 집행하지 않으면 같은 반역자가 될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죽이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했다. 아끼는 동생과 사랑하는 어머니를 모두 잃은 토라오는 도무지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얹어진 황제의 관은 무거워서 온몸이 다 짓눌리는 것 같았다.

토라오는 그제서야 미나미를 떠올렸다. 황제가 될 것을 예언한 사람. 나를 위로해줄 사람. 내게 도움을 바라는 사람. 그렇게 뭉뚱그려 정의된 이를 꿈에서 만난 어느 날, 토라오는 망설임 없이 나츠메로 향했다.

그는 성취 욕구가 넘치는 사내였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구원이 되는, 그런 영웅의 위치에 서고 싶었다. 토라오는 과연 제 손으로 미나미를 지킨 게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도리어 빤한 것을 망친 게 아닐까. 그런 죄책감에 엉망이었다.

다음날, 미나미는 북전 회의에 나타났다. 하얗게 뜬 얼굴로 비척이며 들어서는 모양새에 토라오는 혀를 찼다. 미나미는 웅성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미래를 읊었다. 혹시 그사이에 나아진 걸까? 하지만 미나미의 옷엔 트인 부분이 없었다.

“능력, 돌아온 거야?”

토라오의 속삭임에 미나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미나미는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상황을 조합하고 계산해 그럴듯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마치 제 눈에 훤히 보인다는 듯이 감싸고 포장해서, 아주 그럴듯하게 말을 이었다.

회의의 끝자락, 미나미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력이 쇠하여 당분간은 능력을 아끼는 편이 좋겠다는 변명이 뒤따랐다.

미나미는 신당으로 들어갔다.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깔끔한 건축물 안을 들여다보던 그는 제단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없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오랜 세월을 들여 능력을 다듬었고 생의 대부분을 시세이를 위해 사용했기에 버림 받았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비참했다.

황제는 그런 미나미를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가 안았다. 넓은 가슴에 품어진 그는 저항 없이 그저 얌전했다.

‘내가 너의 신이 될 테니.’ 귓가에 남아버린 그 말이 사뭇 두렵게 느껴졌다. 그가 신이 된다면, 손도 닿지 않을 곳으로 가버리는 게 아닐까. 미나미는 눈앞에 있는 사내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도 버림받으면? 또다시 헌신이 짓밟힌다면, 그땐 어떻게 살아야 하지? 차라리 인간과 인간이라면 낫다. 미나미는 고개를 들어 토라오의 뺨을 쓰다듬었다.

“…인간으로서의 당신을 섬겨도 되나요?”

토라오는 그 말이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신애의 헌신을 받으려면 나 또한 신이어야 하는 거 아냐?”

말했잖아, 미도의 신이라고. 그렇게 거창한 신은 아니지만. 미나미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시세이 님처럼 멀리 있는 신이 아닌 건가요?”

“난 네 옆에 있어.”

신은 신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숨결이 바로 앞에서 느껴질 만큼 거리는 좁아졌다. 코끝이 부딪치고 살냄새가 느껴지는 그 거리에서 미나미는 답지 않게 웃었다.

사고가 정지한다. 머릿속이 훅 꺼지자 입술이 맞닿았다. 미나미가 밀어내는 통에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부드러운 감촉은 토라오의 입술 위에 짙게 남았다.

*

“폐하, 나츠메의 신애가 왔습니다.”

“나츠메에서?”

시끄러운 소리 끝에 아키가 얼굴을 드러내자 토라오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잔뜩 화가 난 몰골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미나미 님을 돌려받으러 왔습니다.”

“미나미는 물건이 아닌데.”

토라오가 표정을 굳히자 아키 또한 감정을 빼낸다. 치켜뜬 눈은 표독스럽고 다물린 입술은 분노로 떨렸다.

“제사를 치르지 않은 모양이십니다?”

“그쪽에서도 제사는 치를 것 아냐? 네가 신애인데.”

“격이 다릅니다. 백야 님을 모시고 하는 것이 진정한 제사인데.”

그래서 기꺼이 알려줬구나. 토라오는 신당과 제사에 대한 것을 순순히 알려주던 나츠메를 떠올리곤 턱을 괴었다.

“미나미는 잘살고 있어. 나츠메에서 지냈을 때와는 격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지. 누구 손에 기억을 잃을 일도 없고.”

왜, 열 받으면 또 그때처럼 저주라도 내리게? 토라오의 비아냥에 아키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됐습니다. 이미 충분한 저주를 받은 분인데.”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자 정곡을 찔렀는지 아키는 동요했다. 그 찰나를 놓칠 토라오가 아니었다. 그는 아키를 위아래로 훑었다.

미나미의 능력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츠메에서 신애를 찾으러 왔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겼길래 저 콧대 높은 신애가 친히 미도의 땅을 밟았을까?

시세이의 화를 샀다. 능력이 사라졌다. 나츠메는 버려졌다. 토라오는 뻔한 문장들을 유추해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미나미는 이미 미도의 황실 사람이야.”

한낱 왕족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아무리 나츠메라지만, 시세이 님이 용서하실까? 너희들이 신애를 놓친 시점에서 미움 받은 건 아니고? 속을 닥닥 긁어대는 말에 아키는 언성을 높였다.

“폐하만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내가 가지 않았어도 그 나라는 망했어.”

신애가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데 퍽이나.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비웃고 싶었다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츠메가 기울고 있다. 이미 신애인 미나미의 능력까지 사라진 마당에 여기서 더 도발해봤자 좋을 건 없었다.

그 순간, 아키가 칼을 빼 들고 달려들었다. 황제에게 겨누어진 칼은 정확히 그의 목 언저리에서 멈췄다. 토라오는 마른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신에게 선택된 자의 저력에 자못 경외심이 일었다.

―나츠메가 전쟁을 선포했다.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다. 토라오는 칼을 집어 밀어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얀 귀걸이를 매단 이들이 흥분에 찬 꼴을 보니, 불어올 피바람에 벌써부터 신물이 났다.

*

“그 재수 없는 신애를 죽여야 하는데.”

“마마, 말씀 삼가소서.”

“닥치거라! 내 명이 짧다는 소리를 면전에서 들었는데 어찌 참아! 황상도 너무하시지, 그리 감싸주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둘이 지지고 볶는 꼴을 보니 내 천불이 난다. 이러다 황후 자리를 사내놈에게 주게 생겼잖느냐.”

황제고 신애고 전부 죽이고 싶다. 황제가 아끼는 신애는 더더욱 갈갈이 찢어 죽이고 싶었다. 비틀린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태황태후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마구 집어 던졌다.

“술에 독을 탔으니 곧 죽겠거니 했는데, 대체 어떻게 살아난 것이야!”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태황태후는 신애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자신이 연회를 주관했으니 술에 손을 대는 일은 쉬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신애를 해칠 계획은 여럿 세워둔 상태였다.

“그 요망한 것이 대체 어디까지 보고 목숨을 부지한 건지…”

“마마, 마마!”

“무슨 소란이냐!”

“나츠메의 신애가 황제 폐하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나츠메가?”

전쟁, 전쟁이라. 좀 전까지만 해도 울그락불그락하던 낯이 환해진다. 어질러진 방안을 정리하던 궁녀들은 일순 부드러워진 태황태후의 목소리를 인지하곤 고개를 들었다.

“지금 당장 내가 부르는 귀족을 소집하거라. 아무도 모르게 해야할 것이야.”

*

“전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야. 아키가 와서 여기에 흠집을 내고 갔으니.”

토라오는 목 언저리에 생긴 긁힌 상처를 보였다. 미나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신애에게 돌아오라 외치는 목소리. 아니, 더는 신애가 아니다. 미나미는 말을 얼버무리는 토라오를 가만히 바라봤다.

“폐하도 가시는 건가요?”

“그래야지. 네 말대로 노력은 해야지 않겠어?”

전쟁으로 공을 세우면 좀 달라질지도 모르지. 토라오는 미나미의 손을 잡았다.

미나미는 전쟁을 겪은 적이 없었다. 평화로운 나라 나츠메는 신의 가호로 온갖 전쟁도 비켜나갔다. 만에 하나의 문제가 생겨도 천애가 활약했고 신애의 저주가 든든하게 나라를 지켰다. 대처 또한 빨랐으니, 덧나는 일 없이 무사히 해결되었다.

“천애도 능력을 잃은 것 같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키의 반응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

“정말로 시세이 님은…”

“그런 거 아니야. 잘 몰라도, 아무튼 그거 아닐 거야.”

“하지만…”

“더 생각하지 마.”

미나미는 아물어가는 허벅지 위를 더듬었다.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나아가는 자리엔 날카로운 송곳니의 감각이 여전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는 동안 제사 일은 지났다. 백야가 사라진 상황에서 지낼 수 있는 제사란 형식적인 것이 전부였다. 시세이에게 직접 고기와 과일을 바칠 수 없으니, 제단 위엔 매일 새로운 음식이 놓아지기만 했다.

벚나무를 올려다보는 미나미의 얼굴은 아직 수심에 빠져 있었다. 그 고운 얼굴이 수척해진 모습에 토라오는 몇 번 망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미나미. 그…”

…안아줘도 돼? 뜬금없는 물음을 남기자 의아한 눈과 마주친다.

“그냥, 위로해주고 싶어서.”

허락을 구하는 주제에 이미 두 팔은 미나미의 허리를 끌어 잡고 있다. 미나미는 그의 품에 폭 파고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리 든든한 일이었나, 아키의 아래에 있을 때와는 달랐다. 극도의 안정감은 미나미를 빠르게 진정시켰다.

토라오는 미나미가 허락한 많은 것에 감사했다. 갑자기 입을 맞췄을 때도 밀어내기만 했을 뿐, 미나미는 그것에 대해 무어라 말을 얹지 않았다. 저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가까이 두고 오래 보고 싶었다.

“황제에게 위협을 가하는데도 신하들은 가만히 있던가요?”

“응? 아, 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그렇게 감싸주지 마세요. 기어올라요.”

몸종을 여럿 두고 부렸을 법한 대사에 토라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 정말 노예 출신 맞아?”

“제 출신 얘기는 대체 어디까지 퍼진 건가요.”

미나미는 태황태후를 떠올리고 인상을 구겼고 토라오는 뒤늦게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난 누구한테 말 안 했어. 네 행동만 보면 귀족 같길래, 아, 아파.”

미나미, 아프다니까. 그는 토라오의 목덜미에 난 상처를 꾹꾹 눌렀다. 피딱지가 앉은 자리는 자칫하다간 피가 새어 나올 것 같았다. 토라오는 몸부림치며 그에게서 벗어났다.

“너나 아키나…”

“난 왜 폐하에 대한 건 하나도 몰라요?”

“…응?”

“당신은 나에 대해서 다 아는데, 왜 나는 모르냐고요.”

너와 나는 아는 사이였고 너는 기억을 잃었다, 는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받아들일까. 토라오는 눈꺼풀을 반쯤 내렸다.

“오늘 밤에 찾아갈게. 그때, 다 얘기해줄 테니까.”

옛일을 꺼내는 것보단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나으리라. 토라오는 케케묵은 자신의 과거를 조심스럽게 쓸어 담았다.

*

“천애의 능력에 대한 언질은 신애 님에게 부탁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종류만 알아도 충분한 대처가 될 겁니다.”

“그보다 예언을 부탁드리는 것이 더…”

“하지만 모국이지 않습니까, 신애 님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

하얀 귀걸이를 단 이들은 오랜만에 잡힌 전쟁에 잔뜩 흥분했다. 사실 오랜만이라 해도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이다. 얼마나 전쟁에 찌들었으면, 토라오는 구겨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칼을 쥐고 전쟁에 참여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든 칼이 아니라 해치기 위해 든 칼이었다. 제 발치에 쓰러지던 많은 시체가 떠오른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토라오는 전쟁을 싫어했다. 각자의 영토에서 행복하게 살면서 교류를 통해 필요한 물자를 공유하는 쪽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미도는 충분하다. 아니, 과했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국가와 교류 협약을 맺어 전쟁을 피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모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의미가 달랐다. 미나미를 지킨다. 능력을 잃은 미나미를 숨긴다. 미나미를 보호한다. 가능하다면 평생을 제 곁에 두고 싶어 빼든 칼이었다.


황제께서는 가장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겁니다.
가졌다 하더라도 잃게 될 겁니다.

―전쟁에서 진다면 미나미는 나츠메로 돌아간다. 하지만 천애의 능력이 정말로 사라진 상황이라면 승산은 미도에게 있다. 시세이가 정말로 아키의 능력을 거두어 갔다면 저주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토라오는 턱을 괴고 신하들을 내려다봤다.

“나츠메와 대치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현재 복구 중인 서쪽 외곽 지역입니다.”

“피해 규모는 크진 않습니다만, 백성들이 지낼 곳이 아직…”

“군영은 아직 해체되지 않았으니, 거기에 군사를 더 보내도록 해. 무엇보다 백성들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나츠메가 오기 전에 먼저 치는 쪽이 옳다고 봅니다.”

“신애 님의 안전을 위해 서북전의 경비도 강화하고…”

미나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소중해져 버린, 가장 원하는 이를 가슴에 품은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키의 저주는 어떻게 해석하는 게 맞는 건지 몰랐다. 그저, 지켜내지 못하면 그 무엇도 남지 않을 것이란 증거만 명백할 뿐이었다.

*

“왜 그렇게 놀란 얼굴이야.”

오늘 밤에 온다고 했잖아. 토라오는 미나미의 처소에 들며 태연하게 그의 침대에 앉았다. 사방이 꼭 막힌 검은 옷은 미나미의 밝은 피부와 대조되어 더 검어 보였다.

“시간이 늦었기에.”

“회의가 좀 길어져서.”

어느덧 달이 기운 시간이다. 하루가 지났나? 토라오는 하품하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너 안 놀라게 매일 찾아올까.”

“후후, 질투 받겠군요.”

“누구한테? …아.”

황제에게 첩지를 받을 사람은 지금의 신애다, 신애야말로 황후의 자리에 오를 사람이다. 궁 안에서 도는 파다한 소문은 토라오의 귀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후궁들의 불만은 당연히 컸다. 특히, 토라오가 잠자리에서 미나미의 이름을 부른 후로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폐하.”

저를 사랑하시나요? 미나미의 물음에 토라오는 멈칫했다. 입까지 맞춘 시점에 무얼 부정하랴, 그는 제 목덜미를 문질렀다.

“그런 것 같아.”

“확신이 없나 보군요.”

“……그건”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붉은 눈동자는 망설임으로 일렁였다.

토라오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덜컥 가슴에 파고든 감정 한 줄기에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랑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저 또한 시세이에게 품은 감정이 그러했다. 그에게 버림받은 후로 바치던 사랑을 거두었더니, 이젠 이 마음을 어디로 향해야 좋을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었다.

“제가 아직 폐하께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미나미는 토라오의 말을 구부렸다.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 그것이 싫지 않으면서 그가 골랐던 단어를 그대로 내밀었다. 신과 신애. 상대에 대한 존중과 경외로 이어질 관계.

“아마도.”

“인간 신에게는 어떤 헌신을 해야 하나요.”

미나미는 토라오의 곁에 누웠다. 가만히 얼굴을 마주 보다 손끝으로 그의 입술을 매만졌다. 혈색이 도는 입술은 제법 고생했는지 까슬거렸다. 이전에 맞닿았을 적의 감촉을 떠올린 미나미는 그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고, 토라오는 그런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알려줄까.”

시선은 가만히 이어진다. 망설임이 사라진 눈동자는 또렷한 정염으로 타올랐다. 읽을 수밖에 없는 진득한 온기에, 가슴을 간지럽히는 속삭임에 신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5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에 미나미는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온몸이 뻐근해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아는 것이 없어 그저 따라갔을 뿐인 밤의 장단은 쉴 틈 없는 굴곡의 연속이었다.

“일어났어?”

토라오는 미나미의 뺨을 쓰다듬었다. 커다란 손에 폭 감기는 작은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던 그는 이마에 입술을 누르고서야 떨어졌다.

“계속 이렇게 있고 싶은데, 바로 떠나야 해.”

“서쪽으로 가시나요?”

“응. 그리고, 아키의 저주가 마음에 걸려서 그러는데.”

되도록이면 서북전에서 나오지 마. 호위도 여럿 세울 거야. 우메하라는 물론이고 다른 궁녀들도 불러둘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편하게 부려 먹어. 미나미는 토라오가 무얼 염려하는지 알아차리곤 낮게 웃었다.

“그럴게요.”

“착하네.”

토라오는 발치에 떨어진 옷을 주워입었다. ‘해버렸다.’ 퍼뜩 떠오른 문장에 공연히 귀 끝이 달아오르고 헛기침이 샜다. 미나미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떠난다는 말 때문일까, 표정이 침울하다.

“걱정돼?”

“어쩔 수 없잖아요.”

토라오는 그런 미나미의 손을 잡았다. 이제 막 깨어난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것이어서, 어딘지 모르게 고결한 느낌까지 물씬 풍겼다.

“미나미, 나는 너의 신이고.”

“…저는 폐하의 신애입니다.”

“그렇지.”

신이 죽는 거 봤어? 돌아오면 맨발로 뛰어와서 안아주기나 해.

토라오는 미나미의 머리를 와다닥 헝클였다.

“그거면 되나요?”

“나머진 다녀와서 말할까.”

원하는 것이 있는 걸까. 미나미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텅 빈 복도를 걷는 황제의 얼굴은 그 위치에 걸맞은 표정으로 굳어졌다. 잃고 싶지 않은 행복을 맛본 이는 더한 행복을 탐하고 싶어 했다.

평생 너와 함께 하리라, 이 귀한 소망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적해야 할 저주가 있었다.

*

“그래서, 계획은 어찌 됩니까?”

태황태후는 손가락에 두꺼운 금반지를 끼우며 물었다. 자개함에 담긴 색색의 보석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서쪽 외곽 지역에서 나츠메까지의 길은 지난 전쟁으로 어느 정도 트여있습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산을 끼고 돌아가 뒤에서 습격하는 군영도 마련했습니다.”

“장군의 병사들은?”

“폐하와 함께 트인 길로 갑니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던 그는 금반지를 빼내고 붉은 보석이 박힌 것으로 바꿔 끼웠다. 선황제 때 약탈한 나라에서 들인 광물로 만들어진 귀한 패물이었다.

“전쟁 도중에 거사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걸 위해 이 전쟁을 이용하시는 것 아닙니까.”

“눈치도 빠르지, 내가 이래서 공을 자주 찾는 겁니다.”

“황송하옵니다.”

그런데 신애의 처분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태황태후는 자개함을 닫으며 느긋하게 웃었다.

“제가 곱게 죽이겠습니까.”

두고 보시지요, 아주 짓밟아 없앨 터이니.

*

미나미는 둘이서 보던 벚나무를 홀로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칠 줄 모르던 꽃비도 이제 거의 저물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다. 피부를 타고 지나가는 포근한 바람의 향기에 문득 토라오가 떠오른다.

보고 싶다. 저도 모르게 든 생각에 웃음이 났다.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마음이란 한없는 미지였다. 미나미는 밤새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를 차분히 곱씹었다.

무수리 출신이었던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끔찍하게 사랑하던 아버지의 이야기. 신분을 숨기고 황실 시험을 봤을 적의 이야기. 그러다 외국을 돌아다녔고, 거기서 친구를 만났다는 이야기까지.

‘…잠도 얼마 못 잤는데.’

피곤하지 않을까. 여독은 잘 풀었을까. 미나미는 위험할지 모르니 빨리 서북전으로 돌아가자는 우메하라의 재촉에 못 이겨 자리를 떴다. 처소로 돌아가는 중에도 머릿속은 토라오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시세이가 차지한 공간을 빼앗은 인간 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서쪽으로 내려온 지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전쟁은 시작됐다. 눈에 뵈는 것이 없는지 막무가내로 몰아치는 나츠메의 선봉엔 신애 아키가 있었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 끝엔 시체가 나뒹굴었다. 참혹한 공간은 반드시 건너야 하는 길이었기에 외면할 수도 없었다. 토라오는 전쟁에 집중했고, 그 속에서 무언갈 발견했다.

아키도 천애도 전부 칼을 쥐고 싸웠다.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고 천애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병사들의 사기 또한 충만해졌다.

‘시세이가 미도를 선택했다.’ 희망찬 문장은 삽시간에 퍼졌다. 토라오는 알고 있었다. 시세이는 미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전부 내려놨을 뿐이다. 애초부터 신을 모신 적 없는 미도는 담담했다. 하지만 있던 신을 잃은 나츠메의 칼은 날짐승의 포효와도 같았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돌아올 적엔 미나미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지친 몸을 이끌고 뜨거운 물에 잠기니 문득 제품에서 잠들었던 그가 떠올랐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날. 평범하기만 하던 보랏빛 향기가 특별해지던 날. 알던 인연이기에 반가울 뿐인 줄 알았지, 그게 반해서 그런 줄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가졌다 하더라도 잃게 될 겁니다.

지겹게도 울리는 목소리는 마치 최면 같았다. 토라오는 오래 있지 못하고 까만 갑옷을 갖춰 입고 나왔다. 칼을 쥐고서, 반드시 죽여야 할 표적을 다시금 상기했다.

목 언저리의 상처가 유달리 거슬렸다.

*

미나미는 검은 호랑이를 만났다. 커다란 이빨엔 피가 뚝뚝 떨어졌고 그의 발치엔 뱀의 사체가 잔뜩이었다. 어디선가 새하얀 뱀이 나타나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검은 호랑이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뱀의 가죽을 긁고 찢었다. 호랑이의 손톱엔 하얀 가죽이, 뱀의 송곳니엔 호랑이의 살갗이 들러붙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피비린내가 아닌 그윽한 꽃향기가 천지에 깔렸다. 어울리지 않는 광경을 멍하니 보고만 있던 미나미는 두 동강이 되어 나뒹구는 뱀을 보고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죽으면 저주가 끊어질 것 같습니까?”

내 능력은 다했을지언정 이미 걸린 저주는 그 누구도 거둘 수 없습니다. 뱀의 목소리가 울린다.

“가엾게도, 이리 끝날 것을.”

뱀의 까만 눈동자에 불이 꺼졌다. 미나미는 익숙한 음성에 미간을 좁혔다. 비틀거리던 검은 호랑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날아온 두 개의 칼이 호랑이의 등에 콱 처박혔다.

검은 호랑이는 허공을 할퀴었다. 하지만 뱀과의 싸움으로 지친 몸은 더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미나미는 호랑이를 향해 뛰어갔다. 쓰러진 호랑이 아래로 붉은 웅덩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신애 님!”

“…아.”

꿈… 이었나, 토라오의 체취가 남은 이불에 코를 박고 있던 그는 우메하라의 목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나쁜 꿈을 꾸신 건가요? 너무 힘들어하셔서.”

“…괜찮아요.”

폐하의 소식은요? 미나미가 식은땀을 흘리며 묻자 그는 얼른 새 옷을 꺼내왔다.

“파발은 어젯밤에 왔다 가지 않았습니까. 오늘이 마지막 전투가 될 거라고 했고요.”

“혹시 다른 건…”

“폐하께서 승전고를 울리면서 돌아오시겠지요?”

너무 심려치 마세요, 신애 님. 미나미는 우메하라의 말에 못내 수긍하며 두 손을 꼭 맞잡았다. 하지만 마음은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그리고, 꿈은 반대라잖아요.”

꿈은, 반대… 미나미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쥐다 겨우 고개를 들었다.

“…우메하라, 말을 준비해줄래요?”

“네? 안 돼요, 어딜 가시려고요!”

“그냥 바람 좀 쐬고 싶어서 그래요.”

“그럼 마차를 준비할게요.”

우메하라가 당차게 받아치자 미나미는 한숨을 내뱉었다.

“마차를 타면 속이 좋지 않아요, 말을 타고 달리면 개운해지니까. 그래서 그래요.”

내가 서북전을 나가 돌아다니는 게 불안한가요? 미나미의 물음에 우메하라는 냉큼 대답했다.

“당연하죠! 이전에 정원을 산책한다 하실 때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꿈은 반대라면서요?”

“그… 그렇긴 한데요…”

“미도가 이길 거라고 했으니, 난 안심하고 바깥을 돌아다녀도 되는 것 아닐까요.”

미나미는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우메하라는 좀 전까지 와르르 쏟아낸 말을 어떻게 주워담아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그… 렇겠네요. 대신 호위를 붙여서…”

“호위는 싫어요, 따라갈 거면 당신이 따라와요.”

저, 제가요? 우메하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미나미는 둥글게 웃었다.

“그들을 믿을 수 있어야지요.”

황제를 따르는 사람인지 아니면 태황태후가 보낸 사람인지 분간하긴 어려웠다. 전부 얼굴을 가리고 있어 오늘 본 이가 어제 본 이인지도 알 수 없었기에 미나미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우메하라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요.”

신애의 신뢰를 받는다. 우메하라는 미나미의 말에 확 상기되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 영광입니다, 제가 시, 신애 님의 신뢰를, 제, 제가…”

“미도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당신 덕인걸요.”

그의 말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한 우메하라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힘껏 외치고 달려 나간 그는 머잖아 검은 갈기를 가진 어린 말 두 필을 끌고 왔다.

“전쟁 때문에 다 데리고 갔는지 이 아이들만 남아있었어요.”

“…수고했어요.”

미나미는 말 위에 올라탔다. 천애 시절에 제대로 배운 덕분에 오랜만에 하는 승마인데도 어색함이 없었다. 그는 높아진 시야를 보며 고삐를 꽉 움켜쥐었다. 그가 제대로 자세를 잡자 우메하라도 말에 올라탔다.

“신애 님과 같이 말을 타다니 꿈만 같아요. 그런데 저는 잘 몰지 못해서, 좀 느릴 수 있어요.”

“괜찮아요, 천천히 따라오세요.”

그럼, 먼저 갈게요.

“…에? 네!?”

우메하라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지면을 치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신애 님! 혼자 가시면 안 돼요!!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도 미나미는 멈출 수 없었다.

―미안해요, 우메하라. 미나미는 그대로 서쪽으로 내달렸다.

*

“…허윽, 컥…”

이 칼이 아키의 송곳니라면 덜 억울했을지도 모르지. 울컥 올라온 피가 검은 호랑이의 턱과 몸을 적셨다. 뒤에서 파고든 칼은 폐부와 복부를 꿰뚫었다. 한 차례의 전투로 온몸엔 베인 상처가 가득했다. 비틀거리다 바닥에 주저앉은 토라오는 제 호흡이 거쳐야 할 곳을 지나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대, 체, 왜…”

“그리 원망하지 마십시오.”

저는 태황태후 마마의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 토라오는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도무지 잡을 수 없었다. 태황태후의 명이란다. 결국엔 나아질 수 없는 것이었나, 코가 시큰하고 눈이 얼얼하다.

그럼 미나미는? 미나미는 안전한 거야? 태황태후의 명으로 이렇게 되었다면, 그와 다퉜던 미나미에게도 해가 갈 가능성이 높았다. 위험을 뒤늦게 깨달은 토라오는 희뿌연 시야를 해치고 미나미를 그렸다. 역시 제대로 이야기 했어야 했는데. 이것 말고도 해주고 싶은 말은 참 많았는데. 그냥 다 하고 올걸 그랬나. 아니, 하루 안에 끝날 말들은 아닌데…

별안간 번개가 내리치고 빗줄기가 쏟아졌다. 청각 또한 멀어져 닿아오는 것이 희미하다. 하지만 토라오는 제 주변을 에워싼 모든 것이 떠나고 있음은 뚜렷하게 자각했다.

이토록 아무도 없구나. 전부 내 사람이 아니었구나. 미나미, 나는 무슨 노력을 해야만 했어? 우리, 그냥 다 내려놓고 어딘가로 도망가서 살았다면, 그랬다면 조금 나았을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 제 입에서 나오게 될 줄이야, 허무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 성큼 다가온다. 온갖 감정이 뒤섞이자 도리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미나미가 그리웠다. 보고 싶었다. 한 번만 더 안아줄걸, 의미 없는 후회가 계속될수록 숨결은 빗소리에 흩어졌다. 검은 호랑이의 몸을 감싸며 흐르는 물기는 붉게 얼룩져 바닥에 고였다. 무서운 속도로 체온을 앗아가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좋을지, 불행이라 여겨야 좋을지. 사신의 낫이 목에 걸리자 고통 또한 둔해졌다.

흙바닥은 피로 얼룩지다 못해 웅덩이를 만들었다. 하나가 아닌 여러 구의 시체가 모인 웅덩이는 이내 연못 크기로 번졌다.

작은 아이가 괴롭힘에 떠밀렸던 구슬픈 공간은 이제 짙은 붉은 빛이다. 파란 연못과 달리 디딜 육지도 없는 곳은 빠진 이를 끊임없이 침잠하게 했다. 영혼의 울림은 못을 넘치게 했고, 범람한 물은 이내 누군가의 발치까지 다다랐다.

――곱게 차려입은 하얀 옷은 흙탕물로 더러워졌다. 오는 길에 몇 번이나 굴렀는지 팔이며 다리며 쓸리고 찍힌 상처가 낭자했다. 밝은 빛깔의 머리카락은 빗물에 젖어 뺨에 들러붙었다. 거친 숨을 정리하던 그는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신을 잃은 신애는 살아갈 수 없다고 했는데.”

미나미는 칼이 박힌 몸뚱이 앞에 멈춰 섰다. 푹 젖은 몸은 핏기가 사라져 창백했다. 추위로 떨리는 손은 빈 껍데기만 남은 몸에 닿았다. 검은 호랑이에게는 아주 작은 맥박도, 그 어떤 온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위험한데 왜 왔느냐며 다그칠 것 같았다. 그렇게 화를 내다 꼭 안아줄 것 같았다. 미동도 없는 커다란 몸은, 그렇게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다.

“폐하.”

미나미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뺨을 감싸며 조심스레 그의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빛을 잃은 눈동자에 무시하고 싶은 현실이 와닿았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이 신애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머진 다녀와서 말할까.

원하는 것이 있어 보이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는 무얼 말하려고 했을까. 미나미는 토라오의 다리 위로 올라가 앉았지만, 칼날 때문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신이 죽는 거 봤어? 돌아오면 맨발로 뛰어와서 안아주기나 해.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그저 폐하의 곁을 지키는 것밖에.

칼끝이 미나미의 몸에 박힌다. 천천히, 느리게. 깨문 입술 새로 신음이 쏟아진다. 고통으로 뿌옇게 흐려진 시야는 오롯이 토라오의 얼굴을 담아냈다.

“보고, 싶, 었어요.”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좀처럼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힘이 빠진 두 팔은 토라오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미나미는 힘겹게 다가갔다.

감긴 눈꺼풀은 희미한 영상을 재생했다. 전혀 다른 복식. 전혀 다른 공간. 이질적인 장소 어딘가에 그가 있고 또 자신이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음악까지 들리는 듯 했다. 미도처럼 화려하지만 나츠메처럼 온화한 소리였다.

갑자기 능력이 돌아와 미래를 본 걸까, 아니면 단순한 망상일까. 어디선가 맑은 꽃향기가 났다. 시원한 물냄새에 뒤섞인 그것은 분명 맡아본 적이 있는 향이었다. 우는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언젠가의 어떤 날에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확신은 등을 떠밀었고 더러워진 옷은 더 짙은 연못 색으로 변해갔다.

나의 신, 미도 토라오. 미나미는 피비린내만 남은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피가 쏟아지고 의식이 멀어졌지만 숨은 끊어지질 않았다. 당신은 홀로 이런 끔찍한 시간을 보내다 떠난 걸까.

아파, 너무 아파. 미나미는 흐느끼지도 못했다. 죽어가는 고통 속에서 그가 얼마나 나를 찾았을지. 두 사람의 피를 먹은 칼끝은 이내 여린 살가죽을 찢고 하늘을 향했다.

미나미는 힘겹게 팔을 들어 토라오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렇게보니 꼭 잠든 것 같다. 잠든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왜 한 번도 보지 못했지? 의미 모를 의문에 헛웃음이 났다.

점차 심장이 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호흡이 짧아지고 자꾸만 눈꺼풀이 감겼다. 그럼에도 미나미는 어떻게든 토라오를 조금 더 눈에 담으려고 기를 썼다. 숨이 끊어져 완전한 어둠이 깔릴 때까지, 미나미는 오래도록 미도 토라오를 바라보았다.

봄의 끝자락. 벚나무 아래엔 다 져버린 꽃잎에 파묻힌 검은 호랑이와 하얀 뱀이 칼에 묶여있다. 두 짐승의 가슴에 사무친 붉은 빛은 공교롭게도 같은 색이었다.

종장

“…미도 씨.”

미도 씨, 일어나요. 미나미는 곁에서 자는 연인을 흔들어 깨웠다. 찌뿌둥한 몸을 비적이던 토라오는 늘어지게 하품하며 팔로 눈가를 가렸다.

“이상한 꿈…”

토라오는 트이지 않은 목소리로 무어라 꿍얼거리더니 미나미의 허리를 한 팔로 휘감았다. 갑자기 바짝 끌어당겨지자 미나미는 그대로 토라오의 품에 가두어졌다.

“…이상한 꿈을 꿨어.”

잔소리하려던 미나미는 토라오의 말에 잠시 멈추었다. 무슨 꿈을 꿨길래 아침부터 어리광일까, 다정하게 등허리를 도닥인다.

“이상한 꿈이요?”

“네가 나왔는데… …아니, 아니다… 재수 없는 꿈이었어.”

“…제가 나왔는데 재수 없는 꿈이었다고요?”

“의미가 이상해지네.”

토라오는 큭큭거리다 조용히 속삭였다.

“넌 나 따라서 죽고 그러지 마.”

“제가 왜 당신을 따라 죽어요…?”

아니 그 전에, 당신이 죽긴 왜 죽어요. 죽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릴 거에요. 화가 났는지 거칠어진 목소리에 토라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신도 아니고 날 어떻게 살려.”

“말이 그렇단 거잖아요, 아무튼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알았어, 알았어. 안 할게.”

그런데 몇 시야? 토라오는 오후 세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발견하곤 뜨악해졌다. 모처럼의 오프날을 잠으로 보내다니, 난데없이 꼬여버린 계획에 미간이 좁혀진다.

“그러고 잤는데 늦잠 자는 건 당연하죠.”

우리가 몇 시에 잠들었는진 기억해요? 미나미의 물음에 토라오는 그제서야 아, 한다.

“4시… 였지.”

“Dusty Love였죠.”

“뭐?”

미나미, 우린 그런 사이 아니잖아. 좀 더 예쁜 단어 없어? 아니, 아니다. 다음 내 솔로곡 제목은 널 향한 노래로 제대로 써 줘.

뻔뻔한 주문에 미나미는 그의 볼을 꾹 눌렀다.

“그럼 사랑스러운 곡으로 준비해드리죠.”

“내 목소리에 어울리겠지.”

“물론이죠, 아름다울 거예요.”

토라오는 미나미와 이마를 맞댔다. 아름답다는 수식어는 너에게도 통하는데, 나긋한 울림에 미나미는 입맞춤으로 대답했다.

“…아, 미나미.”

폐하, 라고 불러봐. 뜬금없는 소리에 미나미는 눈을 끔벅였다.

“코스튬 플레이 선행인가요?”

“나 그런 말은 안 했는데.”

아, 해주려고? 서프라이즈인데 내가 눈치 없이 군 건가? 토라오가 태연하게 말하자 미나미는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냅다 후려쳤다.

“누가 해준다고 했나요.”

“해준다고 하면 해줄 거면서.”

“…….”

“…아니야?”

“아니에요.”

“지금 좀 망설이는 것 같았는데.”

그거 있잖아, 네가 요새 찍는 드라마. 그거 생각나서 물은 거야. 토라오는 현재 방영 중인 사극 이야기로 넘어갔다.

“당신을 황제 폐하라 불러주었으면 하나요?”

“일단은 밤의 황제니까.”

“본인 입으로…”

“왜, 너도 인정하잖아.”

“…후후, 그래요. 제가 졌네요.”

그럼 그 드라마 대사로 해볼까요. 미나미는 아직 누워있는 토라오의 곁에 턱을 괴고 웃었다.

“나 듣고 싶은 대사가 있는데.”

“사랑해요?”

“물론 그것도 좋지만.”

아, 근데 그거 엄청 열 받았어. 토라오가 입을 비죽이자 미나미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꾹꾹 눌렀다.

“연기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네가 그렇게 아련한 눈으로…”

“당신도 그렇게 봐주길 바라나요?”

“어.”

토라오는 미나미의 손가락을 가볍게 깨물었다.

“키스신도 너무 많아.”

“어머, 아직 세 번 밖에 안했는걸요.”

“세 번이나 했다고?”

겨우 키스 정도로 뭘, 같은 소릴 할 사람이 진심으로 짜증을 내니 어찌나 귀엽던지. 미나미는 토라오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그래서, 대사는요?”

“아, 그래. 잠깐만.”

그거 뭐였지, 뭐더라. 토라오는 기억을 더듬더니 이거다, 하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너의 신이고―”

아, 역시 황제의 대사인가요. 미나미는 다음 대사를 읊었다.

“저는 폐하의 신애입니다.”

시세이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매 멸망이 코앞이다. 백성들의 시체가 지천으로 깔리고 통솔하던 왕은 사망의 권세에 머리를 조아렸다. 때에 어디선가 커다란 뱀이 나타나 울었다. 신묘한 울림에 이끌린 왕은 뱀이 있던 자리에서 허름한 이와 마주치매 그를 궁으로 들였다.

왕은 온 힘을 다하여 대접했다. 곳간이 비어 풍족한 식사는 힘들지언정 제 입에 들어갈 것까지 내놓으며 정성을 다했다. 지저분한 옷을 벗겨 씻기고 새 옷으로 입혀 잠자리를 바치자 그는 왕에게 감사를 표하며 물었다.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이 있니? 음색은 머리로 들리는 듯했다.

이 나라가 영원하게 하소서, 온전히 바치겠나이다. 주저 없이 나온 간절한 소원은 신 시세이西紫에게 닿았다.

*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나츠메는 원래의 운명대로 멸할 거란다.”

나긋한 목소리에 왕은 머리를 숙였다.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나이다, 시세이는 고개를 기울였다.

“네게 이 나라는 무슨 의미가 있니?”

“제 전부입니다.”

평생을 바쳐 일궈낸 공간입니다, 피와 땀으로 여기까지 끌어왔습니다. 왕의 과욕이 부른 참사일까, 세상은 커다란 나츠메에게 칼을 겨눴다. 번뜩이는 칼날은 하나가 아니었다. 주변 국가들이 전부 합심하여 침입하자 속절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걸 나에게 준다고?”

“지킬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정말 모르겠구나.”

시세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럼 나라를 지킬만한 힘을 주면 되겠니?”

“지켜질 수 있는 강한 힘을 원합니다.”

겨우 식사와 옷을 대접한 정도에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왕은 절박했다. 너무도 절박한 나머지 뻔뻔했고 그것은 시세이에게 닿았다.

“너의 나라에 나의 아이들이 태어날 거야.”

시세이는 왼손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

늦은 밤, 나츠메의 도처에서 하얀 뱀이 나타나 울었다. 그들은 나츠메의 소생이 아닌 인간을 모조리 공격하고 삼켰다. 왕은 군사도 없이 전쟁에서 승리했다. 허나 폐허가 된 공간을 수복할 수 없었기에 영토와 백성들을 거의 대부분 잃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왕은 거기에서 만족했다. 새까만 밤을 비춘 하얀 뱀의 무리는 지천을 낮으로 만들었다. 이에 나츠메는 신 시세이의 하얀 뱀을 통틀어 백야白夜라 칭하였다.

임무를 마친 백야는 땅에 녹았다. 바닥으로 푹 꺼져 사라진 자리엔 녹읍이 생기거나 호수가 생겼다. 피와 시체가 깔린 공간은 그렇게 억지로나마 아름다워지는 듯했다.

*

“가시는 겁니까.”

왕은 다시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이 두려워 궁을 떠나려는 시세이를 붙잡았다.

“나도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지 않겠느냐.”

나의 아이들은 이곳에 있단다, 시세이의 순한 미소에 왕은 제 두 손을 꼭 맞잡았다. 불안해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나라를 잃을 것이 그리 불안하니?”

“…예.”

“내가 지킬 텐데도?”

“하지만 시세이 님은 떠나시는 것 아닙니까.”

“몸이 멀어도 도울 수는 있단다.”

나의 아이들을 두고 간다고 했지? 왕은 시세이의 말을 곱씹더니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주술을 사용할 줄 안단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 하나는 나와 같다고 여겨주렴.”

아이는 뱀을 부릴 거란다, 구분하기에 어려운 일도 아닐 거야. 시세이의 발치에 작은 물웅덩이가 생긴다.

“그 아이에게 보내는 뱀에게 음식을 대접해주려무나, 뱀이 삼킨 것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야. 맑은 물에 담긴 것이어야 내가 즐길 수 있단다.”

나는 그 아이를 통해 많은 것을 전달할 테야, 허투루 듣지 말고 곧이곧대로 들으렴. 나와 그 아이를 같다고 여겨야 해. 거역해서도 아니 되며 손가락질해서도 안 돼, 행여 너의 자손들이 그리한다면 나는 본디 운명대로 너의 나라를 거둘 테니까.

시세이는 왕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매듭짓는 것엔 또 많은 약속이 필요했다. 왕은 그저 끄덕였다.

“시세이.”

“호쿠토?”

시세이는 저를 마중 온 호랑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탐탁지 않은 눈으로 시세이와 왕을 번갈아 보았다.

“둘이 무슨 ‘계약’을 할 때?”

“후후… 손해 보는 계약은 아니니 그리 걱정 말아.”

너와 사나, 아즈마와 함께 풍족하게 즐길 식사를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러나 호쿠토는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인간, 잘 들어.”

시세이를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하면, 그땐 내가 나서서 네 나라를 거두게 할 테니. …왕은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

한 달 후, 나츠메에는 하얀 뱀의 문신을 단 아이들이 태어났다. 이들은 모두 특별한 주술을 사용했고, 왕은 능력을 가진 아이들 모두가 궁에서 지내도록 했다. 신의 아이에 걸맞게 각종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능력을 활용하여 나라를 재건했다.

초창기의 천애는 창조와 회복의 능력이, 나라가 안정된 후엔 공격형 능력이 주를 이루었다. 그만한 능력을 내리는 시세이의 깊은 뜻을 전적으로 믿게 된 왕은 시세이를 섬기지 아니하면 나라에서 추방하였다.

왕은 시세이가 발견되었던 산등성에 새로이 궁을 지어 성전聖殿이라 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궁 전체가 성전 근처로 옮겨져 지금의 나츠메가 되었다.

그렇게 나츠메는 신국神國의 이름을 얻었다.

*   *   *

“호쿠토.”

시세이는 물가에 앉아 낚시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호쿠토는 길게 드리워진 낚싯줄만 바라보다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역시 이제 그만두자, 시세이.”

500년이면 충분했어. 시세이와 호쿠토는 나츠메가 멸할 운명의 나라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 운명에서 보호하는 것이 시세이였다. 홀로 숲을 돌아다니다 길을 잃은 시세이는 굶주림에 지쳐 그대로 쓰러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츠메였다.

“나를 구해주었잖니.”

“어차피 죽지도 않았을 텐데.”

“호쿠토는 잔인하구나…”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는 무어라 할 말을 찾다 말곤 혀를 차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뭐, 어쨌거나 내가 널 구했겠지. 내가 못했다면 사나나 아즈마도 있고. 나참, 우리가 널 찾으러 그때 얼마나 돌아다닌 줄 알아? ”

“후후, 그래도 결국엔 너로구나.”

그때도, 지금도. 시세이는 뒤에서 호쿠토의 허리를 끌어안곤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거둘 때가 된 것 같다고는 생각해.”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어, 시세이의 목소리는 퍽 음울한 것이었다.

“약속도 오래되면 낡기 마련이구나.”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야. 시세이는 신애가 떠난 텅 빈 나츠메를 느끼고 어깨를 내렸다. 호쿠토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엔 내가 가장 아끼는 능력을 가진 아이를 신애로 올렸는데, 나라가 망할 징조라는 소리나 떠들고 참 너무하지 않니?”

너무 괴롭히긴 했어, 이런저런 소리를 복잡하게 늘어두자 호쿠토는 낚싯대를 거두었다.

“이쯤이면 됐어, 오만해진 인간들에게 본보기도 필요하고.”

그만하자, 시세이. 시세이는 호쿠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이만큼은 지키고 싶어, 호쿠토.”

적어도, 이 아이와 이어질 인연은 제대로 이어주고 손을 떼야지. 시세이는 독에 취해 앓고 있는 신애의 곁을 지키고 있는 뱀에게 명령해 허벅지를 물어 독을 빼게 했다.

“능력은 거두자.”

“그래야지.”

모든 사문을 거두고 독을 문 뱀을 이곳으로 부른다. 시세이는 뱀이 뱉은 독이 바닥을 녹이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키는 너무 유능했어.”

“하지만 그 아이만큼 나츠메를 사랑한 이도 없었는걸.”

“자애롭네.”

시세이는 조용히 웃었다.

*   *   *

“거기서 뭐 해?”

“내 아이가 죽으려고 해.”

시세이는 물가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결국 미도의 황제는 죽었나?”

“죽었어.”

담담한 어조에 호쿠토는 시세이의 곁에 앉았다.

“아키의 저주는 네가 준 능력이니 네가 거둘 수도 있었잖아?”

“이번 생에 이어지면 그다음 생은 모두 엇나갈 운명이었단다. 그래서 잠자코 있었던 거야.”

아키의 저주도, 어찌 보면 저 아이들에게 이로운 것이니. 시세이는 신애의 곁에 있던 하얀 뱀에게 손짓했다. 환계 바닥을 배로 쓸며 다가온 그는 시세이에게 머리를 대고 문질렀다.

“가서 저 아이에게 앞날을 보여주지 않으련?”

이미 죽음을 택한 이에게 조그만 희망이라도 주어야지 않겠니. 시세이의 말을 들은 뱀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신애에게 향했다.

후기

후기를 두 번째 씁니다. 그것이, 실은 마감도 끝내고 후기도 다 써놨는데 마감 이틀 전에 뒷부분을 엎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괜한 짓을 했나 싶은데 당시의 스토리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연출에 꽤 많은 신경을 썼지만 제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어줍잖은 장치를 여러 개 두었는데 그만한 임펙트가 터졌을지, 아니면 노래 가사대로 꽃을 꺼내고 발차기를 하는 촌스러움의 극치를 터뜨렸을지 너무 조마조마하네요. 작업한 기간은 2개월인데 하도 엎어대니 실제 작업한 기간은 일주일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원작 설정을 많이 반영했습니다만 어째 쓰면 쓸수록 토라오와 미나미가 아니라 제 자캐가 되어가는 기분에 머리털을 다 뜯었습니다. 누군가의 구원이 되고 싶어 하는 토라오나 남에게 기쁨이 되기 위해 희생하던 미나미, 그리고 비슷한 결핍이 있는 둘. 길항과 메인 스토리를 보신 분들은 눈치채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게 잘 살려졌을지는 정말… 정말 많이 걱정이네요…

천애와 신애의 개념은 n년 전부터 제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인데 토라오와 미나미에게 넣으면서 많이 다듬어지고 변형됐습니다. 실은 폭군으로 시작했던 토라오 입니다. 그랬더니 내용도 뻔해지고 캐붕도 심해졌어요. 역시 히어로를 바라는 그에겐 그만한 걸 주어야지 싶어서 ‘무능한’ 내지는 ‘실패한’ 구원자로 설정했습니다. (좀 너무했나) 물론 본문의 두 사람 다 ‘유능한 무능함’이라는 아이러니에 부딪쳤지요.

황실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도대체 어떤 나라를 중심으로 잡아야하나 골치였습니다. 결국 자체 세계관이니 내 마음대로 해버리자!로 갔습니다만, 새로운 명칭을 만드는 건 보기 좋게 실패했네요. 나츠메의 지역을 색으로 나눈 것도 미도의 황실을 방위로 나눈 것도 전부 시세이紫와 호쿠토北의 한자에서 따온 것이 맞습니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다 보니 글을 쓰는 것도 문제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머리를 여러 번 박았습니다. 실은 일정도 많이 빠듯했더래서 느긋하게 재활하고 덤볐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게 아쉬워요. 적어도 말이 되는 글을 쓰자, 하고 절충했는데 그 또한 잘 해냈을지 걱정입니다.

후반에 토라오가 사망하는 부분은 사실 더 잔인했습니다. 한창 적다 보니 아무리 사망 소재가 있다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어요. 아예 19세였다면 이리저리 저질렀겠지만요. 검은 호랑이와 하얀 뱀으로 전쟁 상황을 누그러뜨린 것도 이 책이 15세 이용가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체이용가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라이트하게 적고 싶었기에 정말… 정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사실은 미나미가 토라오를 찌른 칼을 몸으로 받아내는 상황이 보고 싶어 탄생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클라이막스가 과연 클라이막스답게 나타났을지, 너무 떨리고 긴장되네요.

사실 폭군 토라오로 진행하고 환생한 이후의 스토리까지 생각했는데 소재를 뒤엎으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됐어요. 버리게 된 스토리는 새롭게 다듬어서 포스타입이나 회지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과연이지만요!

앞으로도 평생 토라미나 하고 싶어요. 제 스트라이크 존을 제대로 쳐버린 아이들이거든요. 서로 부족한 부분이 멋들어지게 착 붙어버리는 맛있고 예쁜 커플링입니다. 독갱 봐주세요, 신년 봐주세요.

토라오가 처음 건넨 보라색 제비꽃의 꽃말은 ‘나를 사랑해주오’입니다. 벚꽃의 꽃말은 ‘순결한 사랑’인데 네… 그… 실패했습니다. (진짜 얘네가 해버릴 줄 몰라서 실시간으로 당황한 사람)

미나미는 아키의 저주로 토라오의 미래는 보지 못하게 된 것이 맞습니다. 미래를 알면 저주를 풀 수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이전에 작업했던 게임북 형식도 적용해보고 싶었는데 시간상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포기했습니다.

또 미나미의 허벅지를 물고 떠난 백야는 태황태후가 먹인 독을 빼내려고 그랬던 것이 맞습니다. 시세이가 나츠메를 버린 이유에 대한 내용은 시세이서에서 풀어보겠습니다.

토라오가 죽고 나서야 미나미는 그의 미래를 봅니다. 능력이 사라졌는데도 볼 수 있었던 것은 ‘비’ 때문입니다. 이 또한 시세이서에서… …는 제가 정말 부족하다는 걸 느끼네요… 글에는 설명이 없어야 한다는데 매 후기마다 설명만 주구장창 늘어두느라 길어질 듯합니다. 일단은 미나미가 백야를 강림했을 때 느꼈던 향으로 표현해봤습니다. (본래 시세이서는 선입금 대상의 특전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설명이 필요한 파트가 많아져 현장판매분의 가격을 올리고 본편에도 포함하는 쪽으로 변경했습니다.)

또 후반엔 현재의 토라미나와 드라마로 풀어냈지만, 진실은 전생과 현생입니다. 사망 소재를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방파제처럼 설치한 파트입니다.

아키와 우메하라 등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느긋하게 풀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내용이 길어져 전부 삭제했습니다. 이것도 참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네요. 토라오와 미나미를 부각하고 나머지는 전부 쳐냈습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마 분량은… (아득)

아이고, 말이 점점 길어지고 있네요. 이런 구성을 이 가격에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스폰서 탸님, 그리고 스토리와 소재 활용 등등 많은 조언 주신 이치린님, 친히 시간 내주셔서 컨펌에 큰 도움 주신 프레님, 제 생애 첫 축전을 선물해주신 항상 사랑하는 서방님, RT와 마음을 더불어 본 책이 무사히 나오도록 응원해주신 소중한 지인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너무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본 책을 구매해주신 소중한 톨미러분들께도 진심으로!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7월엔 제가 사랑하는 커플링들로 제대로 일을 치고 싶은데 이 또한 과연, 과연 입니다. 별일 없다면 뱀파이어 세계관으로 토라미나를 포함한 여러 커플링이 올스타즈 할 것 같습니다. 실은 뱀파이어왕인 미나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원래 인간이었던) 뱀파이어 토라오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써놔야 제가 무언갈 할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저쪽에 7월의 모람이 주먹을 흔드는 것이 보이는군요.

구구절절한 사족 또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가독성이 떨어진다거나 내용에 어디가 이상했다거나 등등 편하게 지적해주세요.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본 책에, 토라미나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스러운 토라미나 계속 예뻐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2020년 1월 3일 모람

사실 신애는 웹발행도 재판매도 예정에 없었던 일입니다. 요청을 받아 감개무량하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주 떨리는 마음으로 작업했는데 행사 이후 다양한 감상을 잔뜩 받아 정말이지 너무너무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그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고는 제 알량한 재주로 글을 짓는 것뿐인데, 이걸 보답이라 칭해도 되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감동에 빠져 무얼 어찌하면 좋을지 참 난처할 지경입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 밖에 떠오르질 않네요. 부디, 이 글이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구매해주시고 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독자분들의 앞길에 예쁜 꽃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2020년 2월 27일 모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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